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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전함의 실체? 합리화의 극대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시계를 간직하며 살아간다.

누군가의 시계는 아주 천천히..천천히.. 과거의 것들을 꼭 붙잡고 흘러가고.

누군가의 시계는 아주 빨리 과거의 것들은 그냥 어딘가 남겨둔채 그렇게 흘러간다.

 

나의 시계는 내 나이 스물다섯을 맞으며 새로운 전환점을 지나고 있다.

예전보다는 훨씬 빠르게! 그리고 훨씬 더 냉정하게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불필요한 감정노동들은 과감히 제껴버리고.

불필요한 감정들은 과감히 무시해버리고.

불필요한 고민이나 불필요한 말들은 아예 꺼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예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고 훨씬 더 냉정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항상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버려야하는 것들이 생기는 법이다.

 

 

나에게 불필요함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그 기준은 온전히 나 자신만을 위한 기준이 된다.

내가 가진 시계의 속도와 맞지 않는 모든 것들은 나에게 불필요함이 되어버리고 만다.

 

나보다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것들은 빨라서 불필요하고.

나보다 느린 속도로 달려가는 것들은 느려서 불필요해진다.

이렇게 되면서 난 한편으로는 매우 옹졸해지기도 한다.

나와 다른 속도를 가진 모든 것들을 난 이해하지 않으려 하니까 말이다.

 

 

불필요한 감정들을 제껴버리는 것은 또 한편으로 자기합리화를 극대화 시킨다.

 

학원에서 매일매일 토할것 같이 일을 하면서 평택을 지켜본다.

마음 한켠으로 묵직한 것이 내려앉곤한다. 미안함, 답답함, 분노, 죄책감 등등.

하지만 이렇게 묵직한 것들이 내 마음에 내려앉으려고 하는 순간 난 생각을 닫는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내가 미안해한다고 달라질건 없어. 내가 죄책감 느낀다고 달라지는건 없어.

 

그 순간 나의 고민들과 언어들은 불필요한 것들이 되어버리고 허공속으로 사라진다.

좀 더 운동에 집중하지 못한 내 자신에 대한 고민도 없어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는 고민도 없어지고.

 

많이 두렵고, 마음아팠을, 그리고 비장했을 활동가들에게 난 한마디도 건네지 않는다.

내 입을 통한 언어를 전달할만큼 난 그들과 친밀하지 못하고.

핸드폰이라는 무뚝뚝한 기계로 전달하는 언어들은 안하는 것만 못하고.

 

그렇게 난 또 내 자신을 합리화하며 아무런 고민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침묵한다.

 

 

그렇게 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난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고 있다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난 마음 한켠에 언제나 허전함을 남겨둔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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