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노사관계 로드맵 ‘뜨거운 감자’

노사관계 로드맵 ‘뜨거운 감자’
비정규직법과 맞물려 노사정 충돌 불가피
연합
정부가 노사관계 법ㆍ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을 본격 추진키로 함에 따라 노사관계 로드맵이 올해 하반기 노동계의 최대 이슈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당초 비정규직법 처리 이후 로드맵을 본격 추진한다는 방침이었지만 비정규직법이 여야의 정치적 흥정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계속 표류하자 비정규직법 처리 여부와 상관없이 로드맵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계가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등 로드맵의 주요 쟁점들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있어 로드맵을 입법화하기 까지 진통이 불가피하다.

또 1년6개월 넘게 표류하고 있는 비정규직법이 `시한폭탄'으로 남아 있는 상황이어서 정부가 로드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사간, 노정간 파열음이 터져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 정부 "로드맵 더이상 미룰 수 없다" = 정부는 당장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복수노조제 등을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더이상 로드맵 입법화를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행령 제정과 새로운 제도에 대한 홍보 등의 후속 과정을 감안할 때 지금부터 시작해도 시간이 빠듯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6월까지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33개 로드맵 과제를 집중 논의한 뒤 9월 정기국회에서 입법을 시도키로 했다.

정부가 로드맵 입법화를 서두르는 이면에는 국내 노동법 개정을 압박하는 국제 노동계의 입김도 크게 작용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93년 이후 모두 13차례에 걸쳐 우리 정부에 노동관계법 개선을 권고했고, 4월말에는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한 민주노총 관계자들과 면담에서 직권중재와 긴급조정 등 국내 노동현안에 대해 직접 개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작년 6월 이사회에서 내년 봄 또는 그 이전에 노동법 개정 사실을 보고토록 했다.

아울러 세계경제포럼(WEF)과 국제경영개발원(IMD) 등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국내 노사관계 경쟁력이 최하위권으로 분류되는 등 불안한 노사 관계가 대외신인도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점도 정부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 로드맵 주요 내용과 노사정 입장 = 로드맵에는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복수노조제, 직권중재 폐지 및 공익사업장 대체근로 허용 등 노사 모두 양보하기 힘든 사안들이 대거 망라돼 있다.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의 경우 경영계는 노조에 급여를 부담토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노동계는 급여 지원 중단시 노조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며 노사 자율로 전임자 임금 문제를 해결하자고 맞서고 있다.

정부는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소기업 노조에 대해서는 전임자 1명이나 반 명에 대해 몇 년 간 급여를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국내 노동단체들의 경쟁을 격화시킬 복수노조제에 대해서도 교섭창구 단일화를 놓고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경영계는 교섭 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창구 단일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노동계는 원칙적으로 노사가 교섭문제를 자율 결정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정부는 이와 관련, 일단 노사가 자율적으로 직종별 등으로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도록 하되 자율적으로 창구를 단일화하지 못하면 과반수 노조가 교섭창구를 맡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필수공익사업장 개념 및 직권중재를 폐지하는 대신 대체근로제한을 완화해야 한다는 로드맵 방안에 대해서도 노사간 입장차가 뚜렷하다.

노동계는 파업 무력화를 막기 위해서는 대체근로를 전면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경영계는 영업의 자유와 노사 대등성 보장을 위해 대체근로를 전면 허용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밖에 긴급조정시 파업 금지 기간 연장과 부당해고 구제방식, 정리해고 요건, 실업자의 초기업단위 노조가입 허용, 직장폐쇄, 손배ㆍ가압류 등의 로드맵 과제에 대해서도 노사간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 추진 과정 `진통' 불가피 = 로드맵에는 노동시장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이 대거 포함돼 있어 정부가 로드맵 입법화를 추진하는 과정에 노사정간 `힘겨루기'가 치열하게 벌이질 수 밖에 없다.

민주노총은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로드맵 폐기를 주장하며 저지 투쟁을 다짐하고 있고, 합리적 노동운동을 선언한 한국노총도 정부가 노동계의 입장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로드맵을 추진하면 강경 투쟁에 나서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법을 놓고 노선을 달리 했던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로드맵에 대해서는 공조에 나설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노동계 전체가 투쟁에 나서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현재 비정규직법의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사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로드맵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로드맵 과제 대부분이 노사의 양보가 힘든 사안들이어서 절충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비정규직법에 대해서는 민주노총과의 공조가 힘들지만 로드맵은 공조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일단 대화로 로드맵 문제를 풀어나가되 정부가 일방 추진하면 강력한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현영복 기자 youngbok@yna.co.kr (서울=연합뉴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