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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며 생각하는 시간

네가 너를 들여다보고 있을 그 시간

나도 나를 들여다보고

너를 생각하고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으로도 즐거울 것 같아

너가 말했던 것처럼

 

다행이다^^

이렇게 지렁이처럼 느리게,

결과는 관계없이, 어떤 관계가 되어도 관계없이 지금에 충실하게...

 

상대에 집중하고 나에게 집중하고, 매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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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

전도연의 직업은 ‘전도연’이다
[매거진 esc] 김어준이 만난 여자
임상수 감독의 ‘하녀’로 칸에 간 전도연
 
 
한겨레  
 
 
» 전도연의 직업은 ‘전도연’이다
 
 
0. “아니 대가리가 왜 이렇게 작아.” 몇 년 전 배우 이나영을 우연히 조우하곤 건넨 첫 마디다. 그렇다. 이런 망발이 있나. 허나 곤조도 야지도 아니다. 나, 그런 거 없다. 그거부터 보이는 데 어떡해. 대형유인원의 두개골이라곤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초소형인데. 그렇다고 두상 협소해 공기저항 작겠군. 이럴 순 없잖아. 담고 있진 못하는 성정이고. 하여 하릴없이 그렇게 뱉어져 버렸다. 건방도, 반감도 아니다. 그저 판타지가 없을 뿐.

 
» 김어준이 만난 여자
 
 

말난 김에 연예인 바라보는 내 감각 일반 좀 털어놓자. 참고하시라고. 예를 들자면, 한예슬. 난 그녀가 웃기다. 가소롭거나 같잖단 게 아니라, 코믹하다. 자기가 너무 예뻐 스스로 못 견뎌 하는 표정들 목도하면 박장대소하고 만다. 다 큰 어른이 자기가 너무 대견해. 그거 참 웃기잖아. 또 예를 들면 비. 한때 그리 기특했던 청년이 제 성공에 겨워 어느 순간 느끼해져 버린 걸 발견하고 나면 주섬주섬 애처롭다. 그 지성의 성장지체가. 뭐 하여간 대충 그렇다. 게다가 난 그들 빨아주는 거, 못한다. 기스 방지용 뺑끼칠 해주고 그 대가로 면접권 확보하는 상부상조, 그거 못 한다고. 구강흡인력, 것다 못 쓰겠다고. 남세스러워서. 하여 이 짓 얼마나 할 수 있을 지 초장부터 우려된다. 하지만 사기 칠 순 없잖아.

 

난 또 영화라는 상품에 우리 사회가 무슨 공공의 부채 따위 지고 있는 것도 아닌 이상 다른 장르보다 더 각별한 예우가 마땅하단 생각도 않는 종자다. 영화 싫다는 게 아니다. 영화 참 좋다. 다만 영화라고 유독 위대할 건 없다 여길 뿐. 실은 영화 안목도 별반 없다. 임권택이 왜 거장인지도 모르고 박쥐가 왜 상 받았는지도 모른다. 이리 길게 주절거리는 건 뭐 대단한 자랑이라서가 아니라 향후 진행할 인터뷰들이 필연적으로 가질 한계부터 자백해두려는 게다. 그래서 용서해달란 게 아니라 이 정도밖에 안 되니 볼 테면 보고 말라면 말란 강짜 되겠다. 자 그럼 그 첫 번째, <하녀>의 전도연.

 
» 임상수 감독의 ‘하녀’로 칸에 간 전도연
 
 

1. 그녀를 만난 건 어느 오후의 삼청동 모 카페.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채 안 된다. 그나마 전후로 사진 박느라 부산떨고 나니 내 기준으론 대면이 거의 찰나다. 시간은 또 어찌 그리 야박하게 관리하는지. 사람 만나러 갔는데, 배우 하나가 스케쥴 콘베어벨트 타고 스르륵 통과한다. 씨바 이게 뭐 인터뷰야. 그냥 구경이지. 이따구 공장체제로 찍어내니 매체 인터뷰가 죄 뻔할 밖에. 어차피 서로 장사면서. 상도의가 없어, 조또. 그녀 책임은 아니다만 하여튼 이 시스템, 지랄 같다. 하여 당 인터뷰 목표는 애당초 단출했다. 한 가지만 묻고 오자, 한 가지만. 전도연은 어쩌다 배우가 되어, 어떻게 탑이 된 건가. 그러고 보니 아따 길게도 투덜댔다. 이제 진짜 가 보자.

 

 





 

 

 

 

 

 
» 전도연의 직업은 ‘전도연’이다
 

2. 전도연, 코 앞서 보니 눈주름, 적당히 자글거린다. 미안타. 눈부시다 못 해줘서. 하지만 눈 안 부신 데 어떡해. 다만 묘하게 마음 놓게 만든다. 사람 같아서. 어쨌거나 대뜸 임상수, 싸가지 없지 않냐 부터 물었다. 감독이 어떤 이인지 이해해야 그 디렉션도 온전히 이해할 테니. 그렇게 임상수 받아들인 방식부터 궁금했다. (그리고 실은 그게 내가 임상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라서. 한국적 가부장 규범과 위계, 한국적 영화 문법과 관습이 요구하는, 그 없어도 좋을 싸가지가, 그의 영화엔 없다. 윤리나 도덕 생략하고 타고난 제 동물적 템포로 그냥 혼자 가 버리는 그거. 이율배반 같겠으나 동일 맥락에서 난 이창동이 좋다. 왜. 그는 없어도 되는 싸가지까지 있어서. 우하하.)

 

아니란다. 자기도 그런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여리고 섬세하고 따뜻” 하단다. “자신이 상처받을까봐 쿨한 척” 하는 거란다. 오히려 “소심해서 잘 삐진” 단다. 그저 “소통을 하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관계 맺는 게 어색하고 불편해서” 그러는 거란다. 자기도 처음엔 걱정했단다. 머리 좋은 감독이 “뱀처럼 교묘하게 배우를 이용할까봐”. 그런데 “감독님이 현장에서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부딪히” 더란다. 그래서 좋았단다. 호. 감독더러 잘 삐진다니. 쿨한 척 하는 거라니. 그 판단의 옳고 그름 떠나 제 의견 피력에 유불리 따지지 않는다. 논평 이전에 리턴 피해와 챙길 잇속 계산이 먼저기 십상인데. 이거 맘에 든다. 잔머리가 없잖아. 특히 몸으로 부딪는 게 좋다는 대목,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그 일단, 드러낸다. 논리가 아니라 몸과 직관으로 세상 상대하는 이들의 기호. 확인 차 한 번 더 물었다. 그럼 감독도 말로 설명치 못할 때는. “부딪혀 보면 알아요.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면.” 감독과 그의 디렉션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말이 아니라 그의 행동을 읽는다는 거, 이거 몸으로 세상 체득하는 자의 독법.

 

그럼 전작 감독 이창동과 차이는 뭐냐 물었다. 이렇게 푼다. “인간을 보는 것과 인간을 통해 사회를 보는 것”. 전자는 이창동, 후자는 임상수. 동의, 안 된다. 물론 내 동의 여부는 중요치 않다. 정치하지 않아도 제 언어만 있음 족하다. 그러나 이건 전도연의 언어 같지 않다. 차용의 냄새 난다. 졸라 다그치려다 말았다. 그 정도 폼도 못 봐주면 담 인터뷰는 아예 안 잡힐 것 같아서. 아, 타협하는 나. 대신 그렇게 이해해둔 감독과 그의 지시가, 도저히 이해 안 갈 때는 어찌 하냐고 물었다.

 

“저는 감독님에게 100퍼센트 의존적인 배우거든요. 끊임없이 감독님에게 확인을 하죠. 저의 불안이나 저의 의심을. 어느 순간 감독님의 뜻을 이해하게 되면 그제야 인물이 받아들여져요. 그 인물을 100퍼센트 알고 연기를 시작하지는 않지만, 그 애를 좀 알 거 같아지면 영화가 끝나는 거 같아요. 그 과정에서 그 인물과 가장 유사한 저 자신을 스스로 발견하게 되는 거죠. 영화를 끝날 때 마다 제 안에서 뭐 하나씩 찾는 거 같아요.”

 

그렇군.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제 안에 있는 걸 퍼다 쓰는군. 그렇지만 그렇게 묻고 노력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될 때는.

 

“전 이해를 못하면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못 해요. 전 항상 감독님이 저를 이해만 시킨다면 그게 무엇이든 저는 다 할 수 있는 배우라고 말해요.”

 

오, 감독이 자신을 이해만 시킨다면, 그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이 태도. 브라보. 이거, 배우 전도연 최고의 미덕이라는 데 한 표다. 그렇지. 배우란 그런 거지. 영화의 서사와 인물 위해 제 한 몸 고스란히 빌려주는 이들. 그게 재능 아니라 무슨 벼슬인 줄 아는 배우들 하도 부지기수라 이 대목에서 아싸 한 번 외쳐줬다. 그런 그녀에게 “전도연, 벗었다” 란 타이틀로 스타로서의 노고를 칭송해마지 않는 기사들, 얼마나 웃긴가. 스타라서 어쩌라고. 그들 찌찌는 세 갠가. 관람 가게. 아님 스타가 벗어줘 황송하나. 어떻게. 커튼 들고 달려가 줘.

 

이 대목서 궁금했다. 근데 이 여자, 자기가 그렇다는 걸 어찌 알고 배우가 된 거지. 그녀, 이렇게 답한다. “어쩌다 보니깐 됐어요.” 푸헐. 제 성공의 몇 할을 운의 몫으로 돌리느냐 하는 데서 자의식과잉의 정도가 드러나게 마련. 그러더니 이렇게 이어 붙인다.

 

“꼭 되어야겠다는 목표, 이런 거 없었어요. 어린 마음에 TV에도 나오고 또래 보다 돈도 많이 벌고 사람들이 알아보고 그런 게 그저 좋았어요. 저는 대개 평범한 애여서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꿈도 못 꿨어요.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뭐 안 되면 결혼하면 되지 하고. 일이 좋아서여서도, 즐거워서도 아니었어요. 그냥 불평 없이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에요.”

 

그럼 대체 자기 안에 배우가 있단 걸 언제 스스로 자각 한 건가.

 

“영화를 하면 감독이 신이잖아요. 소통하면서 일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지시대로 따랐어요. 그런데 <해피엔드> 정지우 감독님과 일하면서 내 생각을 말하고 그 사람이 내 생각을 받아주고, 그렇게 서로 동의를 구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면서 찍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사람들은 <해피엔드> 찍을 때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데, 저는 너무 즐거웠어요. 카메라 앞에서 거리낌도 없고 두려움도 없었어요. 그래서 조명하시는 분이 어린 것이 욕심이 많네... 하셨었어요. 왜 보통 베드신 그런 데서 많이 감추려고 그러자나요. 제가 안 그러는 걸 욕심이라고 보셨나 봐요. 근데 전 감독의 생각과 내 생각이 일치해 뭔가 만들어 가는 게 너무 재미있었고 처음으로 영화가 재미있어 졌어요. 그때 처음으로 알았어요.”

 

오라. 그랬던 거구만. 그녀, 애초 직장인이었던 게다. 취직은 어쩌다 보니 타고난 제 자산 일부가 우연히 해당 직종의 요구조건을 적정 수준 만족시켜 가능했을 뿐. 그렇게 현장에 출근하는 연기 직공이었던 게다. 그러던 어느 날 최초로 공장장과 소통하다 자신이 주문받은 부품만 찍어내는 직능공이 아니라 스스로 설계까지 가능하단 사실에 신이 난다. 그리하여 연예인 전도연, 배우 전도연으로 각성이 시작된다. 이쯤에서 확인사살 한 번 해보고 싶었다. 뭐를. 글쎄 보면 안다.

 

무대 위에선 배우지만 끝나면 내려와야 하는 건데, 안 내려오는 이들 많다. 당신은 어떤가.

 

“저는 일을 안 할 때는 난 배우라는 걸 인식을 안 하고 사는 사람이에요. 전 평범해요. 평상시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보는지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모습으로 보여야지 하는 것도 없어요. 물론 카메라 앞에서는 예쁘고 싶지만.”

 

그렇군. 그녀는 비어 있군. 이거 칭찬이다. 복이다. 배우가 저를 비워 인물에게 제 한 몸을 빌려주는 데 과잉자의식만큼 후지고 같잖은 방해물도 없으니까. 그럼 어디까지 비어 있는 걸까. 노무현을 물었다. 좋다, 싫다 없단다. 이명박은. 마찬가지란다. 4대강은. 생각해 본 적 없고. 투표는. 아빠 때문에 한두 번 해봤단다. “자고 있는 데 나가서 1번, 1번, 1번, 2번 찍어라 해서.(웃음)”

 

이건 섹시하지 않다. 모든 배우에게 투사되라 요구할 순 없다. 그럴 수도, 필요도 없다. 허나 지들은 시민 아닌가. 소속 공동체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다는 거, 이건 그저 개인의 취향이나 품성 탓으로 양해하기만 하고 말기엔 심통난다. 왜. 부러워서. 그런 배우들 가진 나라들이.

 

이제 그런 그녀가 <하녀> 은이를 어찌 받아 들였는지 물을 차례. 어쨌거나 <하녀> 덕에 만났으니 서비스는 해야지. 너무 갑작스러워 가장 난감했던 마지막 장면을 어찌 받아들였는지 물었다.

 

“은이는 뭘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애가 아니에요. 그런 의식이 없어요. 병식이는 자식을 검사로 키우려는 게 있었고, 해라는 지키고 싶은 게 있어서인데, 은이는 지켜야 하는 그 무언가가 없는 애에요. 그냥 그게 좋아서 뭔가를 하지. 그런데 처음으로 남이를 통해 예쁘고 친절한 아이를 갖고 싶다는, 불친절한 세상에서 자신에게 친절한 아이에 대한 욕심이 생긴 거예요. 그런데 그런 희망이 그렇게 처절하게 짓밟혔을 땐,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저도 이해 안 갔는데 영화를 끝낼 즈음에는 저도 그럴 거 같단 생각을 했어요.”

 

이게 전도연이 제 몸에 들인 하녀다. 인간의 하녀본성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그건 감독 구라가 감당할 몫이니까. 난 배우 전도연만 궁금했으니까. 마지막으로 질투 나는 배우 있느냐 물었다. 콤플렉스 좀 엿보려고. 그녀의 대답.

 

“난 내가 좋아요.”

 

우하하하.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 한 마디. 이 자기애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무척이나 궁금해 무지하게 따져보고 싶었으나, 그 순간 스태프가 날 잘랐다. 그만 나가란다. 우라질. 이 기사 나가면 다음 기회나 있으려나.

 

 
» 임상수 감독의 ‘하녀’로 칸에 간 전도연
 

3. 전도연 어떤 배우냐는 내 질문에 이창동은 이렇게 한 줄 요약했다. “몸이 악기야.” 무슨 말인지 만나 보니 알겠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세상 읽고, 읽은 그대로 제 속에서 퍼내, 야로 없이 액면가로 부딪히는 거, 그게 그녀 방식이다. 그러니 실은 그녀, 연기를 하는 게 아니다. 그저 전도연 속에서 전도연을 길어낼 뿐. 그 방식으로 그녀, 정상에 섰다. 하여 배우 전도연에 대한 내 버전 한 줄 요약은 이렇다.

 

전도연의 직업은, 전도연이다.

 

PS - 한겨레, 잘하자. 우리, 진짜 인터뷰 좀 하자고.

 

글 김어준 딴지일보 종신총수·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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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의 유언장

권정생 선생님처럼 살아가자.

작은 풀처럼, 그렇지만 진실하고, 소박하고, 아름답게.

 

유언장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은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는 보통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어 번 왔지만 나는 대접 한번 하지 못했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는 어린이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라는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것이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끝이다.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 죽은 뒤 환생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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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알

콩알을 불려두었다

오늘 다이소에 갔더니 배양토랑 씨앗이 있길래

배양토가 탐이 나 한 개 사 왔다

그 양으론 텍도 없겠지만 시험삼아서...

콩 싹을 틔워볼 생각이다

 

며칠 전 농장에 가서 싹튼 콩을 보고 너무 행복했었다

내가 틔운 건 아니었지만

땅을 볼 때, 땅에 호미질을 할 때 왜 그리 마음이 좋은지...

이것이 행복이다..

그리고 집 마당에 심은 열무랑 아욱도 싹이 텄다

꽃도 싹이 났고, 상추는 먹을만큼 자랐다

내겐 이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말처럼

급하지 않게

한 번 틔워볼련다

사실 작두콩 싹을 한 번 틔우긴 했는데

또 콩 싹을 틔워 그것을 보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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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3년째

내 곁에 있어준 친구

아니, 그 친구는 그 친구의 삶을 잘 살아가고 가끔 만나면 힘이 되는 친구

어느 애인보다도 그 친구가 나는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 벌써 10대 때 만나 30대에접어들었고...

그 친구가 내게 먼저 다가와 친구가 되었고

 

거저 친구를 얻고

이렇게 내게 힘을 주고 있는 그 친구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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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온전히 사랑하고

그대를 사랑하고

혹은 그 둘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할 수있기를...

브라보!

사랑이란 말은 아껴두는 말이야.

 

우리가 같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님 내가 너의 영역으로 가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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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온다고 거기에 흔들리면 그건 나의 문제인거야

나무가 흔들리는 건 바람 때문만은 아니니까

혼란스럽기만 하네. 

 

다시 그런 관계에 접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내가 성숙해지기 전까진...

규정짓지 말자고 했지만 규정지을 수가 없어

 

휘몰아쳐주지 말라구.너의 말처럼 넌 쿨한 거겠지

세상의 벽, 틀이란 걸 네 안에서 아직 발견하지 못했어

그게 너의 매력이지

어쩔 땐 한없이 편안하고부드럽고 어쩔 땐 다가가기 어려운 무표정함.

하지만 넌 닫혀 있지 않아서 좋아

 

언제나 내 스스로가 문제의 중심이고 열쇠임을

너는 내가 잊어버릴까봐 항상 지적해주고 있지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아

어쩌면, 내 스스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없을 것 같아

글 쎄 잘 될 수 있을지..하지만 노력해볼게 친구로라도.. 내 친구여.

 

처음부터 알게 해 줘서 고마워 나의 한계를

멍청하게 환상만 키워가지 않게 해주고 있어서 고마워

 

처음부터 아는 게 좋아

나를 , 그리고 너를미워하지 않으려면...

 

좋아하는 감정에 매몰되는게 아니라

그러한 혼란을 사랑이라고 믿을 게 아니라

너라는 사람 자체에 집중해 너를 보고 좋아하게 될 때

그 때 사랑이라고 해야겠지

 

폭풍이 지나간 후의

그 고요함 처럼...지켜볼래

 

부모님께도 이야기드렸어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그랬더니 잘 만나보래

 어떤 사이가 앞으로 될지는 모르지만, 미리 이야기해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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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유통기한은 왜 3년일까?
[매거진 esc] 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한겨레  
 
 
» 연애 유통기한은 왜 3년일까?
 
 




Q 왜 연애 유통기한은 3년일까요? 아무리 사랑에 빠져 죽을 것같이 좋다가도 3년이 되면 사랑이 식는 걸까요?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이 왜 3년이 되면 고비를 맞는 걸까요? 어떻게 하면 3년이라는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요?

 

A 영원하지 않을 걸 알면서 하는 게 바로 사랑의 위대한 점이로다

내가 미치거나 총 맞지 않고서야, 왜 이런 코너를 맡겠다고 홀라당 넘어갔는지 지금도 거 참,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주변에 총 갖고 다니는 사람은 없으니 분명 전자가 확실할 텐데, 그런 정신을 가지고 어떻게 남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을지…. 새삼 온 정신으로 돌아와 걱정만 하고 있는데, 세 살짜리 아들놈이 등 뒤로 조용히 다가와 파워레인저 엔진포스 총을 쏘고 도망갔다. 아아, 그래서 걱정은 단번에 사라져버렸다. 그건 그냥 총 맞은 거였구나, 총 맞은 거였어! 그렇게 두 팔 벌려 환호작약한 다음,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총 맞고 난 뒤, 쓰는 원고라는 점, 유념해주길 바란다. 거 뭐, 무서운 건 하나도 없다. 자, 이제 시작해보자.

하나. 연애의 유통기한은 왜 3년일까요, 묻는 당신은, 안타깝지만 이 땅의 중등교육의 또다른 피해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먼저 해본다. 3년이 지나면 왠지 졸업해야 할 거 같고, 그다음엔 다른 애인으로 진학해야 할 거 같고, 학용품도 새로 장만해야 할 거 같고, 뭐 그렇고 그런 모범생들 있지 않은가. 알게 모르게 주위엔 그런 모범생이 제법 많다. 50분 전화하고 10분 침묵하고, 50분 이야기하고 10분 섹스하고, 50분 술 마시고 10분 꺼이꺼이 울고. 연애를 학교 시스템에 맞춰, 똑같이 운용하는 사례들이 종종 있다는 소리다. 3년에 맞춰 교과서를 다 떼고 나니, 이런, 이제 더 이상 배울 것도, 궁금한 것도 없구나, 그러면 남들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애인을 ‘수학의 정석’화시킨 전형적인 사례. 그런 당신에게 말해줄 수 있는 일화 하나. 예전 고등학교에 다닐 때, 동네에 노는 형님이 한 분 계셨다. 이 형님은 학교를 무슨 유엔안보리 이사회 참석하듯 띄엄띄엄 다니셨는데, 그래서 당연하게도 1년 더 ‘꿇게’ 되신, 학교 시스템의 이단아 같은 존재였다. 한데, 이 형님의 마지막 학교생활 1년은, 다른 해와는 다르게 아주 열심이었다. 체육대회에도 열심, 보충수업이나 ‘야자’에도 열심(안타깝게도 성적은 그리 좋아지지 않았다), 반 미팅에도 열심. 해서, 어느 토요일 하굣길이던가, 내가 슬쩍 물어본 적이 있었다. 형, 요새 왜 이렇게 학교생활에 열심이세요? 그러자, 동네 노는 형님은, 위로는 천문이요, 아래로는 지리를 꿰뚫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정들어서. 당시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이 형님이 정말 병원에 입원해야 되는 건 아닐까, 고민했지만, 이젠 어렴풋이나마 그 뜻을 알게 되었다. 정든다는 것의 참말로 큰 의미 말이다.

둘째. 동네 노는 형님이 해준 말과도 연결되는 이야기이지만, 사랑에 빠져 죽을 거같이 좋은 시기가 3년 이상 지속되면 미안한 말이지만 그러단 정말 죽고 만다. 심장마비나 고혈압 같은 것이 올 확률이 높다. 내 경운 분명 그랬다. 살기 위해서라도 사랑은 좀 식을 필요가 있다. 사랑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차이는 좀 있겠지만, 우리가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지속시킬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6개월 남짓이 전부일 것이다. 그다음은 그저 리얼리즘의 시대일 뿐이다.(내가 알고 있는 한 선생님은, 이 리얼리즘의 시대가 수십년 이어지고 나면 휴머니즘의 시대가 온다고 했다.) 방귀도 트고, 트림도 트고, 쩝쩝 음식 먹는 소리도 갑자기 요란해지는 리얼리즘의 시대 말이다.(그 모든 것이 사실은 모두 살아보겠다고, 이러단 만성 속쓰림에 암까지 생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의 발로 때문에 튀어나온 본능들일 것이다.) 그 시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관계는 쫑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랑은 꼭 ‘좋아 죽을 것 같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 사랑은 영원할 것만 같아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도 사랑하는 게, 그게 바로 사랑의 위대한 점이라는 것, 그걸 좀 생각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사랑에는 당연히 유통기한이라는 게 있다. 하지만 그걸 빤히 알면서도 가는 게 핵심이다. 우리가 무슨 이마트나 홈플러스냐, 새삼 유통기한 따위에 놀라게.


 
» 이기호의 독고다이
 
정리 차원에서 한마디만 더 하자. 그 옛날 프랑스에서 7월혁명이 일어났을 때, 시민들이 가장 처음 공격한 곳은 시내 곳곳에 세워져 있던 시계탑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그 당시 시민들은 시간에 대해, 그러니까 근대에 들어서부터 계량화되고 수치화된 시간에 대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 우리가 3년이라는 사랑의 유통기한에 대해서 말할 때, 이것 역시 그냥 넘어갈 순 없는 문제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역시 사랑을 계량화하고 수치화하는 데 익숙해져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점 말이다. 예전 우리 할머니는 내가 할아버지에 대해서 물을 적마다 늘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그 양반하고 내가 오래 살긴 오래 살았지, 뭐. 따져 보니 그 세월이 40년이었다. 너무 날짜 따지고, 그러면서 다시 날짜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지는 말자. 때론 한 달 만난 사랑이 평생을 가는 경우도 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우리 사랑이, 이마트나 홈플러스와는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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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건가

드러내고 싶은 건가

 

왜 나는 나를 가두고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하고 있는가

 

역시 사랑 앞에 서면 그것은 잘 안 된다

 

더욱 잘 될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ㅠ,ㅠ,

 

너무 깊은 생각 때문

너무 깊은 방어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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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주

오랜동안 내가 가져온 꿈-합주.

키보드에 대한 욕심은 아직도 가끔 생겨나지만

그게 없으면 미쳐버리기 전까진 사고 싶지는 않더라

 

예전부터 난 밴드 하는 게 꿈이야, 라고 했지만 막상 전업으로, 밴드를 하는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원하는 게아닌지도 모르겠어. 아마츄어로 즐기는 것, 하지만 막상 어떤어떤 밴드에서 건반멤버를 구해요, 그러면 아직 준비도 안 된 내가 마음이 가끔 흔들리기도 해.

 

악보를 그리려면 건반악기가 분명히 필요해. 귀로 음악을 듣자마자 바로 그릴 수 있는 천재는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멜로디혼을 하나 샀다.

친구가, 노래를 하나 듣더니 악보를 찾아서자기가 기타를 치고 내가 멜로디혼을 불자고 한다.

인터넷에서 무료로 찾을 수 있는 악보가 없었다. 그래서 그렸다. 너무 다행히도 코드가 쉬웠다. 

그런데 둘만 하면 조금 썰렁하지 않을까?거기다가 오카리나랑 우쿨렐레를 할 줄 아는 두 친구가 있으니 가서 합주를 해 보면 참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근데 솔직히... 그 전에 키보드를 하나 사서 멜로디혼보다 키보드로 연주하면 훨씬 소리가 풍성해지긴 할 게다... 욕심나네..-.-;;

 

아직 음표의 길이까진 정확히 표시를 못 하지만, 음악을 귀로 듣고, 기준점이 되는 한 음을 찾고 거기에서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찾으면 악보는 금새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오래도록 가져온 꿈이었다.백수가 되고 피아노 학원을 다니면서 귀로 듣던 음악을 악보로 옮겨보기 시작했는데 몇 번의 시도끝에 그 음을 찾아서 그리게 되었던 게 불과 작년.

 

한 가지 한계가 있다면 키보드는 두 손을 동시에 치면서 코드를 찾아 따기가 쉽지만 멜로디혼은 그게 어렵다. 나름 저렴한 악기들로도 잘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을 느껴보고 싶다^^

난 오래전부터 합주하는 것을 꿈꾸었어. 나 혼자 연주는 재미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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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임계점에 다다르기 전에는

다다르지 못해 괴롭고

다다른 후에는 다다랐기 때문에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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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나도 전라도 사람이지만

전라도 사투리를 가끔 맛깔나게 구사하는 친구를 보면 참 재밌다. 말이나 억양이나 완전히...

요새 다들 서울말 쓰는데 .. 물론 평상시에는 그냥 일반 표준말이더라.. 그런데 그 가끔의 사투리가 ㅎㅎ

 

서울말은 따라하기 쉽다믄서?

서울말은 왜 이렇게 낯선지 몰러 ㅋㅋ

난 사투리보다도 억양이 완전 전라도 억양이야..

 

친구가 생겼다.

얼마 안 되는 친구가 하나 늘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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