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튀세르 심포지엄 후기 모음

[주목하기]

알튀세르 심포지엄 후기를 올릴까 하다가, 집중해서 들었던 발표는 1개 뿐이고 들락낙락 농땡이 부렸기 때문에 뭔가 평가를 한다는 게 옳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구글링 한 결과 많지 않은 후기를 몇 개 모아둔다.

게슴츠레
Vanguradoogy
레오포드
EM

글들을 읽어보면 대략 분위기는 짐작할 것인데, 하루 종일 있었던 몇몇 분들의 사후 평가도 오십보백보 였다는 점만 덧붙이자. 그리고 발표자들의 반응은 없는 것 같다. 참고로 흥행 면에서는 200 60~70명 들어가는 강의실이 꽉찼고 인쇄분량도 모자랐다고 하니 대략 300 150명 -- 주최측 추정인데 대박이 아니라 중박이군요 -- 내외가 왔다갔다 한 것 같고, 저녁 6시 이후에도 빈 자리보다 찬 자리가 많았다. 연령층은 대략 20대가 대중이었는데, 아시다시피 이 바닥이 좁다고 아는 사람들도 몇몇 있어서 덕분에 수다를 좀 떨었다나 할까. 허나 외형적인 '열기'에 비해 수다와 방담에서 나온 평가는 대략 '냉담'이었는데, '냉담'의 이유는 사람들마다 다르겠으나, 들었던 바를 내용면에서만 한 마디로 정리하면, 듣고 보지 않아도 웬지 알 수 있는 내용, 그러니까 예측가능한 논지를 폈다고 할까? 개인적으로 는 그냥 책으로 내면 될 것을 굳이 대중적 행사를 치뤄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심포지엄의 의미를 강조해 보자면, 심포지엄이 요새 한국 내에서 유행하는 포스트-들뢰즈 이론가들 -- 철학자만 있는 게 아니라서 이런 표현이 더 어울린다 -- 에 대한 지적 계보를 조금 명확히 전달했다. 유행이라기는 어폐가 있는데, 알다시피 발리바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알튀세르의 적자로 한국에서 대접받고 있고, 라클라우는 포스트 맑스주의자로 굉장히 저평가된되다가, 서발턴 연구는 거의 소개가 되지 않고 있다. 대략 이들을 EM님이 언급한 대로, 맑스-알튀세르-X의 계보라고 할 때, 발표문들이 알튀세르-X에 주로 초점이 맞춰졌지만 말이다. 아마도 계속 연구가 진행될 동력이 있는지가 의문스럽지만, 종적으로 혹은 횡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일은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이 외국이라고 별 다르지 않는 것 같지만, 내가 과문해서인지는 몰라도, 알튀세르와 바디우의 관계를 다룬 글 중에서 괜찮게 봤던 글을 올려둔다. 미국의 마오주의 연구자이자 바디우 전문가이기도 한, Bruno Bosteels가 바디우의 주체 이론을 다룬 글인데, 두 개의 글 가운데 하나는 구하기 힘들어서 못 보다가 토렌트에서 얻었다
(Bruno Bosteels, Alan Badiou's Theory of The subuect: The Recommencement Of Dialectical Materialism? The part1/part2) .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알튀세르와 관련해서 바디우가 구조인과성과 이데올로기, 혹은 주체 문제를 어떻게 이어받고 대결하는지에 대해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Badiou Theory Of The Subject part1.pdf (1.15 MB) 다운받기]
[Badiou Theory Of The Subject part2.pdf (357.50 KB) 다운받기]

 

 

그리고 혹시나 노파심에 언급해두자면, 알튀세르 심포지엄에 다소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것이 심포지엄에서 다룬 논자들 자체를 기각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알튀세르의 문제설정을 우리가 쫓았다가 기각하고 다른 문제설정으로 옮겨 탔다고 하더라도, 국내 현실에서는 알튀세르가 그렇게 비판하고자 했던 '정통' 맑스주의 -- 대공장 정규직 남성 노동자 중심주의 -- 에 가까운 실천이 지배적이다. 분명히 아직까지 이론진영과 실천진영 내에서 알튀세르 식의 이데올로기 문제틀은 한국 사회에 착지하지 못했다. 이런 면에서도 알튀세르는 아직까지 유효한 측면이 있다. 최소한 발표자들이 부여잡고 있는 문제를 쉽게 기각하는 말자.

 

덧) 심포지엄 제목이 알튀세르 효과였는데, 이론적 영향으로서 효과 가운데 일부만 제시된 점은 무척 아쉽다. 그것도 철학 지형 내에서 효과라는 면에서, 알튀세르가 '인문과학'이 아닌 '사회과학' 영역에 미친 영향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얼핏 보기에도, 문화연구 및 실천 진영은 아예 빠져 있다. 물론 현실 정치적 효과는 말할 것도 없는데, 이런 내용이 부각되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도 한국 사회에서 알튀세르가 부상하고 사라지는 맥락 자체에 대한 질문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튀세르의 문제설정들이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 한국 내 어떤 맥락에서, 그러니까 정세에 공명했는지에 대한 탐구가 필요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간단한 인터뷰가 아니라 심포지엄 발표자들의 역사 자체를 조사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런 이분법적 구분은 굉장히 위험하지만, 이건 아마도 '철학자'들이나 '이론가'들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을까?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9/01 13:39 2010/09/01 13:39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blog.jinbo.net/simppo/trackback/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