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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의 권리찾기, 국민소환제'

지자체 수준에서 이제는 슬슬 검토할 시기

 

'제멋대로' 대통령과 선량, 두고보기만 할 건가"
  [화제의책] '유권자의 권리찾기, 국민소환제'
  2005-08-26 오후 12:05:31
  "제멋대로 하는 대통령과 선량들, 실시간 심판할 수 있어야"
  
  국민ㆍ주민 소환제. 어쩌면 대단히 큰 이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ㆍ주민이 직접 뽑아놓고 대통령이든 지자체 수장이든 천하의 우스운 짓거리를 하게 되면 두말 않고 다시 내친다. 상상만 해도 신바람난다. 그렇다. 바로 그런 정치가 도래해야 조금이나마 민중이 살맛 나지 않겠는가.
  
  군부독재 하에서 대통령직선제 요구는 민주화의 절대조건이었으며, 1987년은 그 요구를 쟁취한 희망의 이정표였다. 그러나 직선제가 민주주의의 모든 것을 보증해주지는 않는다. 선거 때마다 '누구'를 찍어줘야 하느냐의 논란이 계속되었고, 그렇게 해서 찍어주면 유권자 가슴에 배신 때리는 짓거리를 하기 일쑤며, 그 때야 땅을 치고 후회한들, 임기는 보장되어 있고, 어찌 할 방도가 없다.
  
  민주화 시대라는 탈을 쓰고 한국 사회를 탈민주주의 사회로 제멋대로 운전해버리는 대통령과 선량들, 그들을 실시간으로 심판하고자 하는 게 바로 소환제 아닌가.
  
 
이경주, <유권자의 권리 찾기, 국민소환제>(책세상, 2005). ⓒ프레시안  

  투표 행위만으로 유권자들의 주권행사는 완료됐다고 보며 뽑아주기만 하면 민주주의를 망각해버리는 기억상실증 환자들을 치유해낼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소환제라면, 소환제 입법운동은 직선제 쟁취를 넘어서는 제2의 민주주의 운동이 될 수 있다. 그 운동이 전국 최초로 광주광역시·전라남도에서 있었다.
  
  시민운동 차원에서 지역 주민 1만8915명의 서명을 받아 조례안을 청구한 결과, 2004년 4월 29일 광주시의회와 전라남도의회는 시장 및 도지사와 시도의원에 대한 소환권 행사관련 내용을 규정한 '공직자 소환에 관한 조례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고, 같은 해 7월 8일 공포했다.
  
  민주노동당이 창당 때부터, 열린우리당, 민주당, 그리고 한나라당이 2004년 총선 전후에 국회의원에 대한 소환제 도입을 찬성했다. 그에 앞서 2003년 1월 노무현 당선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주민소환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04년 말 국회 입법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광주시와 전남도의 소환제 조례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리고 말았다. 그러자 광주·전남개혁연대 등 26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주민소환조례제정운동본부는 2004년 11월 주민소환제 법제화를 촉구한 바 있다. 국민 소환권 쟁취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잠잠하다.
  

  "헌법 개정 없이도 '국민소환제' 가능하다"
  
  마침 이러한 때에 출간된 이경주의 <유권자의 권리 찾기, 국민소환제>(책갈피, 2005)는 국민ㆍ주민 소환제 논의를 사회적 이슈로 부상시키도록 요청하고 있다. 저자는 "거듭되는 대표와 유권자 간의 정책 결정의 괴리를 막기 위해 좀 더 제도화되고 정교한 모습의 국정 통제력 확보 방안과 주장이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다름 아닌 국민소환제 운동"이라고 환기하면서 "국민주권 국가에서 주권자의 참된 주권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 곧 소환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소환제 법제화는, 다수 헌법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위헌이라는 것이다.
  
  다수 헌법학자들은 "국회의원 소환은 대의제의 원리에 반하며 헌법을 개정해야만 가능하다", "우리 헌법은 국민들에게 선거권만을 부여했을 뿐 해임권은 부여하지 않았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소환제 같은 직접민주주의 제도는 헌법에 어긋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있어서 대의제란 '주권자인 국민이 국가 의사나 정책을 직접 결정하지 않고 대표자를 선출하여 그들로 하여금 결정하게 하는 원리'다. 따라서 국회의원에게 유권자의 의사에 따르도록 하며 그에 근거하여 소환이 가능하도록 하는 '명령적 위임' 따위는 대의제의 원리에 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개헌을 해야만 국회의원 소환이 가능하다는 다수 헌법학자들과 달리 헌법 개정 없이도 소환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를 국민주권 개념의 재정의에서 찾는다. 저자는 프랑스 혁명기에 역사적으로 경험된 국민주권 개념의 형성사를 추적하여, '국민'을 '국적 보유자의 총체'로 이해하며 대의제와 대표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국민(nation)주권 개념(1791년 헌법)이 아니라, '국민'을 '유권자의 총체'로 이해하며 유권자의 의사에 반하는 대표를 해임할 수도 있는 새로운 국민(people) 주권 개념(1789년 인권선언 시사)을 제시한다.
  
  전자의 국민주권 개념에서는 국민에 의한 주권의 직접행사 가능성이 부정되고 주권은 헌법이 정하는 조건 아래에서 헌법이 정하는 국민대표의 손에 의해서만 행사된다는 구조를 갖게 된다면, 후자의 국민주권 개념에서는 주권은 국민의 것이므로 국민이 직접 주권을 행사하고 국가 의사를 결정하며 집행과 관련된 통제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소환제를 헌법 개정 없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저자 자신의 오래된 주권론에 기원한다. 다시 말해 저자는 주권자가 실제 헌법 정치의 과정에 참여하여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주권론을 권리론적 측면에서 재구성할 필요를 인식해 왔고, 2004년 탄핵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유권자들의 정치참여 동력에 힘입어 협애화된 참정권을 확대하기 위해 소환권을 적극적으로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국민주권을 헌법 전반을 관철하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민주주의 원리로 해석한다면, 국회의원이 소환되었을 경우에 대한 명문 규정이 없음을 이유로 주권자의 의사를 곧바로 위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 이라고 말한다. 요컨대 소환은 주권자로서의 권리 행위라는 것이다.
  
  실제 '공직자 소환에 관한 조례안'에 대한 대법원의 무효판결도 소환제를 도입하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함을 전제한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해석하고 있다. 저자는 "대법원의 판결은 소환권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것이라기보다는 조례안이 규정하고 있는 지방의회 의원과 자치단체장의 소환이나 소환투표를 통한 자격 박탈 등을 법률로 정하거나 법률의 구체적인 위임이 있는 경우에 한해 조례로 정할 수 있다고 하여 중앙정치 차원의 입법을 통한 해결의 길을 열어두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소환권의 현실화 문제는, 헌법학자 다수의 용인불가능성 압박을 받을 수 있지만, 중앙정치 차원에서 법제화 노력을 시도하느냐에 달려 있다. 물론 주권자인 국민ㆍ주민 집단과 시민운동이 압박을 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대의제 정치' 타령할 건가"
  
  다음으로 저자는, 소환제 도입 논의가 구체화되면서 소환권 발동의 대상 및 사유가 쟁점이 될 거라고 전망한다. 아마도 이를 둘러싸고 논란이 치열해질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국회의원, 지방의회 의원, 지방자치단체 단체장, 나아가 대통령까지 모두 소환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소환 요건에 있어서도 '민의에 반하는 모든 반공익적 행위'를 포괄하고 있어 부정부패나 위법 행위 외에도 이라크 파병과 같은 정치적 현안까지 확대하려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위법 부당한 행위나 직권남용'의 경우로만 한정하려 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유권자들의 소환 여부가 타당한지를 국회가 판단해 결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한다. 여기서 저자는 '정치적 의사표현'을 소환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의 헌법적 타당성에 공감하면서 소환권을 행사하기 위한 요건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역시 저자 자신의 주권 개념과 관련된다. 전통적인 의미, 즉 국민주권론에서의 주권 개념은 국가 영역에서 주권의 소재를 둘러싼 개념이었던 데 반해, 시민사회적 민주주의에서의 주권 개념은 권력의 소재나 정당성 개념에서 더 나아가 '권력에의 참여' 개념으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에의 참여란 선거권으로 협소하게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라, "선거권은 물론이고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까지 의미하고 이를 통해 정치적 공론 형성에 참여하기 위한 권리"이자 "항상적으로 행사되는 주권"이며, "국가영역과 비국가적 공공영역에서의 공론 형성을 위한 인권"의 문제('주권의 인권화')로 확대되는 바, 요컨대 주권자의 정치 참여에 의한 실시간 참여민주주의를 제기한다.
  
  여기서 소환권은 직접민주제, 즉 무매개적인 정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전망하며 '실시간 민주주의'의 문제로 나아갈 때 정치적 상상력의 지평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 '무매개적인 정치'를 상상한다는 것은 대의제 정치에 반기를 든다는 것이면서도 삶의 세계와 정치의 세계를 분리시키지 않겠다는 새로운 주체성의 정치를 의미하되 소위 '현실정치'로 환원되지 않으며 다양한 욕망이 사회적으로 배치되는 복합성의 문화정치를 실천하겠다는 발상이다.
  
  따라서 소환제의 도입은 단순히 국민/주민의 소환권을 쟁취하는 것을 넘어서서 직접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르는 인민주권의 회복운동이자 오늘날의 문화정치를 접속시키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함축한다. 주권은 이제 권력을 둘러싼 언덕배기에서의 감시 및 참여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욕망과 권리의 주체성' 개념으로 적극적인 생산의 구성체로 진화되어야 한다. 실시간 민주주의는 주권을 4년 혹은 5년마다 회생하는 하루살이 삶으로 유예시키려는 것에 저항하며 욕망과 권리가 일상적으로 배합되는 속도의 정치로 집행하고자 한다.
  
  이런 점에서 저자의 헌법 개정 없이 소환제 도입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소환제 도입 자체를 봉쇄하려는 대의제 헌법학자들의 정치적 해석에 맞서는 것으로 이해되면서도 사실상 직접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저자의 욕망이 숨겨져 있는 듯 하다. 저자는 소환권이 법제화된다면 그 자체로서 새로운 정치개혁 프로그램으로 기능할 것이며 권력 문화 및 유권자의 정치참가가 획기적으로 변할 것으로 내다보면서, "시민사회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한국사회에서 전망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계급만을 권리투쟁의 주체로 협소화시킬 필요도 없지만 헌법 개정 내지 권력투쟁적 요소가 강한 권리투쟁, 이른바 토대 변혁적 권리투쟁도 전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고 말한다.
  
  어쨌거나 헌법 개정 없이도 소환제 도입이 가능하다는 저자의 주장이 좀더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현행 헌법에서 어떻게 가능한지를 함께 분석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고통 받는 유권자들, 자기 보호 수단 강구해야"
  
  그러나 국민ㆍ주민 소환제는 헌법적 정체성의 문제를 떠나 현실에서 고통 받는 유권자들의 주권적 요구다. 선출된 대통령, 지자체장, 의원들에 대한 실시간적 욕망이자 권리이다. 사람들은 실시간적으로 어찌할 수 없어 "다음 선거 때 두고 보자"라는 말로 자위하고 말지만, 그것은 소극적일 뿐이다. 헌법 제5조 1항은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되어 있음에도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을 지지하면서 파병한 노무현 대통령을 당장 소환이라도 하고 싶지만 유권자들은 겨우 지지도 철회만 할 수 있을 뿐이지 할 수 있는 거라곤 욕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부안 주민들을 '폭도' '반란자'로 몰아가면서 경찰계엄으로 다스린 노 대통령에 대해 '저것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냐'고 분노만 했지 어찌 할 방도가 없다.
  
  그러나 대통령의 잘못에 대해서는 사회 여론이라도 형성할 수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의회의원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여론 형성이 어려워 유권자들의 의사가 묻혀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부안사태에서 그것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부안군수는 핵폐기장을 유치하던 2003년 7월부터 지금까지 군수독재체제로 군정을 운영하고 있다. 핵폐기장을 독선적으로 유치한 행위에서부터 공무원 인사, 부안영화제의 예술회관 사용 불허, 부당한 부안자활후견기관 지정변경 시도, 줄포매립장 건설, 모항 갯벌올림픽, <불멸의 이순신> 세트장 및 이미지화 등에 있어서 독재 행위를 일삼아 왔다. 대다수의 반핵 군민들과는 어떠한 소통도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찬핵 집단과 공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군정을 휘두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2003년 신청한 핵폐기장 유치가 군민들의 거센 반대로 무산되자 올해 다시 핵폐기장 유치 동의안을 군의회에 요청했으나 반핵의원들의 반대 표현으로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했고, 그럼에도 찬핵 의원들만의 '가결'로 산업자원부에 신청했다 반려당하는 수모의 한가운데에는 김종규 군수의 독재가 있다. 그에게는 군민도 없고 여론도 없다.
  
  지금으로서는 자신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군수의 행태에 대해 대다수 군민들은 고통을 삭히면서 다음 선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 얼마나 홧병 나는 일인가. 도대체 군정독재 체제를 비호하는 공권력이 필요한가, 아니면 유권자의 소환이 필요한가.
  
  소환권에 관한 법적 장치가 없다보니 부안 군민들은 군수소환 서명운동도 벌였고 독자적 주민투표로 72% 투표율에 92%가 반대표를 찍었어도 군수를 퇴출시키지 못했다. 소환제가 빨리 법제화되어야 할 이유다. 저자의 표현대로 주권자는 "추상적인 집합으로서의 국민이 아니라 구체적인 표정을 지닌 국민, 즉 유권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직선제가 민주화에 기여했다면, 소환제는 민주주의에 기여할 것이다.
   
 
  고길섶/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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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토론자 날짜 찬성 반대
1   소환제의 입법화를 위한 전국 규모의   fabian   2005-08-26 12:32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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