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푸코 강의...후기

[잡생각]
오늘 K대 철학연구소에서 '철학의 대중화를 선도하고 대중의 인문학적 소양을 제고하기 위해' 개최하는 -- 매우 엘리트적이고 개발주의적 색채가 짙은 모토지만 넘어가고 -- <인문대중강좌>에서, 허경 박사의 강의 <푸코와 정신분석: 욕망개념의 비판>을 들었다. 강의 날짜를 잊고 있다가 뒤늦게 갔기에, 중간부터 들어간 셈이다. 허경 박사는 동문선에서 재번역된 들뢰즈의 <푸코> 역자로 알려져 있는데, 내 기억으로는 제법 잘 읽혔던 번역이었고, 그 이후로 역자의 이름을 본 기억이 별로 없었는데, K대 철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사실을 알게되었다.  언제 기회가 되는 같이 글을 읽고 싶은 욕구가 솟는다.

각설하고 먼저, 이 강좌가 파리날린다는 말을 들었기에 몇 명 없을 줄 알았는데, 100 여명은 훌쩍 넘은 것 같았다. 여전히 푸코의 인기는 살아 있다고 봐야 하는지...상대적으로 젊은 층이 많았고, 질문도 활발한 편이었다. 다른 것보다, 강사의 자체 측면에서 좋았던 점은 질문에 대한 성실한 답변이었는데, 중요한 논점이지만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질문도 논점을 뽑아내어 풍부하게 답을 했다는 점이다. 느낌이지만, 전문으로 푸코 연구를 하는 푸코주의 '철학자'란 풍모가 확 느껴질 정도였다. 굳이 '철학자'를 강조하는 이유는, 철학자들의 푸코 읽기도 너무 훈고적이라서 정치성이나 윤리성이 제거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여타 영역에서 푸코를 끌어가는 방식도 문제가 많은데, 특히 사회과학 쪽에서 푸코를 읽는 방식은 매우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형편이다 .

여하튼 넘어가고, 대중강좌라서 그런지, 강의는 푸코에 관한 일반적인 소개와 정신분석 및 심리학에 관한 푸코의 개인사로 -- 원래 심리학사를 하려고 했다는 잘 알려진 사실, 프로이트에 대한 양가적 태도, 라캉에 대한 참조 등 -- 시작해서, <광기의 역사>와 <성의 역사>에서 진행된 푸코의 정신의학에 대한 개략적인 약술로 진행되었다. 푸코에 대한 소개는 매우 간단했지만 압축적이었고 -- 가령, 푸코의 초기 접근이 좀 더 해석학적인 '주체-인식-대상'의 틀이었다면, 후기에는 현재의 역사에 개입하는 '주체화-인식화/문제화-대상화'로 이행한다는 간단한 도식 --, 정신분석과 관련해서는, 특히 <성의 역사>를 주된 분석 텍스트로 놓고, '법률 장치' 특히 푸코가  성 '억압가설' 및 (그에 반하지만 같은 지평에 서게 될 뿐인) '해방' 실천을 문제화 혹은 비판함으로써, 결국 주체화의 경계를 이동하고 방향을 바꾸는 작업을 푸코 자신이 했음을 소개했다. 사실 이런 내용은 푸코에 관해 관심이 있다면, 또 대중강좌라는 점을 가만하더라도,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이른바 지배에 단순하게 반대하면서 그것을 재생산하는 역담론이나 역동일시의 역설이 아닌가? 그리고 물론 주제와 관계가 적었지만, 최근에 많이 회자되는 푸코 후기 작업 중, 생명권력-정치나 통치성에 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식자'대중을 위한 강좌의 목적은 충분히 충족했다고 본다. 

그렇지만 강의에서 아쉬웠던 점은, 푸코의 정신의학에 대한 분석학과 그 정치적고 문화적인 의의에 초점을 맞추었을뿐, 푸코의 입장과 정신분석 -- 정신분석의 급진적 재전유 -- 의 변별적 지점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컨대, 권력과 저항의 관계는 라캉의 정신분석에서 상징계와 실재계의 '교전'과 특히 반복적인 '죽음 충동'과 깊은 관계가 있지 않겠는가? (그러고보니, 푸코와 라캉이 한 세대 차이가 나기 때문에 벌어질 수 있는 에피소드이기도 하지만, 라캉이 푸코와 안 놀아 줬다는데, 그래도 푸코의 논의에 중 '실재'나 '현실'에 관해서 이야기 해볼만하다는 라캉의 언급을 슬쯕 이야기 했다.) 하고 싶은 말은, 소위 저항, 그것도 집합적 저항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단순히 정신의학의 실천, 즉 비/담론적 장치들이 역사-지리적 산물일뿐이라는 언급만으로는, 정신의학에 대한 불충분한 비판에 불과한 것이다. 뒤집어서 -- 적어도 급진적인 -- 정신분석은 그러한 것들도 가만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무의식이나 이데올로기는 역사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덧붙여, 철학자들의 읽기에서 흔히 나타나는 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푸코의 작업들에서 다른 철학자들과 철학사의 흔적을 찾아서 연결짓는 언급들, 질문들, 답변들이다. 물론 푸코를 인식 지도 위에 위치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 위험은 자짓 퇴행적인 훈고학으로 귀착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철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른바 '이론'을 한다는 사람들의 병폐인 셈이지만, 상대적으로 푸코가 '철학자'들을 언급하는 경우가 적은 점을 가만하면, '흔적'들에서 철학적 구성물을 추론하려는 '욕망'은 정말로 대단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여하튼, 정말 오랜만에 강의를 듣고 보니 이래저래 생각이 주저리 많이 떠오르는데, 다 옮기지 못하고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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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1 03:54 2009/05/01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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