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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누와 함께 한 하루, 그리고

1.

어제 '미누와 함께 하는 하루'  문화제에 다녀왔다.

조촐했지만 꽉 찬 느낌의 기자회견과 문화제가 하루 종일 진행되었다.

발언으로, 노래로, 하루동안 미누-되기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미누 실제 크기만한 상반신 사진 옆에서 폴라로이드를 찍었다.

어떤 이는 어깨를 걸고, 어떤 이는 볼에 뽀뽀를 했다.

사람도 얼마 없는, 외국인보호소 직원들 몇 명 나와 구경하는 작은 판에서

정말 할 거 다 하고, 소리 지를만큼 질러가면서.

 

 

 

2.

출입국사무소도 화성외국인보호소도 이렇게 들락거리는 건 처음이다.

그간은  이주노동자들의 표적단속 소식들을 들을 때마다 '씁쓸'한 심경인 채로 

적당히 포기하면서 모른척 소식들을 흘려보내곤 했었는데...

그런데 미누가 잡혀간 후로는 그게 잘 안되었다.

함께 식탁에 앉아 이야기하며 밥을 먹었던 것,

특히 미누가 해줬던 카레 감자볶음의 향내를 맡을 수 없게 되었다니..

방송국 일 하다가 자막 넣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던, 너무 친절해서 내가 더 미안했던 기억들,

그리고 어느 후원주점에선가 '손무덤'을 부르는 스탑크랙다운 밴드 앞에서 방방 뛰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찔렀던 게 생각났다. 

그 중에도

한 마을 사람으로서 미누 방에 들어가 물건을 챙기는데

마음이 점점 심난해지는 게,

수많은 옷들과 cd, dvd테잎들, 그리고 공부헸던 책들,

몇 개의 파일 속에서 나온 미누 기사 스크랩한 것들,

파란 가방에 모은 수십개의 500원짜리 동전들,

방바닥 구석에 있던, 꼬마 아이가 쓴 듯한 '미누 삼촌 귀여워요.' 색종이.

다문화 교육 자료집들, 다문화 사회에 관한 각종 워크샵 자료집들,

스탑크랙다운밴드 뮤직비디오 콘티 등등...

잡스러워 보이는 짐들이 하나같이 일관되고 성실하게 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흔적임이 드러날 때

나 자신이 심히 부끄러워졌다. 어떻게 이런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땀과 피와 눈물로 도배된 방을 두고

어떻게 그를 추방하는가 하는가.

그러니까, 이건 '고향'으로 돌려보내지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고향으로부터 뿌리뽑히는 것이다.

가장 소중한 기억들, 선물받아서 꼭 챙기고 싶은 물건들,

수습해놓아야 할 일들까지 몽창 한꺼번에 삶에서 박탈해버리고

몸만 들어 '강제 추방'하는 것.

어느 사회의 누가 감히 함부러 그럴 수 있는가.

방금 전까지 이 방에 있던 사람.

자신의 기억을 송두리째 빼앗긴 채 이주를 강요당하고 있는 실정은 다른 이주민들도 마찬가지겠지.

면회하러 갔을 때, 미누씨가 다급하게, 무엇보다 구두를 챙겨줄 것을 부탁했을 때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 후로 난 가슴 속에서 계속 지진이 일어나는 것처럼 불안하고 안달복달하게 된 것 같다.

간간히 보호소 안쪽으로 호송차량들이 들어오고 나가는데,

가슴이 철렁하고...

미누가 아닌 다른 이주자들도 비슷한 처지들일텐데, 그들은 얼마나 외로울까 하는 생각도 했다,

우리 말고도, 보호소에서 면회를 마치고 눈물을 찍어가며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그저께도 동대문 근처 이주민들 식당에 쳐들어가 바로 신원확인하고 사람들을 잡아갔다고 했다.

밥먹는 자리에서 그렇게 잡혀가버리고... 그 사람들도 좋아하는 옷가지 하나 챙기지 못했겠지...

 

3. 외국인보호소 소장님,

 3번 정도 마주친 것 같다. 그런 곳의 소장은 파워가 세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하여간 어쩌다보니 그 중 2번은 대화를 나눴다.

 

 <지난 주 금요일 새벽 6시 경>

소장 : 아니, 어디서 오신 분들이오? 왜 여기?

사람들 : 우리가 아는 사람이 어제 여기 잡혀들어왔다고 해서 놀라서 밤에 그냥 온 사람들이다.

소장 : 누구 만나러 왔는데요? 국적이 어디?

사람들 : ...그냥 저희는 그 사람 팬이에요. 가수거등요.

소장 : 아이고 이렇게 추운데... 내가 사람들한테 말할테니 안으로 들어가시든가요. 그래도 손님인데...

           다, 한국 분들인가? 한국 사람들만 있나요?

 

<이번주 화요일 오후 4시경>

소장 : 아, 내가 그분은 알아요. 면회오는 사람 많고...... 저번에 어느 날인가는, 새벽에 사람들이 요 앞에서 돗자리 깔고 달달 떨고 있는거야. 그래서 내가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으면, 우리 손님인데, 이렇게 밤새 밖에다 뒀다니 안 될 일이다, 어서 안으로 모셔라 그랬어요.

나: (그냥 웃음)

소장 :(내 표정을 알아보고) 그 때 계셨..어요?

나 : 네. 그 때 팬클럽이라고 했었잖아요. 제가.

소장 : 아, 그래요.. 하여간, 뭐 손님들한테 우리가 잘 하고 싶지요. 그런데, 이 일이, 또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또 해야하는 일이고... 안타깝죠, 저희도, 뭐 사연들이 안타까운 사연이 많아요. 그래도, 그분은, 뭐 알아보니까 이전에 한 번 풀어줬는데 해야할 사항을 제대로 이행을 안하고 또 도주하고 그런 거라서 어떻게 봐 드릴 수가 없어요.

 

 

손님. 우리를 그렇게 불렀었다.

밤새 달달 떨면서 보호소 앞에 돗자리 깔고 자고 얼어붙은 우리들이 그래도

'인간적'으로 불쌍하기도 하고,

더욱이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이니 '주인'의 입장에서 '손님'들을 환대할 의무가 있었겠지..

그건 우리가 다 '한국'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분의 일은 한국에 찾아온 손님을 내쫒기 위해 잠깐 수감하는 것이다. 

'보호'라고 이름붙인다고 해도 결코 도덕적 정당성을 얻을 수 없을.

그 바로 옆이 교도소 건물이기도 하고, 보호소 건물도 약식 교도소라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악의 평범성이라 하는 것이겠지.

처음 본 사람에게도 호의를 갖고 집안으로 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사람,

성실히 자기 집을 지키고 자기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저 반인권적인 국가폭력기관도.

그래도 지금은,

그나마, 양식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한가닥 도덕적 심성을 비웃을 수만은 없다.

오히려그런 심성을 가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문제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작은 꼬투리에도 희망을 걸지 않을 수 없다.

 

화성외국인보호소 내부 게시판이다. 다문화랜다.

 

외국인 불법고용, 인권침해의 시작?

 

...갸웃... 갸웃...

이거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하신 분, 리플 좀... ㅡ,.ㅡ;;

 

 

4.

오늘 아침에 홍성에 워크샵이 있어 기차를 탔는데, 입석이라서 자리를 얻어볼까 하고 카페칸으로 갔다.

자리는 없고, 창가에 테이블에 대충 기대서 한겨레 21과 경향신문을 봤다.

경향 1면과 3면에 미누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눈빠지게 읽고,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어떤 50대로 보이는 남성, 내가 펼쳐놓은 경향1면을 보다가 내가 오니깐 "요 기사만 잠깐 보고 드릴게." 했다.

미누 기사였다.

"네, 그러세요."

짐짓 모르는 척, 그러다 2초쯤 후에 말했다.

"그 사람... 제 친구에요."

"네? 요기, 요 사람? 요 사람을 안다고?"

"네, 친구에요."

조금 두근거려 하면서. 50대 남성, 왠지 보수적일 것 같지 않은가.

"아이고.. 면회는 가 봤어요?"

"네, 몇 번 다녀왔죠. 원래 가수인 친구라 이쪽에선 유명하기도 한 친구에요."

"아, 그래... (기사를 읽다가) 밴드도 했었네?"

"네, 가수에요. 노래 잘해요."

한참 읽다가 그 남성, 이런 사람은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높은 사람들한테는 맨날 예외라고 하는데, 이런 사람들이나 좀 그러면..."

 

반가웠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거 걍 보세요. 전 다 봤어요."

신문을 그냥 드렸다. 3면에도 미누 기사가 있지 않은가.

 

오늘은 손석희 시선집중에도 고병권샘 인터뷰가 나간 것 같던데..

낼은 mbc뉴스데스크에도 나온다고 한다.

미누를 몰랐던 사람도 미누의 친구가 되어 주기를 그야말로 간절히 바랄 뿐이다.

 

5. 세탁기가 고장났다.

우리집 말고, 넷빈집의 세탁기가.

네오에게 미누 옷 세탁을 좀더 부탁하려 전화했다 듣기론

미누의 옷가지를 세탁하던 중,

아예 멈추셨단다.

그래서 미누의 옷들이 젖은 채로 있고,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란다.

세탁기를 고치거나 새로 사야 할 판이다.

저번에 처음으로 미누 옷 세탁할 때는 뚜껑이 깨져 날아가더니

(그래도 세탁은 되었다. 그래서 보내달란 옷을 보낼 수 있었다)

이번에는 아예 망가진 것이다. 아무리 미신같은 이야기지만,

'세탁기야, 너도 보내기 싫은 거냐.'

속으로 그랬다.

남은 옷들은 당분간 세탁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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