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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일 벌이기

그 팔빠지던 테이크아웃점은 지난 주에 그만두었다.

그만두는 데에도 이런 저런 사정들이 있었지만

어느 날, 함께 일하던 점장이 나보고 "네가 몸이 좀 약한 것 같아."라고 해서

그만두겠다고 말할 수 있었다.

물론, 머신을 붙들고 잠시 울었다.

커피프린스에 나오는 은찬과 동일시해가며(그게 되냐고? 나는 일단 그랬다는 얘기다)

사람들과 농담도 주고받고

사는 이야기, 빈집에서 하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도 슬금슬금 꺼내고

이리 저리 아양떨어가며 즐겁게 일했는데.

정말 인간적으로 마음이 가더라.

이런 끈끈함이 나중에 정치적 동맹을 이끄는 바탕이 되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좀더 해보고 싶었고, 이 사람들과 더 깊게 사귀고 싶었는데

난 고은찬처럼 체력이 좋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점장이 하는 일과 다름 없이 일해도 비정규직 파트로 규정될 뿐이라고,

그 임금이 너무 처절하다고... 이런 불온한 사상을 가졌다.

 

나는 점장을 꼬셔서 혹은 압박해서 조금씩 은근히(대놓고는 못했다. ㅎㅎ) 몇 가지를 요구하였다.

가끔 나와 한 팀을 이루었던 파트타임 아저씨(나보다 한 살이 많다. ㅎ)와 쿵짝하여

사장을 압박하는 카드도 썼다.

그래서 5월 초에 '빙수 6종'을 메뉴에 추가하려 했던 사장의 계획은 

빙수 그릇만 사놓고 시행되지 못했다. 

그리고 소박한 신경전 끝에 오후에 파트타임 알바를 한 명 더 고용하기로 하였다.

아마 어떤 길드든 간에, 팀웤으로 일하고 숙련된 기능공이 필요한 일들에서는

이런 식으로 약간의 줄다리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물론 사장은 오후 파트 1명을 더 고용한 것을 근거로 '빙수 6종'을 개시할 계획도 세우지 않았을까

생각은 했지만.

 

더는 할 수가 없었다. 요령이 늘어도 갈수록 힘들어지더라.

손목과 손끝에 힘이 빠져서 자꾸 물건을 떨어뜨리게 되었다.

어떤 날은 종이컵을 손님에게 건네는 것도 힘들었다.

주말에 쉬고 나서, 월, 화에는 그래도 계속해야겠다 마음먹다가

목, 금이 되면 정말 그만두고 싶어지고,

주말에 다시 쉬면 괜찮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목, 금이 되면 얼굴이 허얘지고.

점장은 처음엔 내 주말생활(텃밭일, 자전거타기, 집안 페인트칠, 빵만들기, 대청소, 훈늉한 카페들 투어 등)이야기에 귀를 쫑긋하며 즐거워하더니,

나중에는 주말에 밭에 가지 말고 힘을 비축하라는 말까지 했다.

그도 나와 오래 일하고 싶어 던진 말임을 알기에 그 말이 밉진 않았지만.

위태 위태하던 나는 결국 그만두었다.

 

 

그리고 열흘쯤 지났다.

한 이틀은 설거지도 안 하고 퍼져 있었고

하루는 3년간 못 뵈었던 스승님을 뵙고, 다른 지인들과 밤새 술을 마셨다.

그리고는 또 이틀동안 밀린 빨래, 방청소, 이불 빨래를 마구 했다.

그간 집안일을 당최 손도 제대로 못 대서 함께 사는 친구들에게 미안했었기 때문에.

 

그리고 오늘은... 일을 냈다.

드디어, 오늘 오전에

함께 빈가게를 하자고 논의하던 친구들과 가게 자리 몇 군데를 돌고는

결정한 것이다. 빈가게를 열기로.

서서히 빈마을 사람들이 다시 백수로 돌아오는 시점인데

이때를 놓치면 또다시 멀어질 것 같은 가게를 어떻게든 시작하고 싶었다.

나도 이대로 오래 백수가 되면 에너지가 떨어질 게 분명.

자리를 못 구하면 노점이라도 하겠다고 마음먹고 밀어붙였는데, 땡큐하게도

우리는 만장일치로, 해방촌 오거리 어느 지하 구석으로 계약하기로 마음먹었다.

만세~~~~

 

물론 우리가 운영할 가계엔 사장 따윈 없을 것이고, 파트 알바도 없을 것이다.

돈은 파트 알바만큼은 벌면 좋겠고, 일은 그보다 반 정도는 안 하는 방식이었으면 좋겠다.

계약서를 쓰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좀더 와꾸가 갖춰질 때까지 좀더 생각을 다듬어야겠지만

참으로 기분이 좋다.

잘 돼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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