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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에는 두명뿐인데 출연자는 수십 명?

 

 

 

스튜디오에는 두명뿐인데 출연자는 수십 명?
[탐방] MBC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제작현장
텍스트만보기   정옥재(jung213) 기자   
12일 저녁 MBC 라디오 스튜디오. 이날도 어김없이 전·현직 정치인들이 잇달아 모습을 드러냈다. 대쪽(이회창), 몽(정몽준), 노통(노무현)이 '대충토론'에 나와 '대에충' 말다툼을 하고 나가자 곧바로 DJ, YS, JP가 등장해 '3김 퀴즈'를 시작한다.

문제는 늘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 9단이라고 자처하는 이들 3김의 대답은 어떨까. 잠시 한 문제를 보자.

진행자의 질문,
"다리 부러진 제비를 고쳐 준 인물이 나온 소설 제목은?"


"즈~~응답."
YS가 제일 먼저 한 마디 외친다. (YS는 자신을 IS로 부른다. Y를 발음할 수 없어서)

▲ 진행자 최양락씨와 배칠수씨가 이 프로그램의 인기코너 '3김 퀴즈'를 진행하고 있다.
ⓒ 정옥재
"즈~~응답!! 느므 시워. 말 시키지마. 증답. 박씨전."
"틀리셨습니다."
"내도 내 어렸을 때 그 얘기 읽고 나서 어디 제비 다리 뿌라진 거 없나 마이 찾으러 댕깄었다고. 다리 뿌라진 제비는 몬 찾았어도 내가 직접 제비 다리를 뿌라뜨린 적은 있었다고."

JP가 어이없다는 듯 무뚝뚝하게 YS의 말을 자른다.

"사회자 양반. 정답."
"아 JP 정답 아시겠습니까."
"어허. 알다 뿐이겠시유. '웃으면 복이 와요'."

기다렸던 DJ. "에~~오늘 정답을 말씀드리자면.. 에~~조선시대 작자미상의 고대소설이지요이. 나는 어릴 때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은 교훈을 얻었씀다."
"'착하게 살자'인가 보군요."
"아니지. '애를 좀 조절해서 낳자!'여."

이어지는 DJ의 정답, "난 형수한테 밥주걱으로 읃어맞고 밥풀 띠어 먹는다는 것 자체가 맘에 안 들었어. 쫀심도 없니? 주걱을 뺐었어야지. 하이간 정답은 김치전. 아닝가 호박전? 해물파전이여?"

두 명 목소리 연기에 수십 명이 들락날락

다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라디오 스튜디오에 이들 거물급 정치인 모두가 참석한 것은 아니었다. 정몽준, JP 목소리는 최양락의 성대를 통해 DJ, YS 등 나머지 정치인은 배칠수의 목청조절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손석희 이승엽 차인표도 단골손님이다.

MBC 라디오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가 이 성대모사에 있다. 그들을 제작현장에서 직접 지켜봤다.

▲ MBC 표준FM '재미있는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는 최양락씨
ⓒ 정옥재
'재밌는' 라디오를 표방하며 2001년 4월 1일 첫 전파를 탄 이 프로의 목적은 오직 '재미'다. 말하자면 라디오를 통해 코미디를 하겠다는 것. 하기야 누가 재미없는 라디오 방송을 만들겠느냐마는 이 프로그램은 생방송 내내 정신없이 돌아간다. 고작 4~5명이 스튜디오를 들락날락 거릴 뿐인데 방송을 통해서는 수십 명이 출연해 자기 인사를 한다. 진행자 최양락과 고정패널인 성대모사의 달인 배칠수와 김미진의 활약 덕이다.

방송 초기 이들의 성대모사에 킥킥대던 청취자 사이에서 이젠 어느덧 "중독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 재미도 있지만 이들 성대모사가 시사를 기반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매력이다. <재미있는 라디오> 중 한 코너인 '이젠 좀 떠떠떠'는 신인 개그맨의 등용문 역할도 한다. 얼마 전까지 큰 인기를 끌었던 '현대생활백수'의 '파란 트레이닝복 백수' 고혜성이 바로 이 코너 1기 출신이다.

'3김 퀴즈'로 달궈진 스튜디오가 '뉴스데스크' 생방송으로 잠시 식혀지자 이번엔 개그우먼 김미진이 나선다. 이 프로그램의 또 다른 인기코너 '뉴스디스크'다. 김미진은 영화배우 김하늘과 전도연을 모사한 김한올 기자와 전도은 기자로 출연했다. 김미진은 이외에도 백지연 앵커와 김조아(김주하 아나운서 모사)기자, 영화배우 이영애 등으로 변신해 청취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한꺼번에 출연하지는 않는다. 고정패널은 딱 3김뿐. 이들을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성대모사 쿼터제'를 지킨다. 물론 방송을 듣다 보면 '별로 안 똑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안 웃길 때도 많다. 대표 코너인 3김 퀴즈가 밋밋할 때도 많다. 이에 대해 배칠수씨는 "지금 당장 웃기지 않아도 잘 때 생각하면 우습다"고 말한다. 최양락씨도 맞장구친다.

재밌는 라디오? 생방송 제작현장은 긴장의 연속

방송이 진행되는 스튜디오 안쪽에는 여유가 있지만 제작진들은 늘 긴장감 속에 방송을 내보낸다. 라디오 코미디의 생리일까. 웃음이 넘쳐흐르는 프로그램이지만 역시 '생방송'은 어쩔 수 없다. 진행자들이 청취자들에게 웃음을 전달하고 있는 동안에도 작가들은 스튜디오 안으로 계속해서 대본을 전송한다.

▲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를 맡고 있는 김용관 PD(가운데)와 문연선 작가(사진 맨 앞)
ⓒ 정옥재
생방송은 사고의 연속이다. 문제는 얼마나 발빠르게 대처하느냐. 이날도 노래 제목이 빠진 대본이 전송됐다가 작가의 재빠른 손놀림에 의해 수정된 대본이 스튜디오로 전달됐다. '3김 퀴즈' 정답을 듣기 위해 청취자를 연결하려고 했을 때는 갑자기 스튜디오 전화수신기가 작동하지 않아 제작진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재밌는 라디오를 만드는 과정은 재미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배꼽 잡게 웃기는 라디오 프로그램 '재미있는 라디오'. 그렇다면 청취율은 어느 정도일까. 의외로 제작진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점유율은 같은 시간대 다른 프로그램보다 높다.(청취율은 라디오의 청취 여부와는 무관하게 조사 대상 전원을 상대로 설문해, 듣고 있다고 밝힌 채널 및 프로그램의 청취비율을 말하는 것이고, 청취 점유율은 라디오를 듣는다고 밝힌 사람들을 대상으로 얻어낸 특정 채널 및 프로그램의 청취 비율을 뜻한다.)

TV 시청자가 많은 시간이라 청취율은 낮아도 타사와의 경쟁에서는 월등하게 높다는 것이다. 김용관 담당 PD는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가 주 퇴근 시간이면서 동시에 TV 시청시간이기 때문에 청취율을 올리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인기비결요? 재미없으면 취급 안 해요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누리고 있는 현상 뒤에는 웃음과 재미를 추구하기 위한 제작진의 엄청난 고민과 노력이 숨어있다. '뉴스디스크' 코너를 맡고 있는 홍윤희 작가는 프로그램의 성공 전략을 묻자 "재미만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미없으면 아예 취급 안 한다고. 젊은 스타급 연예인들의 사랑타령이 없는데도 젊은 층에까지 인기가 있는 이유다.

▲ '재미있는 라디오'녹음대본이 모니터에 떠 있다.
ⓒ 정옥재
이날도 방송 후 세 명의 작가와 PD가 모여 회의를 했다. 무거운 시사이슈를 다루면서도 그 안에서 '재미'와 '웃음'을 길어 올리는 작업은 쉽지 않다.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 시기적으로 중요한 이슈지만 대본에서 빠졌다. 도저히 재미있게 다룰 수 없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준비시간까지 합쳐 하루에 4~5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음악 내보내랴, 대본 고치랴, 전화받으랴, 시간 맞추랴 게다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의 취재에 협조까지 해야 했던 이날, 방송이 끝나자 제작진들은 모두 맥이 빠졌다. 그러나 잠시라도 쉴 틈이 없다. 다음날, 이명박과 손석희, 백지연, 김주하 등 스타 정치인과 연예인들이 줄줄이 이곳 스튜디오에 나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현대생활백수'도 거쳐간 방송입니다"
[인터뷰] '재미있는 라디오' 진행자 개그맨 최양락

▲ '현대생활백수'로 유명해진 개그맨 고혜성은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이젠 좀 떠떠떠'코너 1기 출신이다.
ⓒmbc

<재미있는 라디오>를 진행하는 개그맨 최양락씨. 이미 TV를 통해 국민에게 수많은 웃음을 선사한 그다. 그는 '라디오 프로그램'보다는 '라디오 코미디'라 불러주길 원했다. 그가 강조하는 건 음악을 틀어주고 연예인들의 사생활과 생각을 들어보는 프로그램이 아니었고 스스로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과 같은 정통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 진행하는 라디오방송이 왁자지껄하다?
"프로그램을 내 스타일에 맞게 하고 싶었다. 라디오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라디오 코미디'를 하고 싶었다. 기존 라디오 프로그램의 형식에 얽매인다면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예를 들어 이 프로그램을 듣다가 단순 접촉사고를 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안타깝지만 큰 사고가 아니라 다행이고 대단히 죄송하지만 보람있게 느낀다. 이 라디오 코미디는 30~40대를 겨냥했지만 의외로 여성과 20대의 청취자가 많다."

- 신인 개그맨 등용 코너인 '이젠 좀 떠떠떠'에서 신인 개그맨이 된 경우도 많다고 하던데.
"고혜성이라고 '일구야~ 형이 하는 말 오해하지 말구 들어'하는 친구다. 이 코너 1기생이었다. 개그맨이 되고 싶은 친구들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 코너에 출연하면 주눅이 들곤 한다. 개그맨 지망생들이 주위의 친구들은 쉽게 웃겨도 여기에 와서는 긴장하는 것 같다.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내가 신인 때 서영춘, 구봉서 선배 같은 전설적인 분들 앞에 서는 것과 같을 것이다. 개그맨이 되려는 사람은 어디서든 주눅이 들어서는 안 된다.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 요즘 TV 코미디를 보면 어떤가.
"너무 시청률에 급급한 것 같다는 느낌이다. 10초 안에 안 웃기면 채널이 돌아간다고 하는데 폭소만이 전부가 아니다. 이승엽이 홈런만 치려고 해서는 홈런왕이 될 수 없지 않은가. 안타를 많이 치다가 홈런을 날리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라디오는 시간적 여유가 많다. 또 하고 싶은 개그를 할 수 있다. 라디오는 편안한 게 장점이다."

- 성대모사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은데.
"배칠수씨가 문화방송 연보흠 기자 성대모사를 했다. 계속 밀었었다. 연보흠 기자가 주말 뉴스데스크 메인 앵커가 됐다. 그런데 우리한테 고마워하는 눈치다. 엄기영 특임이사도 우리와 우연히 마주치면 웃는다. 정치인 성대 모사할 때도 심하게 정치인들을 헐뜯지는 않는다. 예전 같으면 '3김 퀴즈' 이런 것 못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여유를 갖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세월이 많이 바뀌었다." / 정옥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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