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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처음 접하고 나서

2003년 봄이었다.

 

가해자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었던것 같다.

 

왜 그랬는지..정말 왜그랬는지 ...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에게 운동을 가르쳐준 선배였다. 가해자는 ..

 

조직에 들어와서 조직운동에 대해 가장 가까이서 인도했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어떤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말 그래도 왜 그런짓을 했는지가 짜증이 났던 것이다.

 

 

그리고 진술서를 보면서 설핏 피해자가 누구인지 느껴졌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난 사실 피해자와 잘 알지 못한다.

 

2002년 한 사무실에  있었지만 서로 깊이있는 이야기를 나눠 보지 못했다.

 

발전 투쟁하느라 2월에 상황실 파견가서 4월까지를 보냈고,

 

발전투쟁 이후에는 투쟁휴유증으로 몸살을 앓다가

 

5월에 교통사고로 한달정도 입원을 했었고,

 

그리고는  활동가정치조직 문제에 집중했었던것 같다.

 

그러다 8월 활동가정치조직 수련회를 하고,

 

9월 활정조가 깨지면서 또한번의 상처가 있었고,

 

이런 문제들로 정신없어 할때쯤 피해자는 안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면대면 대면이 별로 없다.

 

그러나 피해자가 받았을 고통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

 

아니 이해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당사자가 웃을 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그만큼만 이해한다고 하겠다.

 

진술서에는 분명히 명시되어 있었다.

 

그어떤 쟁점도 형성할 수 없는 명백한 진술이었고,

 

그것은 피해자중심주의니 뭐니를 떠들지 않았도,

 

최소한 피해자가 이야기 하는 것에 귀기울이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

 

그렇게 사건은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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