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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선물

루시드폴의 평범한 사람 을 듣다가 울다

다시 울게 될 줄 몰랐는데, 아마 맥주를 한 병 마셔서그랬나? ^^

듣다가 울게 되는 노래가 몇 곡 있는데 이 노래도 그러했다

나는 심지어 잡지기사를 읽다가도 운다.

몇년전부터,다시 눈물이 내게 돌아왔다는 것이 내심 반가웠다

 

어쨌든...

그 다음날 이 노래를 검색했다

용산 참사에 대한 내용을 담은 노래라고 해서 관련 포스팅을 찾았는데

어떤 블로거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노래인것 같다는 포스팅을 한 것을 찾았다

댓글로. 용산참사에 대한 내용이라고 들었지만 님의 말처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노래일 수도 있겠다는 글을 남겼다

 

오늘 내블로그에 답글이 달렸다

루시드폴 시디가 두개인데 하나를 선물하고 싶다는 거였다

믿어지지 않게 기쁜 소식!

그래서 그 분의 시디가 도착하면 나는 요새 내가 홀릭하고, 당분간 홀릭해마지않을 시와의 음반을 사서 드리려 한다. ^^;;; 흐흐.. 시와 팬이 또 하나 늘어나는겐가? ^^:;; 3명 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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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얼마 전 친구가 부른 노래 두 곡을 날마다 반복재생한다.

너무 슬프게 불러서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아이를 떠올린다.

이유도 모른 채 나는 슬픈 노래를 부른 그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 노래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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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시작하는 것, 사랑하는 과정, 그리고 헤어짐

상대의 가슴에 내 가슴에 깊은 우물 하나 파는 일이다

언제 마를까 그 우물

내 우물은 내가 껴안을 수 있지만 상대의 우물은 내가 파버린 그 우물은 어떡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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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어루만지는 일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

작두콩 기둥 방울토마토 기둥 이것저것 할일은 많은데

사무실 일에 대한 에너지를 많이 쏟으니 텃밭에 덜 에너지를 쏟게 되어 가끔은 일을그만둘 것인가, 일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텃밭에 집중할것인가... 고민된다. 작물들이 마음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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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대화

자꾸 이야기하다보면 감정이 욱,하고 올라와버린다.

엄만 차분히 들어주시는데 말이다

 

엄마에 대해 내가 그리고 있는 잘못된 상이 점차 흐려져가고 있지만 여전히 남아 있어서 나는 엄마를 두려워했다. 그리고 사랑하지만 미워했다.

 

결국 자기 마음의 풀리지 않는 문제였고 정면승부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믿지 못했던 것이다. 어머니와 쌓아온 시간의 앙금을 많이 풀어냈지만, 정작 내 마음 속에서 못 풀었던 것은 내 편견이었다니...복에 겨워 투정을 부렸던 게다.

 

엄마에게 적금을넘겨달라고 했고, 전에 저축했던 일부 돈을 달라고 했다.

걱정했는데 쉽게 이해하시고 주시겠다고 했다

적금으로 세계여행 갈 수도 있다고 했다. 깰 수는 없지만, 대신 다른 데서 돈을 찾아서 주겠다고 했다.

 

그래 정공법이안 되면 돌아가는 거지...뭐

마지막 딱 하나가 남는다. 결혼

 

결혼 이야기, 선을 보라고 해서 보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보겠다고 했다. 답이 없지 않나. 내 진심은 그게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신랑감의 조건으로 원치 않는 것을 몇 개 나열하셨었다.

그리고 믿었던 아버지가 결정적으로 한 마디 하신다.

양쪽 부모가 다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는 거였다.

 

결국 안 되는 조건만 계속 늘어나는 거 아닌가.

무력해지고 내 인생이 뭔가 싶어서

제발 조건을 달지 말아달라고 욱,해서 열변을 토했더니

엄마가 이해해주셨다.

선도 원하지 않으면 보지 말라고 했다.

일단 단정은 짓지 않으시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몰라도..

 

내가 나중에 누군가를 데리고 와도 거절하지 말라고 못을 박았다

이 방식이 폭력적일 수도 있는데... 그거 아는데...

더 이상 눈치보고, 걱정하고, 의식하기 싫어서 그렇게 말해버렸다,,,

뭐 그래도, 농사 짓는 사람은 끝까지 싫어하실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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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없이 오면 안 돼

알았지?

이젠 나도 경계를 지을 거야.

그게 서로를 위한 배려일거야 그렇지? ^^

보다 오래 볼 수 있는 관계...

 

너 반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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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욱,- 나루토 아저씨

음마지막 사진의 웃음이 뭔가 허탈해보이면서도 달관한 것 같기도 하고...

이 사람들 음악 흥겹다

작년에 라이브를 봤는데, 이 아저씨가 보컬인데 실제론 보기보다 젊고, 전날 저녁 마신 술이 깨지 않았다며 헤롱헤롱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근데 목소리 되게 매력적이다. 약간 김반장 비슷하면서, 더하다!!

이번 51공연에서도 ㅋㅋ 베이스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인 보컬 아저씨 ^^

ㅋㅋ 보면 웃음이 나오고, 그렇지만 노래 잘 만든다. 즐거워보여서 좋다. 이 밴드.

이 아저씨랑 김반장이랑 딱 내 스타일이다.ㅋㅋ

아무래도 난 토속적인 스타일을 좋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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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 타바코쥬스

인디10│④ 타바코쥬스 “소리 음, 즐거울 락. 우리는 단어의 뜻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우린 열심히 안하잖아.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펑크밴드 타바코쥬스의 드럼을 맡고 있는 백승화가 감독을 맡은 다큐멘터리 영화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의 한 장면. 보컬 권기욱의 이 대사는 패배주의의 전형처럼 두고두고 회자가 됐고, “열심히 안하는 밴드”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이제 당신이 아는 타바코쥬스는 거기에 없을 지도 모른다. 그들은 “빡세게” 곡을 만들어 2집 정규앨범도 냈고, 요즘엔 연습도 착실히 한다. 술 먹다 공연 펑크 내는 건 옛말이다. 본성을 잃어버린 것 같은 타바코쥬스에 배신감이 엄습해 오지만, 그들이 충만한 ‘똘끼’까지 상실한 것은 결코 아니다. <10 아시아>가 소개하는 네 번째 인디 신은 펑크밴드 타바코쥬스다. 나루토 아저씨 권기욱(보컬)을 비롯해 권영욱(기타, 보컬), 성호림(기타), 백승화(드럼), 송학훈(베이스)과 진행한 인터뷰를 공개한다. 타바코쥬스에 대한 당신의 믿음은 변함없이 유지될 것이라 확신한다.

정규 2집 내고 지난 19일 첫 단독공연을 했다. 어땠나.
권기욱
: 홍대 클럽 ‘바다비’에서 했다. 뜻하지 않게 사람들이 많이 왔다. 게스트가 옥상달빛이었는데, 끝나고 많이 빠져나가더라. (웃음)
권영욱 : 화장실 가는 척 하면서 가는 거 다 봤다.
권기욱 : 거창하게 하진 않았다. 주중에 클럽에서 기획하는 공연이 있다. 단독공연 파노라마인데, 3주 동안 해버리자고 해서 했다.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다. 가게 빌리는 돈만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많이 와서 술도 많이 먹었다. 크크 (웃음)

“이번 앨범 <설레발>은 욕심을 많이 냈다”


권기욱, 권영욱, 성호림, 백승화, 송학훈. (왼쪽부터)

1집 앨범이 밴드 결성 5년 만에 나왔다. 이에 반해 2집 앨범은 1년 만에 나왔다. 열심히 안하는 게 타바코쥬스 모토인데, 요즘 너무 열심히 한다는 생각이 든다.
권기욱
: 기회주의자들이다. (웃음) 영화도 나오고 하니까 어떻게든지 앨범 많이 팔아먹을 고민을 하고 있다.
백승화 : 영화 나올 즈음해서 4월 안에 곡을 뽑자고 하니까 빠르게 진행하게 됐다. 다들 빡세게 했다. 언제까지 기한이 없으면 더 하자 하게 되는데, 기한이 있었기 때문에 타이트하게 한 거 같다.

요즘 연습하다 보면 ‘잘 된다’는 느낌이 드나.
권영욱
: 각자 맡은 부분에서 발전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안 됐었는데, 점점 스케일이 쌓이다 보니까 그렇다. 옛날에 있었던 곡인데 편곡도 더 잘되고 호흡이 더 잘 맞는 거 같다. 베이스 형님이 오셔가지고 같이 작업도 하고, 유도리 있게 잘 된다.

베이스 조퐈니 탈퇴 이후에 팀을 해체하기도 했다.
권영욱
: 한 명이라도 나가면 다 해체하자 그래서 해체했다. 그런데 막상 해체하고 나니까 할 게 없더라. 1주일 정도 지나고 다시 하자고 이야기 했다. (웃음)
권기욱 : 우리 숫기가 없어서 다시 친해지는 게 힘들다.
백성화 : 아예 모르는 사람으로 하기도 그렇고, ‘구합니다’ 해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힘든 일이다.

이번 2집 앨범을 들어보면 블루스, 펑크 등 장르적으로도 넓어졌고, 사운드도 훨씬 다듬어졌다는 게 느껴진다.
권기욱
: 하고 싶은 거 다했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았다. 소프트해졌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고, 변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어쩔 수 없는 거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니까.
권영욱 : 좀 더 대중적이게 된 것 같다.

2집 앨범 타이틀을 <설레발>로 지은 이유는 뭔가.
권기욱
: 영화도 나오고 하니까 제대로 설레발쳐서 이름 좀 알리자는 의미로 만들었다. 노래도 들어보면 알겠지만, 막 뒤죽박죽이다. 노래 구성도 하나도 안 맞다. 발라드도 있고. 누가 들으면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생각할 꺼다.
백승화 : 앨범 들어보면 설레발 떨었구나 싶을 거다.

본인들은 ‘설레발’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타바코쥬스 이번 앨범은 1집에 비해서 욕심을 많이 낸 것 같다.
권영욱
: 맞다. 욕심을 많이 냈다. 돈을 많이 들였다. 우리 회사에서 투자를 많이 했다. 레코드 할 때 녹음실도 좋은 데로 갔다. 저희도 좋은 데서 하니까 더 긴장하면서 했다.
백승화 : 1집 때는 믹싱이 뭔지도 모르고 했다. 2집 때는 요구하는 것도 많아졌고, 더 좋아졌다.

2집 <설레발> 앨범 표지는 백승화(드럼)가 직접 그렸다고 들었다. 초등학생 막 그린 그림처럼 그렸는데.
백승화
: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원래 오른손잡이인데, 그림을 그리면 오른손으로 잘 그리려는 습관이 있어서 일부러 왼손으로 그렸다. 애들처럼 못 그리려고. 그림일기 콘셉트로, 곡마다 그림을 담으려고 했는데, 안 맞아서 애들 콘셉트만 남겨 놨다. 1집 <쓰레기는 어디로 갈까요> 디자인도 내가 했었는데 욕을 엄청 먹었다. 속지를 성의 없게 만들었다고. (웃음)

“영화 나오고 나서는 대중교통 탈 때도 힘들었다”



영화 <반드시 크게 들을 것>으로 타바코쥬스의 이름도 많이 알렸다. 영화 때문에 달라진 일상도 있을 것 같다.
권기욱
: 후유증을 많이 겪었다. 망가진 사람으로 있어야 되는 건지 고민이 많이 됐다. 영화가 나가고 사람들이 조금 더 많이 알아봤다. 단독공연만 해도 관객들이 다 모르는 분들이 오더라. 영화보고 많이 왔다면서. 20분이 넘게 왔는데, 처음 보는 분들도 많고. 그런데 그 다음부터 안 오더라. (웃음)

영화 속 대사 “우린 아마 안 될 거야”가 유행이 된 건 정말 우연이었다.
권기욱
: 처음에는 힘들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나만 유명해 지는 것 같았다. 그런 게 제일 싫고 지금도 싫다. 같이 유명해졌으면 좋겠는데, 한 사람만 그러면 안 좋은 쪽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아서.
권영욱 : 그래도 한 명은 튀어야 된다. 자우림도 그렇고 김C도 그렇고.
권기욱 : 나는 싫다. 지금은 1년도 더 된 이야기라서 아무렇지도 않지만, 영화 나오고 나서는 대중교통 탈 때도 힘들었다.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것 같고, 모두 나를 보는 거 같아서 정신분열증 생길 거 같았다.

사람들은 타바코쥬스의 사는 방식을 좋아한다. 하지만 인디 신으로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전에 KBS 뉴스에서 권기욱이 아침 인력시장에 나가는 모습도 나오던데.
권기욱
: 생각하기도 싫다. 즐겁게 합주하고 좋은 걸 많이 찍었는데 그런 거는 하나도 안 나오고 이상한 거만 편집해서 나왔다. 케이블에서도 다큐를 찍었는데 타바코쥬스가 아니라 일하면서 음악 하는 사람 찍고 싶다고 해서 찍었는데, 완전 불쌍하게 나왔다.
권영욱 : ‘KBS에서 왔다. KBS를 못 믿으십니까’하고 말하더라. 합주하는 것도 찍고 그랬는데 편집 돼서 나온 건 홍대 인디밴드의 ‘명과 암’에서 ‘암’으로 나왔다. (웃음)
백승화 : 방송은 원하는 것만 나온다. 듣고 싶은 것만 계속 반복해서 물어보고, 그게 아니면 다시 유도하고. 단독 공연 왔을 때도 싫었다. 관객들 배려도 없다. 조명 켜서 눈부시게 만들고….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게 별로였다. 무시당하는 거 같았다.
권기욱 : 많이 배운 거 같다. 역시 당해봐야 된다. (웃음)
권영욱 : 그들은 ‘우리가 왔는데, 감지덕지 해야지’ 이런 심리가 있는 거 같다.

뉴스에는 권기욱이 “요즘처럼 일 없을 땐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되는데 나이 들었다고 그것도 안 써줘요”라며 굉장히 불쌍하게 나오더라.
권영욱
: 우리를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으로 만들더라. 무조건 한 명은 일하러 나가야 된다면서. 원래 (기욱이) 형은 새벽에 일하는 거 싫어한다.
권기욱 : 하라고 해서 했는데, 씁쓸하게 뒷모습이나 찍고. (웃음) 그러니까 이걸 계기로 밝히자. 당해봤으니까 앞으로 안하면 된다. 우리는 TV 나온다고 그래서 했지 그럴 줄은 몰랐다.
권영욱 : 친척들이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거지 같이 산다고 그러고. 아. 정말. (웃음)
백승화 : 정말 공중파 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권기욱 : 내레이션 목소리가 재수 없었다. 목소리에 리버브나 넣고. 우리를 너무 불쌍하게 만들더라.
권영욱 : 9시 뉴스 기다리면서 봤는데, 뉴스 보고 다들.... 공영방송 어후.

“김창완 아저씨가 진행하는 <음악여행 라라라>에 나가고 싶다”



올해 공연 일정도 많이 잡혀있지 않나.
백승화
: 5월 말에 춘천 마임축제 잡혀있다. 5월 30일, 홍대 드럭에서 2차 단독공연도 잡혀있다. 그런데 우리 록페스티벌에서 안 불러 준다.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벌 보니까 115팀인데 우리만 빼고 다 들어간 거 같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아직 모자란 건지.
권기욱 :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115팀에 다 들어가 있더라. 우린 116위 쯤 되나 보다. 크크 (웃음)
백승화 : 7월 달에 캐리비안 베이에서 공연한다. 그게 제일 재밌을 것 같다. 여자들 비키니도 보고. 난 록페스티벌 안가도 된다.
권기욱 : 처음 가보는 거 즐겨야지.

요즘은 술 먹고 공연 펑크 내고 안 그러나.
권기욱
: 요즘은 착실하다. 영화는 벌써 1~2년 전 이야기다. 영화 찍을 때는 내가 좀 오춘기, 육춘기 인생 막 살 때여서 그랬다. 지금 보면 사람들이 나를 가식적이라고 말한다. 왜 영화와 다르냐고 그런다. 할 말이 없다. 그 때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나고. 술을 안 먹거나 그런 건 아닌데. 술을 먹어도 얌전하게 먹는다.
송학훈 : 알아서 먼저 귀가한다.
권영욱 : 무조건 퍼 마시는 식이었는데 요즘은 차 마시듯이 이야기 하면서 마신다.

싸움도 많이 하고 다니지 않았나.
권기욱
: 싸움이 아니라 맞고 다녔다.
권영욱 : 영화 이야기나 여자 이야기 하다가 싸우고 그랬다. 음악적으로 싸운 건 없다.(웃음) 이상한 걸로 싸운다. 싸우게 되는 단계가 있다. 시작 됐구나 싶으면, 집에 가야겠다며 나선다.

음악에 의미를 두고 계속해서 탐구하는 쪽인가, 아님 즐기는 편인가.
권기욱
: 우린 즐기는 쪽이지 않나.
권영욱 : 소리 음(音), 즐거울 락(樂). 음악이라는 단어의 뜻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밴드가 우리인 거 같다.
백승화 : 정치적으로 관련지어서 하는 분들 있다. 저희는 그런 건 없는 거 같다. 즐겨야 뭐가 나오는 거 아닌가.

타바코쥬스는 왜 ‘쓰리코드’(three chord)를 고집 하냐는 이야기를 듣는다.
권영욱
: 다들 쓰리코드 쓴다고 하는데 좀 웃긴 게 다른 밴드들도 비슷한데 왜 우리한테만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다 똑같은 패턴으로 가는 밴드도 많다. 더 적게 해서 좋은 멜로디 뽑는 밴드들도 많은데, 이해가 안 간다.
송학훈 : 좋은 곡들은 단순한 코드를 쓴다. 우리는 코드 쓰는 게 메이저(스케일)로 쓰는데, 그 부분에서 코드 패턴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우리 노래는 쓰리 코드 이상을 쓴다. 쓰리코드만 쓰면 천재밴드 아닌가.

타바코쥬스의 목표가 있다면.
권기욱
: 2집 내고, 2집 활동 많이 하고 싶다. 타바코쥬스를 어떻게든 사람들한테 알리고 음악도 더 듣게 하고 싶다. 작년보다 공연도 좀 많아졌다. 사실은 이런 저런 공연보다는 효율성 있는 공연을 하고 싶다. 단독공연도 많이 했으면 한다. 클럽에서 하는 공연도 중요하지만 자체적으로 기획하는 공연을 많이 했으면 한다.
백승화 : 록페스티벌에 불러달라고 하고 싶지는 않은데 불러 줬으면 좋겠다. (웃음) TV에도 한 번 나가고 싶다. 김창완 아저씨가 진행하는 MBC <음악여행 라라라>에도.
권기욱 : 국카스텐 또 나간단다. X나 부럽다.
백승화 : 1집 때는 라디오도 나가고 했는데, 그 때보다는 다양하게 해야 되지 않겠나 싶다.

타바코쥬스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 됐으면 좋겠나.
백승화
: 즐기면서 하는 밴드가 되고 싶다. 열심히 하려는 사람들도 있고. 우린 너무 즐기니까.
성호림 : 우린 운이 좋은 밴드인 거 같다.
권기욱 : 운8 기2?
권영욱 : 어깨에 힘줘서 ‘좋은 곡 만들꺼야’ 해서 만드는 게 좋은 곡 만드는 게 아니다.
권기욱 : 아니다. 그렇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홍대 인디신 가운데 닮고 싶은 밴드가 있나.
백승화
: 개인적으로 크라잉 넛을 꼽고 싶다. 크라잉 넛 형들은 항상 꾸준하다. 나이를 먹고 유명해도 여전히 술 처먹고. (웃음) 농담이고, 그 형들은 ‘우리 크라잉 넛이야’ 이런 게 없다. 15년 동안 꾸준하게 계속하는 것도 대단한 거 같다.
송학훈 : 크라잉 넛 다큐를 봤는데 팬들이랑 같이 나이를 먹는다고 말하는 그게 좋더라. 타바코쥬스도 오래 쭉 같이 하면 좋겠다.
권기욱 : 그럼 우리 롤 모델을 크라잉 넛으로 할까?

그럼 ‘제2의 크라잉 넛’ 이렇게 밀고 나가는 건가?
권기욱
: 그런 건 싫은데. 에이, 그냥 안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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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배는

나보고 후배들 위해서 네가 버는 돈을 잘 쓰는 게 네가 할 수 있는 보시다

라고 했는데

난 지금 월급이 갈수록 줄어든다.

뭐 더 줄어도 괜찮을수도 있다. 적금을 안 든다면...

반강압적으로 들어간 내 월급의 반토막 적금이 내 인생 현재를 즐길 수 없게 하니...

어떻게 싸워서 빼앗을 것인지...^^

 

핸드폰으로 인터넷 접속하는 습관을 고쳤다.

한동안 발신금지로 해 놔서 안 썼더니 이젠 손이 안 간다

 

거기에 매달리지 않아도 허전함을 풀어낼 다른 방법들을 잘 찾아가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핸드폰을 없애려다가 그냥 두고 최대한으로 요금을 절약하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게 더 큰 의지력을 필요로 할테니..

그리고 덜 이기적일테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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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가꾸기

심은 만큼 보여주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만큼의 결실을 보여주지 않는

정직한 노동

 

컴퓨터 앞에 있는 일에 지치고 환멸이 날 때마다 사무실 앞 텃밭으로 나가 흙을 만진다

 

상추와 열무 아욱 모종을 집에서 가져다 심었는데 잘 날런지...

역시 제자리에 있는 놈들 뽑아다심어놓으니 비실비실...

 봉선화와 쑥갓 씨앗을 땅에 뿌리고

콩과 한련화는 모종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강낭콩과 팥은 불려서 농장 가지고 가서 심을 것이다.

 

으하하...

2006년부터 시작된 나의 텃밭 놀이는

갈수록 진화한다.

비록, 항상 성과는 처참하리만큼 별것없어서 사람들이 무시하고, 놀려지만(무시한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인진 모르겠으나 내 보기에, 나의 아주 작은 노력도 그들에겐 실패로밖에 기억되지 않았더군)

 

잘 가꾸지 못한 것이 사실이긴 하지..^^

 

어제는 집에 가서 마당의 잡풀들을 정리했다.

그래도 냉이랑 갓 민들레는 남겨두었다

호박과 수세미도 심었다.

 

상추와 호박과 수세미와 열무와 쑥갓과 아욱과 작두콩과

- 작두콩 씨앗은 민승주 님 후원, 상추씨는 뒷집 할머니 살포

 

알아서 어디선가 자라던 신선초와 작약,배나무,봉선화

원래 있던 냉이와 갓과 민들레

풍성하다...

가장 놀라운 건 작약이다. 어느새 꽃을 피웠더군

그러게 다들 고생하고 있다. 살아내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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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혁명밖엔...

그동안 이뤄놓은 남북관계가 거의 무로 돌아가고 있는 시점

개성공단도 폐쇄한다고 하니 할 말 없음 ㅠ.ㅠ.

높은 새끼들의 머리 속은 어떤 계략을 꾸미는지 짐작할 수조차 없을 것 같아

 

그저 내가 사는 곳에서 일상의 작은 혁명과 도발을 해 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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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보살,

지금 내 옆에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

부처이고 보살이다

 

내가 밥을 먹을 수 있게 해 주고

걸을 수 있게 해주고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 주고

사랑할 수 있게 해준 사람들.. 해주는 사람들.

 

부모님

친구들

좋아하는 사람

쌀농사를 지은 사람

상추 씨앗을 주신 뒷집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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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님

NEWS > 인터뷰 2010.03.31

인디10│① 시와 “좀 전형적이면 어떤가”

 


여신과 악동의 세계로 왜곡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홍대 앞’은 뮤지션들의 공간이다. 그리고 관악구의 붕가붕가 레코드가 장기하라는 스타를 배출하고, 인천의 루비살롱이 단기간에 유망주들을 쏟아내면서 지역 편중화가 해소되는 듯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디 뮤지션들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곳은 역시 ‘홍대 앞’이다. 2010년, 봄. 홍대 신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뮤지션들을 <10 아시아>가 소개한다. 그 첫 번째 순서는 이달 초 첫 정규 앨범을 발표한 시와. 기타를 들고 나직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그녀는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 데려다 놓아도 어울릴 만큼 트렌드와 먼 음악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많은 사람은 그녀를 언제, 어디에서나 사랑받을 수 있는 뮤지션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리고 직접 만난 시와는 음악보다 유쾌한 성격과 음악만큼이나 아름다운 대답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앨범 제작 전반을 직접 책임졌다고 들었다. 예약 판매로 자금을 보충했고, 배송도 직접 한다고 하던데.
시와
: 이전에 발표했던 EP 역시 사비로 제작한 것이었고, 다른 직업이 있어서 다행히 그때의 수익을 저축할 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레이블에서 먼저 제의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고. 배송은 순전히 배송비를 아끼려고 홍대 인근의 몇 분께 직접 전달해 드린 건데 알아보고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홈페이지에 ‘2NE1이 배송 이벤트 하는 것보다 반가웠다’는 후기가 올라오기도 했다. (웃음)

“이번 앨범에는 프로듀서 오지은의 긍정적인 힘이 많이 작용”



음악만 하기에도 생각할 일들이 많을 텐데 살림살이 전반을 이끌어 나가려면 힘든 일이 많을 것 같다.
시와
: 사정을 터놓고 알렸기 때문에 오히려 외부에서 많이 격려해 주시고, 도움도 주신다. 그래서 정작 힘든 것은 내 마음이다. 최근에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 출연했는데, 노래 첫 대목에서 잘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방송이라 다시 할 수도 없고 간신히 노래를 마쳤는데 나중에 들어보니까 오히려 첫 부분을 더 잘 불렀더라. 마인드 컨트롤을 잘해야 하는데 스스로에게 가장 엄격한 사람이 되어서 나에게 장애물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자신에게 잘했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지금으로서는 가장 어려운 일이다.

늦은 나이에 음악을 시작한 것으로 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텐데.
시와
: 어려서부터 노래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좀 더 특출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섣불리 도전을 못했다. 그런데 클럽 빵에 공연을 보러 갔다가 충동적으로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 당시에 음악 치료를 배우고 있었던 터라 기타 연주와 작곡하는 법을 간단하게나마 익혔을 때였다. 남의 기타를 빌려서 자작곡을 불렀는데 내 목소리가 마이크로 들어가고 앰프를 통해 나오는 그 경험이 너무나 강렬하게 좋더라. 그 기분만으로도 만족했을 텐데 오디션을 두 번 더 보고 공연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2006년 2월의 일이다.

다소 즉흥적으로 시작된 음악 활동인데, 첫 공연을 할 때 창작곡은 얼마나 있었나?
시와
: 6곡을 불렀는데 그중에 5곡이 자작곡이었다. 그중에 살아남은 곡이 EP에 실렸던 ‘길상사에서’고.

아니, 그렇게 의미 있는 곡인데 왜 정규 앨범에는 실리지 않았나? ‘길상사에서’로 시와를 기억하는 사람도 많은데 말이다.
시와
: 앨범에서는 새로운 곡을 더 들려 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그때 녹음했던 모습 자체로 마음에 드는 곡이라서 다시 작업하지 않았다. 대신 EP에 있던 ‘랄랄라’는 정규 앨범에 다시 실었다. 당시에 녹음하면서 보너스 트랙처럼 만들었던 곡이라 성기게 작업했던 것 같아서 이번에는 정성 들여서 다시 녹음했다. 그리고 프로듀서가 내 노래 중에서 ‘랄랄라’만큼 대중적인 곡이 없다고 워낙 추천을 해서. (웃음)

바로 그 프로듀서가 뮤지션 오지은이다. 얼핏 성향이 굉장히 다를 것 같은 두 사람의 만남인데, 그래서인지 앨범의 분위기도 예상과 다른 지점들이 있다. 망설임이나 머뭇거림의 정서가 많은 부분 확신으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시와
: 아무래도 프로듀서의 긍정적인 힘이 많이 작용했다. 예전에는 짧은 호흡의 EP나 컴필레이션 앨범 안에서 한 곡을 녹음하는 것이라서 듣는 사람을 생각하기보다는 내 마음속의 느낌에 집중해서 부르는 편이었다. 그러나 앨범 전체를 만들 때는 좀 더 편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지은이 조언한 부분이 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목소리를 전체적으로 가져가기보다는 효과적으로 배치하자는 건데, 나는 프로듀서를 전적으로 신뢰했다. 내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고민을 많이 해 주었고, 늘 강요하기보다는 선택지를 주는 방식이었으니까.

“나는 노래를 어떻게 들어달라고 말하기가 망설여진다”


그러나 이전의 애절한 창법을 좋아하던 팬들의 반응은 달랐을 것 같다.
시와
: 밋밋해졌다는 평가도 있었고, 충분히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존 팬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노래를 들을 수 있게 하는 쪽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여러 리뷰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으니 판단이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리뷰들이 하나같이 ‘전형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 되지 않는다’로 요약되는 것은 읽는 입장에서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웃음)
시와
: 내가 직접 쓴 보도 자료에 ‘전형적인’이라는 표현이 있어서 더욱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웃음) 프로듀서인 지은과 앨범을 준비할 때 우리가 의문을 품었던 것은 많은 리뷰들이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앨범에 대해서 기존의 사람들과 다른 무언가를 꼭 짚어내려고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런 특별한 점이 없이 기타 하나 들고, 마음속 이야기를 하는 나는 그런 글을 볼 때마다 기가 죽는 거다. 그런 고민에 대해서 지은이 ‘그게 뭐 어때’라고 이야기하면서 조니 미첼의 < Both Sides Now >를 들려주더라. 형식이 전형적인 건 문제가 아니라고. 물론 의도한 만큼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런 방식의 노력으로 출발한 음반이다.

그렇다면 자주 듣는 음악도 주로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음반들인가?
시와
: 오히려 자주 듣는 음악은 클래식이다. 좋은 음악이 많지만 계속 듣기에는 소리가 꽉 차 있는 게 많아서 다른 일을 하면서 듣기가 벅차더라. 그래서 라디오를 켜 놓더라도 클래식 채널로 돌리게 된다. 요즘은 아르보페르트의 <알리나>를 주로 듣는데, 온음표로 이어지는 음악이다.

앨범 제목인 ‘소요’는 천천히 목적 없이 걷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 단어를 고른 이유는 방향성 때문인가, 속도감 때문인가.
시와
: 물론 천천히 가는 걸음에 어울리는 음악이기도 하거니와, 나는 노래를 어떻게 들어달라고 말하기가 망설여진다. 듣는 사람이 어떤 감정이나 어떤 추억을 갖고 감상하게 될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마음껏 즐겨달라는 의미로 제목을 붙였다. 처음에는 앨범의 제목이 없었는데, 마포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소요’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태풍태양>에서 천정명이 연기했던 인물의 이름이 ‘소요’였다. 느린 산책.
시와
: 아! 좋아하는 영화다. 그렇다면 더욱 좋다. 천정명 씨를 좋아하기도 하니까! (웃음)

“감사할 일이 많다는 건, 분명 삶에 도움이 되는 일”


앨범의 느낌을 걸음걸이에 비유하는 것도 그렇고, 곡을 만들 때 장소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장면을 그려내고자 하는 노력을 하나?
시와
: 노영심의 콘서트를 보러 갔던 길상사가 3곡이나 선물해 줬고, 독일 여행을 갔을 때도 2곡을 만들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특수교육을 전공하면서 음악치료를 공부했는데, 그때 선생님께 음악치료를 받기도 했었다. 경험해야 알 수 있는 거니까. 당시에 주어진 과제가 생각을 끊어내고 느끼기를 많이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게 뭔지 몰랐는데, 색깔, 크기 같은 판단의 단어, 이성의 단어들을 버리고 그냥 바라보는 일을 해야 하는 거더라. 길상사에 갔을 때도 그 과정을 연습했다. 돌계단에서 나무를 바라보면서 나무를 느끼려고 애를 쓰다 보니 바람이 불고, 풍경 소리가 들리고, 가지가 흔들리는데, 그 순간 확 알겠더라. 그리고 악기도 없었지만 수첩에 떠오르는 가사와 음표를 미솔솔 미파미레도시 써서 노래를 완성했다.

이름인 ‘시와’도 단골이었던 바의 이름이라고 들었다.
시와
: 그렇다. 그 바의 주인이 이집트의 시와 사막에 다녀와서 그 이름을 지었다고 하더라. 그러나 나는....... 이집트 가고 싶을 뿐이고! (웃음) EBS <세계테마여행>을 즐겨보는데 다른 뮤지션이 시와 사막에 간 적이 있더라. 덩치 큰 바오밥 나무에 순록 뿔 같은 가지들이 솟아 있는데 노을이 지는 풍경이 그렇게 이국적이고 예쁠 수가 없더라. 나도 보내주시면 정말 잘할 수 있는데. (웃음)

공감각적인 분위기가 정점에 달한 곡이 <빵 컴필레이션>에도 실렸던 ‘화양연화’다. 자전거, 해를 노래하지만 분위기가 선명하게 전달된다.
시와
: 앨범을 만들면서 첫날 녹음한 게 ‘화양연화’였는데 너무 힘들어서 결국 마지막 날 다시 녹음을 했다. 한번 발표했던 곡이라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다르게 들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가장 힘든 곡을 처음에 작업한 건 잘한 일이었다. 그 후로 프로듀서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니 감사한 일이지.

이전의 ‘화양연화’가 상황에 직면한 느낌이라면, 앨범에 실린 ‘화양연화’는 지난 일을 반추하는 느낌이다.
시와
: 와! 그렇게 느꼈다면 정말 기쁘다. 감사하다.

인터뷰 내내 느끼지만, 왜 이렇게 감사한 일이 많은가. (웃음)
시와
: 나에게 기대치가 낮아서 그렇다. (웃음) 어쩌면 특수교육을 직업으로 하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만나면 작은 기쁨이 전부다. 연필을 못 잡던 아이가 연필을 쥐고, 자리에 앉게 되고, 양말에 발을 끼우고, 그런 게 정말 기쁘고 칭찬할 일들이다. 공부를 잘하게 되는 건 너무 먼 일이고. 그런 경험이 나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감사할 일이 많다는 건, 분명 삶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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