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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

그렇게 다리 아프고 팔이 빠질 것같았던 1달째 날로부터 다시 보름이 지난 지금

나는 어느새 적응을 해버렸다. 물론 집에 오면 곧바로 잠을 3시간쯤은 자야 정신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팔과 다리가 아프던 것을 어느 정도 해결을 했다고나 할까.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아프고 힘든 것 때문에 결국은

점장을 압박하고 함께 일하는 파트들을 선동하여(의도했다기 보단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과일깎는 알바 1명을 고용하도록 하고,

점장은 30분 늦춰 출근하던 것을 다시 앞당기게 만들었으며

나는 매장에서 무거운 것, 힘든 것을 최대한 하지 않도록 배려받을 수 있었다.

점심 시간도 좀더 편안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래서 좀 나아졌다.

심지어 사장1을 선동하여,

영업일 중 가장 바쁜 금요일 점심 피크타임 때 직접 머신 앞에 서서 커피 뽑게 하고

점장을 그 옆에 붙여 서브하게 하기도 했고.(이 두 업무가 주로 힘들고 나와 다른 파트가 하던 일이다)

어쨌든 이젠 어느 정도 숙련된 자다.

언제든 다른 인력으로 대체될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사장과 점장이 피로를 감수해야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협상을 볼 여지가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 한 시간에 5개의 샌드위치와 3개의 빠니니를 만드는 게 그렇게 정신없었는데

이제는 한 시간에 말없이 20개의 샌드위치와 5개의 빠니니를 만드는 것도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다.

물론 중간 중간에 손님도 받으면서.

 

머스터드 소스는 어느 두께로 발라야 하고 빵은 얼마나 구워야 하는지

크림치즈는 어느 두께로 어떤 모양으로 얹어야 하고 닭가슴살은 어느 정도로 익혀야 하는지도

우글 우글한 양상추 위에 토마토와 햄과 치즈를 얹고는 커팅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된다.

그러면서 다음 샌드위치를 만들기 위해 재료들이 얼마나 남았고, 무엇을 더 준비해야하는지도 가늠할 수 있는 단계가 되어

일을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챙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무서운 것이다.

1개월 반 된 나는 이제 팔/다리 아픈 것도 잘 모르겠고 샌드위치 만드는 기계가 되셨다.

 

처음 다루는 포스(pos : 터치스크린에 메뉴와 가격이 뜨고 품목별 매출과 시간별 매출을 다 볼 수 있는 프로그램.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를 외치며 띡띡띡 화면을 누르고 계산을 하는 그 기계)를 이제는 매장 내 그 누구보다 유연하게 다루게 되셨고

두 종류의 생과일을 두 개의 블랜더에 각각 번갈아 갈아내는 빠른 솜씨는 손님들의 눈요깃거리가 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이제 당최 데이지도, 베이지도, 부딪혀 멍들지도 않고 멀쩡하게 퇴근한다는 것에서

그놈의  '적응'을 실감하고 있다.

한 친구는 그놈의  '적응'이 산재를 낳는다고 경고도 마다하지 않았으나

어쨌거나 이로 인해 나는 결국 살아남게 되었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까 숨돌릴 틈도 없이

사장2가 반격을 해왔다. 그저께 사장1 왈,

"우리... 다음주부터.... 팥빙수 하기로 했어요."

 

 

 

뚜루르~~~

 

 

 

이게 왠 날벼락.

생과일주스 때문에 힘겨워서 뽑은 3시간짜리 알바는 하루 나오고 이튿날부터 무소식인 이 마당에

그래서 사람 더 고용하네 마네 하는 와중에

역시, 사장은 사장이다.

 

사장1은 말을 이었다.

"내가.... 사장2에게 그건 좀,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 것 같다고, 지금도 바쁜 편이라고 말했는데도.... 원래 메뉴 개발은 사장2가 하기로 한 부분이고... 팥빙수는 6종류... 그래서..."

 

사장1은 많은 체인점들 중에 주로 우리 매장에서 피크타임 때 같이 일하고 과일도 다듬어주던 사람이라

그간 매장 분위기나 실제 업무에 대한 감각을 갖고 있었던 터이고 워낙 성격도 협조적인데,

바리스타 6년을 일했다는 사장2는(지금 일하는 테이크아웃 체인점 사장이 2명이다) 성격이 까칠하기도 하거니와 자기도 바쁜매장에서 일해봤는데 여기가 그럴만한 데인가 하면서

도대체 뭐가 그렇게 힘든지 와서 직접 보겠다고 했단다.

피크알바 그만뒀는데, 팥빙수 개시하고, 팥빙수는 6가지 종류인데,

까칠한 사장이 갑자기 매장에 와서 눈 부릅뜨고 실수들 다 잡아낼테니 긴장하라면서 벼르고 있으니

 

 

적응해도 소용없다.

제기룰.

 

무엇보다 '자기도 바쁜매장에서 일해봤는데 여기가 그럴만한 데인가' 라며

 '다 잡아낼거다'라고 으르렁거리는 사장2와 함께 앞으로 2주간 일해야 한다는 게 걱정이다.

내 목표는 앞으로 1달 반을 더 해서 3달 채우고 그만두는 건데...

이것도 적응해볼 일인 것인가.

어느새 속으로는 빙수 종류를 예상하고 있다.

팥빙수/녹차빙수/커피빙수/딸기빙수/과일빙수/  하나는 또 뭘까. 초코?

 

제기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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