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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러 가다가

그가 잡혀갈 수 있을 거라곤 정말 생각 못했다. 사실

미등록 이주노동자라고도 생각 못했다.

연구실 생활하면서 늘 같이 밥해먹던 친구이고.

한 마을 사람이고. 돌아오는 빈마을 운동회 때 오라고 꼬시려던 참이었는데,

미누씨가 잡혀갔다는 문자를 받고는

당황스럽고 허전한 마음에 곧장 라면 몇 개를 사들고 넷빈집에 갔드랬다.

실감도 안 나고, 너무 슬퍼하면 안 될 것 같아서(왜 안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친구들과 미누씨 방에서 라면을 먹었드랬다.

(일부러는 아니고, 그 집 구조가.. 몇 명이 밥 먹을 수 있을만한 공간이 거기 뿐이다. ㅡㅡ;;)

그렇게 우연히 미누씨 방 구경을 하는데, 한 쪽에, 광이 반짝반짝 살아있는 구두가 눈에 띄었다.

멋쟁이 미누씨.

세미정장에, 무스를 바른듯 잘 매만진 머리칼에 반짝이는 구두.

우리들의 영원한 보컬.

 

오늘

만나러 가다가 돌아왔다.

미누씨의 옷가지와 신발을 챙겨들고 온 네오와 함께

402번 버스를 타고 남대문 앞을 지날 쯤,

확인차 전화를 걸던 네오는 다른 분들이 먼저 면회를 해서 오늘 면회 횟수가 끝났다고 했다.

흑. 일정 조정해주시기로 한 분께서 우리가 가겠다고 했던 걸 잊으셨단다...

 광화문께 가다가, 버스에서 내렸다.

그냥 만나러 갈까도 싶었다.

금욜 새벽, 미누씨가 잡혀간 바로 다음날 아침에 강제출국 당할 수 있다는 말 듣고

바로 화성 외국인보호소에 갔었는데, 그때는 분명

관리인들과 소장인지 과장인지 하는 사람이

면회 회수에 제한이 없다고, 언제든 볼 수 있다고 말했었는데.

그새 말을 바꾼 것인가? 아님, 이쪽 활동가들과 어떤 조율이 있었던 것인가.

감옥도 아닌데, 면회 회수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이 그들에게 있단 말인가?

 

여튼, 온종일 어찌할 바 모르고 있다.

일상이랄 것도 별로 없는 나날을 보내면서도

모든 일들이 절뚝거린다. 밥을 먹다가, 책을 보다가, 토란대를 말리다가도

불쑥 미누씨 생각이 난다.

 

누군가를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이런 것인가 보다.

 

그가 살던 집이 넷빈집으로 전환되어 한마을 사람으로 묶이면서

가끔은 싫은 소리도 툴툴 내뱉고 했었는데...

가만히 그의 좋은 얼굴을 떠올리다가도

활동가로 언제나 밤 12시가 넘어야 겨우 들어오고, 아침에 또 나가는 그에게

밤 12시가 되었더라도 꼭 모여서 넷빈집 회의를 해달라고 협박스런 부탁을 했던 것이 후회스럽다.

왜 그렇게밖에 말 못했나.(이놈의 말버릇. 아, 정말 내가 싫다.)

 

내일 아침 일찍 면회가겠다고 다시 일정을 알렸다.

내일은 특별면회가 있다고 하는데, 뭐라도 좀 진전이 되었으면 좋겠다.

미누가 만에 하나 우리 곁에 계속 있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뭐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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