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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독일 선거: 실망성 투표와 계급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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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독일 선거: 실망성 투표와 계급 균열
대연정인가? 신호등 연정인가? 아니면 재선거인가?
정병기 
대연정인가? 신호등 연정인가? 아니면 재선거인가? 지난 18일 치루어진 독일 조기총선 결과를 두고 모두들 연정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양대정당인 사민당과 기민/기사연이 1% 미만의 차이를 두고 득표했고 어떠한 연정 가능성도 어려운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표 1> 참조). 또한 10월 2일에 다시 치루어질 드레스덴 선거에서 사민당이 의석을 추가한다면 기민/기사연과 정확히 동수의 의석을 갖게 되는 기막힌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표 1> 2005년 독일 총선 결과
 http://stat.tagesschau.de/wahlarchiv(검색일: 2005년 9월 19일)

가능한 연정 시나리오는 대연정(기민/기사연, 사민당), 신호등 연정(적황록: 사민당, 자민당, 녹색당), 흑황록 연정(기민/기사연, 자민당, 녹색당), 적적록 연정(사민당, 좌파/민사당, 녹색당)이다. 사실상 연정 교섭에서는 기민/기사연의 메르켈 후보보다 사민당의 슈뢰더 총리가 더 큰 선택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 비록 제1당은 아니지만 가능한 연정 조합이 많기 때문이다. 슈뢰더는 제2당의 후보이지만 총리를 연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대연정의 가능성은 양대 정당 모두가 거부하고 있고, 녹색당과 자민당은 환경정책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한 배를 타기 어려우며, 좌파/민사당은 어떠한 형태의 연정 참여도 거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일 의회가 3회까지 총리를 선출하지 못하게 되면 재선거가 실시될 수도 있다. 현재 독일 정국은 어떠한 것도 분명하지 않다.

양대정당의 실표와 실망성 투표

좌우파 정당연립간의 비김수를 결과한 이 선거 결과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7년 집권동안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시해온 적녹연정은 적지 않은 유권자들을 떠나게 만들었으며, 기민/기사연 또한 정책적 차별성을 보이지 못해 실표를 한 것이다. 유권자들 절반이 투표가 임박해서야 지지 정당을 결정했으며, 약 1/3이 적극적 지지보다 실망에 따른 소극적 투표를 했다.

이러한 현상은 지지표의 이동에서도 명확히 나타났다. 사민당은 4.2%(약 236만표)의 실표를 했는데 사민당을 떠난 표들 중 약 97만표는 좌파/민사당으로, 약 62만표는 기민/기사연으로 갔으며, 약 37만 명의 지지자들은 기권했다. 3.3%(약 146만표) 실표한 기민/기사연은 사민당과 녹색당으로부터는 지지자들을 견인했으나, 64만 명의 기권자를 낳았으며 자민당에게 110만표를 빼앗겼다. 이번 총선은 기권자가 양산되고(투표참여율은 지난 선거보다 약 2% 낮은 77.7%), 표의 이탈이 두드러진 선거였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득표를 제고한 두 정당인 자민당과 좌파/민사당도 실망성 투표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더욱 노골적인 자유시장 정책을 주장한 자민당은 2.4%를 더 얻었으며, 전통 좌파의 기치를 든 좌파/민사당은 4.7%의 득표를 제고했다. 그러나 표의 이동으로 볼 때, 자민당의 득표도 전통적 지지층의 확대라기보다는 사민당과 기민/기사연으로부터 옮겨온 지지자들이 많고, 좌파/민사당의 경우도 실망성 투표의 효과가 51%인 것으로 나타났다.

좌파/민사당의 약진과 계급 균열의 재등장

이번 선거의 승자는 자민당과 좌파/민사당이다. 물론 이 정당들도 실망성 투표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아 득표율 제고가 전적으로 진정한 세력 강화의 결과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지표들의 종사상 지위별 성격을 보면 독일에서도 계급균열의 양상이 다시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표 2> 참조).

기민/기사연이 자영업자와 연금생활자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었으며, 자민당은 자영업자들에게서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반면 사민당은 노동자층과 학생 및 연금 생활자로부터 높은 지지율을 획득했으며, 녹색당은 학생과 사무직 및 자영업자 등 인텔리층을 핵심지지층으로 하고 있다. 과거에도 사회계층별 지지가 10% 안팎의 차이를 보였던 점을 감안하면, 기성 네 정당에 대한 지지율 분포가 과거와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차이가 확대된 것만은 사실이다.

여기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좌파/민사당의 지지율 분포이다. 좌파/민사당의 지지율은 압도적으로 실업자와 육체노동자들에 치중되어 있다. 신자유주의의 희생자들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를 강력하게 주장한 좌파/민사당을 선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표 2> 종사상 지위별 투표경향(2005년 총선, %)
 http://stat.tagesschau.de/wahlarchiv(검색일: 2005년 9월 19일)

정책에 따른 투표 경향도 계급균열적 성격을 보여준다(<표 3> 참조). 유권자들이 선택한 투표의 정책적 동기들은 전체적으로 볼 때 조세정책과 외교안보정책을 제외하면 대동소이한 비중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당별로 보면 매우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사민당의 경우 사회정책이 가장 높고 경제정책과 노동시장정책이 유사한 비율을 보였다. 기민/기사연과 자민당을 선택한 유권자들은 경제정책과 노동시장정책을 중요한 이슈로 꼽았는데, 그중 경제정책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반면 녹색당 지지자들은 환경정책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으며, 좌파/민사당 지지자들은 사회정책과 노동시장정책을 중시했다. 특히 좌파/민사당 지지자들의 사회정책에 대한 관심은 다른 어떠한 정당 지지자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 60%를 보였다. 녹색당을 제외하면 우익의 자민당과 중도의 기민/기사연 및 사민당 그리고 좌익의 좌파/민주당이라는 구도가 확연히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표 3> 정당 지지자들의 정책별 지지 동기(%) (* 복수 답변 가능)
 http://stat.tagesschau.de/wahlarchiv/wid246/umfragethemen0.shtml(검색일: 2005년 9월 19일). http://www.tagesschau.de/aktuell/meldungen/0,1185,OID4766402,00.html(검색일: 2005년 9월 19일)

노자 계급 모순은 자본주의 사회의 고유한 모순이자 근본적인 모순이다. 독일 사회에서 그 모순은 사회복지국가를 통해 완화되었지만, 신자유주의적 공세로 인해 다시금 첨예해지고 있다. 2005년도 독일 총선은 신자유주의가 강화되는 만큼 그 희생자도 늘어날 것이며 제도적이든 비제도적이든 새로운 정치세력화가 그들을 결집할 것임을 드러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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