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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모은 장난감만 30억원 5만여 점"

 

 

 

그동안 모은 장난감만 30억원 5만여 점"
[인터뷰] '와일드옥스엔터프라이즈' 김혁 대표
텍스트만보기   홍성식(poet6) 기자   
▲ 김혁씨가 소장한 장난감 중 가장 고가로 추정되는 '험피 덤피 서커스 인형세트'.
ⓒ 와일드옥스엔터프라이즈
"수집한 장난감 중에 가장 비싼 거요? 1800년대 미국에서 만들어진 '험티 덤티 서커스 인형세트'죠. 2003년에 미국 서커스박물관이 폐쇄된 후 서너 사람 손을 거친 후 내게 왔어요. 아마 3억원쯤 할 겁니다. 누가 그 가격을 제시하면 팔 거냐구요? 안 팔죠. 자식을 파는 아버지도 있습니까?"

자타가 공인하는 장난감콜렉터(수집가)이자, 애니메이션·테마파크 기획 전문 컨설팅 그룹 와일드옥스엔터프라이즈 대표이사인 김혁(42)씨는 보편의 시각에서 보자면 '참으로 기이한 사람'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모으기 시작한 각종 장난감 3만점을 포함, 와인오프너와 아이스크림 스쿠프(뜨는 도구), 각국의 술, 실물 크기의 밀랍인형, 춘화, 희귀한 근대사 물품 등 그가 수집한 것들이 모두 5만여 점에 이른다.

이걸 가격으로 환산하면 대략 30억원. 지방 중소도시에서 어지간한 아파트 10채 이상을 살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전세를 산다.

"돈을 꽤 벌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러면 뭐합니까. 생기는 즉시 물건 수집하러 다니기 바쁜데요. 다리미 구하러 멕시코 가고, 오래된 미키마우스 인형 구하러 미국 가고….(웃음) 순수한 콜렉터로 외국을 돌아다닌 건 10년쯤 됐어요. 한 50개국 정도는 다녀온 것 같네요."

서글서글한 인상이지만, 특이한 물건을 보는 순간 매의 눈을 가진 사냥꾼으로 변하는 열혈 콜렉터 김씨. "수집가는 흘러간 시간을 복원시키는 사람이자, 시간의 파수꾼"이라고 말하는 김씨를 봄이 완연해진 지난주 서울 봉천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아래는 그가 들려준 수집가로서의 삶이다.

장난감부터 춘화까지 수집품 5만여점... 인형 사러 미국행도

▲ "수집가는 사냥꾼"이라 말하는 김혁씨.
ⓒ 홍성식
- 애초에 각종 물건들을 모으게 된 계기가 있는가.
"꼬마 때부터 독특한 것이나 신기한 것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난 눈이 3개다. 남들과 달리 묘하고 재밌는 것을 보는 눈이 하나 더 있는 것 같다. 길을 가다가도 특이한 물건이 보이면 집으로 가져왔다. 그런 잡동사니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내가 제대할 때까지 보관해 준 아버지도 내가 수집가로 사는데 일조한 셈이다. 나중엔 그걸 후회하셨지만.(웃음)"

- 본격적으로 수집을 시작한 시기는 언제인가?
"중학교 때다. 세뱃돈 받아 장난감을 사 모으기 시작한 게 처음인 것 같다."

- 주요 수집품의 목록과 대략적인 개수를 말해달라.
"퍼즐과 테디베어 등을 포함한 장난감이 4만점, 와인오프너가 3000개, 아이스크림 스쿠프가 3000종, 각종 술 500병, 근대사물품(옛날물건) 1000점 등이다. 1989년에 처음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물건 수집 등의 이유로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와 남미 등 세계 50개국 정도를 오갔다."

- 그렇게 많은 것들을 대체 어디에 보관하는가?
"경기도 군포의 창고, 이 곳 사무실, 김포의 처가 등에 두고 있다. 불광동에선 일부 물품이 상설전시 중이고, 인천에서도 일부 전시되고 있다. 이걸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싶은데 공간 부족 등의 이유로 쉽지 않다."

- 자기만 볼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도 보여주는 게 더 좋을 듯한데.
"내가 물건을 모으는 가장 큰 이유가 사람들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다. 딱딱하고 학술적인 공간이 아닌, 보고 만지고 즐기는 공간으로서의 박물관을 만들자는 운동을 하고 싶다.

장난감은 물론이고, 아이스크림, 성물(性物), 옛날 물건 등을 테마로 하는 여러 박물관들이 생겨나야 한다. 다행스레 그런 인식들이 차츰 받아들여지고 있어 올 7월에는 경기도립박물관에서 장난감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그런 시도들이 더 많이 더 자주 생겨야 한다."

- 수집한 것중 가장 비싼 것과 가격에 관계없이 가장 아끼는 물건은 뭔가?
"가장 비싼 건 험티 덤티 서커스 인형세트와 노아의 방주 인형세트다. 아마 3억원쯤 할 거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건 내 유년의 추억과 결부된 것들이다. 다소 남루해 보이지만 '육백만불의 사나이 인형'과 '황금박쥐 인형'을 볼 때면 예닐곱살 시절의 내가 떠올라 한참을 추억을 잠기곤 한다."

▲ 김혁씨가 수집한 각종 인형들.
ⓒ 홍성식
수집가란 시간의 파수꾼... 이젠 아내도 '절반의 콜렉터'

- 수집 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생산회사가 망한 후 귀해진 공룡 장난감을 시골 문방구에서 개당 2만원에 여러 개 구입했는데, 그걸 일본에 가져가면 하나에 200만원을 호가했다. 전라북도 순창에선 양복입은 사람이 장난감 사러 다닌다고 간첩으로 오해받기도 했고. 일본에서 실물과 거의 흡사한 장난감 총을 들여오다가 세관 검색에 걸려 수색을 당한 것도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땐 아이들이 봄소풍을 우리 사무실로 왔다. 왜냐고? 그 녀석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이 다 있으니까.(웃음)"

- 수집가란 어떤 사람인가?
"흘러간 시간을 복원하는 사람이 아닐까. 다른 말로 하자면 시간의 파수꾼 혹은, 세월의 지문을 찾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수집가들은 누구나 기억하지만, 아무도 가지지 못한 것에 끊임없이 집착한다."

- 아내는 당신의 수집벽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반대에서 체념, 체념에서 동행의 과정을 거쳤다. 처음엔 '제발 저 지저분한 것들 좀 어떻게 할 수 없냐'던 사람이 지금은 벼룩시장에서 희귀한 장난감이 보이면 그걸 사와 '어때? 이거 괜찮지'라고 물어온다. 아내의 그런 이해가 고맙다."

- 별난 수집가들도 많이 알고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만화책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은 골동품가게를 운영하는 김응수씨로 알고 있다. 라면 봉지를 모으는 사람도 있고, 우리가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딱지만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이도 있다. 생리대를 모으는 사람도 독특한 수집가고, 대구의 한 콜렉터는 소주병에만 집착한다고 들었다."

▲ 독특한 김혁씨의 수집품들. 왼쪽은 한국 것과 무척 비슷한 멕시코산 다리미. 담배갑 크기의 5배가 넘는 대형 라이터도 보인다. 이걸로도 담뱃불을 붙일 수 있다고.
ⓒ 홍성식
오랫동안 수집가로 남으려면 돈에 휘둘리지 마라

- 희귀한 수집품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서 얻는 건가?
"수집가들의 정기적인 모임이 있다. 일본과 미국, 영국 등에서 열리는 각종 수집품 전시회도 유용한 정보교류의 장이다. 요사이는 인터넷과 이메일 등으로도 거래가 이루어진다. 그 외에 며느리도 모르는 콜렉터 각자의 정보 노하우가 있다. 그걸 알려달라고? 그럴 수야 없지. 사업비밀인데.(웃음)"

- 수집품을 팔 생각도 있는가?
"글쎄…, 자식을 파는 느낌이 들 것 같아 못할 것 같다. 오히려 경제적 여건이 허락된다면 더 사 모으고 싶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박물관이나 백화점에서 마인드를 가지고 전시를 제의한다면 그건 얼마든지 고려할 수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테마박물관 운동'은 향후 내 희망이자 비전이다."

- 초보 수집가들에게 선배로서 격려와 조언 한마디 덧붙인다면.
"돈 되고 비싼 것에만 집착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수집가와 보유자는 분명 다르다. 금전적인 것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좋아하는 것을 모아야 오래 간다. 컬렉터는 장사꾼이 아니라 자신이 모은 물건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자 그 수집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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