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봉, 문화산업의 7080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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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시봉 관련한 포스팅이 많이 올라오는데, 굳이 진부한 내용의 변주라서 쓸말은 없지만, 진부한 걸 새로운 양 논하는 분위기가 영 이상해서 좀 길게 언급하겠다.

간단히 논쟁을 정리해보면, 세시봉 현상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방향이다. 하나는 60년대 말-70년대의 넓게 봐서 청년 포크 문화 -- 신중현으로 상징되는 락은 조금 제쳐놓으면 -- 가 도시 중상층의 계급문화(적 편향과 하층민의 배제)라는 지적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문화마저 유신의 폭압에 말살된 시대적 상흔에 관한 것이다. 둘 다 타당한 얘기고, 물론 새로운 건 전혀 아니다. 덧붙여, 음악의 향유를 통해 계급문제를 가르는 것이 모호하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논쟁의 긍정적인 면은, 노래와 음악의 정치성, 혹은 역사가 다시금 환기된 것이고, 김선주의 칼럼이 노린바처럼 이런 것들에 예민하지 못한 젊은 층들에게는 충분한 효과를 미쳤을 것이다. 나는 이런 점에 대해서는 대략 동의하는 편이고, 크게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뭉떵그려 퉁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기에 몇 마디 쓴다.

나의 의문은 세시봉 문제를 현재 시점으로 가져와서, 왜 세시봉이 인기를 끌었을까? 오늘날 '소녀시대'의 시대에 왜 세시봉일까? 결론을 앞질러 말하면, 첫째는 70년대 도시 청년문화가 대중음악 시장에서 사라졌다가, 그 문화적 급진이 탈각된채로 2천년대에 부활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음악 생산의 논리가 가수의 '아우라'에서 '이야기' 생산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 길게 역사적 배경과 음악 장르의 조합으로 우회해보자. 오늘의 유행은 과거의 계보를 검토하면 뭔가 새롭게 조명되기 때문이다. 먼저 '세시봉'이란 말을 조금 분해해보기 위해, 다섯 가지 정도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세대, 계급(내지 계층), 음악 장르, 문화상품의 생산과 유통 및 향유방식, 음악이 상징하는 이상향이 그것이다. 이런 몇 가지 차원들이 교직될 때, 이른바 '민중' 음악이니 '대중' 음악이니, '주류' 음악이니 등이 좀 더 또렷해질 것이다. 세시봉의 경우는 지금의 40대, 좁더 좁히면 50대, 도시 지식인 내지 중산계급, 음악 장르로는 포크(와 번안가요), 가수의 아우라(생음악, 가창력, 통기타, 낭만, 서구음악의 한국화 등), 60년대를 거친 이후 근대화의 부흥국면과 이상향으로서 아메리카즘과 '도시'가 반영되어 있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세시봉이 당시에 포함하지 못하던, 혹은 배제했던 많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반면에 공통점도 제법 발견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민중'의 노래는 무엇일까? 딱 이거다라고 비정하긴 그렇지만, (알다 시피 트롯도 여러가지라서) 요즘으로치면 트롯-- 이는 '저 푸른 초원위에' 농촌문화를 직접적, 회고적으로 환기시키는데, 도시풍의 트롯 계열이 있기는 하지만 본격적으로는 80년대에 등장한다 -- 에 가까울 것이다. 기타 중요한 논점이 많겠지만, 차치하고 논의를 조금만 비틀어 보자.  

조금 더 돌아서, 요즘 방송의 대중음악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 90년대 중반이후 세대와 계층별로 정착한 걸 알 수 있다. KBS를 예를 들면, 뮤직뱅크(10/20대 이상), 유희열의 스케치북(20/30대 이상), 콘서트 7080(40대 이상), 가요무대(50/60대 이상), 열림윽악회(세대복합), 전국노래자랑(주로 중장년층+젊은층), 음악창고(대안음악, 폐지)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전국노래자랑과 가요무대는 편차는 있지만, 분명 중장년층 하층의 취향을 반영한다. 이 두 프로그램이 20년 이상된 장수 프로그램 -- 단 80년대와 그 이전의 쇼 프로그램은 편의상 제외하자 -- 인 걸 감안하면, 콘서트7080이 2천년대에 만들어졌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왜냐하면 콘서트7080이 세시봉 세대, 혹은 그 후예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미있게도, 하층 음악취향(주로 일제 이후의 트롯과 민요 등)은 가요무대나 전국노래자랑 처럼 대중매체에 계속 어떤 식으로든지 존재해왔지만, 도시 청년문화(와 그 후예)는 주목받지 못하고 '유행'에서 밀려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청년문화는 80년대 이후 젊은 층, 혹은 10대 취향 음악에 계속해서 자리를 내주게된다. 80년대 락(들국화 등)이나 당시 비주류음악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이런 '유행'의 이면에는 정치적, 문화적 억압이 추동한 측면도 강하다. 70년대 포크, 80년대 락, 90년대 댄스와 힙합 등은 대마사건이나 악마화, 서구화, 일탈 등 사회문제화되면서 끊임없이 의심시되었다. 덧붙이자면 70-80년대 대학가요제와 각종 대학생 대상 가요제는 청년문화의 직접적인 자장에 있었지만 '순치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당시 '대중'의 노래는 무엇일까? '대중'의 음악 취향은, 아마도 당시 중장년 층에게는 '세시봉'이 상징하는 바와 '이미자'가 상징하는 것으로 나뉘어 었었고, 공통적인 감수성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것은 '군가'였다. 군사주의 국가하에서 군가, 기념가, 내교가 등은 '국민'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제였다. 중요한 점은, 이 당시 10대와 젊은 층은 계층에 관계없이 더 이상 트롯의 엘리지가 아니라, 포크와 락, 댄스, 팝에 열광했던 세대라는 점이다. 재미있게도, 80년대 말에 오면, 트롯도 주현미나 현철, 설운도 등 처럼 전통적인 '엘리지'가 아니라 '댄스화' 된다는 것이다. '대중'음악 시장에서 장르가 혼성된다고나 할까?

80년대 빼놓을 수 없는 건, '민중'음악의 탄생일 것이다. '민중' 자체가 만들어진 구성물이기도 하지만, '민중음악', 혹은 운동가 자체는 음악 장르상으로 흥미로운 점이 있다. 다름 아니라, 민중음악이 '군가'와 '교가' 풍을 모방하고 있지만, 트롯은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민중'의 음악적 감수성에는 '국민'적인 요소, 즉 군가풍이 강력히 또아리를 틀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 국민의 아주 보편적인 노래형식인 군가 말이다. 그런데, 이런 민중음악이 '진정한' 민중들의 노래는 아니었기에 -- 군가나 기념가 등을 사적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고무줄 놀이 할때 빼고는 말이다 --, 당시에 젊은 층은 들국화를 목놓아 부르고, 대다수 국민들은 술자리에서 아빠의 청춘을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90년대 초에는 민중가요도 '바위처럼'같이 밝고 빨라지고, 천지인이나 힙합으로 변주되기도 한다. 역설적으로, 더 이상 특정장르가 특정 계급문화를 상정한다고 보기에는 모호해게 된 것이다.

다시 세시봉 세대로 돌아가보자. 90년대 초반에 오면, 더 이상 대중음악 시장에서 이들 세대를 위한 노래와 가수는 사라진다. 이런 노래는 양수리나 가야하고, 교통방속에서나 들을 수 있는 음악으로, 우리네 도시형 아버지, 어머니의 음악은 사라졌다. 전국노래자랑과 가요무대에도 이들의 노래는 없었다(요즘은 가요무대에 조금씩 등장하고 있다). 많은 수의 우리네 부모들이 마냥 전국노래자랑이나, 가요무대만 봐야하는가? 그건 조부모세대, 혹은 하층계급의 문화이지 도시적인 이네들의 문화와는 어느정도 거리가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에 와서 이런 문화가 '향수'의 형태로 부활한 프로그램이 콘서트7080이다. 세시봉 쇼는 그의 연장선상에 등장했다. 7080의 청년세대들, 그리고 이런 노래를 어릴때 들었던 이후 세대들에게 이들 노래가 먹히는 건 당연하다. 문화적 취향의 '공백'을 방송(혹은 문화산업)에서 드디어 제공했던 것이다. 그러한 취향이 세대 및 계급과 굉장히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말이다.


방송 매체에 등장한 순서는 뒤바꿨지만, 콘서트7080의 선배 세대가 '세시봉'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계보는 80년대 이후 면면히 흘러왔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시작은 미약했을 수 있지만, 당시 한국 사회가 상정했던 사회적 '이상향'으로 그러한 음악 취향으로 움직여 왔다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층문화였던 트롯이 사라진 건 아니고, 80년대 도시 트롯으로 바뀌게 되고, 정말 사라진 건 공통적인 음악 형식이었던 군가풍이었다. 민중음악이 이런 형태를 부여잡았지만 90년대 초에 곧바로, 매력을 잃은 건 이런 이유도 있는 것이다.

 

여기에 정치적 의미의 순치, 혹은 '향수화'를 다시 보태야 할 것이다. 70년대 청년문화의 급진성은 대부분 -- 김민기 등을 빼놓을 수 없기에 이렇게 말해두자 -- 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문화를 통한 일종의 '변화'의 맹아가 있었고, 이에 대해 당시 정권과 보수층은 굉장한 위기, 반감을 보였고, 잘알려진대로 마치 범죄와의 전쟁처럼 이를 다잡으로 했다. 이는 80년대 락엔롤도 마찬가지였고, 90년대 댄스음악이나 힙합에 대한 단속, 그리고 언어음악에 대한 입장에서 주기적으로 등장했다. 이런 큰 흐름에서, 세시봉 세대와 계급은 이미 아버지, 어머니로서 매우 안정적인 세대가 되었고, 젊은 문화가 가진 고유한 저항성, 혹은 정치성을 상실하고, '향수'로서 편안한 감상 음악easy-listening이 된 것이다. 음악 외적으로, 이 '향수'라는 코드는 요즘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는데, 각종 축제나 고향 먹거리, 여행을 비롯해, 항토방이나 생태 체험이나, 술집에서부터 막걸리까지, 온통 '옛 것'으로 가득차 있다. 어떻게 보면 '향수 산업'이라고 할 정도로 상품화가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좋았던 시절을 회고할 수 있는 자들은 과거와 지금, 특정한 계층일 것이다. 이런 추억조차 사치였고, 지금도 사치인 사람들은 많다. 이런 분들에게는 세시봉이 아니라 라디오 여성시대나 싱글벙글쇼, 교통방송, FM이 아닌 AM 방송이 더 친숙한 것이다. 여하튼, 이런 상업적, 시대적 흐름에서 세시봉 쇼도 그리 멀리 있지 않다. -- 한 가지 더 고려를 하면, 음악시장의 구매력의 변화를 덧붙일 수 있겠는데, 과거처럼 10대 위주가 아니라는 점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 렇다면, 요즘 젊은 층에게는 왜 세시봉이 먹혔을까? 그건 앞서 언급했던, 음악의 생산과 향유방식의 변화, 즉 이야기 창출 능력과 관련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90년대, 특히 2천대 들어 음악은 일개 가수의 아우라가 사라지고 스타시템하에서 상품성이 특히나 강조되었는데, 가수의 아우라 중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가창력과 연주, 작곡 등의 분업체계가 매우 강화되고, 가수는 단지 노래를 하는 게 아니라, 무대에서 '공연performance' 하는 자들로 변했다. 그리고 음악의 향유도, (귀와 입을 중심으로 한) 듣고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귀와 눈을 중심으로 한) 보고 감탄하는 음악으로 변했다. 이런 상황에서, 2천대 한국 문화산업의 특징적인 현상인, '스토리'를 통한 대중에의 소구현상이 결정적이다. 가수와 대중의 공감은 더 이상 어떤 '진정한' 체험이 아니라, 토크쇼나 다큐를 통한 가수들의 만들어진 이야기를 통해 가능해진다. 우리는 세시봉이 음악 프로그램이 아닌, 예능 토크쇼인 '놀러와'를 통했다는 걸 알고 있다(여기에다가 같은 방송사의 '무릎팍 도사'의 이장희 편과 조영남을 덧붙여야만 한다). 세시봉 '쇼'는 노래뿐만 아니라, 당시의 인간관계와 에피소드로 채워졌고, 이를 세시봉 멤버들의 아우라를 재가공해낸 것이다. 요즘 가수들이 전달하지 못하는 아우라를, 송창식이나 조영남, 이장희 등이 뽑아내지 않는가? 음악적으로는 그렇다는 것이다. 아울러 토크쇼 앞에다가 이런 청년문화 세대를 끌어 앉힐 수 있었다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방송은 명절에 기획되었고, 요즘 애들한테 인기 있는 장기하와 윤도현이 부모 세대와 호흡을 맞춘 것도 시사적이다. 뭔가 이야기를 거리를 '가족' 앞에다가 던저 준 세이다. 지나가는 말이지만, 댄스 일색인 뮤직뱅크도, 트롯 위주인 가요무대도 이런 '토크'적 요소를 도입한다면 좀더 잘 먹힐 것 같긴하다.

너무 설이 길었지만, 내가 하고픈 이야기는 딴게 아니라, 특정 문화형식을 논할 때 계급문화만으로 무언가를 재단한다는 건 간단하지 않다는 점이다. 앞서 본 것처럼, 장르에 따라, 계급문화를 상정하는 것이 시대와 세대에 따라 얼마나 모호해지는가? 그리고, 초계급적인 공통된 형식인, '군가'를 상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얼마나 모호한가? 물론, 음악에서의 계급문화가 없다는 것이 아니고, 주류음악이나 '바람직하고' '열망하는' 음악과 '유행하는' 음악이 배제하는 음악과 계층이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게다가, '세시봉'이란 표현에 붙은 유신과 억압의 기억을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논의를 딱 자를 수 없는 지점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오히려 내게 지금 흥미로운 것은, 70년대 청년문화 세대가 대중문화 속에서 '재발견'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건은 어떤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논리와 함의를 지닐까? 그런 질문들이고,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접법을 택해야 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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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7 19:47 2011/02/17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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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세시뽕뽕

    Tracked from homo cultura [2011/02/18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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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 뽀삼님 [세시봉, 문화산업의 7080 재발견] 생각에 깊은 공감을 하면서 지금 세시봉 '붐'이 어떤 논의들을 끌어들이기는 했지만 사실 이 사태가 일회성 사건으로 끝이 날 것인지 아니면 세시봉이 다른 것들을 재생산할지- 이미 세시봉과 관련된 논의들이 터져 나오는것 보면 성공한 셈인지도 모르겠지만- 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지금으로써는 남십자성님 남십자성님의 [세시봉과 대중] 이 잘 정리를 해두신 것까지만 파악을 해두고, 오히려 세시봉과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