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이것도 미술이냐구? 못나서 더 아름답지!

이것도 미술이냐구? 못나서 더 아름답지!
쓰레기통에서 나온 <꽃밭의 루시>가 소장품 1호... 배드아트 미술관
신주현 (imukin)
 
 
  
▲ <샘> 백 년 전, 마르셀 뒤샹은 소변기 하나를 허리춤에 끼고 전시장에 나타나 외쳤다. “변기도 예술이다!”
ⓒ 마르셀 뒤샹
뒤샹
뒤샹 이후, 오늘도 여전히


약 백년 전, 마르셀 뒤샹이 소변기 하나를 허리춤에 끼고 전시장에 나타났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외쳤죠.

 

"변기도 예술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샘>. 소변기에 단지 리처드 머트라는 서명이 하나 있을 뿐이었습니다. 뒤샹은 붓과 물감이 아닌, 변기처럼 공장에서 만들어진 기성품으로도 메시지를 전달하고 예술적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말했죠. 이 상징적인 사건 이후로, 미술은 무성 생식하듯 다양한 미적 기준과 형식을 제시하며 세포 분열해왔습니다.

 

그리고 백년 후, 불행(?)하게도 현대미술은 여전히 뒤샹의 손바닥 안에 있는 듯합니다. 시체의 일부분을 절단해 사진을 찍어도(조엘 피터 위트킨) 뒤샹의 손바닥 안이며, 산 하나를 천막으로 포장해도(크리스토와 잔느 클로드) 뒤샹의 손바닥 안이며, 접시 위에 지렁이를 올려놓아도(신디 셔면) 뒤샹의 소변기는 낄낄거리며 이 모든 것을 예견했습니다.

 

이제 미술은 더 이상 회화를 대표하지도 않으며, 지저분하고 더럽고 추한 것들도 얼마든지 미학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예술은 이미 경계를 허물었고 서로의 영역을 넘나듭니다. 미술은 이제 뒤샹의 손바닥 안에서 스스로 미술임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봉착해버린 것입니다.

 

'파인아트'(Fine Art)는 '순수미술'의 통칭입니다. '순수'라는 말도 어폐가 있습니다만, 어쨌든 예술성을 지닌 미술품이나 미술을 '파인아트'라고 합니다. 우리가 책에서 또는 미술관에서 감상하는 모든 작품들이 파인아트입니다.

 

현대의 작가들은 자의든 타의든 자신의 작품이 파인아트이길 바랍니다. 비록 머리 끝에 뒤샹이 가부좌 틀고 있을지라도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야 하고 뛰어넘어야 하는 소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장품 1호, 쓰레기통에서 발견한 작품


그렇다면 이 작품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요. 거창하게 이것도 하나의 '개념미술'일까요. 뒤샹의 명제와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요. 이런 혼돈은 과연 이 작품들이 예술일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들은 배드아트(Bad Art), 아주 형편없어 불편하기까지 한 작품임을 천명하고 나섰습니다. 바로 '배드아트 미술관'(Museum of Bad Art)의 작품들입니다. 미 매사추세츠주의 보스턴 지역에 있는 이 미술관은 영어 머릿글자를 모아 모바(MOBA)라 부르기도 합니다.

 

뉴욕현대미술관의 약칭인 모마(MOMA, Museum of Modern Art)를 의식한 듯한 작명이군요. 이 갤러리의 주요 작품 몇 점을 소개하겠습니다.

 

  
▲ <꽃밭의 루시> 모바 갤러리를 있게 한 대표작이다.
ⓒ MOBA
MOBA

비틀스의 노래 제목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Lucy In The Sky With Diamond)를 패러디한 듯한 이 작품의 작가는 미상입니다. 보스턴의 한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이 작품이 바로 모바 갤러리 소장품 1호이자, 갤러리 설립의 이유가 됐습니다.

 

모네의 <우산을 든 여인>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작품은 모바 갤러리의 자랑입니다. 모바 갤러리는 이 작품을 두고 "인물의 움직임과 의자, 들썩이는 가슴, 오묘한 빛깔의 하늘, 얼굴 표정 등 모든 세부묘사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무엇하나 나무랄 데 없는 포트레이트"라고 극찬하면서 단연 배드아트의 "걸작(마스터피스)!"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모바 갤러리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작품은 짐 슐만이라는 사람이 기증한 점묘 포트레이트 <일요일, 변기 위의 조지>입니다. 모바 갤러리는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는 바로 대비를 이루는 점묘법에 있다고 말합니다.
 
즉 푸른색 타월 모서리에 잘 보이지도 않는 부분의 바느질 자국은 초록과 빨간색의 작은 점으로 섬세하게 수놓은 반면, 발 부분(특히 발목으로 갈수록)은 귀찮은 듯 대충 거칠고 굵게 찍어 발라 거의 신경을 쓰지 않은 묘한 대비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 <미소짓는 마돈나> 나무조각 상 얼굴에 그려넣은 마돈나의 오묘한 표정이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
ⓒ MOBA
MOBA

<미소짓는 마돈나>라는 제목의 오른쪽 작품은 한 사람의 작업이냐, 두 사람의 작업이냐로 논쟁이 있었습니다. 즉 누군가가 나무조각상을 먼저 만든 후 또 다른 누군가가 화룡점정하듯 얼굴표정을 마무리 했는지, 아니면 한 작가가 조각과 표정까지 함께 작업을 했는지 하는 점이죠.

 

왜냐하면 지극히 단순한 형태의 나무조각상 위에 빠른 펜 놀림으로 얼굴 표정을 찍어 발라 상반되지만 오묘한 이미지를 얻어냈기 때문인데요. 어쨌든 그 이유로 이 작품 또한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너무 못나서 무시할 수 없는 작품들


모바(MOBA)의 작품들을 모마(MOMA)의 작품들과 비교하는 것은 불허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이 갤러리는 엄연히 13년의 역사와 400여 점의 컬렉션, 화보집을 비롯한 많은 아트 상품을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고, 지금도 활발하게 작품을 수집하고 전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느 대기업의 미술관처럼 값 비싼 작품이 아닌, 대부분 주웠거나 기증한 작품들이라 돈 한푼 들이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너무 못나서 무시할 수 없는 작품들"(Art too bad to be ignored)이라는 이 갤러리의 슬로건처럼 상식 수준의 미적 감각으로 보더라도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작품들뿐입니다.

 

하지만 모바 갤러리는 못 그렸다고 비꼬지 않습니다. 그 자체를 즐기고 인정하며, 가치 있다고 당당히 주장합니다. 작품에 대해서만큼은 진지합니다. 웃다가도 웃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기존의 관념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작품을, 그럼에도 걸작(마스터피스)이라고 자처하는 아이러니.

 

  
▲ <작은 돼지가 시장에 갔다, 집에 있는 작은 돼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 데미안 허스트
데미안 허스트

 

하지만 이 작품들이 난해하기 짝이 없는 현대미술 작품들 보다(만큼) 신선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제한 돼지를 반으로 절개해 전시한, 요즘 제일 잘 나간다는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과 마돈나의 얼굴에 눈 코 입을 찍어 바른 작품의 신선도(?)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대놓고 못 그렸다고 하니 속 시원할 뿐입니다.

 

미술 작품 개념의 범람. 뒤샹이 소변기를 들고 전시장에 나타난 사건은 미술사조의 변화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현대 미술가들에게 꽤나 스트레스 받는 숙제를 내준 셈입니다. 이제 작품의 의미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묻지 마시고 그냥 작품만 보고 평가해주세요'라고 하다가는, 뒤샹의 손바닥 안에도 못 들어갈 게 뻔합니다.


내가 예술이라는데 어쩔거야?


모바 갤러리의 작품들을 보는 즐거움도 어쩌면 같은 선상에 놓여 있습니다. 어려워만 지는 개념들과 억지로 쥐어짜 내고 있는 의미들, 그 미술작품들 사이에서 모바 갤러리의 작품들은 스트레스도 없고 통쾌합니다. 뒤샹이 '너희에게 숙제를 내주노라' 하고 있을 때, 모바 갤러리의 작품들은 그 빗발치는 화살의 공격을 살짝 비켜서서 '내가 예술이라는데 어쩔거야?' 하고 비웃는 듯합니다.

 

우리가 향유하는 것도 이런 개념 감상의 즐거움일 것입니다. 모바 갤러리의 작품 면면은 그야말로 보잘 것 없지만 갤러리가 내세운 배드아트의 기치 아래 모인 이 작품들은 또 하나의 개념적 '도발'로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대놓고 못 그렸다고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어깨에 힘 들어간 값 비싼 개념미술품들을 조롱한 듯 아닌 듯 하는 폼새가 한 수 위인 것 같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뒤샹의 숙제는 가뿐하게 해결한 셈이군요. 더군다나 이렇게 가볍고(값싸고) 유쾌하게 정곡 찌르는 것이라면, 그 못 그린 <풀밭의 루시>도 돈 있는 기업에서 비싼 값에 한번 살만하지 않을까요. 개념을 팔고 향유하는 시대에 말이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