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내가 참여 중인 노동문화세미나에서 상반기에 읽었던 책들을 모아둔다. 세미나는 봄부터 커리를 바꿔서 서발턴 연구와 탈식민주의에 대한 독회를 진행 중이다. 몇 해 전에 서발턴 연구를 검토한 적이 있지만 당시에는 영문으로 훑은데다가 참여하시는 분들이 절반 정도 바뀌어 다시 훑고 있다. 역량이 모자라 깊게 찌르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새삼 느끼는 바지만 여러모로 어려운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몇 해 사이 제법 많은 번역서가 나와서 다소 편안하게 공부하고 있는 셈이다. 다음은 그 동안 검토했던 글 가운데 출판된 단행본만 올려 둔다. 순서는 무작위고, 책 소개는 이미지를 클릭 하시면 온라인 서점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이미 읽으신 분들도 많겠지만 그냥 아무 책이나 한 번 쯤 보시면 좋을 것 같다.
먼저 <라틴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 : 식민적 상처와 탈식민적 전환>(월터 미뇰로/김은중, 그린비, 2010)은 다음부터 읽을 책이다. 저자가 얼마전에 한국에 방문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아직 읽지 않았으나 지인의 말로는 다소 이론적인 책이라 빨리빨리 읽히지는 않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보다 트랜스라틴 총서 가운데 아직 출판되지 않은 <혼종문화>를 기대하고 있다 -- 언제 나올까?
다음으로 <백색신화: 서양이론과 유럽중심주의 비판>(로버트 영/김홍규, 경성대학교출판부, 2008)은 영의 White Mythologies 2004년판을 번역한 것인데, 목차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르트르부터 데리다까지 주요 이론가들이 기존 정통 맑스주의와 유럽중심주의에 도전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만만찮은 이론가들을 한 명씩 다루기 때문에 제법 까다로운 책이다. 읽는 방법은 여러가지겠지만, 맑스주의의 몇 가지 중심 개념 -- 역사, 총체, 주체 등 -- 을 염두에 두고, 특히 탈/식민 문제에 대한 저자의 강조를 고려해서 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책과 쌍으로, 같은 저자의 <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로버트 영/김택현, 박종철출판사, 2005)을 잇따라 보면 두 책 모두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이 책은 정통 맑스주의에서 벗어나서, 제3세계 맑스주의가 20세기 맑스주의를 혁신했다고 주장하면서, 계급을 넘어 민족, 인종, 젠더, 식민지 문제를 천착하여 진전을 이루어 낸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트리컨티넨탈(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맑스주의를 부각한다. 단, 초점이 그런 맑스주의적 실천이 왜 실패했는지에 대해서는 어물쩍 넘어며, 또한 엄청난 시공간을 포괄하기에는 저자의 역량이 좀 달리는 듯하다. 그래서 원제목에 <입론>이 붙어 있을 수 밖에 없겠지만 이 책은 엄청난 분량(826쪽)을 자랑하는데, 시간이 있으면 다 봐도 좋지만, 각 부마다 따로 읽어도 괜찮은 책이다. 게가다 중간 이후에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주장을 지루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다음 <서발턴과 봉기>(라나지트 구하/김택현, 박종철출판사, 2008)는 서발턴 연구를 쏘아올린 기념비적인 책이다. 알다시피, 서발턴 연구집단은 정통 맑스주의 역사학 -- 그냥 홉스봄을 떠오려 보자! -- 과 알튀세르, 그람시에게 영향을 받아 기왕의 맑스주의 연구를 일신했는데, 하층민 -- 서발턴 -- 에 초점을 맞추어 인도의 정통맑스주의적 해석 -- 계급 중심론 -- 과 민족주의적 해석을 논박하고 있다. 독자는 이런 목표와 이론적 반향들을 곳곳에서 찾아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서발턴 연구 집단에 대한 자세한 소개와 이론적 경향을 내가 정리하는 건 무리가 있고, <서발턴과 역사학 비판>(김택현, 박종철출판사, 2003)을 참조하면 될 것이다. 단, <서발턴과 봉기>는 스피박이 서발턴 연구집단의 입장이 '전략적 본질주의'라는 식으로 개입하기 전에 쓰여졌다는 점만 기억해 두자. 여하튼 <서발턴과 봉기>는 서벌턴 연구집단의 '데리다적 전환' 이전 좀 더 맑스주의적이고 좀 더 그람시적인 계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것도 김택현 선생의 <서발턴과 역사학 비판>을 참고하기 바란다.
<침묵의 이면에 감추어진 역사>(우르와쉬 부딸리아/이광수, 산지니, 2009)는 <서발턴과 봉기>에 대한 스피박의 비판, 그 중에서 젠더에 맹목적이라는 평가와 공명하는 측면이 있다. 이 책은 인도와 파키스탄(현재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분리 과정에서 폭발했던 살육과 폭력 과정 -- 이것이 침묵이다 -- 을 저자의 분단된 가족사, 그래고 폭력이 개인과 가족에게 새겨넣은 흔적을 추적하면서 드러내고 있다. 아주 슬픈 책이면서 감동적이고, 또한 좋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글인데, 우리로 치면 다큐멘터리 영화 가운데 한국전쟁을 다룬 <할매꽃>이나 이 시기를 다룬 최근의 연구, 예를 들어 <마을로 간 한국전쟁: 한국전쟁기 마을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들>(박찬승, 돌베개, 2010)을 생각하시면 된다고 한다 -- 참고로 보고 싶었으나 나는 아직 두 가지 다 못 봤는데 <할미꽃>은 정말 보고싶다. 여하튼 <서발턴과 봉기>같은 책이 좀더 큰 이야기를 한다면, <침묵...>은 좀더 미시적이 일상적인 관점에서 아래로부터 개인사와 가족사를 드러내는 전략을 택하고 있으며, 이런식의 역사서술이 대중적인 서적으로 출간될 때 갖춰야할 전범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겠다.
<폭력의 예감>(도미야마 이치로/김우자 외, 그린비, 2009)은 같은 저자의 <전장의 기억>(도미야마 이치로/임성모, 이산, 2002)과 거의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데, 요즘 한국전쟁과 관련해서 <전장의 기억>같은 글과 책이 많이 출판되고 있다. 위에 <마을로...>를 언급했지만, 4.3이나 여순사건과 한국전쟁(또 베트남전)을 '기억'과 '체험'과 관련한 구술사 자료수집과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고 붐이라고 할 정도다. 작년에도 <전쟁과 기억: 마을 공동체의 생애사>(김경학 외, 한울, 2009)이 출간되었다. 그런데, 도미야마의 책은 이와는 약간 다른 맥락에 있는데, 하나는 저자가 식민지, 특히 오키나와 문제와 일본제국주의를 다루면서도 주로 담론 연구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구술사나 경험연구와는 거리가 좀 있다. 다른 하나는 <폭력의 예감>의 서론은 펠리스 가타리 등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기존 연구들 -- 이 책은 기존 연구들을 엮은 책이다 -- 의 프레임을 새롭게 매기는데, 좀 무리가 있으나, 여하튼 기존 국내 학계의 풍토가 이론 따로 분석 따로 인 점에 비춰본다면 흥미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폭력의 예감>이 주장하는 바, 물리적 폭력을 옆에서 목도하는 사람이 폭력에 순응하고 그것을 내면화하게 되는 상태, 그러니까 주체가 무력화되는 내면적 기제를 밝히는 시도 자체도 흥미롭다.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 특히 지식권력으로서 인류학의 역할을 소개한 점도 마찬가지이다.
<블랙 자코뱅: 투생 루베르튀르와 아이티혁명>(시 엘 아르 제임스/우태정, 2007)은 20세기 트로츠키주의 역사서술의 전범인 책이다. 개인적으로 매우 재미있게 봤는데, 그냥 소설같이 읽을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아이티혁명보다는 투생에 대한 전기로 읽힐 수 있는데, 1930년대 당시 볼세비키 혁명과 레닌, 트로츠키, 스탈린에 대한 반향 -- 특히 민중의 자생성, 당과 지도자의 지도적 역할에 대한 관념 -- 을 충분히 읽을 수도 있다. 또한 저자가 비록 계급관계에 초점을 많이 두지만, 그게 못지 않게 인종(그리고 약간은 젠더) 문제를 전면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프랑스 혁명기의 정세에 따른 효과도 꼼꼼히 추적하고 있다. 특히 <블랙 자코뱅>은 네그리튀드, 혹은 간략히 말해서 혼종성의 효시, 그래서 탈식민주의 선구를 보여주는 책으로 오늘날 재발견되었는데, 이런 내용은 재출간하면서 덧붙여진 후기를 참조하시면 될 것 같다. 여하튼 지루하다는 평도 있지만, 나는 2/3 정도는 피흘리는 내용을 이렇게 재미있게 봐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다. 책을 보기 귀찮으신 분들은, 말론 브란도가 출연한 영화 <Burn! Queimada>(질로 폰테코르, 1969년)을 보시면, 보신 분이 거의 같은 내용이라고 합니다. 또 아이티가 독립이후에 어떤 경로를 걸었느냐는, <가난한 휴머니즘>(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이두부, 이후, 2007)을 보시면 간략히 나온다고 합니다.
더 많은 글을 본 것 같은데, 자료와 공식 커리는 딴데 있고 지금은 생각이 잘 안나다. 이렇게 쓰고 보니, 짧게 쓴다고 했는데, 그리고 기억나는 대로만 별 중요한 말도 없이 썼는데도 긴 듯하다. 양해해주시고, 제가 뭐라고 정리하는 것보다, 그리고 특정한 방식으로 프레임을 과하게 부과하는 것보다, 여기 소개한 책들은 한 번쯤 읽어볼만한 글들이다. 특히 <블랙 자코뱅>, <가난한 휴머니즘>, <마을로 간 한국전쟁>, <침묵의 이면에 감추어진 역사>는 누구나 가볍게 볼 만하다.
그리고, 노동문문화세미나는 격주 목요일 저녁 7시에 중앙대학교 대학원 건물에서 진행 중이고, 다음 책은 <라틴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 입니다. 보수반동 제외하고 아무나 오셔도 되고 부담없는 독회모임 성격입니다. 그냥 격주로 책 읽고 서로 떠드는 모임입니다. 영어글은 '지양'하는 편입니다. 지금은 현장활동가부터 경제학, 사회학, 경영학, 역사학, 정치학 전공자까지 다양한 분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살포시 연락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