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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고에 저장되어 있는 칼로스 쌀의 모습.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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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우리 식탁을 초토화할 것이라는 우려 속에 수입되었던 미국산 칼로스 쌀이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3월 말 이후 최고급인 1등급으로만 2700여t이 수입되었지만, 약 400여t이 팔렸을 뿐, 나머지는 창고에서 잠자고 있는 상태다. “찰기가 없다” “딱딱하다”라는 악평이 뒤따르면서 칼로스는 애물단지로전락했다. 1970~80년대에 이른바 ‘명품’쌀로 불리며 부유층 사이에서만 소비되던 칼로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도움말/한국식품연구원 쌀연구단 김동철·김상숙 박사, 작물과학원 양세준 연구관)
낯선 맛=‘캘리포니아의 장미(로즈)’라는 뜻을 가진 칼로스는 한국과 일본에서 자라는 자포니카와 같은 종류의 쌀이다. 그렇지만 국산 쌀이 짧고 차진 ‘단립종’인 반면, 칼로스는 상대적으로 길고 푸석푸석한 ‘준단립종’이다. 비교하자면 흔히 ‘안남미’로 일컬어지는 인디카 품종에 가까운 편이다. 수천년 동안 차진 쌀 맛에 익숙해진 우리 입맛에는 안 맞는 품종이다.
한국도 한때 수확량을 늘리려고 인디카에 가까운 통일벼를 재배하기도 했지만, 이 품종도 전통 맛에 한참 못 미쳤다. 한때 칼로스 쌀이 명품 취급을 받았던 이유도 이 통일벼보다는 고급이었기 때문이다.
칼로스가 인기가 낮은 이유에는 한국 특유의 식습관도 있다. 한국인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민족 중에서 식사할 때 밥의 온도가 가장 높다. 밥의 열을 유지하려고 심지어 공기 뚜껑을 덮어둔다. 그래서 밥에서 올라오는 향이 맛을 좌우하는 강력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다보니 맛 차이에 더욱 예민하다.
맛있는 국산 쌀=우선 국산 쌀의 맛이 20여년 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미곡종합처리장에서 쌀을 건조·저장·관리하는 기술이 그동안 비약적으로 발달한 것이 큰 이유다.
국내 쌀 공급도 남아돌아서 경쟁에 이기려고 지방자치단체마다 지역 특유의 맛을 개발하고 홍보하는 데 나름대로 상당한 지식을 쌓았다. 농림부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쌀 상표 수가 이미 1900가지를 넘어섰다.
우리보다 일찍 쌀 시장을 개방한 일본을 보면, 일본 쌀이 이미 고급시장을 형성한 반면, 칼로스는 싼값을 내세워 시장이 차별화되는 과정을 거쳤다. 4월 이후 전국 각 지역에서 향토 쌀과 칼로스 쌀의 맛을 비교하려는 시식회가 열렸는데, 약 60~90%가 넘는 소비자들이 그 고장의 쌀이 칼로스 쌀보다 맛있다고 답했다. 한국도 역시 일본 쪽과 비슷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물론 여기에는 다른 변수가 있는데, 아직 우리나라에는 칼로스 쌀에 맞춘 밥 짓는 법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최상의 밥맛을 보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쌀의 유통기한=밥이 가장 맛있는 시기는 보통 여름에는 쌀을 쓿은 지 15일 후, 겨울에는 약 30일 후다. 그 뒤에는 쌀 표면의 지방이 산화하기 시작하면서 군내가 난다. 칼로스 쌀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약 40~60일이 걸리기 때문에 창고 안에서 가장 맛있는 시기를 보내기 십상이다. 소포장 유통이 일반화하면서 비교적 신선한 쌀 맛에 익숙한 국내 소비자에게 칼로스의 맛은 이미 절정을 지난 셈이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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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의 칼로스 쌀, 어떻게?
유찰된 쌀을 처리하는 방법으로는 산업용으로 쓰는 것과 가격을 낮춰서 재시판하는 것이 있다. 그러나 첫째의 방법은 수입 때의 약속 때문에 불가능하다. 미국에서 칼로스 쌀을 수입할 때 식탁에서 소비되는 것을 전제로 들여왔기 때문이다. 둘째도 말처럼 쉽지 않은데, 이미 저렴한 칼로스 쌀의 가격을 낮췄다가 자칫 국산 쌀값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최하급 쌀의 도매가격이 20㎏당 약 3만원인 반면, 칼로스 쌀은 같은 무게에 2만5천원선에 책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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