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4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4/02
    [SHOUT-21]4월 작업계획
    토닥
  2. 2006/03/31
    [SHOUT-20]요며칠(2)
    토닥
  3. 2006/03/28
    [SHOUT-19]재원(7)
    토닥
  4. 2006/03/28
    [SHOUT-18]오늘(3)
    토닥
  5. 2006/03/25
    [SHOUT-17]대추리에서 노래를(3)
    토닥
  6. 2006/03/23
    [SHOUT-16]향촌촬영 후기(3)
    토닥
  7. 2006/03/20
    [SHOUT-15]촬영계획(1)
    토닥
  8. 2006/03/15
    [SHOUT-14]평가(3)
    토닥
  9. 2006/03/13
    [SHOUT-13]울산공연 안내
    토닥
  10. 2006/03/13
    [SHOUT-12] 배너
    토닥

[SHOUT-21]4월 작업계획

촬영을 5월까지는 해야한다

더 찍고 싶지만 테잎이 너무 많아지면

편집할 시간이 부족해서

완료시점을 내년으로 넘길 지도 모른다

올해 안에 완성, 그것이 지금의 목표



4월 첫주는

여러 감독들과 같이 작업하는 프로젝트 다큐멘터리 때문에

'난자'의 입장이 되어서 편집하느라 정신이 없을 듯 하고

4월 10일 이후부터 향미와 금례와 연수의 개인적 공간으로

카메라를 앞세운 채 다가갈 생각

그 전에 프리뷰를 다 해놔야 한다

 

4월 20일이 되기 전에

[향촌 사람들]에 관해 한 편 더 촬영, 편집할 것인지

아니면 구체적인 연대를 위해 뭔가 다른 일을 벌일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4월 26일~30일, 닷새동안 학산에서 W 의 공연 확정

날마다 갈 것인지, 재원과 나눠서 갈 것인지 의논해야함

 

[돌 속에 갇힌 말]의 포스터를 만들었던 소란과 통화,

웹자보와 포스터를 다시 의뢰하고 싶다고 밝힘

소란도 좋다고 함

5월 이후에 본격적인 이미지 디자인이 시작되겠지만

미리 부탁해놔야 일정을 비워두지 싶어서...

 

첫번째 작업을 할 때

전국 각지, 서울 곳곳에 카메라와 트라이포드를 메고 다니느라

하도 고생을 해서

두번째 다큐멘터리를 작업할 땐

모든 장비를 다 실을 수 있는 튼튼한 차를 몰아야겠다고 결심,

면허도 따고 친구랑 같이 돈 모아서 10년 넘은 고물차도 한 대 장만 했건만

길에 나섰다가 욕만 디립다 먹고 완전 주눅이 든 뒤로는

오랜 경력의 운전자를 섭외해서 몇 번 움직여보다가

기름값도 만만치 않고 해서 다시 지하철 승객모드로 전환했다

아쉽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SHOUT-20]요며칠

달군님의 [반격 _ 홍콩WTO원정투쟁 뮤직비디오] 에 관련된 글.

 

*뮤직비디오를 여기에 갖다놨다가

  블로그를 열 때 마다 자동으로 음악이 나와서

  하는 수 없이 지웠어요

  달근 블로그와 미디어문화행동 홈페이지에 가면 볼 수 있음




29일날 연수가 사무실로 왔다

8일날 울산공연을 촬영한 테잎을 가지러 온 것인데

4월 26일 인천에서 재공연을 하기 때문에

멤버들이 다같이 모니터링을 해야하는 것이다

 

촬영현장을 좀 멋지게 편집하려고 벼르다가 시간만 보내던 나로선 많이 미안했다

재원과 내가 카메라를 들고 찍은 것과 삼각대에 고정해서 찍은 것이 있고

공연 전날 리허설과 공연 당일...다 합치면 공연테잎만 20개다

그래서 결국 고정촬영한 것만 VHS로 복사해서 넘겨야 했는데 영 마음이 찜찜...

 

그러던 차에 '미디어문화행동' 홈페이지와 달군의 블로그에서

뮤직비디오를 봤는데 '반격'이라는 노래가 나온다

꽃다지가 부른 그 노래에는 향미 목소리도 섞여있다(맞지? 맞지?)

 

촬영을 하다가, 혹은 사석에서 가끔 주변 사람들이

'근데...박향미가 누구지?'라고 물으면 처음엔 시무룩했다

(링크! 블로그에 '박향미 닷컴'을 링크했으니 아직도 궁금하다면 꼭 눌러봐요)

요즘엔 '진보넷에서 샤우트 블로그로 와보세요'라고 씩씩하게 대답하는데

가까운 곳에서 꽃다지 노래나 향미 목소리가 들리면 반갑다

 

그래서 그 뮤직비디오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다가 이렇게 트랙백...히힛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SHOUT-19]재원

똑똑하고 이쁘기까지한 재원이

그리고 재원이의 보물 현준이

2년전 사진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SHOUT-18]오늘

3월 8일 울산 공연 이후

사진이라도 올리려고 했건만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는다

W 멤버들에게 미안해서 할 말이 없다

 

현재 촬영테잎 70개

두번째 다큐에서는 절대 100개를 넘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과연...

 



연수가  다른 팀과 함께 광명시에서 연극공연을 했다

내가 요새 얼마나 정신이 없냐 하면

그 공연 제목도 모르고 그냥 갔다

 

게다가

입구에 늘어선 줄을 보고서야

아차, 입장료는 어떡하지? 하고 그제사 지갑을 열어봤는데

동전 세 개만 달랑 들었다

교통카드만 있으면 돌아다니는 게 전혀 불편하지 않으니까

돈을 찾을 일이 거의 없어서...라고 하기에는 거 참...

 

혼자 얼굴을 붉히다가 카메라를 꺼내 어깨에 메고

마치 취재하러 온 기자처럼 그냥 출연자 대기실로 걸어갔다

뚜벅뚜벅 걸어가는데 누가 '여보쇼!'하고 부를까봐

태연한 척 몇 걸음 걷다가

나중에는...발바닥이 안보일만큼 빠르게...휘리리리릭...

 

예비군과 어르신들이 단체관람을 와서 객석은 금세 꽉 찼고

연수는 무당역할을 맡았는데 그럴 듯 하게 잘 어울린다

저녁에 다른 약속이 있어서 마지막 장면을 볼 수 없었던 게 아쉽다

 

촬영은 어찌 어찌 했건만 돌아와서도 다시 들여다볼 시간이 없다

재원이가 향촌2를 촬영해서 가편집테잎을 가져왔는데

그것도 아직 들여다보지 못했다

 

약속은 약속을 낳고

시간은 시간을 먹어치워서

내일 하루도 도무지 예측불능이로세

일단 자야겠다, 에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SHOUT-17]대추리에서 노래를

오늘(25일 토요일) 대추리에서 박향미를 만나기로 했다

불안하고 주눅이 들었다가도 W를 만나면 안심이 되는데

대추리에서 만난다니까 더 마음이 좋아진다

 

저녁 7시, 대추리 문화제에서 향미가 노래를 하게 될텐데

그 순간, 모두가 잠시라도 즐거웠으면 좋겠다

 

 



다녀와서 계속 말하자면...

박향미는 '등대지기' '손을 잡아야 해' '희망의 노래' 세 곡을 불렀는데 (맞나?)

반응이 좋았다

좋은 정도가 아니라 박수를 치던 여러 어르신들이

'노래도 잘하고 말도 잘한다'고 '저 사람이 테레비에도 나오냐?'며

몹시 진지하게 관심을 표현했다

(그런데...그런 재밌는 이야기들은 촬영을 못했다...아쉬워...)

 

오늘은 시인들이 세 분이나 와서 대추리 투쟁에 대한 시를 낭송했고

스크린쿼터 축소반대 투쟁을 하던 영화인들도 와서 인사를 했고

('죽어도 좋아'의 박진표 감독, 한독협 이사장인 '황철민 감독,

  '송환'의 김동원 감독, 그리고 영화제작자협회의 한 분)

다른 가수들도 많이 왔다

 

밤에 서울에 와서 편집할 일들 때문에 또 하룻밤 묵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다음에는 독립영화를 만드는 여러 친구들과 그 곳 주민이 된 여러 친구들이 모여서

술도 한 잔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촬영만 하고 급하게 돌아오는 길은 늘 너무 아쉽고 죄송하다

일 때문에 가서 만나는 게 아니라

그 곳에서 싸우는 사람들과 그 곳에 찾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한 사람의 대등한 인격으로 만나서

속내를 털어놓는 친구로 다가가게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영화를 더 잘 만드는 길이기도 하고

영화를 만들면서 조금씩 성장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차 안에서 침 흘리며 졸던 와중에 잠시 스쳐간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SHOUT-16]향촌촬영 후기

토닥님의 [인천 향촌의 철거현장에 연대를 호소합니다] 에 관련된 글.

 

작년 10월부터 철거반대투쟁을 벌이고 있는 '향촌'은

인천시 남동구 만수동에 위치한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정부와 주택공사가 이 곳을 '환경개선지구'로 발표하고 철거를 서두르는 바람에

최근 이곳에 살던 주민들의 삶은 말 그대로 완전히 망가지고 있다 

박향미는 두 달 전부터 이 곳에 찾아가 노래강습을 했고

주민들 중 몇 몇이 '향촌 노래패'를 조직했다

 

철거투쟁의 과정에서  한 주민이 시신으로 발견된 이후 상황은 급박해졌고

박향미는 향촌 노래패와 함께 투쟁가를 녹음하러 서울에 왔었다

노래패에 참여한 여성주민 세 분과 박향미의 녹음장면은 내가 촬영했고

21일 화요일 인천 남동구청 앞에서 열린 향촌 주민들의 집회는 재원이가 촬영했다

빠르면 오늘밤, 늦어도 내일 새벽에는 관련장면을 편집해서 이 곳에 올릴 예정인데

일단 재원이가 향촌에 다녀와서 쓴 글을 아래에 올린다



작성:2006. 3. 22(수) 재원

촬영:2006. 3. 21(화)

 

야구 열기가 한창인 때 인천 만수동에서는 사람이 죽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신현기. 쉰을 넘긴 이 사람은 인천 만수동에서 강제철거를 반대하던 지역 주민이다. 돌아가시기 바로 전 날에도 강제철거를 반대하며 열심히 활동하시던 분이다. 그 사람의 죽음이 자살이었는지 타살이었는지는 모른다. 시신을 둘러싸고 주민들과 신현기씨의 가족들은 염을 할 수 있도록 시신을 넘겨 달라고 했단다. 그런데 경찰과 남동구청장은 그럴 수 없다고 하며 시신을 돌려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정히 시신을 돌려 받기를 원한다면 신현기씨와 같이 찍은 사진이라도 가져오라고 했단다. 지역 주민과 유족은 사진도 가져갔다. 하지만 돌려받지 못했다.  

 

신현기씨는 고아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 어느 집에 입양되었고 양부모와 형이 버젓이 생존해 계신다. 그들은 다만 호적 정리만 하지 않았을 뿐이다. 남동구청장은 이들이 법적인 가족이 될 수 없으므로 시신을 돌려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행정에는 인정이라는 게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단다.

 

그 사람의 유족과 지역주민들의 원성을 뒤로하고 남동구청측에서는 시신을 몰래 빼돌려 화장을 시켜 버렸다. 고 신현기씨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밝힐 수 없다. 이미 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강한 의혹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너무나 잔인하다. 행정에는 인정이 개입될 수 없다고 하는 그 구청장의 말에 공감을 하는 사람이 과연 몇 이나 될까? 누가 뽑아준 구청장인데... 남동구청장은 이번 구청장 선거에 또 나온다고 한다.

 

만수동 향촌마을에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전세금도 그다지 높지 않았으며 대부분 보증금 삼사백에 월세를 내는 세입자들이다. 주택공사측과 남동구청은 향촌마을을 재개발도 아닌 환경개선지구로 만들어 그들을 내몰았다. 그들에게 그들의 보증금 삼사백을 쥐어준들 그 사람들이 그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이 있을까? 주공과 남동구청은 자기들은 할 바를 다했다고 했고 지역 주민들의 항의를 보상금을 노린 항의라고 치부하고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서 그들을 내몰고 트럭이 들어선다. 그집의 가구며 세간 살이를 끄집어 내서 마구잡이로 트럭에 실고 저 멀리 공터로 가져간다. 바로 전까지 잠을 자고 밥을 해먹던 사람들이 넋을 잃고 그자들이 하는 행동을 볼 수 밖에 없다. 망연자실한 그 사람들 앞으로 고물상들이 들이 닥친다. 미처 빼내가지 못한 것들 중 쓸만한 것들은 고물상들이 집어간다. 그 작업이 끝나면 포크레인이 집을 뭉게 버린다.

 

철거가 시작된 첫날 어떤 어미의 작은 아이가 유치원에 갔다 와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우리 집이 없어" 엄마는 눈물을 꾹 참았다. 두어시간 뒤 중학교 다니는 큰 아이가 와서 엄마에게 같은 말을 한다. "엄마. 우리 집이 없어" 엄마는 애써 참았던 눈물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갈 곳이 없는 지역 주민들은 어디 놀러 갈 때 짐 몇가지 챙기듯 옷가지 몇개만 달랑 들고 나왔다. 왜 짐을 많이 챙겨 오지 못했냐는 질문에 갈 곳이 없는 사람이 그 짐을 다 어디에 갖다 놓을 수 있겠냐고 한다.

 

사람들은 저 멀리 무너져 가는 집들을 보면서 한마디씩 한다. 오늘은 아무개네 집이 무너지겠고만. 저걸 어째. 저긴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데. 어이 이봐. 오늘은 자네 집 차례야.

그들의 옷차림은 아직 겨울이다. 요 며칠새 날씨가 푹해서 이제 봄 옷을 입어야 할 때다. 하지만 그들에겐 갈아입을 옷 조차 없다. 철거반이 실고간 이 사람들의 옷가지는 마구잡이로 옛날 비닐을 엉기성기 엮어 만든 쌀푸대자루에 들어가 집합장소에 갖다 놓는다. 그들의 옷가지들은 푸대자루 안에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먼지 풀풀 날리는 곳에서 이리 저리 뒹굴고 있다. 그 옷가지를 찾는다 한들 그들이 다시 걸칠 수 있을 것인가.

 

학교에서 헐래벌떡 뛰어온 손녀가 땀을 뻘뻘흘리는 것이 안스러워 할머니는 자신의 지갑을 열고 백원짜리 동전 다섯개를 쥐어주시며 하드 사먹으라 하신다. 아이는 신이 나 동전을 쥔 손을 꼭 쥐고 밖에 나가려 하지만 어른들의 제지를 받는다. 혼자 나가면 위험하다. 아이는 체념하고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 놀이를 한다.

 

유치원 다니는 딸아이가 옆에서 내내 인상을 쓰며 울며 불며 난리다. 온갖 짜증 다 낸다. 이유를 들어보니 유치원 갔다 오면서 예쁜 지갑을 봤는데 사천오백원이란다. 아이의 엄마는 그걸 사 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 마디. 꼭 필요한 거 아니면 사 줄 수 없어 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엄마의 단호한 말에 아이는 대성통곡을 한다. 그 어미가 나에게 자신의 힘든 얘기를 하며 눈물 짓는다. 아이가 어미의 눈물을 보며 더이상 지갑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 아이는 밖에 나가 언니들과 시장놀이를 한다.

 

쉰이 넘은 아낙의 친정아버님이 같이 살고 계셨다. 아버님의 연세 90을 바라 보셔서 거동이 불편하시다. 그 아낙이 아버님께 항상 말했다. 아버지. 무슨 일 생기면 아버지가 119에 신고해서 병원으로 가셔. 아버님은 요 근래 병원 신세를 지신다. 가까이 있는데 왜 안오냐고 하신단다. 어버지. 내가 거기 갈 상황이 아니야. 갑자기 울컥하며 그 아낙은 혼자 울먹이며 말한다. 차라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면 좋겠어.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야. 자신의 말에 비통함을 느껴 그 아낙은 대성통곡을 한다.

 

어미는 지금 기거하는 철대위 사무실도 무너지면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어떻게 천막생활을 하게 할 지 막막하다. 지금이야 날씨가 차가우니 조금 괜찮지만 더운 날씨에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활을 하면 전염병 문제도 심각하다. 큰애가 아토피라 더 걱정이다. 중학교 다니는 아이는 한참 사춘기라 더 걱정이다. 이러고 살아야 할까? 차라리 죽어 버릴까 생각도 많이 한다.


그 사람들에게 죄가 있을까? 가난한 것이 죄인가?
권력을 쥔 자들이 서로 짜고 그들을 거리로 내몰고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일제시대 때 조선민들은 일본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신의 삶을 파괴당했으며 조선민들은 판자로 움집을 만들어 생활해야 했다. 홍수가 나도 그들은 망연자실 자신의 허름한 집이 떠 내려 가는 것을 바라만 봐야 했고 마을로 나와 거리의 쓰레기를 주우러 다녀야 했다.

 

지금은 2006년이고 대한민국은 독립된 한 국가다.

이런 데서 과거 식민지시대 권력자들이 조직적으로 유린하고 죽여온 조선민들과 같은 수모를 겪어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다.


저의 바람은 온 국민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재산이 넉넉치 못하는 것이 죄가 될 수 없고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SHOUT-15]촬영계획

현현님의 [[펌]노무현 정권과 주공은 살인철거를 즉각 중단하라!] 에 관련된 글.

위의 글은 W-불현듯의 홈페이지에서 퍼온 기사내용이다

며칠 전에는 그 곳에서 공연도 했었고

향미와 금예가 다녀왔다는데

촬영팀은 아직 못갔다

W의 첫 공연에서 음향을 맡았던 분이 그 곳의 철거대책위에서 일하신다

이번주에는 집회에 같이 가야겠다

 

사람이 죽어도 놀라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각오를 하고 달려들어도 여유만만한 이 사회는

살아있는 모든 이들을 모욕한다

생존이, 밥이, 돈이, 다 치욕이 될 수 있는 이 와중에

공연을 한다는 것

특히 여성들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여성들끼리 예술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눈치가 보이는 일인지, 얼마나 주저하게 되는 일인지...

그래도 우리는 달릴 것이다

희망을 품기 위해서

더 이상 죽지 않고 더 열심히 살기 위해서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않고 모두가 노래할 수 있는 세상을 향해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SHOUT-14]평가

W에 총연출과 기획자가 결합해야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동감이다

장르가 다르고 표현방식이 다른 몇 사람이 모여서

멤버들이 모든 일을 일일이 의논해가며 한 무대에 선다는 건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조율하고 이끌어갈 사람이 필요하다

 

첫 공연과 비교해서 달라진 내용, 달라진 환경에 대해

미흡했던 부분을 짚어보고 대안을 고민하는 중요한 자리였는데

미리 가서 기다리기는 커녕 두 시간이나 지각을 했다

생리가 시작되면서 몸도 마음도, 카메라도 무겁다

 



 

촬영을 한 지 석 달이 다 되어가는데

박향미의 집에 처음 갔다

개미갬은 어질러진 집안을 보이기 싫어서

연락도 없이 들이닥친 언니에게 야단을 하고

준하는 자다가 깨서 칭얼거리고

나는 울산에서 말실수했던 걸 사과하고

향미는 불편했던 속을 잠시 보여주고나서 하하 웃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코코아와 호박죽을 먹으면서

어색하게 마음을 조금 풀고나니

향미의 홈페이지가 복원되었다는 반가운 소식

 

사진과 자료를 보강하는 중인데

며칠 뒤면 이곳에도 링크를 할 생각

 

인천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

향미가 시청앞까지 태워다줬는데

사무실에 내려 짐정리를 하고 있자니 휴대폰이 울린다

 

'달 좀 봐봐 혼자보기 아깝다'

 

운전하면서 문자를 어떻게 보내나

그러면서 창 밖을 보니 정말 달이 흐릿한 황사 뒤에서

핼쓱한 낯빛으로 반긴다

 

고단하지만 멋진 하루, 달도 멋졌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SHOUT-13]울산공연 안내

2006. 3. 7

 

관련기사 :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행사 다양하게 열린다<울산노동뉴스>

 

            W-불현듯 홈페이지

 

 

박향미와 W 멤버들이

2006년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울산에서 공연을 합니다

 

2005년 12월 29, 30일 인천 학산소극장에서 첫 공연을 올린 이후

2006년 2월 19일 서울 축제소극장에서 <열사굿-지나가리라>의 게스트로 출연,

2월 26일 인천 남동구 만수동 향촌지구 철거투쟁현장에서도 공연했던

'W-불현듯'

영화, 인형극, 1인극, 노래가 어우러진 그녀들의 멋진 무대를 놓치지 마세요

 

 

*울산에 다녀올께요

 촬영준비를 하나도 못해서 불안불안...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SHOUT-12] 배너

2006년 02월 26일

 

만우가 배너를 만들어줬다

고마워

일단 디자인만 살짜쿵 같이 보자구

이제 그대도 확실히 알게 되었겠지만

반드시 수정을 두 번은 하게 될테니깐

그러니 배너소스 같은 건 나중에 올리기로 하고....

어쨋건 이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