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그녀, 설경구와 웨딩사진 찍다

 

 

 

그녀, 설경구와 웨딩사진 찍다
선천성 뇌성마비 '5월의 신부' 정윤수, 웃어라 활짝 웃어라
텍스트만보기   조영해(lacan66) 기자   
오래전이다. '한벗 장애인 이동봉사대'(지금은 한벗재단)에서는 장애인을 상대로 문화강좌를 했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부탁으로 그곳에서 영화와 심리에 관한 특강을 했다.

장애인을 위한 영화강의를 해본 적이 없어 많이 망설였고,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솔직히 불안했다. 무엇인가(?) 조심해야 한다는 막연한 강박관념이 날 무척이나 힘들게 했다. 그러나 막상 만나서는 부담 없이 강의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 오히려 무엇인가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장애인들에게는 차별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날 특강을 마치고 지인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지인이 장애인을 한분 데리고 나오셨다. 그녀가 바로 정윤수씨였다. 그녀를 본 것은 그날이 두번째였다. 첫번째는 여의도 벚꽃 축제가 한창이던 때, 그 지인이 그녀를 데리고 벚꽃 구경을 한다며 시간이 되면 나오라고 해서 나갔다가 만난 게 첫 만남이었다.

당돌하고 용감했던 그녀, 정윤수

▲ 구두점에서
ⓒ 천년의 시작
첫 만남에서부터 그녀는 당돌하였고 용감(?)했다. 휠체어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여의도 벚꽃 구경을 하겠다고 집에서(목동) 여의도까지 나온다는 것. 보통 용기가 아니라고 본다. 단순한 장애가 아닌 선천성 뇌성마비라서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한데도 그녀에게 그것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그렇게 용감하냐고 묻는 내가 더 장애물(?)이라고 말하던 그녀였다.

첫 만남에선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통역이 필요했다. 나의 지인은 그녀의 어눌한 말을 너무도 잘 통역해 주었다. 내가 어눌하다고 표현해서 그렇지, 사실은 말을 하는 그녀 입장에서는 말하는 것 자체가 고통인 것 같았다.

한마디를 하려면 온 몸이 비틀어져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데도 열심히 소통을 하려는 그녀가 안쓰럽기도 해서 그냥 불편하면 하지 말라고 했다가, 오히려 그녀에게 무안을 당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만큼 그녀는 자신의 장애가 비장애인과의 관계에서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하나 첫 만남에서 놀란 것은 그녀가 삼겹살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먹느냐고 물었더니 '다 먹을 수 있다'며 웃어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장애인에 대한 내 시각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음식을 먹을 때 항상 빨대를 사용했다. 국물 있는 음식에서부터 음료수까지 모두 빨대로 해결했다. 지금 그녀의 나이는 36살이다. 그녀도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알 것이다. 자신의 일그러진 몸, 음식을 먹을 때도 온 몸과 입이 비틀어져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을 것이다. 그런데도 해맑게 웃으면서 그 모습을 보여주는데 전혀 장애(?)느끼지 않았던 그녀.

<오아시스> 문소리에게 연기지도를 하다

▲ 설경구씨와 찍은 웨딩사진
ⓒ 천년의시작
▲ 설경구씨와 찍은 웨딩사진. 정윤수씨가 활짝 웃고 있다.
ⓒ 천년의시작
그녀를 두번째 만난 것은 특강을 마치고였다. 그녀는 내 특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그 지인의 통역을 빌려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때 나는 그녀가 참 똑똑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 그녀가 영화 <오아시스>의 문소리의 연기지도(?)를 했다는 말을 지인을 통해 듣고 놀랐다.

하지만 정윤수는 단순히 연기지도만 한 것이 아니었단다. 당시 이창동 감독과 설경구, 문소리에게 조건부 계약을 제시했단다. 그녀의 조건은 문소리가 뇌성마비역을 할수 있도록 자신이 도울테니 그 어떤 사례보다 "평생 찍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웨딩사진을 찍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것이 그 어떤 것보다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감독과 설경구, 그리고 문소리는 그녀의 소원, 그 이상의 소원을 들어주었단다. 웨딩사진은 물론, 그 신랑역으로 그녀가 상상도 할수 없었던 최고의 배우 설경구를 선물로 주었다는 것이다. 그때 그녀는 내게 "일생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한없이 자랑했었다.

그녀가 웨딩드레스를 입는다, 이번엔 진짜다

그리고 그녀를 잊고 있었는데 얼마 전 그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정윤수,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과 함께 그녀가 올 5월에 그토록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결혼을 한다는 기쁜 소식도 알려줬다.

그 지인은 다름 아닌 정윤수의 <꽃보다 활짝 피어라>를 엮은 소설가 김명이씨(본명은 김명희)다. 김명이씨는 그녀의 통역이자 그녀 삶의 조언자였다. 그래서인지 정윤수, 그녀를 본인보다 더 잘 아는 것 같다. 그녀의 입이 되어주고 그녀의 손이 되어 선천성 뇌성마비 정윤수의 36살 인생을 가감 없이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 <꽃보다 활짝 피어라> 겉그림.
ⓒ 천년의시작
영화 <오아시스>의 주인공인 문소리역이 정윤수의 삶은 아니다. 그래서 정윤수는 주변에서 혹시 그 영화의 주인공이 당신이냐고 물을 때마다 자신은 그렇게 망가지지 않았다고 항변을 하곤 했단다. 그래서인지 그 책 서문에서 그녀는 "나는 오아시스의 주인공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특강을 마치고 만난 두번째 만남에서 혹독한 비판을 받고 오랫동안 보지 못하다가 책이 출간되고 결혼한다는 소식에 축하를 겸해서 김명이씨와 함께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여전히 건강하고 용감했으며, 자신의 책이 나온다는 것에 너무도 기뻐했다.

그래서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책 광고(?)를 해서 책이 많이 팔리게 해달란다. 내게 무슨 능력이 있다고….

그녀가 5월에 결혼을 한다. 책에도 나와 있지만 그녀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그녀에게 있는 것이라곤 해맑은 미소와 휠체어, 그리고 유일한 통신 수단인 핸드폰(도대체 핸드폰으로는 어떻게 통화를 하는지 그게 참 궁금하다), 그리고 다양한 빨대, 임대아파트뿐이다.

부디, 그녀의 <꽃보다 활짝 피어라>가 대박이 나서 5월의 신부인 그녀가 더 웃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관련
기사
시각장애인 안내 교육 받는 박물관 직원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