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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와 절차는 과연 민주주의를 보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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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와 절차는 과연 민주주의를 보장하는가
독일 2005년 총선결과와 남은 과제
갈현숙(베를린자유대) 
지난 18일 벌어졌던 독일총선에 대한 갈현숙의 글을 싣는다. 갈현숙은 이미 “노대통령이 부러워한 슈뢰더의 승부수? 그리고 아젠다 2010”이라는 글을 참세상에 실어 독일과 한국에서 과감한 사회개혁안으로 포장, 선전되고 있는 아젠다 2010의 속내를 분석한 바 있다. 갈현숙은 이번에도 독일 총선 결과의 의의와 전망에 대한 깊이 있고 생생한 분석을 담은 글을 보냈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연정론, 선거제도 개편론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한국에서는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정치제도상 최선의 개선방향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독일 총선을 바라본 갈현숙은 “독일식의 정당제도는 양당제도에 비해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오는 결점들을 채울 수 있는 여러 장치가 있다”고 그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다양성과 가능성을 제도로 풍부하게 할 수 있지만 바로 모두 한 표로 처리된 유권자들의 차이를 구별해 낼 수 없다는 점”에 대해 지적한다. 이어 “만약 사민당이 다시 정권을 잡을 경우 이번 선거의 결과를 아젠다 2010개혁을 완수하라는 국민의 뜻으로 오역하고 선전할 것이다”며 “뻔한 거짓말이 너무나 복잡한 민주주의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이러한 완성된 절차에 무엇으로 대항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다음은 갈현숙의 기고글 전문이다.


총선 결과로 더욱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독일

지난 9월 18일 독일에선 2005년 독일 총선이 치뤄졌다. 선거결과는 이미 국내에도 보도됐지만 연립정부구성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 현재 독일의 정계 및 이를 주시하고 있는 국민들의 시선엔 긴장감이 가득하다. 그 이유는 한 정당이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받지 못한 채로 선거가 마무리 되면 정당간의 연립을 형성해서 정부여당을 구성하고 수상을 추대하기 때문이다.

2005년 총선이 그 이전의 총선과 구별되는 점은 이전의 경우, 보통 거대 정당 하나와 소수정당 하나와의 조합으로도 정부여당을 구성할 수 있는 의회의석의 과반수 이상이 가능했다. 문제는 이번 선거의 경우, 거대정당(1)+소수정당(1)의 조합으로 50%이상의 지지율을 넘지 못하는데 있다.

<2005년 독일 총선 결과.2005년 9월 19일 현재>


SPD:사민당, CDU/CSU:기민/기사연합, Gr?ne:녹색당, FDP:자민당, Linke.PDS:좌파연합당(WAGS, PDS)
첫번째 그래픽은 2005년 이번 선거에서의 득표율을 표시하고 있고, 두번째 그래픽은 지난 2002년 선거와 비교했을 때 득과 실을 비교한 것이다. 세번째 그래픽은 국회내의 의석수 중 각 정당이 차지하게 되는 의석수를 의미한다.
<출처>http://www.fr-aktuell.de/uebersicht/alle_dossiers/politik_inland/
bundestagswahl_2005/die_wahl/?client=fr&cnt=728803&src=180760

위의 그래픽을 보면 기존의 정부여당이었던 사민당 34,3% 녹색당 8,1%를 합하면 42,4%의 지지율이 보수당인 기민/기사연합 35,1 자민당 9,8으로 합산지지율은 44,9%이다. 즉 적녹연정의 경우도 보수자유진영의 경우도 기존의 연합정당으로만으로는 정부 여당구성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조합 가능한 연정시나리오가 쏟아지고 있다.

독일 총선 결과가 제기한 몇 가지 의미들

연정가능 시나리오들을 살피기 전에 이번 독일총선의 의미를 몇 가지 살펴보자. 우선 위에서도 말했듯이 더 이상 거대 정당-사민, 기민-중심의 정치에서 10%이하 지지율을 받는 정당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정당으로는 좌파연합정당, 녹색당 그리고 자민당이다. 거대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감소하는 반면 이당들에 대한 지지율 상승이 의미하는 바는 거대 정당의 정치력에 대한 실망감이 실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당정치의 다각적 발전의 차원에서 이러한 변화는 의미심장하다.

둘째, 슈뢰더의 내각 신임안제출, 의회해산등의 진통을 겪으면서도 사민당은 기대 이상의 득표율을 얻은 점과 그 어느 때보다도 유리한 조건에 있었던 기민/기사연합의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한 점이다. 선거 이틀 전 까지만 해도 보통 기민/기사연합의 지지율은 41%를 넘었다. 반면 사민당은 평균 33%를 유지해왔다. 선거 초반기 만해도 사민당은 27%로 출발해서 선거전이 계속 되며 지지율이 꾸준히 상승하기 시작했고 기민/기사연합의 경우 시작도 40%이상에서 출발해서 크게 변화 없이 지지율을 유지해왔으나 이런 선거결과는 충적적인 것이다.

일반 대중의 목소리는 당연히 적녹연정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했고 당연히 이번 선거를 통해 그런 불만의 목소리가 현실을 바꿀 계기가 될 듯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거결과를 볼 때 과연 선거전 고양되고 조성됐던 그 불안의 실체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고 있다. 또한 선거운동기간 동안 나타난 지지율관련 여론조사에 대한 신빙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민당과 기민/기사연합에 보인 유권자들의 판단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남았다.

‘적녹연정(사민/녹색)도 문제지만 기민/기사연합도 더 문제다‘

기민/기사연합의 양대 지도자
우:기사당의 슈토이버 좌:기민당의 메르켈
 www.tagesanzeiger.ch
아젠다 2010 개혁프로그램으로 인해 적녹연정에 대한 독일국민들의 민심이 떠나있었다. 6-7월의 시기는 기민/기사연합에겐 절호의 기회로 작용했고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선거 전략을 구사해왔다. 문제는 이들이 구사해 온 선거전략의 기본을 점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노선과 역분배적 사회복지 시스템이 그간 정권을 유지해온 적녹연정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 경제적 불평들을 야기할 수 있겠다는 불안감을 국민들에게 전해 줬다는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기민/기사연합이 향후 재무부장관으로 지목하며 등용한 경제학 교수 키르히호프(Kirchhof)가 제안한 세율개혁안이다. 사민당은 소득세의 경우 최고소득자의 경우 42%인 반면 소득에 따라 15%까지 적용한다는 안을 제시한 반면 키르히호프의 경우 소득의 차이와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25%의 소득세를 부과하는 안과 부가가치세의 인상을 묶어 제시했다. 이는 소득의 형평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직접세율이라는 점과 부가가치세 인상을 통한 간접세율의 상승이라는 점에서 소득이 많은 사람들에게만 유리한 세금정책인 것이다.

이러한 키르히호프의 제안이 현실화 될 경우 적녹연정보다 더욱 불합리한 상황이 촉발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국민들 사이에서 조성되기 시작했고 적어도 이들 연합이 정권을 잡게 하면 안 된다는 공감이 슈뢰더의 사민당에 회의적이었던 기존의 (사민당)지지자들을 묶어냈다고 볼 수 있다. 사민당 지지자들이 가진 딜레마는 지난 7년간의, 특히 정권 2기 동안의 슈뢰더 정권의 내용대로라면 사민당에 표를 던질 수 없지만 그렇다고 기민/기사연합당이 정권을 잡게 둘 수도 없다는 점이었다.

선거 전날 유권자들의 인터뷰중 이런 사민당 지지자들의 맘을 가장 잘 반영한 대화가 있었다. “슈뢰더가 계속 총리자리에 있길 원하는가?“ ”그렇다. 그러나 이제까지 처럼은 안 된다.“

미디어나 정치인, 경제인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경제성장을 위해 노동조건은 유연화와 해고조건 완화 그리고 기업의 사회적 분담금의 최대한 축소를 선전해왔다. 마치 현재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오는 경제, 사회적 문제가 기존의 이런 시스템이 원인이 되기 때문이라는 비논리적 덮어씌우기를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복지국가의 테두리에서 살아온 독일인들의 입장에선 그들의 연금, 의료, 실업금여 등 생활과 직접 연결되어 공공성을 보장해 오던 제도들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싸우기보다는 ‘신자유주의’를 내세워 어쩔 수 없는 대세로 국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선거의 표로서만 그 분노를 표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측면에서 사민당은 기민/기사연정의 위험한 곡예로 인해 어부지리로 얻은 표도 상당한 것이다.

독일전역에서 고른 지지율 확보한 좌파연합당의 선전

셋째, 좌파연합당과 자민당의 선전이다. 우선 항상 6-7%를 유지해온던 자민당이 9%를 넘겼다는 점에서 현지에서는 자민당을 이번 선거의 최대 승자로 꼽기도 한다. 독일 정당정치상 자유민주당의 당성으로 흡수할 수 있는 지자들의 마지노선이 7%라는 주된 평가에서 나온 이번 선거결과는 실로 놀랍다고 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추가된 2%이상의 지지율은 어디서 온 것인가 하면 다름 아닌 기민/기사연합당으로부터 이전된 표가 상당하다는 분석이다. 자민당은 우선은 자축의 샴페인을 터뜨렸지만 결국 연정을 형성해갈 파트너 당에서 표를 가져온 꼴이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절반의 승리라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반면 좌파연합당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좌파연합당은 선거기간 내내 모든 미디어로부터 거의 봉쇄되다시피 해 보도도 잘 되지 않았고 더욱이 여론조사 지지율의 조작도 상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민사당(PDS)의 표밭이었던 구 동독지역 뿐 아니라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당 (WAGS)’이 구서독지역에서의 선전함으로써 독일전역에서 고른 지지율을 획득하게 됐다.

이는 통일 후 처음으로 현재 독일의 사회, 경제적 문제에 대해 동서독 모두를 아우르는 정당으로 그 입지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또한 민사당은 그저 동독당이란 이미지에서 벗어나 좌파연합당의 선거운동을 통해 새롭게 자리매김을 해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좌파연합당이 그들이 선거를 위해 연합하며 가장 주요하게 내세웠던 대의인 ‘의회정치 안에서 의회 밖의 소리를 진정으로 담아내는 좌파당’으로 그 역할을 채워가는 것 일게다.

대연정, 신호등연정, 자메이카 연정 모두 쉽지 않은 조합

이제 독일의 각 정당들에게 남은 과제는 어떻게 연합정부를 형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선거 다음날인 19일 월요일부터 다양한 조합가능성이 고려되고 있다. 우선 거대 연정으로 사민당과 기사/기민 연합이 제시되고 있다. 이 경우 세 당의 당성의 차이를 떠나서도 수상 자리를 슈뢰더가 쉽게 포기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복잡한 조합이다. 현재 다수의 국민들은 독일이 여러 면에서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느끼고 이러한 위기를 거대 정당간의 연정으로 극복해주길 바란다는 식의 여론이 보도 되고 있다.

두 번 째 가능성은 사민-녹색-자민(적-녹-황:신호등연정)이 제시되는데 이 연정에 대해서 이미 자민당은 절대 적녹과는 함께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세번째 가능성은 기사/기민연합-자민-녹색(흑-황-녹:자마이카 연정-자마이카 국기와 색이 같다고 이렇게 부른다)인데 이 경우도 녹색당이 신호등 연정에서 자민당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반대의 의사를 표시한 바 있다.

무엇보다 녹색당의 경우 원전문제에 민감한 당인데 이 사안에 있어 흑황연합과는 적대적이다. 이 세가지 가능성외에 좌파당과 사민, 녹색당의 적적녹 연정도 이론상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그 어떤 당도 좌파당과는 연정의 뜻이 없다고 밝혔고 좌파당 역시도 야당으로 남겠다고 한 상황이다.

제도와 절차는 과연 민주주의를 보증하는가?

10월 2일 드레스덴 선거에 출마하는 좌파연합의 카챠 키핑
 http://www.katja-kipping.de/

선거 직전 드레스덴에서 갑자기 지역구의원이 죽은 관계로 드레스덴만 10월 2일 선거를 치루게 됐다 (선거용지에 인쇄된 후보자 이름을 바꾸기 위해서 연기된 것이다. 민주주의의 절차와 형식을 갖추는 일은 비용과 시간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 드레스덴에서 채워질 의석수가 세석인데 만약 모두를 사민당이 차지한다면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예상하기 쉽지 않은 곳이다. 하여튼 선거 후 14일 내에는 연정에 대한 결론이 도출되야 한다. 꾸준한 물밑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조화 가능한 가능성이 아직 발견되지 못한 듯 싶다.

지난 18일 독일국민들은 그들을 대신해 향후 4년을 책임질 정치가와 정당을 선택했다. 그 선택이 유권자들의 최선의 선택이었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모두 같은 한 표로 처리됐다. 문제는 바로 이 점이다. 독일식의 정당제도는 양당제도에 비해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오는 결점들을 채울 수 있는 여러 장치가 있다. 위에 언급한 것 처럼 거대 한 당의 뜻대로 정권이 좌우 되지 않는 다는 점에서의 장점을 말한다.

그러한 다양성과 가능성을 제도로 풍부하게 할 수 있지만 바로 모두 한 표로 처리된 유권자들의 차이를 구별해 낼 수 없다는 점이다. 만약 사민당이 다시 정권을 잡을 경우 이번 선거의 결과를 아젠다 2010개혁을 완수하라는 국민의 뜻으로 오역하고 선전할 것이다. 뻔한 거짓말이 너무나 복잡한 민주주의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이러한 완성된 절차에 무엇으로 대항할 수 있을까?

갈현숙 님은 베를린자유대 사회학 박사과정을 지내고 있다.

기민·기사연합과 사민당 도토리 키재기로 귀결
노대통령이 부러워한 슈뢰더의 승부수? 그리고 아젠다 2010
월급 50만 원 일자리 170만 개 만든 독일 ‘아젠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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