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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유시민, 볼수록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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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유시민, 볼수록 안타깝다”
국민대 특강 “내가 삼성 먹여 살린다...손석희 타고난 토론자” 좌충우돌
2005-05-25 14:52 김현미 (99mok@dailyseop.com)기자
진중권 교수에 대한 대학생들의 관심은 젊음으로 가득 찬 대학축제의 열기 못지않았다.

우리 사회의 단상을 날카로운 관점과 쉬운 언어로 시원하게 꼬집어 내는 그의 강연은 24일 대동제가 한창인 국민대 교정에서도 빛을 발했다.

대학밴드의 흥겨운 음악소리가 간간이 들려오는 저녁 7시, 강의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의 시선을 한 번에 사로 잡은 진 교수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간상에 대해 열변을 토해냈다.

상상력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노마드 족이 돼라

"진정한 진보는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는 세상, 그리하여 권력을 무엇보다도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행사하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말문을 연 진 교수는 "인간이란 정치와 같은 거시권력, 경제나 문화와 같은 미시권력의 망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 24일 국민대에서 특강하고 있는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김현미 기자 
이어 그는 이처럼 "권력의 명령에 의해 만들어진, 누군가가 원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내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며 “자신을 배려하며 살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기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스스로가 원하는 삶을 만드는 노력에 대해 '존재미학'이라는 정의를 내리기도 했다.

"최근 미디어와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인간은 점점 더 ‘현실화된 상상’ 속에서 살아갈 것"이라고 진단한 그는 "상상력이 곧 생산력이 되는 이 시대에 요청되는 인간상은 이미 있는 세계에 순응하는 자가 아니라 없는 세계를 상상하는 자의 것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또한 그는 "지적영역의 분업이 심화되어가는 한편 기술의 발달로 이 영역에서 '콘버전스'현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며 이런 시대에는 자기 분야만이 아니라 "인접분야로 자유로이 횡단하면서 새로운 정보를 창출하는 사람이 환영받을 것"이라 덧붙였다.

이를 두고 그는 어떠한 세포로도 분화될 수 있는 줄기세포에 비유하면서 "자신을 배려하고 상상력을 원동력으로 가진 줄기세포형 유목민이 되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깨어진 판타지 맑시즘 - 새 패러다임 잡지 못한 민주노동당의 한계

한 때 민주노동당 당원이기도 했던 진 교수는 현재 진보 정당에 대한 문제점을 여실히 지적했다.

“맑스를 공부해보면 안 빠져들 수 없다”는 이야기로 말을 이은 그는 “맑스가 무너진 뒤 여기에 빠져있던 좌파 운동가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잡지 못했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자료사진) ⓒ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김선애 기자 
이에 대해 그는 진보정당인 ‘민노당의 한계’라고 꼬집으며 “거대한 세계관을 넘어 구체적인 정책 생산에 희망을 걸 때만이 진보정당인 민노당이 스스로의 역량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한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진보정당의 필요성에 대해 동의했고 이러한 사회 보편적 합의에 힘을 실어주고자 한 때 당원으로 활동했다”고 밝힌 그는 “의회까지 진출한 민노당을 더 이상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까지 지지할 필요 없다”고 탈당사유를 설명했다.

대신 칼럼리스트라는 자신의 직업을 통해 “민노당의 입지가 부족해 정말 필요한 사안이 이슈화 안 될 때 글을 통해 힘을 보태주는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유시민, 안타깝다

최근 취업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유시민 의원에 대해 진중권 교수는 유 의원이 “중도 좌파라고 스스로를 칭하면서도 나는 보수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그는 열린우리당에 대해서도 “중도도 하고 좌파도 하고 보수도 하는 멀티플레이당이냐”고 지적한 뒤 이념과 정책을 분명히 했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남한과 북한에만 존재하는 요상한 ‘누가 먹여 살렸나’ 어법

진 교수는 박정희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에 대해 이런 식으로 보면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정말 나쁜 놈이지만 다른 면을 보면 좋은 구석도 있지 않겠나”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박정희는 중요하지 않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 자체를 거부 한다”고 밝힌 그는 중요한 것은 “독재를 해도 박정희는 ‘우리를 먹여 살렸다’라는 어법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런 식의 어법이 존재하는 나라는 “박정희가 ‘우리를 먹여 살렸다’라는 말이 나오는 남한과 ‘수령님’이 인민을 먹여 살린다는 북한 두 나라뿐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에 대해 “이러한 낙후된 어법은 봉건적 구술 문화가 남긴 것"이라고 평가한 진 교수는 박정희가 ‘고속도로를 만든 것은 어떠냐’ ‘대기업 위주의 중화학 공업을 육성한 게 어떠냐’ 식으로 하나하나 따질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박정희가 사라진 지금 “삼성이 우리를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가 요즘 나오고 있다”고 지적하기도한 그는 “대부분의 사람이 삼성 휴대폰인 애니콜을 쓰고 삼성 가전제품을 쓰는 마당에 오히려 우리 국민이 삼성을 먹여 살리는 게 아니냐”며 낙후적인 어법문화에 대해 농담 섞인 비판을 하기도 했다.

시장은 맥가이버가 아니다

내수가 부진해 경제가 장기불황에 이른 현실에 대해 진 교수는 최근 폭력시위로만 비쳐진 울산 플랜트 노조를 끄집어냈다. “화장실도 없을 만큼 열악한 노동조건에다 대다수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어 놓고 어떻게 이들이 돈을 쓰길 바라냐”며 이런 상황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시장 만능주의에서 흘러나온 무조건적 경쟁논리가 노동자의 분신, 농민음독, 서민의 투신과 같은 가슴아픈 결과를 낳았다”고 덧붙여 말했다.

그는 또 “언론조차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조명하지 않은 채 마지막으로 내몰린 이들의 저항을 폭력에만 초점 맞춰 보도하고 있다”고 날카롭게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어 그는 성장과 분배는 양자택일 할 것이 아니라 “단단한 선순환 고리로 연결되어야한다”고 주장한 뒤 가장 큰 구조적인 문제를 가진 ‘주택’, ‘의료’, ‘교육’에 대해 저소득계층이 차별없는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특히 그는 “대학들이 성적 좋은 학생을 골라 뽑아가는 데만 치중하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무슨 의미가 있냐”며 사립대학 중심의 입시경쟁 체제가 “사교육으로 돈만 버리고 아이들의 상상력을 감퇴시킨다”고 꼬집어 내기도 했다. 또한 사립대를 없애고 국공립대를 평준화하는 체제로 이행해야한다고 강한 어조로 덧붙였다.

손석희는 타고난 토론 진행자

진교수와 더불어 동시간대에 라디오 시사프로를 진행하고 있는 손석희 아나운서에 대해 그는 “나는 프로그램 진행 도중 출연자의 질문이 잘 안 들린다. 시간 체크하고 다음질문 보기 바쁜데 손석희씨는 상대로하여금 발언의 허점을 드러내게 하는 냉정한 시각이 있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장기간의 경험과 더불어 다른 진행자에 비해 뚜렷한 관점과 의식이 있는 재능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며 손석희씨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날 강연회에 참석한 이 학교 경제학과 98학번 김회정씨는 “우리 세대의 가치관과 진 교수의 생각이 많이 비슷했다”고 밝히며 “머리속에 순서없이 담겨있던 우리의 생각을 진교수가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주었다”며 강연회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또한 “진 교수가 한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 전반을 두루 접목시켜 설명했다”며 좋은 반응을 보이기도했다. 하지만 “뚜렷한 비전을 제시해준 것에 반해 세세한 분석이 부족한 것 같다”며 작은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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