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삼님의 [사랑의 테러리스: 테리 이글턴 학국 강연 후기] 에 관련된 글.
내글에 트랙백을 거의 달지 않지만, 테리 이글턴 한국 강연 후기와 관련해서, 프레시안 기사 마르크스주의자가 한국에 와서 한 일은...을 엮어둔다. 기자에 따르면 다소 어처구니 없는 사정 탓, 즉 이글턴이 인터넷 매체를 싫어한다는 이유 때문에, 기사는 강연 후기와 기자 인터뷰 광경만을 담았지만, 내가 볼 때 대략적으로 내용에는 동의할 수 밖에 없다. 특히나, 주최측이 '급진적' 맑스주의자, 그리고 신좌파 운동의 중요 인물을 데려다가 한국 내 맑스주의자들이나 문화관련 연구자와 활동가들과 만나게 했는지조차 상당히 궁금하다. 내가 감히 남의 전공 -- 국내 영문학계 -- 에 감놔라 배놔라하기는 뭣하고, 내부 사정도 잘 모르지만, 이번 행사는 분명 연구실과 학계 내에서만 '급진적'인 지식인들과 학생들을 위한 국고지원 해외석학 초청에 불구해 보인다.
내가 이렇게 다소 과하게 이야기 하는 것은, 잘 알다시피, 2000년대 중반 이후 국내에 BK사업과 HK사업으로, 그리고 1990년대 후반부터 학진체제 -- 지금은 한국연구재단 -- 로 전환되면서 한국의 대학 내 지식생산 메커니즘이 탈정치화되고 탈맥락화된 현실을 이런 행사에도 확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형태가 좌우파를 가리는 것도 아니다. 탈정치화와 그렇다치고, 탈맥락화와 관련해서, 예를 들어, 테리 이글턴이 신학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이 문제를 한국 현실로 '번역'해 낼만한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알튀세르나 그람시가 마키아벨릴를 언급하면서 새로운 군주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반대로 이글턴도 신학을 경유한 접근이 서양만큼 파급력이 적을 수 밖에 없는 한국에서 강연할 때는 한번 더 '번역'을 했어야 옳다. 트랙백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이글턴의 발표문은 매우 모호하다. 왜냐? 우리 맥락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있고, 서양 좌파들의 논의 지형에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무신론자 한국인으로서, 대체 '신학'이라니? 무슨 이야기지? 라는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덧 붙여, 이글턴의 정치적 처신도 문제가 심각한데, 자신이 어떤 장에 와서 배치되어 있는지 균형을 잡을 필요도 있는 것이다. 그가 보수매체와 인터뷰를 하는 것도 중요할 수 있으나, 한국내 형성되어 있는 첨예한 정치적 문제를 흐리게 하는 행동인 것이다. 해외 석학도 외국에 가면 바보되기 쉽다.
기사를 보고 알았는데 -- 아무래도 너무 게을러진 듯, 풍문에 이렇게 느리니 -_-;; -- , 테리 이글턴의 신을 옹호하다: 마르크스주의자의 무신론 비판(강주헌 옮김, 모멘토, 2010)이 출판되었다. 한국 강연 내용 가운데 많은 부분이 이 책에 기초하고 있는 듯하다. 좀 꼼꼼히 본다면 강연에서 모호했던 내용들이 명확해 질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이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식도 기여하는 바가 없지 않아서, 나 같은 사람도 약간이나마 도움을 받을 수는 있었다. 그래도 프레시안 기사를 보니 여러모로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