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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일본 보다 노무현 정부가 더 밉다?

 

 

조선일보는 일본 보다 노무현 정부가 더 밉다?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조선일보의 ‘오락가락 사설’ 감상하는 법
입력 :2006-04-25 09:15:00   문한별 편집위원 (mhb1251@dailyseop.com)
천지를 뒤흔들 듯 세차게 몰아치던 동해바람이 잦아들었다. 독도 인근 수로를 탐사한다던 일본 선박은 발길을 돌렸고, 일전불사를 외치던 한국의 경비정도 한숨을 돌렸다. 22일 급작스레 마련된 외무차관 협의에서 한일 양측이 각각 한발씩 물러난데 따른 결과다.

대다수 중앙지들 "파국을 피해 일단 다행스럽지만 그러나 앞으로가 중요"

이른바 '외교적 해결'로 물리적 충돌을 방지한 이번 사태에 대해 대부분의 신문들은 "일단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향후 재개될지도 모를 일본의 도발을 저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분쟁이 무력 충돌이라는 파국이 아닌 외교로 해결된 것은 일단 다행스러운 일이다...앞으로 우리 정부가 어떻게 이 문제에 주도권을 쥐고 풀어 나가느냐가 중대한 과제로 남게 됐다."(중앙일보 사설 <한·일의 외교적 합의, 얻은 것과 남은 것> 2006.4.24)

"우리는 문제를 협상으로 타결한 외교 당국의 노력을 평가한다...이번 봉합으로 문제가 끝난 것이 아닌 만큼 감정이 다소 가라앉은 지금이야말로 독도·EEZ 문제와 관련한 종합대책을 다듬어야 할 때다."(한국일보 사설<한일 EEZ갈등 끝난 게 아니다> 2006.4.24)

"이틀에 걸친 차관급 마라톤 협상의 결과다. 해상 충돌 가능성을 피한 것은 다행이지만 감정의 골은 오히려 더 커진 만큼 지금부터가 새로운 국면의 시작이다."(한겨레신문 사설 <다시 일본의 각성을 촉구한다> 2006.4.24)

"당장 물리적 충돌 등 최악의 상황을 피하게 됐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하지만 양측이 일궈낸 타협이 미봉책에 불과함을 감안하면 갈등의 잠재적 폭발력은 더 커졌다."(국민일보 사설 <한·일 동해 갈등 일단 봉합은 됐지만> 2006.4.24)


또한 한일 우호의 정신을 동해바다에 수장시키려 한 일본의 극우적 도발을 꾸짖고 주변국과의 외교역랑을 강화시켜 그 침략야욕을 꺽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주문했다. 적어도 이 점에서만큼은 보수.진보의 구별이 없었다.

"일본은 세계에서의 역할을 거론하기에 앞서 이웃과 아시아를 경시하고, 왜곡된 역사관에 사로잡혀 한·일 우호를 바다에 침몰시키려는 일부 망동적 정치가들의 발호를 억제해야 한다."(중앙일보 사설 <한·일의 외교적 합의, 얻은 것과 남은 것> 2006.4.24)

"우리는 ‘도발의 천재’에 맞서 독도 주권을 당당하게 지켜 내고, 한일 관계의 대국을 보고 총체적 국익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국제적으로도 지지받는 외교를 해야 한다."(동아일보 사설 <‘도발의 천재’ 일본에 또 당하지 말아야> 2006.4.24)

"과거사와 독도를 연관시켜 일본이 다시 도발할 엄두를 갖지 못하도록 몰아붙여야 한다. 이와함께 미국, 중국, 북한 등과 힘을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서울 신문 <미봉에 그친 한·일 EEZ 갈등> 2006.4.24)

"한국은 일본, 적어도 일본 우익 세력의 침략적 과거 회귀 기도에 적극적이고 강력한 대응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한·미동맹 강화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국민일보 사설 <한·일 동해 갈등 일단 봉합은 됐지만> 2006.4.24)


그러나 모두가 '아니오'라고 말할 때 홀로 '예'라고 외치는 자칭 '비판신문' 조선일보만은 예외였다. <한국은 언성 높이고 일본은 실리 챙기고>라는 24일자 사설 제목에서 보듯, 조선일보는 억지도발을 감행한 일본보다 노무현 정부를 두들겨 패는데 더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모두가 '예' 라고 말할 때 홀로 '아니오'라고 말하는 신문, 조선일보

▲ 2006년 4월 24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PDF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외교적 타협으로) 한·일 양국 선박이 독도 인근해역에서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최악의 상황은 일단 모면하게 됐다"고 말하면서도, “이번 협상 결과는 일본에 유리한 것”이라고 타전한 중국 언론을 앞세워 "실제 협상결과를 냉정하게 뜯어봐도 일본이 실리를 챙겼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고 깍아내렸다.

이어 일본의 거듭되는 도발에 대해 '조용한 외교'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노 대통령의 태도와 “대한민국이 두 쪽 나도 (일본의 측량을) 막겠다”는 외교부 차관의 발언을 상기시키면서 "대통령과 외교관들이 이렇게 전의를 다지는 말들을 앞세우면서..큰소리까지 쳤지만 결과는 그렇게 나오지 않았다"며 "이 정권 사람들"의 빈말을 질타했다.

▲ 2006년 4월 21일자 조선 만평 ⓒ조선일보PDF 
요컨대 노무현 정부는 제목 그대로 (국내용으로) 언성만 높이고, 일본은 인근 수역의 한국식 지명 등재 시기 연기라는 실익을 챙겼으니 이번 일은 일본의 판전승이라는 게 조선일보의 주장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국내용으로 언성만 높였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4월 21일자 조선 만평을 참조하시라. ☞)

일본이 한국의 해저지명 등록을 일단 막았으니 성공이요 독도 인근 수로측량은 역사상 한 적이 없으니 ‘안 해도 그만’이라는 논리를 우리쪽에도 굳이 적용하자면, 애당초 해저지명의 IHO 등재를 약속하거나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이 없는 정부가 이번 협상을 통해 '한국어 해저지명 상정 적절한 시기 계속 추진'을 발표문에 넣음으로써 '추진' 사실을 공식화하는 성과를 올렸으니 한국의 승리라는 논리도 가능해진다. 일본 내에서 "일본의 굴욕적 패배"라거나 "외무부는 자폭하라"는 비판의 말이 나온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나아가 일본은 이번에 무리하게 독도분쟁을 일삼다가 '오야붕의 나라' 미국으로부터도 '제지'를 당하는 아픈 장면까지 연출했다. 강경자세를 고수하던 고이즈미 내각이 야치를 급파해 외교적 해결을 모색한 것도 이러한 상황변화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를 포기하면서까지 미국에 목매던 고이즈미로선 이것이 큰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일본의 도발에 대해 한 입으로 두 말 일삼는 조선일보의 오락가락 사설들

그러나 문제는 일본의 판정승이냐 한일의 무승부냐 하는 판정결과보다 심판역을 자임하며 시도 때도 없이 내뱉는 조선일보의 입방정이 일관성과는 거리가 먼 '제 멋대로' 라는데 있다. 양극단을 '공간이동'하며 편리하게 노니시는 조선일보의 '오락가락 사설'들을 몇개 구경해 보시라.

먼저 일본의 도발에 대한 정부의 대응태도 여하.

"한마디로 대한민국에 대한 도발이고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능멸이다. 외교적 무례를 넘어 외교적 선전포고에 가까운 만행이다. 국토를 보존하고 국민을 보위할 헌법적 책임이 있는 대통령 이하 이 정부 사람들의 대처를 주시할 것이다. 이 정권이 친미 친일 정권이라고 비방해온 이승만 박정희 시대라면 즉각 일본과의 국교를 단절했거나 즉시 한국의 주일대사를 소환이라도 했을 것이다..."(사설 <일본의 眼下無人 앞에 대한민국 정부는 어디 있는가> 2006.3.31)

"정부는 일본의 도발세력에 대한 단호한 대처와는 달리 일본 내 양식있는 인사를 비롯한 일반 국민들과의 교류까지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 국민 정서를 흥분 상태로 표출시켜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에게 불안을 느끼게 하거나, 한국 문화에 애정을 갖고 한국을 찾는 일본인들이 발길을 돌리게 해서도 안 된다. 일본 내 도발세력이 노리는 것도 한국측의 이런 반응을 끌어내 자신들의 억지 주장이 전체 일본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얻는 계기를 마련하려는 것이며, 그럴 경우 한·일 관계는 정말 회복 불가능한 상황으로 악화될 수도 있다."(사설 <日 도발세력에게 엄정한 교훈 주어야> 2005.3.18)


다음으로, 독도 침범 선박에 대한 대처방법 여하.

"우리 정부와 국민도 일본 내부의 불순한 움직임에 보다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독도 침범 선박을 나포하는 등 강력 대응하기로 한 정부 방침은 당연하다. 나아가 이번 일을 계기로 독도 문제가 예상치 않은 상황으로 번져갈 가능성에 대한 만반의 대비책도 세워두어야 한다..."(사설 <‘독도상륙’ 일본 정부가 막아라> 2004.5.5)

"일본 조사선은 국제 해양법상 어선과 같은 민간 선박이 아니라 정부 선박으로 분류된다. 해양법에 정부 선박은 영해 안에서도 나포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따라서 해경이 일본 선박을 나포할 경우 일본은 곧장 이 문제를 해양법 재판소로 가져갈 것이다....이번 일본의 독도 근해 측량활동은 이런 함정을 미리 파두고 벌이는 유인 전술이다. 한국 대응 전술이 이런 함정에 빠지는 일은 절대 피해야 한다."(사설 <일본의 독도 야욕 물리칠 전략 전술에 빈틈 없어야> 2006.4.20)


나아가, 아시아를 무시하고 미국에만 굽신거리는 고이즈미의 외교에 대한 평가 여하.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16일 미·일 정상회담 후 “미·일 관계가 더 가깝고 친밀할수록 중국, 한국과 더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전략적 우선순위 선택이 어느 쪽에 있는가를 확실히 알 수 있게 하는 발언이다. 외교란 말로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외교의 말에는 공짜가 없다. 반드시 대가와 희생이 따르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오늘의 전략적 선택이 한국으로 하여금 미래에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인가를 냉철하게 따져 봐야 한다."(사설 <"설명이 필요없다"는 한중, 설명이 필요한 한·미> 2005.11.18)

"지금 일본 네오콘들은 아시아 이웃 국가들이 반발해도 미국과의 동맹만 강화하면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그러나 한국, 중국 그리고 아시아는 무력하기만 했던 100년 전의 그 모습이 아니고, 세계 역시 100년 전의 그 세계가 아니다...일본 네오콘들은 아시아의 신뢰를 먼저 얻지 못하는 한 일본은 ‘국제정치의 미숙아’로 머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사설 <아시아의 신뢰 못받는 일본은 '국제미숙아'> 2005.3.31)


알라딘의 램프에 나오는 마법사 지니 아니고서야 세상의 어떤 정부가 극과 극을 오가는 조선일보 사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아니, 상대를 어떻게든 트집잡아 비난하려는 의도를 갖지 않고서야 세상의 어느 언론사가 이런 정신나간 사설을 작성할 수 있을까. 생각컨대, 조선일보가 깜빡 죽는 미국의 부시도 이런 신문지 앞에선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게다.

신문의 국적을 따지기 전에 조선일보가 먼저 되새겨야 할 교훈

조선일보는 사설 마지막에 "이 정권 사람들은 이번 협상 성적표를 앞에 놓고 국가 사이의 협상 결과를 결정짓는 것은 요란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자신의 의도대로 상대 국가를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종합적 외교역량이라는 평범한 교훈을 새겨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 전에 조선일보는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사람은 이부지자(二父之子)"라는 가장 평범한 교훈부터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논리의 일관성이나 국적을 따지는 것은 그 다음 문제일 듯 하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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