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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는 왜 침대에서 책을 읽었을까

 

 

 

그 여자는 왜 침대에서 책을 읽었을까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텍스트만보기   김현자(ananhj) 기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읽을 수 있는 자유가 여자들에게 주어지기 전까지 수백 년이 걸렸다. 책을 통해, 가정이라는 좁은 세계를 상상력과 지식으로 이루어진 무한의 세계와 맞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된 순간, 책이라는 자신만의 공간을 얻게 된 순간부터 여자들은 달라졌다. 가정에 대한 순종을 벗어던지고 독립적 자존심을 얻었기에 그녀들은 위험한 존재가 되었고, 현실과 꿈속을 오가는 그녀들의 시선은 예술가를 유혹하는 은밀한 위험이 되었다... 이 책을 펼쳐 든 순간 당신 또한 너무나 위험한 여자가 될 것이다. - 책에서

▲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웅진지식하우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신선하다. 이 책은 그림들의 주인공인 '책을 읽고 있는 여자'를 통해 '독서의 역사'를 추적한다. 책 속에 깊이 빠져든 그녀들의 눈은 혹은 냉철하게, 혹은 자애롭게, 혹은 불안하게, 혹은 몽롱하게 꿈꾸고 있는 듯하다. 대체 그녀들은 어떤 책을 읽고 있으며 책을 읽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책 속에는 '메릴린 먼로가 <율리시스>를 읽다(이브 아널드1952)'라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은 아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메릴린 먼로가 그 어렵다는 율리시스를? 그녀가 정말 책을 읽었을까? 아니면 읽지 않고 그냥 포즈만? 20세기 금발의 섹스 표상인 메릴린 먼로가, 20세기 고급 문화의 표상이자 현대소설에서 가장 위대한 창조물이라고 말하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과연 읽었을까?'

그림과 함께 보충 설명이 있다. 메릴린 먼로 스스로 말하기를, "율리시스의 어조를 좋아하며 쉽게 이해하고 싶어서 소리 내어 읽고 있지만 실은 무척 어렵게 읽는 중"이란다.

나른한 오후 전철에서 어떤 여자가 주변이 소란하든 말든 깊이 빠져 책을 읽고 있다.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연애소설? 아니면 요즘 많이 팔리는 책? 책을 읽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자기가 내려야 할 곳을 알긴 아나? 보는 사람마다 자신들만의 물음과 추측을 하며 그 여자를 바라보겠지만, 책에 깊이 빠진 그녀만의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책 속의 여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 책을 통하여 만날 수 있는 여자들은, 성서를 읽고 있는 성녀 마리아, 율리시스를 읽고 있는 메릴린 먼로, 왕비나 후작부인, 이름 모를 여인, 늙은 하녀, 또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어머니부터 사람들의 눈을 피해 침실에서 읽고 있는 여자, 알몸으로 불안하게 책을 읽는 그녀, 글자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소리 내어 읽는 노파 등으로 모두 책에 깊이 빠져 있다.

▲ 언뜻 보면 연인이 함께 책을 보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여자는 책에 눈을 두고있고 남자의 눈은 다른 곳을 주시하고 있다. 여자와 남자에게 책은 각각 다른 의미다(필자 주)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1864 독일 뮌헨
ⓒ 웅진지식하우스
또 이 책에서는 미켈란젤로, 고흐, 램브란트, 베르메르, 마티스, 호퍼 등의 화가를 만날 수 있다. '책 읽는 여자'라는 소재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눈길을 끌어 제법 많은 그림을 남겼다. 그렇다면 화가들은 왜 하필 책 읽는 여자들에게 매혹 당했으며 그녀들을 즐겨 그렸을까?

요즘에는 책읽기로 지성을 가늠하고 한 사회의 문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책 읽는 여자가 위험하다니? 풍성한 그림만을 보든, 저자가 추적하는 독서의 역사를 보든 여하간 의도가 재미있는 책이다.

그리고 책의 중간에서 만나는 역자 '조이한과 김정근의 책읽기와 여자'라는 3개의 테마 글은 독서의 역사를 좀 더 알기 쉽도록 뒷받침해 주는 긴 글이다. 이것만 따로 떼어 읽어도 여자들의 독서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저자 슈테판 볼만은 '책 읽는 여자'들이 주인공이 된 그림을 통해 독서의 역사를 추적한다. 화가들이 그린 그림에는, 화가의 개인사와 함께 당시 사회적인 관념이나 생활 등이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림을 통해 보는 독서의 역사는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고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역사적 연대는 뚜렷하지 않다.

▲ 실지로 메릴린 먼로는 율리시스를 통하여 새로운 길을 간다. 이렇게 독서에는 큰 힘이 있다./메릴린 먼로 <율리시스>를 읽다 .1952 년 이브 아널드/매그넘/포커스 에이전시
ⓒ 웅진지식하우스
17세기 이전 사람들은 여자에게 독서란 쓸데없는 세계를 꿈꾸게 하고, 가사와 육아라는 신성한 일에서 멀어지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사회는 책 읽는 여자들을 의도적으로 비방했다. 때문에 화가들은 책을 읽지 말 것과 책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가져올 위험한 결과를 교훈적으로 암시해 그림 속에 의도적으로 그려넣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가장의 눈을 피해 은밀한 장소인 침대에서 책을 읽기도 했다. 침실에서 책을 읽는 그림들이 몇 점 보인다.

독서가 즐거움을 준다는 의식은 17세기 그림에서 서서히 나타나다가 18세기에 늘어나는데 19세기에는 이전보다 다양한 독서가 생겨난다. 그러나 18세기의 일부 지식인들의 문헌에서도 책읽기는 쓸데없는 시간낭비, 체력소모 등이라는 관점의 글이 자주 보인다. 이 경우 남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기가 더 많았던 여자이고 보면 여자가 책을 읽는 일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짐작된다.

1800년경 책 값은 천문학적으로 비쌌는데, 소설책 한 권 살 돈이면 한 가족이 한 주에서 두 주까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장만할 수 있었다(32쪽). 이때는 하녀들도 책을 읽을 만큼 글을 아는 사람들이 비교적 많았다. 당시에 책 한 권을 가진다는 것은 곧 큰 재산을 소유하는 것이었고, 그만큼 아무나 빌려 볼 수 없는 사치품이었다. 어쨌건 그림 속 하녀는 주인의 책을 훔쳐보고 있다. 불안하게 서성이면서... 책읽기는 신이 내린 은총이었다.

▲ 여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기까지는 수백 년이 걸렸다. 여자들의 독서는 어떤 이유로든 종종 중단되었다. (필자 주)/중단된 독서, 발로통 1924년
ⓒ 웅진지식하우스
▲ "책과 나 사이에 당신이 들어 올 빈자리는 없다." 때로 여자들에게 책은 남자보다 중요하다. 책에 빠져 든 동안 애인도 잊을 만큼... 여자들에게 책은 또 하나의 완전한 세계를 꿈꾸게 한다(필자 주)/책을 들고 있는 여자 1934년. 러시아 박물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 웅진지식하우스
요즘은 글을 모르는 것과 성인이 소리 내어 읽는 것도 문맹으로 간주되지만 17세기 이전에는 책은 당연히 소리 내서 읽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소리 내어 읽는 것은 대부분 성경이었다(서양의 독서 역사이다 보니). 소리 내어 읽으면 읽고 있는 것을 누군가와 공유하지만 혼자 읽는 것은 자신만의 빠져듦이 가능하다. 그래서 더 몰입할 수 있고 자신만의 세계는 더욱 더 은밀해진다. 누군가 같은 책을 읽더라도 혼자만의 은밀한 세계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이 독서가 발달한 가장 큰 이유 아닐까?

풍성하게 볼 수 있는 그림을 통해 책의 크기나 모습을 시대별로 정리해 보는 것도 한편으로 재밌다. 책의 발전과 관계되는 것이므로.

그림을 통하여 당시의 책과 관련된 사회의 흐름, 독서의 역사, 책 읽는 여자들의 역사를 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책에 빠져든 여자를 그린 화가들의 이야기까지 읽을 수 있어서 더더욱 좋았다. 저자의 시각에 의해 읽히는 그림이지만 책을 읽는 나만의 상상력으로 그림 속 여자들을 은밀히 만나고 책에 흠뻑 빠져 든 그녀들을 맘껏 훔쳐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특히 책을 좋아하는 나마저도 위험하다는 발칙한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그녀는 무슨 책을 읽고 있으며 책을 읽는 동안 어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맘껏 훔쳐보던 그녀(들)는 곧 나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나 자신이었다.

▲ 빅토리아 여왕시기에 중국의 공예품 수입 유행과 함께 애완견도 시민 가정에 들어 오게 되었다. (책 속 설명)... 그림을 통하여 다양한 문화나 그 사회의 흐름까지 읽을 수 있다. 커피잔은 중국제라고 한다.(필자 주)/몹스종 개를 안고 독서하는 처녀 1879 찰스 버튼 바버(1845~1894)
ⓒ 웅진지식하우스
▲ 그림속 책 읽는 여자들을 통하여 독서의 역사를 알아가는 책으로, 책 읽는 여자들을 맘껏 만날 수 있다. 책 읽는 여자들은 예술가들에게 사랑받는 소재여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 그렸다고 한다. 그런데 왜 여자들에게 책은 금기였을까? ..책은 풍성한 그림과 설명, 그리고 독서의 역사에 대한 글,그리고 칼라지 삽입으로 필요한 부분만 펼쳐들 수 있다.
ⓒ 김현자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슈테판 볼만 지음/조이한 김정근 옮김/웅진지식하우스 2006.1.31/1만 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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