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그리트 케네디의 <화폐를 점령하라> 비판

칼럼

1. 마르그리트 케네디가 쓴 <화폐를 점령하라>를 읽었다. 케네디는 크게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하는데 한 가지는 JAK은행처럼 기존의 돈을 무이자로 사용하는 것, 그리고 게젤처럼 새로운 돈을 만드는 것(돈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하는 것)이다.

케네디는 이 두 가지 방법에 거의 비슷한 수준의 중요성을 부여하고, 이자라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찰스 아이젠스타인도 말했다시피, JAK은행은 거대한 조수를 거스르는 작은 역류에 불과하다. 이자를 낳을 수 있는 돈으로 이자를 낳지 않는데 쓰는 것은 사람의 본성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그런 방법은 길게 볼 때 한계가 있다. 폭발적으로 확산될 수가 없다. 시스템 전체의 문제를 커버할 수도 없다. 자기 이익을 쫓는 사람의 본성을 거스르고, 이자가 생겨난 근본원인인 "돈 액면가의 불변함"을 방치하기 때문에 그 운동은 중간에 좌초될 수 밖에 없다. 

같은 이유로 장발장은행, 주빌리은행도 한계를 지닌다. 다시 말하지만 이자를 낳을 수 있는 돈으로 이자를 낳을 수 없는 사업에 투자하라는 것은 이익을 쫓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거스른다. 사람의 본성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돈이 잘못된 것이다. 그 본성에 맞지 않는 돈을 만들어 쓰고 있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화폐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돈 자체를 개혁해야 하며 그것은 돈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하는 것 뿐이다.

현대의 화폐개혁 운동가들은 호기심이 많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려는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 이것저것이 다 방법이 될 수 있다며 대중들에게 자신만만하게 내밀고 그 뒷감당은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의로 행한다고 모두 좋은 열매를 맺을 수는 없는 법, 오로지 문제의 핵심을 붙잡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반드시 "왜 이자가 생겼는가?"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어떻게 이자를 근본적으로 제거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주먹구구식으로 미지근한 해법을 내놓고 그 해법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덧붙이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런 논리로는 이 거대한 문제의 심부까지 파고들 수가 없다.



2. 마르그리트 케네디는 디머리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화폐를 점령하라>를 기술할 당시는 그러하다.)

"그러나 현재 시장 가격 기준이 되는 이자가 디머리지 시스템 등의 사용으로 폐지되면 화폐 투기자들은 투기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그들의 눈을 토지와 부동산으로 돌려 또 다른 투기 양상을 낳을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해결책도 있는데 부동산 투기에 높은 과세를 부과하여 이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땅은 그 땅을 밟는 우리 모두에게 속하므로 땅을 임대하는 것이 사적 토지 소유권을 보장하여 투기를 불러일으키는 것보다 전체적으로는 더 큰 이익을 만들 수 있다. " -마르그리트 케네디, <화폐를 점령하라>
 

이 대목만으로도 "케네디는 디머리지를 모른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게젤이 말한 디머리지의 개념, 즉 돈 액면가가 정기적으로 감가상각되는 것은 투기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투기의 전제는 돈을 쌓아둘 수 있어야 한다. 잉여금이 시장 주위를 배회하면서 호시탐탐 대박의 기회를 노려야 한다. 그런데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에서는 그 잉여금이 존재할 수 없다. 돈이 모두 순환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기는 불가능하다. 게젤의 이론을 연구할 때는 머리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여러 번 해봐야 한다. 공짜돈을 쓸 때 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

게젤이 토지개혁을 주장한 것은 디머리지로 투기가 생기기 때문이 아니라 불로소득의 한 축인 지대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다. 이 부분을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대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토지세가 아니라 공짜땅 개혁이 와야 한다. 즉 땅사유권을 폐지하고 토지공공임대제를 해야 한다.

케네디의 책은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로 가는 여정에서 걸려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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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5 09:19 2015/11/1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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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방문자 2015/11/16 15:01 URL EDIT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low | 2015/11/16 22:34 URL EDIT
반갑습니다. bb님, 책 제목은 <자연스러운 경제질서>입니다. 달아주신 댓글 두 개에 모두 잘못 적혀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정해드리니 노여워하지는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실비오 게젤의 경제이론을 실행하려면 분명히 정치조직이 필요합니다. 정당이 게젤의 해법을 채택해야겠지요. 정당이 채택하려면 먼저 국민들이 이 해법을 원해야 합니다. 정치가는 기본적으로 장사꾼입니다. 이건 그 분들을 얕잡아보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정치가들이,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 정책을 팔 수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국민들이 이걸 원하려면 먼저 이런 해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게 있다는 것도 모르는데 원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지식인들이 적극적으로 이 이론을 연구하고 언론이나 기타 매체를 통하여 "이런 좋은 게 있다"고 알려줘야 합니다.

정말 다행한 일이지만 얼마 전부터 실비오 게젤을 연구하기 시작한 모임이 있습니다. 가시적인 성과를 얻으려면 기다려야겠지만, 이미 게임은 시작되었다는 얘기지요.

국민들이 게젤을 선택하려면, 무엇보다 이 해법이 중산층에게 이롭다는 것을 정확히 알려야 합니다. 지금 진보정당들이 제시하는 정책은 계층간 이해관계를 분열시키기 때문에 중산층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글을 링크하겠습니다.
http://blog.jinbo.net/silviogesell/144
http://blog.jinbo.net/silviogesell/132
http://blog.jinbo.net/silviogesell/129

국민들이 게젤을 선택하면, 정치가들이 게젤의 개혁안을 공약으로 내세울 겁니다. 그렇게 정권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많은 국민들이 큰 착각을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이것입니다. "정치가들이 잘못해서 나라가 엉망이다." 아니죠. 국민들이 잘못해서 나라가 엉망인 겁니다. 정치가들은 "국민들한테 어떤 얘기가 먹힐까?"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이 바라는대로 해줍니다. 물론 기존 경제질서에서는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분열되기 때문에 적당한 타협안이 도출되고, 그것은 모두에게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모두 실망하고 정치가를 욕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잘 살펴보면, 정치가는 그저 분열된 국민들의 뜻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지요. 국회의 난장판은 사회 전체 구성원들이 만들어내는 갈등의 축소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국민이 잘못 하고 있는 겁니다.

게젤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모두의 이해관계를 하나로 연결합니다. "공짜땅"과 "공짜돈"이라는 새로운 토지제도와 화폐제도로 모두를 연결합니다. 저 사람이 나보다 잘나가면 그게 나한테 이익으로 돌아오는 구조이기 때문에, 개인과 사회의 이해관계가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질서 안에서 하나로 통합될 수 있습니다.

중산층이 "자기들이 가진 예금과 부동산으로 얻는 이자와 지대"보다 "자본가한테 빼앗기는 이자와 지대"가 훨씬 많습니다. 평생 그렇게 착취당하는 걸 계산하면 어마어마할 겁니다. 그래서 중산층에게 그 현실을 구체적인 자료로 제시하면 게젤에 동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결국 자기 이익을 쫓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런 자료를 나라별로 국제적으로 조사해서 공개하면 전세계 사람들이 움직일 겁니다. 그래서 지식인들이 지금 당장 해야 할 미션은,

1. 게젤의 이론을 연구할 것
2. 게젤의 이론을 사람들이 알기 쉽게 그러나 "정확하게" 전달할 것.
3.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중산층이 지대와 이자로 빼앗기는 금액과 얻는 금액의 차액을 계산하여 공개할 것.

이것입니다.

판단은 중산층이 알아서 할 겁니다. 움직일 것인지 말 것인지도 중산층이 알아서 결정할 겁니다. 중산층을 설득할 필요가 없고 그냥 팩트만 제시하면 됩니다. 중산층이 지대와 이자로 빼앗는 것보다 빼앗기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사실대로 보여주기만 하면 됩니다. 자본가들은 게젤을 막기 위해서 중산층에게 여러 가지 달콤한 제안을 하게 될 겁니다. 경기부양책과 개발공약들이 난무할 것이고 중산층은 다시 미혹될 겁니다. 하지만 중산층은 결국 깨닫게 될 겁니다. 아무리 계산해봐도 게젤의 제안이 더 이익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자본가들의 회유책이 아무리 근사하여도 지대와 이자를 모두 폐지해버리는 것보다 더 큰 이익을 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자본가들이 회유책을 제안하는 것은 바로 그 지대와 이자를 지키기 위함인데 당연히 그렇겠지요.
비밀방문자 2015/11/16 16:17 URL EDIT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low | 2015/11/16 22:35 URL EDIT
저희 동네도서관은 신청을 받아주던데, 도서관마다 다른가 보군요.
출판제안은 고맙습니다. 구체적으로 제안해주시면 가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비밀방문자 2015/11/22 18:03 URL EDIT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비밀방문자 2015/11/25 10:42 URL EDIT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low | 2015/11/25 22:01 URL EDIT
히로타 야스유키의 생각에 대한 반론을 올렸습니다.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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