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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직무대행’과 재능교육지부 ‘비대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지난 13년간 이어져 온 학습지노동자들의 노동3권 쟁취를 위한 투쟁은 특수고용직노동자투쟁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지난하고 힘겨웠던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던 힘은 다수의 무원칙한 타협과 배신을 넘어 원칙을 지키며 싸워 온 조합원들과 그들을 엄호하고 지지 ․ 지원한 연대동지들입니다.

하지만 최근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과 재능교육지부의 이른바 ‘직무대행’과 ‘비대위’(‘비대위’ 구성원들은 지난 2월말 ‘비대위’ 대신 재능교육지부장 ‘직무대행’(오수영)을 선출했다고 공지했으나 더 잘 알려진 ‘비대위’로 쓰겠습니다.)는 재능교육지부 투쟁승리를 위한 공대위와 기독대책위, 비없세 동지들이 ‘비대위’ 구성에 반대하며 모든 조합원이 단결해서 싸울 것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측에 ‘비대위’ 명의의 공문을 보내는 등 앞장서서 분열상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키며 일련의 과정을 진행시킴으로써 연대 동지들의 절절한 바람과 노력을 폄훼하고 동지적 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덕목인 신뢰를 짓밟았습니다.

따라서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과 재능교육지부의 ‘직무대행’과 ‘비대위’는 운동적, 정치적으로 그 어떤 정당성과 타당성도 갖추지 못한, 따라서 인정할 수 없는 형식에 불과합니다.

 

2. ‘직무대행’과 ‘비대위’는 지난 학습지노동자들의 투쟁 가운데 가장 처절하면서도 가장 사회적인 연대의 힘으로 이어져 온 재능교육지부 투쟁의 운동적, 정치적, 사회적 과정을 무시하고 1,900여일에 이르도록 함께 쌓아온 모든 성과물을 자신들의 지난 행위를 덮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켰으며 심지어 투쟁(종탑농성)까지도 그를 위해 활용하고 있습니다.

종탑농성 한 달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자신들도 참석하여 진행된 공대위 회의의 결정사항이었던 주요 투쟁들을 모두 폐기되도록 만들고도 이렇다 할 투쟁도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고, 종탑농성 돌입 이틀 만에 사측에서 먼저 요청해 온 교섭 역시 단 한 차례도 진행시키지 못한 채 투쟁동력은 점점 더 떨어져 가고 혼란은 더욱더 커져만 가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3. ‘직무대행’과 ‘비대위’는 종탑농성을 준비하는 과정과 종탑농성에 돌입한 당일부터 현재까지 종탑농성을 사측과의 투쟁 마무리(타결)에 온전히 복무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함께 싸워온 동지들을 배제하는데 동원하였을 뿐만 아니라 타결 이후 현장에 복귀하여 투쟁의 성과를 더욱 확장하는데 있어서도, 그 어떤 책임 있는 행동을 하겠다는 의지도 자세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직무대행’과 ‘비대위’는 회의 구성원이 똑같은 ‘재능지부 해고자회의’, ‘재능교육지부 조합원회의’, ‘재능교육지부 총회’등을 며칠 단위로 개최하여, 선거관리규정까지 어겨가며, 작년 재능교육지부 사무국장직을 사퇴한 오수영을 지부장 직무대행으로 선출했다 하고, 역시 본조 사무처장직을 사퇴한 유득규를 직제에도 없는 재능교육지부 집행위원장으로 선출했다 하고 있습니다. 또 소집권자도 불참하고 공고기간도 15시간 남짓에, 고작 아홉 명이 참석한 서울경기지역본부 조합원회의를 통해 황창훈을 비대위원장으로 선출했다고 하는 등 종탑농성을 진행하면서 사측에 맞서 총력투쟁을 진행하기는커녕 오로지 자신들만의 체제를 구축하는 것에 매진했습니다.

그 와중에 해고자 한 명을 ‘비대위’ 구성원에서도 제외시키며 복직대상자가 한 명 줄어들었음을 사측에 공개적으로 알려주고 두 명의 해고자는 철저히 배제시킴으로써 타결 후에 사측의 전방위적인 공세에 맞서 싸울 자체 동력을 심각하게 훼손했습니다.

 

4. 공대위와 기독대책위, 비없세, 투쟁사업장 동지들의 헌신과 노력은 단지 연대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지난 5년여의 투쟁과정에서 지원대책위. 재능OUT 국민운동본부, 공대위를 거치며 조합원들과 정치적 ․ 물리적으로 함께했을 뿐만 아니라 조합원들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었던 투쟁에, 조합원이 아니어야 더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투쟁에 앞장섰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누가 뭐래도 재능교육지부 투쟁에 있어 당당한 주체들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들은 지독한 곤경에 빠져 있습니다. ‘직무대행’과 ‘비대위’의 일련의 행위는 사측과의 투쟁 마무리를 더욱 어렵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지금까지 투쟁을 같이 해 온 숱한 유무형의 연대세력들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5. 결국 ‘직무대행’과 ‘비대위’는 동지적인 신뢰를 져버렸고, 연대투쟁의 의의를 훼손했으며, 형식을 앞세워 노동조합 민주주의를 파괴했습니다. 또 특수고용노동자투쟁과 장기투쟁의 상징인 재능교육지부 투쟁의 마지막 고비에서 우리의 투쟁동력과 정당성을 훼손하고 사측에게 유리한 국면을 열어주는 퇴행을 저질러 장기투쟁과 고공농성투쟁의 역사에 오점을 남겼습니다.

 

6. 재능교육지부투쟁은 이미 비정규직 최장기투쟁사업장의 기록을 넘겼습니다. 1895일이라는 최고 기록을 눈앞에 두고 강행된 종탑농성이 그 방식에 걸맞은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이 문제에 대해 정확한 입장을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는 재능교육지부 한 곳만의 문제가 아니며 장기투쟁 사업장 어느 곳의 문제도 될 수 있고, 노동운동 진영의 고질적인 문제들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종탑에 사람이 있는데……”라는 절박한 마음 때문에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떠나 일단 ‘직무대행’, ‘비대위’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실제 그런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종탑농성이 자본에 타격을 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내부에 타격을 가하고, 끝내 지난 1,900여일의 투쟁을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게 할 수도 있는 엄중한 상황이기 때문에, 도리어 ‘직무대행’과 ‘비대위’의 실상을 정확히 객관화하는 것만이 사측과의 투쟁을 승리로 이끌고 재능교육지부 투쟁의 성과와 의의를 살릴 수 있는 길이라 확신합니다.

 

 

2013. 3. 11.

 

 

강종숙, 박경선, 유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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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교육지부 투쟁관련 입장서(강종숙, 박경선, 유명자)

재능교육지부 5년 투쟁의 과정과 종탑농성의 문제에 대하여

 

한 달 전 재능교육지부의 해고자 2명(오수영, 여민희)이 혜화동 성당의 종탑에 올랐습니다. 바로 이어 재능교육지부의 해고자 일부가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구성했다고 선포하고 종탑에 오른 오수영 해고자(작년 8월 재능교육지부 사무국장직 사퇴)가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었다고 하더니 재능교육 사측에 교섭공문까지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는 모두 노동조합의 규약과 선거관리규정을 위반한 것입니다. 재능교육지부가 속한 학습지노조는 산별노조이기 때문에 비대위는 노동조합 중앙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하며, 교섭 체결권 역시 학습지노조 위원장에게 있으므로 교섭 체결권이 없는 사람이 공문을 보낼 수도 없고 보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자진사퇴를 한 자는 1년간 입후보자격이 제한되기 때문에 오수영 해고자는 비대위원장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지난 5년의 투쟁을 함께한 재능교육지부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단위들 대다수가 비대위 구성에 반대하며 모든 조합원이 단결해서 싸울 것을 요청했는데도 불구하고 분열상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키며 일련의 과정을 진행시킨데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갈등상황이 더욱 증폭되면서 종탑농성의 목적과 성격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고, 공대위와 연대동지들에게도 혼란스러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저희는 현재 종탑농성이 재능교육지부 5년 투쟁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아니라 오히려 지난 5년여의 투쟁성과마저 날려버릴 수도 있는 최악의 결과를 만들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비대위를 만든 뒤 저들이 펴고 있는 주요 주장이 사실과 다른데도 그동안 일일이 논박하지 않은 이유는 어찌됐건 종탑에 오른 사람들이 있기에 최대한 인내할 수밖에 없었고, 비정규직최장기투쟁사업장으로서 5년 투쟁을 넘어 종탑농성이라는 상황을 앞에 두고 분열상을 회사와 경찰 앞에 드러내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울산과 평택, 아산에서 고공농성을 전개하고 있는 동지들과 수많은 투쟁사업장 동지들에게 미칠 악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공대위에 함께하며 헌신적으로 함께 싸워온 동지들을 참담하게 만들 것이 너무나도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비대위 논란을 넘어 학습지노조 전체가 파행으로 가는 사태까지 상황이 악화되고, 이러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 동지들의 제안을 거부하고 그들에게까지 막말을 퍼붓는 모습에 더해 그 동지들의 진의를 왜곡해 거짓 입장서까지 게시하는 모습을 보며 더 이상 감춘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재능자본과의 당면 싸움, 나아가 구몬학습, 대교, 웅진씽크빅 등 거대 학습지자본과의 싸움을 책임져야 할 학습지노조를 더 이상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문제는 그냥 덮고 지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민주노조라면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되는 일련의 행위를 반복해서 벌여온 자들의 본모습을 제대로 알려 다시는 이러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지금 왜 이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지에 대해 분명히 밝히고,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쟁취 문제를 명확하게 알려낸 재능교육지부투쟁이 지금이라도 올바로 마무리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1. 재능교육지부 투쟁요구안을 둘러싼 논란들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복직. 이제는 재능교육지부투쟁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투쟁요구안입니다. 하지만 지난 투쟁기간 내내 이에 대한 냉소와 이를 흔들려는 움직임이 계속해서 안팎에 존재해왔고, 결국 작년 정기대의원대회에서「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복직 관련하여서는 이미 결정된 내용을 확인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대의원대회 하급회의에서는 재론할 수 없다. 이의 수정을 요구할 경우 대의원대회 또는 총회를 소집하여 논의 ․ 결정하여야 한다.」라는 결의까지 이끌어내야 했습니다.

특히 2012년 3월경 서비스연맹 강규혁 위원장이 강종숙, 유득규, 유명자, 오수영에게 “우선 복직 후에 단체교섭을 시작하자”는 안을 제시하면서 이를 수용하라 강력히 요구했고, 이에 대해 강종숙과 유명자가 주도적으로 수용을 거부했습니다. 재능교육지부는 이미 2000년에 특수고용노동자 최초로 회사와 단체협약을 체결했고 그 후 4차례에 걸쳐 갱신체결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2008년말 회사가 일방적으로 단체협약을 파기하였습니다. 노동조합은 이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대의원대회와 중앙위원회 등에서 노동조합 요구안을 논의하면서 ‘단체협약 원상회복 후 투쟁종료’라는 결의를 거듭했습니다. 따라서 ‘선 복귀 후 교섭시작’이라고 하는 안을 수용할 수도 없고 수용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득규는 “수용할 수 있는 안은 아니지만 사측과 직접 교섭을 여는 것이 중요하므로 일단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오수영은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강종숙이 유득규, 오수영을 설득해 수용거부로 최종입장을 정리하자 이현숙이 앞장서서 문제를 제기했고, 이후 서비스연맹은 공대위에서 철수한 것은 물론, 학습지노조가 민주노총에 요청한 민주노총 주관 집회에 대해 계속해서 ‘반대’ 의사를 표명하며 투쟁을 가로막았습니다. 서비스연맹 수석부위원장 박영수는 서비스연맹 부산울산경남지역본부 소속 간부들과 재능교육지부 영남권 해고자들을 만나 강규혁의 안을 노조가 수용해야 하는데 강종숙, 유명자가 고집을 부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라는 발언을 하고 다니기까지 했습니다. 강규혁이 안을 제시한 직후인 작년 4월말 오수영이 작성한 문서를 보면 [회사는 “노동자가 아니기에 노동조합을 인정할 수 없다” 에서 “들어와서 단체협약을 이야기 하자”고 한다.(물론, 강규혁위원장의 안이 회사의 입장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이것을 사실로 인정한다면 회사가 우리에게 내줄 것은 다 내준 것이다. 이제 명분이 남았다.]라고 하며 강규혁의 안에 대해 노동조합의 입장과 사뭇 다른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그 전에도 사측은 교섭이 진행되기 전 항상 협상의 첫째 조건으로 재능교육 회장 집 앞 선전전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는데, 강종숙은 4년 넘게 단 한 주도 이를 거르지 않고 해왔으며, 오히려 노동조합 안팎에서 사측의 협상안을 흘리며 이를 잠정중단 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외에도 사측과의 교섭국면이 열리거나 이러저러한 안이 제시되면 언제나 “양보와 타협”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거나 은연중에 흘리는 상황이 되풀이되었습니다.

 

2.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복직은 합의서 상의 문구가 아니어야 합니다

 

해고자 전원복직은 말 그대로 해고자 전원이 자신들의 힘으로 투쟁해서 원직에 복직해야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재능교육지부처럼 현장에 조합원이 단 한 명도 없을 때는 더욱 절실합니다. 그러나 1,900일 투쟁의 첫 해고자 중 한 명인 오수영은 해고된 얼마 후부터, 자신은 계속 싸울 것이기는 하지만 복직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해왔습니다. 여민희는 투쟁 1년 즈음부터 아무런 논의 없이 다른 학습지회사에 다니기 시작했고 다시 얼마 후 직접 학원을 인수해 사업장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부산지역 해고자 중 1인도 해고 후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은 복직의사가 전혀 없으므로 투쟁에서 빠지겠다고 하여 노조에서 지원금이 나가지 않은 지 오래됐고, 비대위를 구성했다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 비대위 구성원에서조차 제외됐습니다.(이는 복직대상자가 한 명 줄어들었음을 사측에 공표하는 행위입니다.) 비대위를 만든 나머지 해고자들 중 상당수도 해고 당시부터 현재까지 매일 진행되고 있는 저녁 투쟁문화제에 온전히 참여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심지어 연대단위 동지가 지켜보는 데서 오수영과 황창훈은 “집회 사회를 봐라.” “못 보겠다.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냐.”라고 하며 목소리를 높여 싸우기까지 했습니다.(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보다 못한 강종숙이 이미 2011년 7월에 <재능교육지부투쟁의 주체는 재능교육 해고자들이어야 한다>라는 문서를 작성해, 해고자들이 재능교육지부투쟁을 자신의 투쟁으로 받아 안고 싸워야한다고 요청했지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문서에서 강종숙은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원직복직 의사도 없는 해고자가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해서 무엇을 할 것이며 원상회복을 사활적으로 생각할 이유는 또 무엇이겠는가? 원직복직 투쟁은 해고당사자가 없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절대로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또 해고자가 재능교육지부 조합원의 절대 다수이고 핵심인 상황에서 정작 현장에서 일할 의사가 없다면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한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데 투쟁 과정에서 이런 행동을 한 비대위 구성원들이 달랑 10명 남은 해고자 가운데 또 다시 2명(유명자, 박경선)을 배제하였습니다. 그것도 교섭이 한창이던 작년 7월, 사무국장직을 사퇴해 집행간부의 책임을 져버린 오수영을 비대위원장과 지부장 직무대행으로 ‘옹립’하며 보란 듯이 배제를 선언하는 모습에서, 먼저 사측에 부끄러웠습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단 8명의 조합원으로 단체협약을 끝까지 지켜내며 싸울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사측이 그 8명이 무서워서 단체협약 사항을 다 지킬 것이라고 믿는 것인지, 10명이 단결된 모습으로 힘 있게 투쟁을 마무리하고 죽을힘을 다해 싸워야 하지 않는지, 정말 묻고 싶습니다.

 

3. 재능교육 본사 앞 혜화동성당 종탑은 지금 누구에 대한 무기가 되었는가?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유성기업, 쌍용자동차 등의 투쟁사업장 동지들이 모두 100일 넘게 고공에서 농성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조합원들과 사전 논의나 공유 없이 고공농성을 시작한 경우도 있지만, 농성투쟁이 해당 자본을 명확하게 겨냥하고 있고, 함께 투쟁했던 지도부에 대한 배척이나 요구조건의 변경 등이 발붙일 여지없이 확고합니다.

반면 재능교육지부의 고공농성은 비대위측 해고자들끼리 사람, 날짜, 장소 등을 모두 결정한 후 고공농성 돌입 나흘 전에 강종숙, 유명자, 황창훈에게 그 어느 것도 말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통보하였으며, 강종숙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사람만 알려줬고, 3인 모두 이를 반대했습니다.(이후 황창훈은 종탑농성 전날 ‘비대위’에 동참) 강종숙이 고공농성 돌입 당일 새벽까지도 다시 논의해보자 요청했지만 묵살당했습니다.

비대위측은 이미 자체적으로 상황실장(유득규) 등 역할분담을 한 상황이었고, 서비스연맹과 통합진보당 등 원래 공대위 참여단체지만 활동을 하지 않던 조직들에게, 고공농성 당일 밤부터 공대위 참여를 요청하고 임의로 회의를 개최하는 등 기존 체제를 부정하며 일을 진행했습니다.

비대위 측은 종탑농성 초기부터 기존 공대위 단위에게마저 시종일관 “종탑투쟁에 복무하지 않고 일방의 입장에 따라 이런저런 소리나 퍼뜨리고 다니려면 아예 빠져라.”라고 하였고, 공대위 단위들과 강종숙이 조직과 당면투쟁을 파행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는 비대위의 공식화를 극구 만류하였음에도 일언지하에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또한 교섭체결권도 없는 비대위 명의로 사측에 교섭공문을 보내는 등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결국 종탑농성 한 달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자신들도 참석하여 진행된 공대위 회의의 결정사항이었던 주요 투쟁들이 모두 폐기된 채 이렇다 할 투쟁도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고, 종탑농성 돌입 이틀 만에 사측에서 먼저 요청해 온 교섭 역시 단 한 차례도 진행시키지 못한 채 투쟁동력은 오히려 더 떨어져 가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종탑농성을 진행하면서 사측에 맞서 총력투쟁을 진행하기는커녕 공대위 동지들과 함께 결의한 투쟁마저 모조리 폐기시키면서 ‘재능지부 해고자회의’, ‘재능교육지부 조합원회의’, ‘재능교육지부 총회’(이 회의 모두 구성원은 결국 똑같음) 등을 진행하며 내부갈등만 증폭시키는 종탑은 무엇을 위한, 누구에 대한 무기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4. 또 다른 논란거리들?

 

-종탑농성에 함께할 수는 없었나? 지금이라도 함께해야 하는 것 아닌가?

 

5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장기투쟁을 온전히 이끌어 온 위원장(처음 1년은 직무대행)과 지부장으로서 투쟁의 결정적 국면에서의 판단은 정말 신중해야 합니다. 앞서 밝힌대로 재능교육지부 해고자들과 조직의 상황은 어려웠습니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어쨌든 포기하지 않고 싸워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2월 2일 유득규에게서 확인한 한 가지 사실이었던, 종탑농성을 결의한 해고자의 이름을 듣는 순간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민희는 자신의 사업장을 가지고 있는 진짜 ‘사장님’입니다. 그래서 유득규에게 물었습니다. “학원은 어떻게 하고 고공농성을 하겠다는 겁니까?” “잘은 모르지만 어떻게 처리하고 온 것 같습니다.” 오수영은 시어머니와 같이 살고, 이제 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그래서 또 물었습니다. “애는 어떻게 할 거며, 시어머니한테는 말했습니까?”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결의했습니다.” 사장님을 믿고 모든 것을 걸 수는 없었습니다. 투쟁 초기부터 복직하지 않겠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닌 해고자를 믿고 모든 것을 걸 수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여민희는 종탑농성 직전인 작년 12월부터 그나마 한 번 뿐이던 주중 밤 농성에서 빠졌습니다. 오수영도 올해 1월부터 생계를 나간다며 월요일, 화요일 투쟁에 결합하지 않았습니다. 이현숙은 앞에서 밝힌 것에 더해 역시 올해 1월부터 생계를 나간다며 월요일, 수요일 투쟁에 결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루아침에 고공농성을 결의했다고 하는 말을 듣고 어떻게 “알겠습니다. 함께 합시다.”라고 말 할 수 있습니까?

 

재능교육지부는 지금도 시청 환구단 앞에 농성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때 시청 농성장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방치되겠죠.”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방치되는 게 아니라 철거되는 거잖아요?” “뭐 그렇게 되겠죠.” 당시 고공농성 장소가 어딘지도 알 길이 없었던 저희들은 2년 넘게 거점으로 기능해 온 환구단 농성장을 그렇게 쉽게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또 길 건너 대한문에 있던 농성촌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방치 후 철거를 쉽게 용인할 수도 없었습니다. 투쟁하는 조합원이 30명이 채 안 되는 쌍차지부 동지들은 당시 5군데의 거점을 유지하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종탑농성 첫 날 공대위 회의에서 종탑농성에 복무할 수 있는 긴급 투쟁계획을 수립함과 동시에 공대위 동지들에게 충분히 설명을 하고 동의를 얻어 환구단 농성장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에 문자로 유득규에게 물었습니다. “앞으로도 쭉 전원이 거기 있겠다는 건지?”, 답이 없었고 환구단 농성장을 유지한다는 이 날 공대위 결정에 대해 지금까지도 분노에 찬 성토가 난무합니다.

 

종탑농성 당일 비대위측에서 불러 모은 단위들과의 회의 장소에서 서비스연맹 조직국장은 “학습지노조 임원들의 임기가 언제까지인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며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당시 그 문제를 거론하고 있던 유일한 단위는 현재의 비대위뿐이었습니다. 이심전심인가요? 찰떡궁합인가요? 우연의 일치인가요? 이미 그 날 오후 5시경, 오래 전에 공대위에서 철수하고 재능교육지부 관련 총연맹 주관 집회도 반대하고 학습지노조 집회에도 계속 불참하던 서비스연맹은 ‘종탑고공농성 촛불문화제’에 연대할 것을 요청하는 문자 전송을 했고 이후 문자 전송은 물론 서비스연맹 홈페이지에 배너창을 띄우는 등 강종숙, 유명자가 지도부로 있던 지난 1,870여 일 동안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개과천선하여 상급단체로서의 본분을 다 하는 걸까요?

 

종탑농성 당일 성당측에서 강제진압에 들어가려 하던 경찰의 철수를 요구했습니다. 농성시작 이틀 후에는 종탑농성장에서 전기장판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전기사용을 허락했습니다. 또 얼마 후 주임신부님이 신도들에게 절대로 농성하는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해서는 안 되며 안 좋은 말도 삼가라고 강론하셨습니다. 침탈로부터의 안전은 확보된 것입니다. 그러나 비대위측은 계속 ‘위기론’을 설파하며 투쟁의 확산이 아니라 종탑사수만을 되뇌고 있습니다. 인수위 투쟁, 타 사업장 연대투쟁(골든브릿지지부 파업투쟁 300일 집중투쟁에 단 한 명도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재능교육의 부당한 일감몰아주기(파이낸셜 투데이 기사 참조. ①http://www.f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997, ②http://www.f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652)에 대한 폭로 및 타격투쟁 등에 눈 감고 등 돌렸습니다.

 

종탑농성 돌입 다음날, 황창훈, 유득규는 사람은 열어 놓고 비대위로 가야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지부장이 지부 회의를 일방적으로 중단한 것에 대해 사과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강종숙은 현 상황에서 비대위는 최악의 선택이므로 종탑농성으로 회사를 압박해 교섭을 빨리 진행시키는 것으로 하고, 이 투쟁을 마무리 할 때까지만 외형상으로 현재의 위원장, 지부장 체제로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투쟁과정이 있는데 어느 일방에게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준법서약서나 사상전향서를 쓰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부장이 사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들만의 비대위를 일사천리로 진행시켰습니다. 허수아비 비대위원장으로 내세우려던 강종숙마저 끝까지 비대위를 반대하자 비없세 동지들과의 약속을 파기하고 거수기 대의원을 동원해 지도부 논란의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종탑농성 초반 자신들도 참가한 공대위 회의에서 결정한 투쟁계획들을 모조리 폐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오로지 자신들만 납득할 수 있는 “투쟁체계”가 필요했기 때문이랍니다. 비대위를 구성하고 온갖 단위 회의를 소집(전날 밤 10시 반에 공지하고 다음 날 오후 1시 반에 소집권자도 불참한 가운데 달랑 9명이 참가해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해 자기들끼리 이러저러한 감투를 나눠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나마 규약과 선거관리규정을 정면으로 거슬러 합법적이지도 않을뿐더러 그 정당성도 없습니다. 결국 사측이 종탑농성 돌입 이틀 만에 교섭요청 공문을 보내왔지만 이와 같은 자중지란 속에 이젠 교섭길도 막혀 버렸습니다.

 

황창훈, 유득규가 민주노총 서울본부장님을 찾아가 공대위 집행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그 서울본부장님이 강종숙, 유명자, 유득규, 황창훈에게 재능교육지부의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새로운 논의테이블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유득규는 단칼에 거부했습니다. 자신들을 지도부로 인정하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라는 이유였습니다.

 

공대위 동지들조차 “유빠”로 매도하며 스스로를 고립시켰습니다. 그 많은 공대위 단위와 투쟁사업장 동지들이 유명자의 농간에 놀아날 정도로 멍청하지 않습니다. 강종숙의 일방적인 거짓선동에 세뇌되어 상황판단을 못 할 정도로 모자라지도 않습니다. 재능교육지부 투쟁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 누구보다 심지어 재능교육지부 해고자들보다 더 열심히 함께 싸워온 동지들입니다. 그런 공대위 단위 동지들도 눈에 띄게 종탑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정말 골수부터 “유빠”라서 그렇습니까? 비대위가 지난 한 달, 나아가 지난 5년 자신들이 어떠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답은 간단합니다.

 

-강종숙, 유명자의 임기가 끝났기 때문에 새 지도부를 선출해야 한다?

 

투쟁요구안을 훼손하지 않은 것은 물론 이를 훼손하려는 양보안을 들이민 세력들을 끝까지 막아낸 지도부를 제치고, 이 시점에서 왜 새 지도부가 필요한지에 대해 비대위가, 투쟁하는 동지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야 합니다. 임기가 끝났기 때문이란 말은 핑계입니다. 그동안 임기가 문제가 되어 투쟁을 못한 적도 없었을 뿐 아니라, 기륭전자분회, 콜트콜텍지회 등 다른 어떤 노조도 비상투쟁의 상황에서 이를 문제 삼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학습지노조 역시 지난 5년간의 투쟁 와중에 단 한 차례도 임기 내에 선거를 마무리한 사실이 없고, 2008년 황창훈은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으면서 선거관리업무를 제대로 진행시키지 않아 한 달 이상 선거과정이 중단되기도 하였으며, 2010년에는 임기를 4개월간 연장(각 단위 임원들이 모두 재출마하기로 했기 때문에 셀프연장에 해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조합원들과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회의를 진행하지 않았다?

 

투쟁 5년 동안 학습지노조와 재능교육지부는 5~6명의 간부가 모든 일을 떠맡았습니다. 노동조합의 기능은 거의 상실한 채 불가피하게 ‘재능교육지부 투쟁위원회’처럼 운영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항상 사측과 경찰, 구청 등의 탄압에 제대로 맞대응을 하지 못해왔습니다. 회의에서 결정한 투쟁계획은 사실상 강제력 없이 누군가 내키면, 또는 할 수 있으면 하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나마 2011년 7월 말부터는 이현숙과 황창훈이 요구하고 유득규, 오수영이 함께하며 유명자, 강종숙의 “폭언폭행”에 대한 진상규명을 주장하면서 모든 회의들이 파행이었습니다.(①2011년 7월말 경 학습지노조 남성조합원 전원이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집회신고를 위해 혜화경찰서에서 노숙대기 중이었고, 오수영은 급성패혈증으로 입원 중인 상황에서 이현숙이 문자로 환구단 농성 어렵다고 유명자에게 통보를 하자, 유명자가 이현숙에게 “이런 식이면 앞으로 투쟁에서 빠져도 된다.”는 취지의 문자를 전송했는데, 농성이 불가능하다던 이현숙이 재능교육지부 환구단 농성장에 나타났고 이에 유명자가 돌아갈 것을 요구하다 시비가 발생했습니다. 이 날 이후 이현숙이 1년 넘게 “폭언폭행”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했습니다. ②중앙위원회 정회시간에 강종숙이 황창훈의 목을 밀치자 황창훈이 날아서 뒤로 넘어짐. 이현숙의 “폭언폭행”에 대한 진상조사에 황창훈도 가세, 이후 모든 회의에 상당기간 불참. 황창훈은 2006년부터 당시 대교지부 해고자, 한솔교육지부 해고자와 주먹다짐을 한 바 있고, 2010년 말경 강종숙에게 폭력을 행사하였으나 불문에 부침)

특히 이현숙과 황창훈은 회의에서 중도퇴장하거나 아예 불참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회의 결정사항을 인정할 수 없다고 공공연하게 밝히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득규, 오수영마저 각각 사무처장, 사무국장직에서 사퇴했습니다. 그 후 유득규, 오수영, 이현숙, 여민희, 강경식은 ‘재능교육지부’회의라는 이름으로 자기들끼리 별도의 회의를 진행해 왔습니다. 여러 차례 만류했음에도 집행부를 사퇴하고 집행기능을 마비시킨 이들이 이제 와서 강종숙, 유명자가 회의를 파행시켰다고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황창훈이 주도하고 이현숙과 함께하는 ‘비상대책위원회’?

 

황창훈은 지난 5년 투쟁에서 재능교육지부 전임자 3인(유명자, 오수영, 황창훈) 가운데 가장 태만했습니다. 노동조합의 집회 등 투쟁일정, 연대투쟁, 각종 행사에 아무런 연락도 없이 가장 많이 빠졌고 늦게 오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반면 학습지선생님을 그만 둬 현장과 무관한 조합원들과의 산행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챙겼습니다. 유명자가 단식을 하는 와중에도 유명자에게까지 버젓이 문자공지를 해가며 산에 갔고 산행 일정을 이유로 중앙위원회 등 회의 일정 변경을 요구하고, 산행뒤풀이를 한다며 중앙위원회에 불참하기도 했습니다. 그 산행모임에 참가하는 조합원들 절대다수는 지난 5년 동안 재능교육지부투쟁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습니다.

 

황창훈은 또, 재능교육지부 조합원 급감으로 인하여 재능교육지부에 지급되는 교부금이 매우 미미한 수준으로 떨어져 사업을 해 나갈 수 없게 되어 학습지노조 본조와 각 지역본부, 각 지부에서 투쟁기금을 지원하자고 하자, 이에 반대했고 결국 본조에서만 재능교육지부에 매월 45만원씩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집행했으나, 본조 역시 해고자 생계비를 지급하고 나면 각 단위 교부금조차 지급할 수 없는 수준으로 재정이 악화되었습니다. 아울러 재능교육지부투쟁의 일환으로 진행했던 2차 희망걷기 분담금 40만원을 본조와 각 단위가 10만원씩 분담하기로 한 중앙위원회 결정(황창훈은 산행뒤풀이로 인해 불참)에 대해서도 문제제기하며 재결정할 것을 요구했고 결국 내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황창훈이 책임자였던 서울경기지역본부(당시 본부장 황창훈), 학습지노조해복투(당시 위원장 황창훈)는 각각 2010년 하반기, 2011년 상반기, 2009년 하반기 ~ 2011년 상반기의 회계감사자료를 중앙위원회의 결의와 회계감사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2012년 6월까지도 제출하지 않아 회계감사를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또 이미 2009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황창훈이 회계연도를 넘겨(최장 2년 이상) 제출한 백여만 원을 상회하는 영수증에 대해 유일하게 특례를 적용하여 지급처리한 사실이 있을 정도로 반복적, 상시적으로 규약과 규정을 위반해가며 조직을 어렵게 만든 장본인입니다.(당시 결정사항은 “이미 규정 위반된 부분에 있어서는 경과기간을 두어 8월 14일까지 제출하는 미지급영수증(2007년 7월 1일 이후 영수증에 한한다)에 한하여 2009년 상반기 회계감사 후 지급한다.”)

 

이현숙은 현재 진행 중인 재능교육지부투쟁의 발단이 된 단체협약을 체결한 장본인입니다. 당시 현장조합원들이 반대한 수수료제도(단체협약 내용)를 받아들여 재능교육 학습지선생님들의 임금을 현저히 하락시켰고 현장을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똑같이 일하고도 수십만 원씩 임금이 깎였고 이에 견디다 못해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2007년 교사 수 6천여 명, 2008년 교사 수 4,500여 명)

당시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 과정에서도 투표권 없는 조합원들의 표결권 행사, 대리투표, 찬성 강요 등 광범위한 부정선거를 자행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당시 대리투표 당사자를 징계했고, 부정선거 전반의 책임을 묻기 위해 징계위원회가 구성되었지만 투쟁상황 때문에 잠정 중단된 상황입니다.

당시 규약과 규정에 따라 요건을 갖춰 소집요구 한 재능교육지부 총회는 거부하였고, 학습지노조 대의원대회는 무산시켰습니다. 수수료제도 전면개정을 요구하며 투쟁하던 조합원들과의 약속을 수시로 파기하여 사퇴를 요구받자 당시 겸직 중이던 재능교육지부장직은 사퇴하지만 학습지노조 위원장직은 사퇴할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그래서 2008년, 강종숙이 선거를 앞두고 겸직금지조항을 발의해 규약개정까지 해야 했습니다. 그나마 사퇴약속에 대해서도, 사퇴요구 대상자들끼리 회의를 하여 번복했습니다.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규약 제42조(선출) 임원의 선출은 다음과 같다.

4. 조합, 지역본부, 지부의 각 단위 총회에서 선출하는 임원은 겸직할 수 없다.)

 

이현숙은 재능교육지부장을 사퇴한 이후에도 회사가 개인통장으로 입금한 전임자급여 3개월치 5백9십5만5천 원을 재능교육지부의 계속적인 반환 요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관리권한이 있는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통장에 입금하였고 이후 학습지노조 위원장을 사퇴한 이후에 임의로 출금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학습지노조 업무 인수인계 내용 중 재정 관련 사항은, 사퇴한 재능교육지부 사무국장과 본조 조직1국장에게 이중으로 지급된 교실복귀 지원금 문제와 재능교육지부 조합비 유용 등으로 인해 인수 유보되었고 현재까지 처리 안 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2008년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공금유용과 부적절한 재정집행을 이유로 이현숙에 대한 징계여부를 판단할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지만 역시 투쟁상황 때문에 잠정 중단된 상황입니다.

 

천막농성투쟁 시작 8일 만인 2007년 12월 29일, 당시 학습지노조 위원장(이현숙), 수석부위원장, 사무처장, 부산경남지역본부장(현재 해고자 12인 중 1인), 울산지역본부장(현재 해고자 12인 중 1인), 구몬지부장, 대교지부장, 인천부천지역본부추진위원장이 일괄 사퇴하였고, 이현숙을 비롯한 해고자들은 자신들이 해고되기까지 재능교육지부투쟁에 전혀 결합하지 않았습니다.

 

회사가 손해배상청구소송은 물론 각종 보도자료 및 공대위 소속 단위들에게 발송하는 모든 문서에 당시 수수료제도는 교사들에게 유리한, 업계최상의 내용을 포함한 것이었고, 노동조합과 정당하게 체결한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은 유명자 집행부이고 그 과정에서 노노갈등을 일으켜 이현숙 집행부를 부당하게 끌어내렸기 때문에 현재 집행부와 대화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고 있어서, 강종숙이 이현숙에게 이를 반박하는 진술서를 작성하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이현숙은 오히려 당시 수수료제도 변경으로 인해 모든 교사들이 임금삭감 당한 것이 아니고, 특히 현재 투쟁 중인 해고자들 가운데 임금이 올라간 사람이 더 많다라는 취지로 반박하였고, 수수료제도에 대해서는 자신이 자세히 분석하지 않아서 그 문제점에 대해 잘 모르며, 또한 당시 재능교육지부장 선거와 관련하여서는 한솔교육지부 복직투쟁 관련으로 구속되어 있어서 자신은 잘 모르므로 진술서를 작성하기 어렵다고 답변했습니다. 결국 이처럼 재능교육지부투쟁을 전면 부정하는 이현숙의 입장을 사무처장에게 전달하자 2012년 3월이 되어서야 진술서를 작성했습니다.

 

이현숙은 2012년 6월 중순경에는 통합진보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여성명부) 선거에 출마하였습니다. 출마 직전 유득규, 오수영에게 출마의사를 표명하자 모두 반대하였으나 출마를 강행했고(위원장과 재능교육지부장은 사후에 알게 됨, 이현숙은 당시 노조에서 전임자와 동일한 액수의 급여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음), 출마 후 이를 알게 된 위원장이 통합진보당 중앙당과 서울시당에 “서울시당 부위원장(여성명부) 후보자자격 관련의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발송했습니다, 공문의 내용은 [①재능교육지부 단체협약 잠정합의안 투표과정에서의 부정(대리투표, 투표권 없는 조합원들의 투표참여 등), ②조합비 임의집행 및 유용, ③중앙위원회에 해고자 원직복직 교섭진행상황 허위 보고, ④중앙위원회 결의사항 위반, ⑤학습지단일노조추진위원회 결의사항 위반 등의 행위를 하여 현재 징계절차에 계류되어 있기에 이현숙 후보에 대하여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것이었습니다.(하지만 전혀 문제되지 않고 선거 완주)] 사정이 이러했음에도 다시 2012년 7월 중순경, 통합진보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여성명부)선거에서 낙선한 이현숙이 학습지조합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통합진보당 서울시당 중앙대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습니다.

 

2006년 말, 당시 학습지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된 직후에 구몬학습 해고자 복직투쟁관련 합의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회사에는 해고당사자가 복직하지 않을 것이라 약속하고 합의서에만 복직을 명기한 채 그 합의서를 중앙위원회에 제출하여 통과시키기까지 했습니다. 당시 이현숙은 학습지 노조위원장이었음에도 특정 정파 성향의 간부와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사조직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었고 그 조직원들과는 이러한 사실 전체를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회사와 짜고 노동조합의 결의를 뒤집는 합의를 중앙위원회에 허위보고까지 해가면서 통과시킨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유득규, 오수영, 여민희 등이 최근 1년 이상 황창훈, 이현숙과 한 편이 되어 활동한 것에 더해, 이제 비대위까지 구성해 지난 5년 투쟁을 이끈 지도부에 맞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득규, 오수영은 중차대한 시기에 사퇴한 것에 대해 어떤 책임을 졌나? 왜 사퇴까지 해야 했나?

 

유득규, 오수영이 사퇴의사를 표명한 2012년 7월은 재능교육 사측이 대대적인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대승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전하던 때입니다. 그리고 노동조합과 10차례 넘는 교섭을 진행하고 있었고 당시 유득규는 교섭간사, 오수영은 교섭위원이었습니다. 결국 실제 교섭을 진행하던 교섭위원 3인 가운데 유명자를 제외하고 모두 사퇴한 것입니다.

또 유득규는 학습지노조 사무처장으로 강종숙과 런닝메이트였고, 오수영은 재능교육지부 사무국장으로 유명자와 런닝메이트로 재능교육지부투쟁의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측과 중요한 교섭이 한창일 때, 사퇴를 하고 이를 먼저 외부에 알리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강종숙, 유명자와의 의견충돌 때문에, 또는 조직운영 방식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었다 해도, 하필 그런 시기에 사퇴까지 하면서 노조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옳은 일이었을까요? 무엇을, 누구를 위한 행동인지요?

 

강종숙은 유득규에게 사무처장 업무를 하지 않아도 좋으니 4개월 남은 임기동안 만이라도 대외적으로 사무처장직은 유지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사퇴했습니다. 특히 유득규와 오수영은 2012년 3월 강종숙이 강규혁에게 그가 제시한 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노동조합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만나고 온 후, 강규혁이 “강종숙이 와서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는 거짓말을 하였는데, 이를 두고 “강규혁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더라”며 두둔했습니다.

강종숙은 당시 4년이 넘도록 해고 당사자가 아닌데도 수십 개의 전과를 달아가며 임금 100% 압류(현재까지 사측이 해제하지 않은 유일한 압류), 자동차압류까지 된 채 재능교육지부해고자들과 함께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용납할 수 없는 양보안을 제시하며, 투쟁을 방기하고 가로막기까지 한 강규혁의 말을 더 신뢰한 것입니다.

또 강종숙, 유명자에게는 임기가 끝났으니 어떠한 권한도 없다고 하면서 사퇴한 오수영은 재능교육지부 비대위원장이 됐다가, 재능교육지부장 직무대행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사퇴를 한 유득규 역시 비대위 집행위원장이었다가, 재능교육지부 집행위원장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강종숙이 위원장일 때 결정한 교섭간사 역할은 당연히 자신이 하는 것이라 주장하며 사측 교섭간사를 만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노동조합의 선거관리규정을 위반하면서까지 이런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선거관리규정 제10조(입후보자의 자격) 입후보자의 자격은 조합원에 한한다. 단, 조합으로부터 징계를 받았거나 자진 사퇴했을 경우에는 그 자격을 제한한다.

1. 탄핵 또는 자진사퇴의 경우 입후보 자격을 그 탄핵 또는 자진사퇴를 결정한 이후 1년간 정지시킨다.)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당선된 학습지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은 인정해야 한다?

 

비대위 사태가 일어난 후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이하 비없세) 동지들이 ‘중재안’을 만들어 양측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들이 제안한 안을 받아들여 학습지노조 대의원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중재안은 재능투쟁을 승리로 마무리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을 중심에 세웠습니다. 이에 따라 강종숙을 학습지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으로 세우고, 강종숙, 유득규, 유명자, 황창훈 4인의 교섭위원들이 함께 교섭과 투쟁을 책임지고 전개해 투쟁을 승리로 마무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제안도 사실 유명자를 ‘배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소중한 승리를 위해 받아들였습니다.(이에 대해서는 비없세 집행위원 3인명의로 작성한 2013년 2월 26일자 ‘재능교육 관련 논의에 대하여’ 참조)

비대위 측은 이러한 내용에 대해 자신들은 단 한 번도 동의한 적이 없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비없세 동지들과 자신들이 주고받은 문자가 있고 그들을 직접 만난 당사자가 있기에 진실은 쉽게 가려질 것입니다.

비없세 동지들의 제안에 따라 개최한 학습지노조 대의원대회에 참석한 4인의 대의원 가운데 박경선은 강종숙을, 비대위측 강경식은 황창훈을 지지했고, 나머지 두 명 또한 황창훈을 지지해 결국 황창훈을 직무대행으로 뽑았습니다. 이들 대의원 가운데 한 명은 대의원 임기 만 4년이 넘도록 단 한 차례도 대의원대회에 참석하지 않았고, 5년의 투쟁 기간 동안 결의대회, 농성 등에도 전혀 참석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다른 한 명은 3년 동안 대의원을 하면서 단 한 번 대의원대회에 참석해 황창훈이 발의한 안건에 대해 찬성 표결 한 번 한 것이 활동의 전부이며, 건강상의 이유로 현재 학습지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들이 이런 상태임을 몰랐거나, 혹은 이들의 자격을 문제 삼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런 상태의 대의원들까지 불러 모아 5년 투쟁을 이끌었던 강종숙을 직무대행으로 선임하는 절차를 거쳐 상황을 마무리하고자 했던 비없세 동지들의 바람을 완전히 짓밟고 재능교육지부투쟁 상황마저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파탄내고 있는 황창훈과 비대위측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함입니다. 황창훈과 비대위가 끝내 비없세 동지들과의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후 비없세 동지들이 준비한 기자회견이 연기되고 공대위 단위 여러 곳의 투쟁결합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지만 황창훈과 유득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변하며 연대동지들에게 더 큰 배신감과 자괴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를 모두 덮어두더라도 황창훈을 직무대행으로 선출한 그 두 명의 대의원들이 이제부터라도 비대위의 종탑농성투쟁에 온 힘을 다해 복무하며 자신들의 행동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기라도 한다면, 황창훈과 비대위가 그들을 한낱 거수기로 동원해 조직과 투쟁을 파탄낸 것은 아니라고 인정할 여지라도 있지만 그 대의원들과 황창훈, 비대위는 그러한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어떠한 노력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연대동지들보다도 투쟁에 복무하지 않았던 비대위측 해고자들에 더해 대의원을 거수기로 동원하여 조직과 투쟁을 파국으로 내몰고 있는 비대위는 진심으로 연대동지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할 것입니다.

 

5. 마지막으로

 

재능교육지부투쟁은 이미 비정규직 최장기투쟁사업장의 기록을 넘겼습니다. 1895일이라는 최고 기록을 눈앞에 두고 강행된 종탑농성이 그 방식에 걸맞은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노동조합 내부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 그 사실을 공개하고, 누구든 이 문제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이 문제에 대해 정확한 입장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재능지부 한 곳만의 문제가 아니며 장기투쟁 사업장 어느 곳의 문제도 될 수 있고, 노동운동 진영의 고질적인 문제들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종탑에 사람이 있는데……”라는 절박한 마음 때문에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떠나 일단 비대위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실제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종탑농성이 자본에 타격을 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내부에 타격을 가하고, 끝내 지난 1,900여일의 투쟁을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게 할 수도 있는 엄중한 상황입니다.

현재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 특히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사업장의 동지들에게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어 이 또한 안타깝고 절박합니다.

재능교육지부 5년 투쟁에 맞서는 종탑농성이 아니라, 재능교육지부 5년 투쟁 그리고 그 대미를 장식할 종탑농성이 될 수 있느냐는, 바로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입장을 견지하고 이 투쟁에 어떻게 함께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강종숙, 유명자, 박경선 3인은 이러한 사태에 대해 동지들 모두에게 거듭 사과의 마음을 전하면서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재능교육지부투쟁은 공대위를 비롯한 연대단위와의 소통과 합의를 통해 마무리 되어야 합니다. ‘사측과의 합의(타결)안’, ‘타결 이후의 방침과 계획’, ‘타결 이후 노조체계와 역할’에 대한 방안까지 전반적인 사항을 열어놓고 이에 대한 사전 ‘공론화’ 과정을 거쳐 일괄 합의해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합의가 선결되지 않으면 지금처럼 각각 따로 가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고,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자명한데, 오직 비대위만이 직무대행과 비대위원장에 대한 무조건적인 인정을 주장하며 고립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난 5년 투쟁을 함께 해 왔던 조합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구조를 시급히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그 정당성을 전혀 인정받고 있지 못한 비대위와 직무대행을 더 이상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체계 속에서 적실한 투쟁계획과 교섭전술을 수립하여 투쟁에 임할 것을 다시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안하며 동지들의 올바른 판단과 동참을 호소합니다.

 

 

 

 

2013. 3. 8.

 

 

 

 

 

강종숙, 유명자, 박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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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투쟁 전개과정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투쟁 전개과정

 

 

1. 2006. 7. 28., 2006년 임단협 상견례를 시작으로, 2007. 4. 26. 잠정합의 시까지 20여 차례의 본 교섭과 실무교섭, 집중교섭 진행. 해당 기간 동안 회사는 임금관련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다가 잠정합의 1주일 전인 2007. 4. 19., 전격적으로 내용을 공개하였고 노동조합(당시 학습지노조 위원장 겸 재능교육지부장 이현숙)이 단 1주일만인 4. 26. 이를 수용하면서 2006년 임단협 잠정합의

-2007. 5. 4., 재능교육 창립 30주년을 앞두고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던 회사의 움직임에 대응해 최대동력을 집중하여 압박투쟁한다는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

 

2. 잠정합의 나흘만인 2007. 4. 30., 잠정합의안 사전승인을 위한 긴급중앙위 개최. 당시 서울경기남부지역본부장(강종숙), 학습지 해고자복직투쟁위원장(황창훈)이 중앙위원들은 물론 조합원들에게 잠정합의안의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조합원들의 의사를 확인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이유를 들어 중앙위 연기를 요청했으나 묵살됨.

찬성6[현재 해고자 12인 중 4인(이현숙, 당시 울산지역본부장, 당시 부산경남지역본부장, 당시 재능교육지부 부지부장) 포함], 반대2(서울경기남부지역본부장, 학습지 해고자복직투쟁위원장), 기권2로 재능교육지부 잠정합의안 중앙위 승인

-당시 학습지노조 위원장 이현숙이 재능교육지부장을 겸직하고 있어 재능교육부지부장이 별도의 표결권 행사함.

 

3. 2007. 5. 2., 오후 7시 경 재능교육지부 명의로 잠정합의 사실과 함께 통상적으로 2주간 진행되던 총투표 일정보다 현저히 짧은 단 5일간의 잠정합의안 찬반투표 일정 공지[5. 7. 09:00 ~ 5. 11. 23:00]

-잠정합의안에 대한 설명회도 개최하지 않고 잠정합의안 내용을 받아보지 못한 조합원이 있었음에도 투표 강행. 투표 과정에서도 노골적으로 찬성 강요

 

4. 2007. 5. 3., 01시부터 잠정합의안의 일부내용을 알게 된 조합원들 재능교육지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반대 입장 글 올리기 시작. 2007. 5. 11.,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서울경기남부지역본부 운영위원 및 집행위원 일동 명의로, 2007년 재능교육지부 임 ․ 단협 잠정합의안은 수용할 수 없다는 내용의 ‘2007년 재능교육지부 임 ․ 단협 잠정합의안과 일련의 과정에 대한 입장’이라는 성명 발표

 

5. 2007. 5. 12., 잠정합의안 가결 공지.[투표율 90.4%, 찬성 51.8%, 반대 47.1%, 무효 1.1%, 기권 9.6% / 4표차 가결]

 

6. 2007. 5. 15., 재능교육지부 조합원 5분의 1 이상의 연서명을 받아 규약 및 지부규정 위반, 투표의 공정성 등을 이유로 ‘잠정합의안 찬반투표 무효 및 재투표 요구’를 위한 총회소집요청과 동시에 회사와의 조인식을 연기할 것을 요청했으나 2007. 5. 17., 재능교육지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재능교육지부장 명의의 ‘잠정합의안 재투표를 위한 총회소집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재능교육지부 긴급운영위 결정사항에 따라 총회소집 불가하다는 입장 천명 후 회사와 조인식 강행

 

7. 조인식 직후인 2007. 5. 18.부터 새 임금제도가 포함된 위탁계약서로 재계약 진행하면서 5. 31.까지 신 위탁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자는 재계약일자 도래 시 재계약불가(결국 해고)하다고 협박하며 신속하게 재계약진행. 2007. 6. 1., 회사의 해고협박 무릅쓰고 신 위탁계약서 작성을 거부한 26명(조합원 및 비조합원 모두 포함)의 교사 확인

 

8. 2007. 6. 9., 재능교육지부 임원과 신 위탁계약서 서명 거부교사 간 간담회를 진행하면서,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위원장 겸 재능교육지부장이 “신 위탁계약서 서명 거부로 인해 해고 등 불이익 없도록 노력하고 수수료제도 개정을 위해 재능교육지부가 투쟁하겠다.”고 약속하였으나 2007. 6.초, 재능교육지부 임원 3인(지부장, 수석부지부장, 사무국장) 전원과 교섭위원 전원이 신 위탁계약서를 작성함(이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됨)

 

9. 2007. 6. 임단협 체결 후 첫 급여 지급일에 대부분의 교사들 적게는 20여만 원에서 많게는 100여만 원까지 줄어든 급여 수령하면서 극심한 현장 동요 발생

 

10. 2007. 6. 30., ‘재능교육 수수료삭감반대 교사모임’ 주최로 재능교육 혜화동 본사 앞에서 수수료제도 전면개정을 요구하는 투쟁결의대회를 진행하고, 다음날 ‘재능교육 수수료삭감반대 교사모임’이 요구하고 재능교육지부가 수용하여 <임금삭감, 신수수료제도 전면개정을 위한 투쟁본부> 발족

 

11. 2007. 7. 초, 제10차 중앙위원회에서 재능교육지부 임단협 잠정합의안 투표과정에서 부정투표(대리투표)가 있었다는 사실이 공개되어 긴급하게 투표함을 재개봉하고 당사자들과의 통화 결과 대리투표가 사실로 확인 됨. 그러나 잠정합의안 투표과정에서 다소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인정되나 잠정합의안 결과까지 무효라고 보기는 어렵다라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함(서울경기남부지역본부장, 학습지 해복투 위원장은 반대). 논의 도중 학습지노조 위원장 겸 재능교육지부장, 재능교육지부 수석부지부장 사퇴 표명했다가 학습지노조 위원장 겸 재능교육지부장 사퇴번복

 

12. 2007. 7. 14., 학습지노조 중앙위원회와 재능교육지부 투쟁본부 연석회의를 개최하여 재능교육지부 임원 3인 전원이 일련의 사태에 대해 책임지고 자진사퇴하기로 결정.(단, 부산지역 선전전 충돌문제 해결을 위해 5일 간의 사퇴 유예기간을 둠)

 

13. 2007. 7. 19., 5일 간의 사퇴 유예기간 후 개최된 재능교육지부 투쟁본부 회의에서 재능교육지부 임원회의 결정이라며 사퇴번복.

 

14. 2007. 8. 31., 규약에 따라 대의원 3분의 1 이상의 연서명을 받아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위원장 겸 재능교육지부장, 재능교육지부 수석부지부장, 재능교육지부 사무국장에 대한 자진사퇴 권고 결의’를 위한 대의원대회 소집 요청.

2007. 9. 15.,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했으나 자진사퇴 권고 결의 안건 자체에 반대하는 대의원들의 집단퇴장으로 유회(정족수 미달)

 

15. 2007. 9. 15., 임시대의원대회와 별도 회의에서 재능교육지부 임원 3인 사퇴 의사 표명(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위원장직은 사퇴불가하다며 유지)

-재발방지를 위해 2008. 11.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규약에 <겸직금지> 규정 신설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규약 제42조(선출) 임원의 선출은 다음과 같다.

4. 조합, 지역본부, 지부의 각 단위 총회에서 선출하는 임원은 겸직할 수 없다.

 

16. 2007. 9. 21., 재능교육지부 대책회의를 개최하여 수수료제도 전면개정 투쟁을 중심사업으로 하는 재능교육지부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박경선) 구성

 

17. 2007. 10. 5., 중앙위원회에서 재능교육지부 임단협 잠정합의안 관련 투표과정에 관한 전반적인 조사를 위한 진상조사위원회(투표권이 없는 조합원이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 경위, 투표과정 전반에 대해 각 단위별 샘플링하여 심층면접조사, 투표함 재개봉 후 전면 조사)를 구성하고, 2007. 10, 19,, 중앙위원회에서 1차로 대리투표 진행자 징계 결정(경고)

 

18. 2007. 11. 16., 재능교육지부 총투표로 재능교육지부장(유명자), 사무국장(오수영) 선출

 

19. 2007. 11. 20.경, 재능교육지부장을 비롯한 신 위탁계약서 거부 교사들이 있는 가운데 재능교육지부 소속인 당시 부산경남지역본부장(현재 해고자 12인 중 1인)이 재계약 일자 도래하자 신 위탁계약서 재작성함(이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됨)

 

20. 2007. 12. 중순경, 학습지노조 위원장(이현숙)이 재능교육지부장을 사퇴한 이후에도 회사가 개인통장으로 입금한 전임자급여 3개월치 5백9십5만5천 원을 재능교육지부의 계속적인 반환 요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관리권한이 있는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통장에 입금한 사실 확인함. 아울러 사퇴한 재능교육지부 사무국장과 본조 조직1국장에게 교실복귀 지원금을 2중 지급한 것이 밝혀져 반환요청 하였으나 현재까지 이행하지 않고 있음

 

21. 2007. 12. 중순경, 회사가 신 위탁계약서 미작성 교사들에게 12. 19.까지 신 위탁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재계약 거부의사로 간주하겠다는 내용증명 발송. 신 위탁계약서 미작성자들은 12. 20. 재능교육 본사를 항의방문하여 구 위탁계약서로 재계약 할 의사가 분명히 있음을 전달하기로 학습지노조 중앙위원회에서 결정

 

22. 2007. 12. 21., 재능교육지부, 서울경기남부지역본부 주도로 재능교육 본사 앞에 수수료제도 전면개정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장 설치 시도했으나 사측 구사대의 폭력침탈로 실패하고 다수 조합원 부상.(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재능교육지부 투쟁이 시작됨)

 

23. 2007. 12. 29., 천막농성투쟁 시작 8일 만에 당시 학습지노조 위원장(이현숙), 수석부위원장, 사무처장, 부산경남지역본부장(현재 해고자 12인 중 1인), 울산지역본부장(현재 해고자 12인 중 1인), 구몬지부장, 대교지부장, 인천부천지역본부추진위원장 사퇴.

-2008. 1. 6., 사퇴하지 않은 서울경기남부지역본부장(강종숙), 재능교육지부장(유명자), 학습지 해복투위원장(황창훈) 중앙위원회 개최하여 서울경기남부지역본부장을 직무대행으로 선출

 

24. 2007. 12. 30., 중앙위원 3인과 신 위탁계약서 작성을 거부한 재능교육지부 조합원 연석회의에서 유득규가 “해고가 되고나면 투쟁하는데 어려움이 많으니 우선 신 위탁계약서를 작성하고 재능교육 학습지교사 신분을 유지한 채 싸우자.”라고 주장하였으나 다수의 반대로 신 위탁계약서 작성을 거부하고 투쟁하는 것으로 의견 정리함

 

25. 2007. 12. 31., 사퇴한 재능교육지부 소속 주요 임원과 간부들 전원, 재계약 일자 도래하자 신 위탁계약서 재작성

-이는 신 위탁계약서 작성을 거부한 채 해고를 불사하고 싸우는 조합원들을 고립시키는 행위

 

26. 2008. 1.부터, 재능교육이 단협사항에 따라 노동조합에 지원해야 하는 전임자임금 및 사무실 운영비 등 일체 중단

 

27. 2008. 1. 중순, 학습지노조 업무 인수인계 과정에서 이현숙이 2007. 12. 15. 학습지노조 통장에 입금한 재능교육지부 전임자 급여 5백9십5만5천 원 대부분이 재능교육지부의 허락도 없이 학습지노조 위원장을 사퇴한 이후에 출금되어 사용되었음을 발견함. 이에 따라 학습지노조 업무 인수인계 내용 중 재정 관련 사항은 교실복귀 지원금 이중지급 문제와 재능교육지부 조합비 유용 등으로 인해 인수 유보됨(현재까지 처리 안 되고 있음)

 

28. 2008. 2. 26., 학습지노조의 정상화를 위하여 학습지노조 임원, 지역본부 임원, 기업지부장 선출을 위한 보궐선거 공고하였으나 기간 내에 등록한 입후보자가 전혀 없어 2008. 3. 10. 재등록공고 함. 재등록기간에도 기업지부장 2인(구몬지부, 대교지부)을 제외한 전원 미등록

 

29. 2008. 3. 23., 재등록공고에 따라 등록한 기업지부장 선출을 위해 공고 내용대로 2008. 3. 19.부터 3. 31.까지 선거를 진행해야 했으나, 투표개시일 이후 4일이 경과하도록 투표업무를 전혀 진행하지 않은 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능교육, 한솔교육 투쟁 상황을 고려하여 현재 투쟁 현안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한 정상적인 선거 관리를 위해” 선거일정을 중단한다는 선거일정 변경공고를 냄(당시 선거관리위원장 황창훈)

 

30. 2008. 5. 3., 선거일정 재개 공고하고, 5. 17.까지 투표 진행하여, 5. 19. 결과공고 함. 구몬지부장 후보는 투표율미달로 선출이 무산되고 대교지부장만 선출됨.(선거과정의 혼란에 더해 사퇴한 중앙위원들이 소속된 지역과 단위에서 후보자 전원이 사퇴한 후 조직적으로 선거 보이코트를 조직하여 투표율이 매우 저조했음)

 

31. 2008. 6. 15., 새로 선출된 대교지부장 포함하여 중앙위 개최한 후 당시 서울경기남부지역본부장(강종숙)을 학습지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으로 선출함

 

32. 2008. 7., 사측 구사대의 폭행으로 2007. 12. 21. 상해를 당한 여민희, 일시계약정지 끝내고 현장에 복귀하려 했으나 회원을 주지 않아 사실상 해고.

 

33. 2008. 여름 경, 여민희, 사전보고나 논의 없이 학습지회사 ‘아하교육’ 입사하면서 복직투쟁 전면결합에서 이탈. 이후 현재까지 외부에서 발생한 수입관련 단 한 차례도 보고되거나 내부에서 배분되지 않음

-당시 투쟁과 이후 복직과정에서의 문제 등으로 인하여 보안에 극도로 신경 씀

-당시 해고자들은 노조에서 최저생계비 이하의 금액 지급 중이었음

 

34. 2008. 10. 31., 중앙위에서 12월 안에 선거일정 진행하여 5기 지도부 선출 완료하는 것으로 결의

 

35. 2008. 11. 1., 재능교육 사측, 단체협약 해지통보. 이에 따라 전임자(유명자 지부장, 오수영 사무국장) 현장 복귀 통보.

 

36. 2008. 11. 22., 중앙위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구성(선관위원장 여민희), 규약개정안 논의(①학습지노조 중앙임원인 위원장, 수석부위원장, 사무처장 3인 동반출마를 위원장, 사무처장 2인 동반출마로 개정 ②“조합, 지역본부, 지부의 각 단위 총회에서 선출하는 임원은 겸직할 수 없다.”라는 겸직금지 조항 신설), 서울경기남부지역본부를 제외하고 지역본부 구성요건에 모두 미달하여 서울경기남부지역본부와 서울경기북부지역본부를 서울경기지역본부로 통합하기로 결의

 

37. 2008. 11. 22., 중앙위에서 2008. 12. 31. 재계약해야 하는 조합원들 신 위탁계약서 거부하고 투쟁하는 것으로 결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해고자 중 3인은 신 위탁계약서 다시 작성

 

38. 2008. 11. 29.,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공금유용과 부적절한 재정집행을 이유로 이현숙에 대한 징계여부를 판단할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결의

 

39. 2008. 11. 29., 학습지노조 제5기 임원, 지역본부 임원, 기업지부 임원 선거공고. 12. 4. 선관위원장(여민희) 사퇴 후 수정공고

 

40. 2008. 12. 10., 재능교육지부 임원 2인(유명자, 오수영) 현장복귀 거부를 이유로 해고.

 

41. 2009. 1. 1., 학습지노조 임원(위원장 강종숙, 사무처장 유득규), 서울경기지역본부 임원(본부장 황창훈, 사무국장 여민희), 재능교육지부 임원(지부장 유명자, 사무국장 오수영), 대교지부장 선출

 

42. 2009. 2. 13., 중앙위원회에서 중앙집행위가 구성된 후인 2. 20.까지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세부 일정에 따라 이현숙에 대한 징계절차를 진행하는 것으로 결의

 

43. 2009. 3. 14., 중앙위에서 위원장, 사무처장, 조직부장으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이 진상조사위원장으로 호선 됨. 4월 초 까지 진상조사 마무리하고 차기 중앙위에서 처리에 대해 논의하기로 함

 

44. 2009. 4. 17.부터 재능교육 본사 앞 모든 집회 금지통고 시작.

 

45. 2009. 11.경부터 재능교육지부 투쟁기금 지원논의 진행. 재능교육지부 조합원 급감으로 인하여 교부금이 매우 미미한 수준으로 떨어져 학습지노조 본조와 각 지역본부, 각 지부에서 지원하자는 취지였으나 서울경기지역본부장(황창훈)이 반대.

본조에서 재능교육지부에 매월 45만원씩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집행했으나 해고자 생계비를 지급하고 나면 각 단위 교부금조차 지급할 수 없는 수준으로 재정 악화됨

 

46. 2010. 3. 23. 용역깡패 투입. 이후 24시간 조합원 감시․폭행․미행․성추행․차량 및 선전물손괴․강도짓 자행

 

47. 2010. 4. 4., 학습지노조 제8기 대의원 선출

 

48. 2010. 6. 10. 재능교육지부투쟁 1,000일을 앞두고 재능교육 본사 앞 릴레이 100인 시위 돌입

 

49. 2010. 7. 23, 1년 3개월 이상 계속된 혜화경찰서의 집회금지통고는 부당하다는 서울행정법원 판결. 2010. 8. 13.,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2009. 4. 이후 1년 4개월만에 첫 집회 개최. 이후 본사 앞 집회는 물론 혜화동 로터리 집회장소에 용역깡패를 대동한 재능교육 구사대들 난입 반복

 

50. 2010. 8. 17. 당시 사무처장 유득규에게 재능교육 불매운동 등을 이유로 해고 통보. 9. 중순 해고

 

51. 2010. 8.말경 박경선 조합원에 대한 교재공급 중단 후 해고

 

52. 2010. 여름경 여민희, 이번에도 사전에 보고하거나 논의도 전혀 없이 학원(공부방) 인수. ‘아하교육’ 재직 시보다 복직투쟁 결합력 더 떨어짐.(현재까지 학원 원장임)

 

53. 2010. 9. 초부터 용역깡패들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허위집회신고 시작. 이후 재능교육 본사 앞 집회를 위해서 최소한 만90시간 이상(최장 만 144시간) 혜화경찰서 앞 집회신고대기장소에서 대소변을 보아가며 노숙. 이 과정에서 재능교육이 고용한 용역깡패들과 수시로 충돌. 노동조합이 매주 월요일 진행하던 각 지국 앞 현장선전전도 진행 못 함.

 

54. 2010. 9. 20. 중앙위원회에서 ①농성장 유지가 어려울 정도로 결합력 떨어진다는 이유로 주말농성 중단 의견 제출되었으나 추후 재논의하기로 함 ②서울경기지역본부(황창훈)의 재능교육지부투쟁에 대한 소통과 공유, 집행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이유로 공투본회의 참가자를 위원장(강종숙), 사무처장(유득규), 재능교육지부장(유명자)에서 중앙임원 중 1인을 제외하고 서울경기지역본부장으로 교체하자는 안건 발의 후 투표 진행하였으나 부결됨 ③서울경기지역본부장이 재능교육지부투쟁 및 향후 조직체계(선거)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를 위해 수련회개최를 제안하였으나 제안자를 제외하고 찬성하는 중앙위원이 없어 폐기됨

 

55. 2010. 9. 하순경, 서비스연맹, 서울본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노위, 철폐연대, 학생단위 등으로 구성된 재능교육지부투쟁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구성.

 

56. 2010. 11. 17. 노동조합을 탈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민정을 해고한 후, 같은 이유로 12. 4. 이현숙 해고, 12. 31. 강경식, 김경은, 정순일, 故 이지현 해고

-해고자 대량발생으로 기존 해고자들 생계비 삭감하여 새로 발생한 해고자들에게도 생계비 지급. 반면 새로 발생한 해고자들 가운데 이현숙(서울 상도동), 강경식(부천)은 매일 환구단 앞에서 진행한 문화제에 거의 결합하지 않음. 최민정(이상 부산)은 해고 초기에 해고된 지국 앞 등에서 피켓 시위 진행하였으나 이후 중단. 정순일(울산)은 거의 활동 없었음.

-이 문제에 대해 중앙위원회, 중앙집행위원회 등에서 계속 문제제기 되었으나 변화 없었음

 

57. 2010. 12. 18., 임시대의원대회에서 학습지노조 제6기 임원선거를 2011. 4.까지 연기할 것을 결의

 

58. 2011. 3. 25. 학습지노조 위원장(강종숙), 사무처장(유득규), 서울경기지역본부장(황창훈), 재능교육지부장(유명자), 재능교육지부 사무국장(오수영) 삭발, 재능교육지부장 단식농성 돌입

-주요 단위 임원 중 서울경기지역본부 사무국장(여민희)만 삭발하지 않음

 

59. 2011. 4. 7. 서비스연맹 위원장(강규혁), 서울본부장(이재웅)과 재능교육 대표이사(양병무)간 두 차례 만남 이후 재능교육지부투쟁 이후 처음으로 합의안 제시

①해고자 12인 중 1인(황창훈) 복직 불가, 2인(유명자, 오수영) 36개월 후 복직, 3인(유득규, 박경선, 여민희) 18개월 후 복직, 5인(강경식, 김경은, 이현숙, 정순일, 최민정) 6개월 후 복직. 복직 유예기간 동안 생계비로 월 50만원 지급

②단체협약체결 불가

③형사 건은 상호 취하, 회사가 신청한 가처분결정은 취하 불가, (가)압류와 손해배상청구소송은 합의 후 1년 경과시점에서 취하

 

60. 2011. 4. 10. 서비스연맹 위원장(강규혁), 학습지노조 위원장, 해고자 12인 전원 참석하여 회의 진행

-영남지역 해고자 일부에서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절대 못 받을 안은 아니라는 입장도 있었으나 결국 만장일치로 수용불가입장정리,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서비스연맹, 학습지투쟁에 결합도 현저히 떨어지다 결국 재능교육투쟁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도 철수

 

61. 2011. 4. 14. 재능교육지부장 단식농성 중단. 학습지노조 사무처장 단식농성 돌입

-서울경기지역본부(본부장 황창훈)는 단식농성 기간에도 기존에 진행해오던 조합원산행 계속 진행

 

62. 2011. 4. 21. 재능교육OUT 국민운동본부 출범

 

63. ①2011. 4. 30. 학습지노조 임원, 지역본부 및 기업지부 임원, 대의원 선거 공고(선거관리위원장 이현숙), ②5. 12. 모든 단위 입후보자가 없어 대의원 선거는 추후에 하는 것으로 변경공고 및 임원 후보 재등록공고, ③5. 18. 선거관리위원 중 1인(조연정)이 사퇴하고 서울경기지역본부 사무국장으로 후보등록, ④6. 1. ~ 6. 14. 투표, 위원장(강종숙), 사무처장(유득규), 서울경기지역본부장(황창훈), 사무국장(조연정), 재능교육지부장(유명자), 사무국장(오수영) 선출

-임기연장까지 하면서 선거를 연기할 때 중앙, 지역본부, 지부 임원 전원이 재결의하여 출마하는 것으로 잠정합의 하였으나 아무런 사전 논의도 없이 유일하게 서울경기지역본부 사무국장만 교체(여민희→조연정)

 

64. 2011. 7. 초경, 위원장이 ‘재능교육지부투쟁의 주체는 재능교육 해고자들이어야 한다.’라는 문서(별첨)를 작성하여 해고자들과 논의했으나 의견 모아지지 않음.

 

65. ①2011. 7. 하순경, 위 문서에서 지적한 문제점이 전혀 고쳐지지 않은 상태에서, 학습지노조 남성조합원 전원은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집회신고를 위해 혜화경찰서에서 노숙대기 중이었고, 오수영은 급성패혈증으로 입원 중인 상황인데, 이현숙이 문자로 환구단 농성 어렵다고 재능교육지부장에게 통보, ②재능교육지부장이 이현숙에게 “앞으로 투쟁에서 빠져도 된다.”는 취지의 문자 전송, ③농성이 불가능하다던 이현숙, 환구단 농성장에 나타나자 재능교육지부장이 돌아갈 것을 요구하다 시비 발생, ④이 날 이후 1년 넘게 “폭언폭행”에 대한 진상조사 요구하며 모든 회의 파행

 

66. 2011. 8. 14. 중앙위원회에서 2차 희망걷기 분담금 40만원에 대해 4개 단위가 각각 10만원씩 분담하기로 결의(서울경기지역본부장 및 대교지부비상대책위원장은 산행 뒤풀이 행사한다며 불참)

 

67. 2011. 9. 17. 중앙위원회에서 서울경기지역본부장(황창훈)이 2차 희망걷기 분담금 배분에 대해 문제제기하면서 재결정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임의로 불참한 후에 정식회의 결정사항을 재논의하자고 요구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고 이미 중앙에서 지출하였기에 재논의하여 결정하는 것은 의미없다고 결정

 

68. ①2011. 9. 14. 학습지노조 대의원 및 기업지부장 보궐선거공고, ②10. 30. 당선공고, 서울경기지역본부(김혜서), 기타지역(박경선), 대교지부(박태영), 재능교육지부(강경식)

-대의원 임기는 1년이지만 현재까지 임기가 진행되고 있음.

 

69. 2011. 9. 14.부터 농성표 작성담당이 재능교육지부 사무국장(오수영)에서 재능교육지부장(유명자)으로 바뀜

-투쟁 초기 여민희에서 오수영으로 바뀔 때처럼 농성표 작성자의 스트레스 가중과 농성투쟁에 대한 ‘염증’이 원인, 해고자들 문자나 전화로 농성불가 통보하거나 무단 불참 등 빈번

 

70. 2011. 10. 15. 중앙위원회 정회시간에 위원장이 서울경기지역본부장의 목을 밀치자 서울경기지역본부장 날아서 뒤로 넘어짐. 이현숙의 “폭언폭행”에 대한 진상조사에 황창훈도 가세, 이후 모든 회의에 상당기간 불참

-황창훈은 2006년 대교지부 투쟁 이후 당시 대교지부 해고자, 한솔교육지부 해고자와 주먹다짐을 한 바 있고, 2010. 말경 강종숙에게 폭력을 행사하였으나 불문에 부침

 

71. 2011. 말부터 위원장이 이현숙에게 진술서 요청

-회사가 손해배상청구소송은 물론 각종 보도자료 및 공대위 소속 단위들에게 발송하는 모든 문서내용에 대한 반박을 위한 것으로써, 2007년 단체협약을 체결한 당사자(이현숙)가 당시 수수료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당시 단체협약 체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재능교육지부장을 사퇴한 것이지 회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노노대립이 아니었다는 취지

 

-이현숙이 진술서 작성을 하지 않아 이를 독촉하니, 오히려 당시 수수료제도 변경으로 인해 모든 교사들이 임금삭감 당한 것이 아니고, 특히 현재 투쟁 중인 해고자들 가운데 임금이 올라간 사람이 더 많다라는 취지로 반박하였고, 수수료제도에 대해서는 자신이 자세히 분석하지 않아서 그 문제점에 대해 잘 모르며, 또한 당시 재능교육지부장 선거와 관련하여서는 한솔교육지부 복직투쟁 관련으로 구속되어 있어서 자신은 잘 모르므로 진술서를 작성하기 어렵다고 답변함

 

-이처럼 재능교육지부투쟁을 전면 부정하는 이현숙의 입장을 사무처장에게 전달하자 2012. 3. 초순경에야 진술서 작성함

 

72. 2012. 3. 하순경, 서비스연맹 위원장(강규혁)이 교섭안을 제시함

-청와대 영포라인 실세가 서울지방노동청장에게 해결방안 모색하라는 하명이 있었고, 서비스연맹 위원장이 서울지방노동청장과 두 차례 만났다고 함. 노동청에서 재능교육 대표이사와 소통한 결과 “교섭을 재개하면 첫 만남에 대표이사가 나올 예정이며, 교섭장소는 본사도 고려하고 있고, 전향적인 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그렇다고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강규혁은 아래의 안은 자신이 성안한 것일 뿐 회사와 논의된 내용은 아니라고 말함

①황창훈을 포함한 해고자 전원 6개월 전후로 복직, 복직 시까지 월100만원 생계비지급

②단체협약과 관련해 현장복귀 후 일정시점에 논의 시작해 체결, 이행보증 차원에서 이에 대해 공증도 받을 수 있다.

③민형사상 소송 상호 전면취하

④노조발전기금으로 1억 2천만 원 지급(벌금 5천만 원, 해고기간 보상금 5천만 원, 故 이지현 조합원 위로금 2천만 원)

⑤합의주체는 학습지노조로 한다.

⑥조합활동으로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

⑦양자 간에 유감을 표명한다.

당시 참석했던 위원장과 재능교육지부장은 수용불가 입장, 사무처장은 수용할 수 있는 안은 아니지만 사측과 직접 교섭을 여는 것이 중요하므로 일단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 표명, 재능교육지부 사무국장은 입장표명 유보. 위원장의 설득으로 수용불가로 입장정리

 

-수용불가로 최종입장 정리하여 위원장이 서비스연맹 위원장(강규혁) 만나서 입장 전달(사무처장에게 함께 갈 것을 요청했으나 고사), 강규혁이 위원장에게 앞으로 학습지노조투쟁에 자신이 관여할 일은 없을 것이고 어떠한 역할도 맡을 수 없다고 말함.(이후 학습지노조가 총연맹에 직접 요청한 결의대회 등이 연맹과의 관계 등으로 인해 계속 무산됨) 이때 강규혁과 1시간가량 이야기 나누었으나 이후 강규혁이 유득규, 오수영에게 “강종숙이 찾아와서 한마디도 안 하고 갔다.”라고 허위사실 유포.(당시 배석했던 서비스연맹 조직국장이 1시간가량 이야기 나눈 것 확인) 그러나 유득규, 오수영은 “강규혁이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더라.”라고 회의 등에서 발언. 이 사실을 알고 강종숙이 강규혁에게 전화로 항의하자 만나서 얘기하자 했던 강규혁 전화오지 않음

 

-수용불가 입장 전달을 위해 서비스연맹 위원장을 만나기로 예정된 전날 밤에 이현숙이 위원장에게 전화해서 임원들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내용에 문제가 많고 이는 조합민주주의에 심각하게 위배되므로 서비스연맹 위원장을 만나기 전에 조합원들의 의견을 물을 것을 요구,

 

-당시 서비스연맹 수석부위원장은 강규혁이 강종숙, 유득규, 유명자, 오수영과 만나기 전에 재능교육지부 영남권 해고자들을 만나 강규혁의 안을 노조가 수용해야 한다라고 발언함

 

-당시 서비스연맹 수석부위원장은 영남권 노조 간부들을 만나 강규혁이 제시한 안을 학습지노조가 수용해야 하는데 강종숙, 유명자가 고집을 부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라고 발언하고 다님

 

-이미 중앙위원회 등 각급 회의에서 여러 차례 단체협약 체결과 해고자 전원복직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결의하였기에 이에 미치지 못하는 안을 재논의하는 것은 양보안을 논의하자는 것이며 이것이 오히려 조직질서와 규율에 위배됨

 

73. 2012. 4. 하순경, 오수영이 환구단 농성장을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으로 이동하고 해고자 전원이 전임자가 되어 투쟁하자는 기조의 문서를 작성하여 제안하였으나 재능교육지부자체 논의과정에서 5월 초순경 최종 부결됨. 이현숙만 전임을 결의하겠다고 하여 이후 오수영에 의해 3개월간 전임자와 동일한 급여 임의지출. 당시 본조 사무처장이었던 유득규에게도 재능교육지부투쟁과 관련하여 전임을 요구함. 오수영이 제출한 문서 내용 가운데 [회사는 “노동자가 아니기에 노동조합을 인정할 수 없다” 에서 “들어와서 단체협약을 이야기 하자”고 한다.(물론, 강규혁위원장의 안이 회사의 입장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이것을 사실로 인정한다면 회사가 우리에게 내줄 것은 다 내준 것이다. 이제 명분이 남았다.]라는 대목에서처럼 강규혁의 안에 대해 이미 노동조합의 입장과 매우 다른 입장표명

 

74. ①2012. 5. 14. 회사 노무담당 팀장이 유선으로 교섭요청 해 오자 공문으로 정식 요청하라 답변, ②5. 15. “대화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 수신, ③5. 17. “교섭개최요구”라는 제목으로 위원장 명의의 수락공문 발신(교섭위원 : 유득규, 유명자, 오수영, 황창훈), ④5. 18. 중앙위원회 개최(황창훈 “폭언폭행” 진상조사에 관해 선논의할 것을 요구하다 관철되지 않자 중도퇴장)하여 교섭대표에 유명자, 교섭간사에 유득규를 선임하고, 5. 25. 해고자 전원 및 농성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타 지부 조합원 전원회의 개최키로 결의(이 즈음부터 내부 논의사항 등 실시간으로 유출), ⑤5. 22. 노측 교섭위원 4인 참석하여 노사 상견례 진행, ⑥5. 24. 간사 간 협의를 위한 만남에서 “최종 합의를 위한 교섭일정 협조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 수신, 5. 25. 조합내부회의 일정과 논의예정내용을 정확하게 거론하면서 6. 5.까지 교섭 마무리하자는 내용임, ⑦회사는 교섭타결과 별개로 선조치를 시행하겠다며 20억 손해배상청구소송 취하, 노조차량 및 위원장차량 압류해제, 혜화경찰서 집회신고대기인원 철수함, 노조도 농성장철수, 집회 및 선전전 중단 등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거부, ⑧공대위를 비롯 노조 측과 관련 있는 단체, 언론 등에 전방위적으로 교섭진행 사실 알리며 반드시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과 동시에 악의적인 내용의 문서배포 및 농성장과 집회장소 주변에서 직원들을 동원하여 피켓시위, 유인물배포 진행하고 본사 앞과 시청사옥 앞에 배너설치, ⑨5. 25. 전체회의에 최민정 불참, 회의 소집 및 주재를 놓고 이의제기하다 김경은, 이현숙, 황창훈, 조연정 중도퇴장(이후 황창훈은 5. 18. 중앙위원회와 5. 25. 전체회의 결정사항 등을 인정할 수 없음을 공표하고 중앙위원회 등에 불참), ⑩5. 25. 전체회의에서 총 8개항으로 노동조합 교섭 안 확정, ⑪5. 29. 2차 교섭 자리에서 상호 교섭 안 교환

회사 안

1)계약해지교사 복귀

2)법적조치 상호취하

3)단체협약

4)기타 : 향후 회사 비방행위 중단 약속, 기존 회사 비방행위 자료(인터넷 기사, 리본 등)삭제 및 폐기 조치, 합의내용 위반 시 조치사항, [재능교육 임직원께 드리는 글] 사과 입장 문건 제출(11명 전원 서명)

 

노조 안

1. 단체협약 원상회복

(1)2007년 단체협약이 2012년 단체협약 체결 시까지 유지되며, 2012년 단체협약을 체결한다.

(2)회사는 2008년 1월분부터 합의 시까지의 전임자급여를 지급한다.

2. 해고자 전원 원직복직

(1)회사는 해고자 전원(황창훈, 유명자, 오수영, 여민희, 이지현, 유득규, 박경선, 최민정, 이현숙, 강경식, 김경은, 정순일)을 즉시 원직복직 조치한다.

(2)해고자는 해고 당시 지국으로 복직하며, 단체협약 제36조에 따라 적정 관리과목수를 보장받는다. 단, 원거리 이사 등의 사유로 주거지가 변경된 경우 주거지 관할지국으로 복직한다.

(3)회사는 해고기간동안 지급하였어야 할 임금상당액을 지급한다. 업무일시정지기간 종료 후 회사가 관리과목을 배정하지 않아 임금이 전혀 발생하지 않은 여민희, 이지현 조합원에 대하여서는 해당기간의 임금상당액도 지급한다.

(4)해고자의 누계 기준은 해고 전월로 한다.

3. 회사는 현 사태관련 제기한 모든 민형사상 소를 즉시 일괄 취하한다.

(1)회사는 경매처분, 압류, 가압류, 가처분, 채무불이행자명부등재 등 모든 피해에 대하여 원상회복조치한다.

(2)회사는 형사사건의 소 취하서에는 처벌불원의 의사를 명시하여 제출한다.

4. 회사는 첫째, 수수료제도 개악과 일하는 조건저하, 각종 혜택 폐지로 인하여 재능교육교사들에게 발생한 피해 둘째, 일방적 단체협약파기 셋째, 용역깡패를 동원하여 자행한 성희롱, 폭행, 미행, 손괴 등에 대하여 사과 및 책임자징계, 재발방지 약속 등을 명시한 사과문을 일정기간 빅토리닷컴에 게시하고 사업국 교육 등의 적절한 수단과 방법을 통하여 전체 교사 및 직원들에게 전달되도록 한다.

5. 회사는 현 사태로 발생한 모든 벌금을 책임진다.

6. 회사는 회사규정에 따른 경조비와 위로금을 故 이지현조합원 부모님께 전달한다.

7. 회사는 현 사태로 인하여 발생한 조합원들의 정신적 피해에 대하여 위자료를 지급한다.

8. 회사는 회사가 가져가거나 훼손한 노동조합물품 및 개인물품을 원상태대로 반환하거나 손해를 보상한다.

⑫2차 교섭 이후 진행과정에서 사측은 재능교육 학습지교사들 가운데 親회사인사들을 환구단 농성장으로 집단 인솔하여 데리고 와 농성자들을 압박하고, 이번에 회사 안을 거부하면 노동조합이 창피를 당할 것이고, 해고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해서라도 회사 안을 수용하도록 할 것이라고 협박함(회사는 이후 실제로 해고자들 전원에게 각각 담당자를 배정하여 유선, 문자, 본사 앞 선전전 등에 직접 나오는 등으로 개별 접촉 진행)

⑬7월 중순까지 11차 교섭을 진행하는 동안, 회사는 법을 어기면서까지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없고, 다만 우선 복귀하면 회사도 노동법 개정에 많은 노력을 하겠다. 또한 계약해지자는 재능교육 사람이 아니므로 계약해지자들과 단체협약에 대해서 논할 이유가 없으며, 계약해지자 가운데 황창훈, 故 이지현을 뺀 나머지 10인에 대하여 계약해지 사유에 따라 순 차적으로 복귀시킬 수 있다는 입장 유지

⑭7. 10. 12차 교섭(1차 집중교섭)에서 노조 교섭 안에 대한 회사 입장은 다음과 같다.

1)단체협약은 회사로 복귀한 후 논의하자, 전임자 활동비는 논의대상 아니다.

2)회사는 해지교사 10명을 단계별로 계약한다. 단, 기간은 조정할 수 있다.(1안 10명 전원 6개월 후 복직, 2안 5명(유명자, 유득규, 오수영, 여민희, 박경선) 6개월 후 복직, 5명(강경식, 김경은, 이현숙, 정순일, 최민정) 3개월 후 복직) 황창훈은 법적관계 종결되었기에 수용 불가능하다.

3)상호 민형사상 소송 취하에 동의하지만 회사 비방행위 중단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는 필요하다.(가처분결정 유지 의미)

4)해지교사는 사과문을 작성해 제출한다.

5)벌금은 법을 위반한 자가 책임져야 한다.

6)회사사업관리규정은 위탁계약이 유지된 사람이 대상이므로 故 이지현 조합원은 대상자 아니다.

7)위자료는 논의대상 아니다. 요구하는 근거를 대라.

8)회사가 돌려주지 않은 물품 없다.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면 타당성여부를 검토해 볼 수는 있다.

-결국 노조가 제시한 안에 대해 전면부정

 

75. 2012. 6. 17. 학습지노조 2012년 정기대의원대회 개최,

-재능교육지부투쟁 관련 결의사항 :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복직 관련하여서는 이미 결정된 내용을 확인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대의원대회 하급회의에서는 재론할 수 없다. 이의 수정을 요구할 경우 대의원대회 또는 총회를 소집하여 논의 ․ 결정하여야 한다.

 

-서울경기지역본부(당시 본부장 황창훈), 학습지노조해복투(당시 위원장 황창훈)는 각각 2010년 하반기, 2011년 상반기, 2009년 하반기 ~ 2011년 상반기의 회계감사자료를 중앙위원회의 결의와 회계감사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2012년 6월까지도 제출하지 않아 회계감사를 받지 않고 있었음

 

-회계감사를 받을 때까지 교부금지급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결정. 결국 회계자료를 대의원대회 직전에 회계감사에게 제출해 대의원대회 전날 심야시간에 감사의견보고서를 받아 제출.

 

-회계감사 기간이 지난 후에 장기간의 회계감사자료를 제출한 후 급작스럽게 받아온 회계감사보고서를 인정할 수 없다고 결정

 

-이미 2009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황창훈이 회계연도를 넘겨(최장 2년 이상) 제출한 백여만 원을 상회하는 영수증에 대해 유일하게 특례를 적용하여 지급처리한 사실이 있음. 당시 결정사항은 “이미 규정 위반된 부분에 있어서는 경과기간을 두어 8월 14일까지 제출하는 미지급영수증(2007년 7월 1일 이후 영수증에 한한다)에 한하여 2009년 상반기 회계감사 후 지급한다.”

 

76. 2012. 6. 중순경, 이현숙 통합진보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여성명부) 선거에 출마. 출마 직전 유득규, 오수영에게 의사 표명하자 모두 반대하였으나 출마 강행(위원장과 재능교육지부장은 사후에 알게 됨, 이현숙은 당시 노조에서 전임자와 동일한 액수의 급여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음), 출마 후 이를 알게 된 위원장이 통합진보당 중앙당과 서울시당에 “서울시당 부위원장(여성명부) 후보자자격 관련의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 발송함, 내용은 ①재능교육지부 단체협약 잠정합의안 투표과정에서의 부정(대리투표, 투표권 없는 조합원들의 투표참여 등), ②조합비 임의집행 및 유용, ③중앙위원회에 해고자 원직복직 교섭진행상황 허위 보고, ④중앙위원회 결의사항 위반, ⑤학습지단일노조추진위원회 결의사항 위반 등의 행위를 하여 현재 징계절차에 계류되어 있기에 이현숙 후보에 대하여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것이었음(하지만 전혀 문제되지 않고 선거 완주)

 

77. 2012. 7. 초순경, 사측의 집중교섭 요청에 대해 위원장, 재능교육지부장은 기간의 사측 태도로 볼 때 큰 의미 없는 제안이라고 판단하였으나, 사무처장, 재능교육지부 사무국장은 진행해야 한다라는 입장.

이번 교섭을 진행하면서 사측의 이른바 선제조치로 인하여 용역깡패가 철수하고 집회신고를 하지 않음으로써 본사 앞 선전전 및 집회 등이 가능하게 되어 위원장이 본사 선전전을 진행하였고, 이에 대해 유득규가 해고자들과 논의 없이 진행하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문제제기. 이 과정에서 사무처장이 재능교육지부장에게 머그컵을 집어던짐

 

78. 2012. 7. 중순경, 통합진보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여성명부)선거에서 낙선한 이현숙이 학습지조합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통합진보당 서울시당 중앙대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됨(이현숙은 당시 노조에서 전임자와 동일한 액수의 급여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음)

 

79. 2012. 7. 중하순경, 이현숙에 대한 전임자임명여부를 두고 재능교육지부장과 사무국장 갈등, 재능교육지부 회의 도중 막말과 폭언을 주고받은 후 오수영 사퇴표명

-2012년 제1차 임시대의원대회(2012. 7. 22.)에서 “지부 집행부 임면(전임자 급여 지급대상자 선정)은 지부장의 고유권한임을 확인한다.”라고 결의하였음.

-사퇴표명 후 오수영은 지부장에게 집회 사회를 당분간 볼 수 없다고 문자로 통보

-오수영의 가족 명의로 되어 있던 당시 재능교육지부 통장에 대해서도 명의자 변경 요구하여 결국 변경

-언론인터뷰 요청에 대해서도 “본인은 서무국장 사퇴하였으니 다른 사람이랑 하라.”라고 하여 결국 사퇴한 사실 스스로 공개

-오수영은 투쟁 1년 즈음부터 자신은 복직하지 않을 것이고 귀농(귀촌)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님

 

80. 2012. 7. 말경, 유득규 당시 사무처장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위원장에게 사퇴의사 표명, 위원장은 사측과의 교섭국면이고 임기가 4개월 남짓밖에 남지 않았으니, 건강상의 이유라면 업무를 중단하더라도 직책은 유지해 줄 것을 요청

 

81. 2012. 8. 18. 중앙위원회 직전 사무처장이 위원장에게 중앙위원회에 불참하고 사퇴하겠다고 문자 전송(당시 사측은 회사의 ‘최종안’을 전달하겠다고 밝힌 상황)

 

82. 2012. 8. 28. 재능교육 이른바 ‘최종안’ 제시

①회사는 합의서 체결 즉시 해지교사 11명 전원과 위탁사업계약을 체결하고, 계약해지 이전 소속 지국으로 배치한다.

②회사는 위탁사업계약 체결 즉시 단체교섭을 시작한다.

③회사는 현 사태와 관련한 민 ․ 형사상 고소, 고발을 취하(가처분결정 포함)하고 처벌불원탄원서를 제출한다.

④회사는 해지교사 11명에게 생활안정지원금과 노사협력기금으로 총 1억 5천만 원을 지급한다.

⑤회사는 조합활동을 이유로 불이익처분하지 않는다.

※기타, 세부 사항은 별도 논의한다.

 

-2012. 8. 29. 사측에 위원장 명의의 ‘최종안’ 거부 공문 발송

 

83. 2012. 9. 15. 중앙위원회 안건으로 ①사무처장 유고에 대해 논의하여 차기 중앙위원회에서 직무대행 결정하여 2012년 제2차 임시대의원대회에 보고하기로 결의, ②노조 규약에 따라 본조 임원이 반드시 교섭위원에 포함되어야 하므로 위원장을 교섭위원에 추가하고 재능교육에 공문발송하기로 결의, ③오수영과 유득규는 사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교섭위원에서 면직하는 것이 맞으나 우선 오수영만 우선 면직처리하고, 추후 유득규도 면직처리하기로 결의

 

84. 2012. 9. 20. 위원장과 재능교육지부 해고자들(재능교육지부장 제외) 간의 간담회 진행

-재능교육지부장이, 1년 이상 지속된 “폭언폭행” 진상조사 요구에 따른 회의파행, 사무국장 사퇴 등으로 인하여 더 이상 재능교육지부회의를 진행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한 상황

-위원장이 재능교육지부장의 최종의사를 확인하고 변함없으면 투쟁계획을 논의할 경우 등 중요한 사항이 있을 시 위원장이 회의 소집하기로 함

-이후 강경식, 여민희, 오수영, 유득규, 이현숙 등이 주축이 되어 “재능교육지부 회의”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으로 회의 진행(위원장과 재능교육지부장에게는 회의진행사실과 그 내용 등에 대해 어떠한 공유도 없었음)

 

85. 2012. 9. 21. 여민희 ‘재능지부투쟁 조합원 의견서’라는 제목의 메일을 위원장에게 전송, 그 내용은,

“1>기 진행되던 월/금 집중선전전은 그대로 유지하며, 보다 적극적인 선전을 위해 방식과 내용을 보완한다. 2>기독대책위의 10월 기도회에 최대한 집중 하고, 이후 해고자들은 본사를 제2거점으로 만드는 실천 활동을 전개한다. 3>본사를 직접 압박하는 것 외에, 시낭송대 회 또는 영업설명회 등 사측 행사와 관련한 대응투쟁도 함께 진행한다.”

-이후 월, 금 집중선전전은 해고자 참여가 들쑥날쑥하여 일부만 참여하는 것으로 정리되고, 본사 압박과 관련한 별도의 투쟁은 배치되지 않음. 또한 시낭송대회 선전전 및 반대집회 역시 제안자는 물론 해고자 대부분은 참여하지 않았고, 영업설명회 대응은 전혀 없었음

 

86. 2012. 11. 25., 2012년 제2차 임시대의원대회 개최하여,

①2012년 제1차 임시대의원대회(2012. 7. 22.)에서 “현재 전임자급여, 희생자구제기금 명목으로 지급되고 있는 금액에 대하여 각 대상자들의 수입실태 등을 다시 파악하여 이를 반영한 예산안을 작성 ․ 제출한다.”라고 결의한 바대로 해고자들에 대한 노조지급액 조정

-2012. 10. 29. ‘총소득 및 지출내역 확인요청’이라는 제목으로 해고자 10인에게 메일 발송

기한 내에 유득규, 이현숙, 기한이 지난 후에 오수영 답변메일 옴, 오수영은 기재 내용으로 명시한 배우자의 소득 부분에 대해 “배우자 소득은 기재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기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통보함

-2012. 11. 5. ~ 11. 6. ‘총소득 및 지출내역 확인요청’(2차)라는 제목으로 답변하지 않은 해고자들 7인(김경은, 강경식, 박경선, 여민희, 유명자, 정순일, 황창훈)에게 메일 발송

기한 내에 김경은 답변메일 옴

-2012. 11. 9. ‘총소득 및 지출내역 확인요청’(3차)라는 제목으로 답변하지 않은 해고자들 6인(강경식, 박경선, 여민희, 유명자, 정순일, 황창훈)에게 메일 발송

기한 내에 강경식, 기한이 지난 후에 황창훈은 메일 로, 유명자는 구두로 답변함

-박경선, 여민희, 정순일은 최종적으로 답변하지 않음

 

-이를 바탕으로 노조지급액을 조정한 안을 제출하여 표결로 통과됨

기존 전임자에 대한 지급액보다 수령액이 줄어들자 2013. 1. 초부터 오수영은 월, 화 / 이현숙은 월, 수 생계나가야 한다는 이유로 투쟁결합 못한다고 통보

 

②김경은, 여민희, 오수영, 유득규, 이현숙, 정순일 등 재능교육지부 해고자 6인이 ‘학습지노조 임원선거와 관련한 재능지부조합원들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문서에 연서명하여 제출, 그 내용은 “임원들이 조합원들과 함께 투쟁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 너무도 명백하게 밝혀진 현 시점에서 저희 역시도 현 임원들에 대한 어떠한 평가도 없이 임기를 연장하는 것에 반대”한다.

-대의원 만장일치로 7기 중앙임원, 지역본부 임원, 기업지부장 선거 진행할 것을 결의

 

87. 2012. 12. 6. 여민희 ‘재능지부 사업계획서’라는 제목의 메일을 위원장에게 전송, 그 내용은,

12월 한 달 동안 10만장의 유인물을 배포하고, 해고자가 근무했던 지국부터 현장선전전을 시작하자.

-여민희가 2012. 9. 제안한 내용조차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었고, 해고자 전원의 결의가 확인되기는커녕 원심력만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재논의해서 정말 끈질기게 집행해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설 때 다시 제안할 것을 요구하며 반려

-2012. 12. 10.부터 여민희 주중 농성 불가능하다고 통보한 후 종탑농성 돌입 시까지 유지

 

88. 2012. 12. 중순경, 유득규에게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고 1월 이전에, 또는 아무리 늦어도 설 전에 선거를 마칠 수 있도록 요청. 5인의 선거관리위원을 선정하고 선거관리위원회 첫 회의를 소집(2013. 1. 11) 하였으나 선거관리위원장이 중앙위원회에서 선출되지 않았다는 문제제기로 회의 중단. 당일 밤 중앙위원들이 모여 1안으로 유득규, 본인이 고사 시 2안으로 박경선을 선거관리위원장으로 선출, 유득규가 고사하여 박경선에게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유선으로 요청

 

89. 선거인명부 및 선거가 가능한 단위를 확정하기 위해 각 단위에 조합원명부 확인요청 했지만 서울경기지역본부를 제외하고 모두 답변하지 않음

 

90. 2013. 2. 2. 유득규의 요청으로 강종숙, 황창훈, 유명자 만남,

-오수영과 여민희가 고공농성을 결의했다며 함께 할 것을 요구함(사람, 날짜, 장소 모두 결정했고 변경은 불가능하다고 통보)

-강종숙, 황창훈, 유명자 모두 반대함

-이 과정에서 강종숙이 유득규에게 문제의식을 전달하며 “이건 최후통첩이고 따로 가자고 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지 않나? 임기도 다 끝났다고 하는 마당에 여기에 책임질 사람이 있나?”라고 말함(이후 황창훈과 유득규가 이 말을 근거로 모두 임기가 끝났다고 위원장이 말했다고 주장하고 있음)

 

91. 2013. 2. 5. 오전 9시경, 유득규가 “내일 수요일 아침 8시 혜화동 본사 집중선전전 합니다.”라는 문자 전송, 오후 12시경, 황창훈이 “현재 학습지노조 규약, 규정... 메일로 보내주셨으면 합니다.”라는 문자를 위원장에게 전송

 

92. 2013. 2. 6. 새벽 3시부터 2시간가량 강종숙과 유득규 통화.

-강종숙이 다시 논의해서 함께 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할 것을 요청했지만 다수가 반대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음

 

93. 2013. 2. 6. 오전 10시경, 유득규가 “9시 성당종탑에 올라감”이라는 문자 전송

 

94. 2013. 2. 6. 오후 5시경, 학습지노조가 강규혁이 2012. 3.에 제안한 교섭안을 거부한 이후, 공대위에서 철수하고 재능교육지부 관련 총연맹 주관 집회도 반대하고 학습지노조 집회에도 계속 불참하던 서비스연맹이 ‘종탑고공농성 촛불문화제’에 연대할 것을 요청하는 문자 전송(이후 문자 전송은 물론 서비스연맹 홈페이지에 배너창을 띄우는 등 이전 1,870여 일 동안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임)

 

95. 2013. 2. 6. 오후 5시경, 유득규가 저녁 9시에 기존 공대위에 단위를 추가하여 확대회의를 하겠다고 문자 전송, 위원장이 이미 기존공대위 회의를 소집했다고 했으나 기존 공대위를 제외한 채 서비스연맹, 통진당 등과 함께 회의 강행(서비스연맹과 통진당 모두 기존공대위 성원이었으나 공식적인 통보 없이 모두 철수한 상태였음)

-유명자가 회의는 주재했으나 그 자리에서 서비스연맹 조직국장(백은욱)이 “학습지노조 임원들의 임기가 언제까지인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며 임기문제를 계속 거론함”

 

96. 2013. 2. 6. 오후 10시경, 강종숙이 기존공대위 회의를 진행. 2. 7. ~ 2. 8. 투쟁계획(2. 7. 19시 투쟁문화제, 20시 기도회 / 2. 8. 11시 기자회견, 11시 30분 결의대회) 수립하고, 적극적으로 제 단체에 연락해 2. 7. 오후 2시에 공대위 확대회의를 개최하기로 함.

-유명자가 여민희, 오수영에게 종탑 현장에서 “건강 조심하고 안정에만 신경 써라. 사측 동향은 즉시 알려줄 테니 이런저런 말에 심난해 하지 말아라.”라는 톡을 보내자 오수영이 “유득규가 상황실장이니 유득규를 통해 공유하겠다.”라는 답변 옴

 

97. 2013. 2. 7. 오후 8시경, 유득규가 여민희, 오수영, 유득규, 황창훈, 강경식, 이현숙, 김경은의 의견이라며 공대위에 간담회 요청. 강종숙, 유득규, 황창훈, 이현숙, 강경식, 백은욱진보신당과 사노위만 참석한 채 진행. 시청농성장을 유지하기로 한 결정과 일방(강종숙, 유명자)의 편만 들고 있다며 공대위를 성토하는 발언이 주를 이루었고 공대위가 계속 이러한 입장을 유지한다면 필요없다는 취지로 발언함, 유명자를 지부장으로 인정할 수 없어 비대위체제로 가겠다고 주장. 진보신당, 사노위 모두 만류하고 강종숙이 현 상황에서 비대위는 최악의 선택이므로 종탑농성으로 회사를 압박해 교섭을 빨리 진행시키는 것으로 하고, 이 투쟁을 마무리 할 때까지만 외형상으로 현재의 위원장, 지부장 체제로 가야한다고 설득했으나 부정적인 답변. 다만 지부장이 지부 회의를 일방적으로 중단한 것에 대해 사과입장표명을 하면 고려해 볼 여지가 조금은 있다고 함.

 

98. 2013. 2. 7. 오후 10시 30분경, 오전에 강종숙이 여민희에게 기자회견 때 발표할 종탑농성자의 입장글 요청에 대해 여민희로부터 쓰지 못했다는 문자가 옴

“전화기 상태가 안 좋고 통화 이후로 사람들 다녀가고 집회하느라 글을 못 썼어요.. 수영은 지난번에 호소문 써서 쓸 내용 없다하고..”

 

99. 2013. 2. 8. 오전 11시경, 회사로부터 “교섭 요청”이라는 공문 수령.

설 연휴 첫 날인 2. 9.부터라도 교섭을 진행하자는 내용

 

100. 2013. 2. 8. 오후 2시경, 사측 공문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는 도중 연맹 정책국장으로부터 2013년 서비스연맹 대의원대회에 참석할 학습지노조 대의원을 알려달라는 문자 옴. 강종숙, 유득규, 이현숙, 황창훈, 강경식 등이 참석한 논의 자리에서 강종숙이 외부 사람들도 볼 수 있는 대의원대회 자료집에 공석으로 처리되면 안 되니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했으나 거부됨.(연맹 정책국장과 통화하여 밤까지 알려주겠다고 한 후 기도회 끝나고 다시 모인 자리에서도 위원장으로서의 대표성을 부정하여 결국 ‘공석’처리 됨) 반면에 유득규가 간사 자격으로 회사 간사와 연락을 취하는 것은 동의됨. 이에 따라 2. 9. 교섭진행은 하지 않고, 2. 8. 저녁 유득규가 유선으로 2. 9. 간사 만남을 제안하고 사측의 입장을 들어본 후 설 연휴가 끝나는 2. 12.에 학습지노조 공문을 보내는 것으로 결정함

 

101. 2013. 2. 8. 오후 3시 30분경, 공대위 확대회의 개최.(재능교육지부 해고자 대부분 참석)

-학습지노조가 2. 12. 사측에 공문을 보내고, 2. 14. 연극 ‘아름다운 동행’ 첫 공연일에 맞춰 교섭 진행한다.

-첫 교섭일인 2. 14. 낮 12시에 대학로 일대에서 선전전을 진행하고, 14시에 집중결의대회를 진행한다.

-제1차(2. 15.), 제2차(2. 20.), 제3차(2. 27.) 전국공동행동을 진행한다.

-2. 12.부터 공대위 단위가 하루씩 맡아 야간 투쟁문화제를 진행한다.

**강종숙이 작성한 공문을 유득규에게 메일로 보냈으나 유득규는 2. 12. 사측에 공문을 보내지 않았고 이후 ‘비대위’ 명의의 공문을 보냄으로써 위 투쟁일정 모두 폐기됨

 

102. 2013. 2. 10. 오후 8시 30분경, 유득규가 “여기 의견은 사람은 열어 놓고 비대위로 가야한다가 다수 지부장이 회의를 하지 않고 조합원과 소통을 단절한 것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소통 구조를 만들겠다면 위원장이 제시한 안을 받을 수 있다고도 합니다 지부장 생각을 월요일 오후까지 알려주세요”라는 문자 전송

 

103. 2013. 2. 11. 오후 12시경, 강종숙이 유득규에게 “문제의 원인이 어느 일방에게 있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문제는 그 경중을 판단하는 잣대가 서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데 있지요 따라서 “잘못을 인정” 이렇게 접근하면 답은 없다고 보여집니다 현 사태의 빠른 해결을 위한 가장 쉬운 방법에 서로 합의하는 것이 맞고 그건 과거에 대한 일시적 망각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미 증오 수준을 한참 넘어서 있고 회복도 불가능합니다 직접 지부장 만나서 이야기 하려 하니 오늘까지는 어렵고 내일 알려 드리지요”라고 답변 문자 전송

 

104. 2013. 2. 12. 강경식 명의로 2. 13. 14시에 학습지노조 재능지부 해고자 회의를 개최하겠다고 공지, 박경선이 한진중공업 故 최강서 열사 시신 사수 일정 때문에 참석이 어렵다며 일정을 재조정 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불가하다고 통보

 

105. 2013. 2. 12. 21시경, 강종숙, 황창훈, 유득규 만남.

강종숙이 황창훈, 유득규에게 잘못을 인정하라고 일방에게만 요구하는 것은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하고 먼저 제안한 대로 기존 체제를 외형상 인정하고 유득규가 상황실장 자격으로 참석하는 4인(강종숙, 유명자, 황창훈, 유득규)회의를 운용하고 해고자 전원이 참석하는 회의를 가미하자고 제안하였으나 수용불가 입장 통보

 

106. 2. 8. 저녁 유득규가 유선으로 2. 9. 간사 만남을 제안하고 사측의 입장을 듣는 것까지 진행하였으나 2. 12.에 보내기로 한 학습지노조 공문은 보내지 않음

 

107. 2013. 2. 13. 오전 10시, 여성단위 주관 기자회견 개최.

-강종숙은 사후에 알았고, 유명자는 당일 오전 8시 30분에 공대위 카톡방을 통해 알게 됨

-기자회견 후 투쟁기금 전달(2. 6. 종탑농성 돌입 직후부터 들어 온 투쟁기금과 관련하여 유득규 등이 별도로 관리하고 지출 중임. 심지어 지부 계좌로 입금해 주겠다는 단위에 현금으로 직접 달라고 함. 여성민우회에 별도 후원계좌 개설됨)

 

108. 2013. 2. 13. 새벽 4시경, 학습지노조 홈페이지에 <[긴급공지]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조합원 회의>라는 제목으로 회의 수정공지

-재능교육 투쟁 상황을 고려하여 긴급하게 재능교육지부 조합원 회의로 확대한다고 하였으나 구성면에서 학습지노조 재능지부 해고자 회의와 아무런 차이가 없음. 결국 회의 명칭에 공식적인 단위 이름을 명시한 것에 불과

-안건으로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비상대책위 구성의 건’ 명시

 

109. 2013. 2. 13. 14시 재능교육지부 조합원회의 강행(유명자, 박경선 불참. 영남권 해고자 참석여부는 모름)하여 비대위 공식화하고 비대위원장에 오수영, 집행위원장에 유득규 선출. 이를 그대로 학습지노조 홈페이지에 공지

-학습지노조 선거관리규정에 따르면 사퇴한 자들인 오수영, 유득규는 사퇴 후 1년간 피선거권 자체가 없어 명백한 규정 위반행위임

 

110. 2013. 2. 13. 오후 10시경, 공대위 긴급소집

-현 상황에서 비대위 체제로 가는 것은 투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공대위 3인이 유득규, 황창훈 등을 만나서 공대위의 의견을 전달하기로 결정하고 새벽 1시에 혜화동으로 출발

-이를 수용하지 않을 시 2. 14. 오후 공대위 확대회의 때까지 만이라도 비대위 명의의 교섭공문 발송을 중단해 줄 것을 요청한다.

-‘비대위’에서 거부

 

111. 2013. 2. 14. 오전 8시경, 비대위 명의로 2. 15. 교섭하자는 내용으로 교섭공문 발송(오후에 공대위 확대회의 하면서 우연히 알게 됨)

-오수영은 당일 오전 11시 20분경 공대위 성원 중 한 명과 통화하는 도중 공문 발송여부를 확인하자 공문 보낸 사실 없다고 말한 바 있음

 

112. 2013. 2. 14. 오전 11시경, 유득규가 재능비대위집행위원장 명의로 문자 전송하여 외부단위 전체에게 비대위 공식화 시도

 

113. 유득규의 문자 전송 직후 유명자가 학습지노조에 재능비대위라는 조직은 없습니다라는 문자 전송하면서 외부단위 극심한 혼란 및 동요

 

114. 2013. 2. 14. 오후, 참세상에 재능교육지부장의 임기가 끝나 비대위를 구성했다는 유득규 등의 인터뷰기사 실림

 

115. 2013. 2. 15. 오전 비없세 주도로 작성되어 투쟁사업장 등의 연서명을 받은 <전국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동지들께 드리는 긴급 호소문>이라는 제목의 문서가 전달됨

-2. 15. 예정된 교섭을 연기하고 서로 단결해 싸우자는 내용

-오전 11시 30분에 개최예정이던 결의대회 사회 및 발언을 ‘비대위’를 인정하지 않는 강종숙, 유명자 등이 하도록 할 수 없다는 주장에 따라 김소연 동지가 진행

 

116. 2013. 2. 15. 오전 11시경,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위원장 강종숙, 회계감사 김성희, 대의원 박경선, 대교지부 비상대책위원장 정난숙, 재능교육지부장 유명자 공동명의로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결정사항’이라는 제목으로 학습지노조 홈페이지에 공지

-이른바 ‘재능교육지부 비상대책위원회’라는 단위는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에서 승인한 사실도 없을뿐더러 현재 투쟁 상황 하에서 있을 수도 없다는 것을 명확히 밝힌다라는 내용

 

117. 2013. 2. 15. 오후, 사측에서 유득규에게 합의서 체결권을 분명히 해달라는 요구 접수됨

 

118. 2013. 2. 15. 밤 23시경, 대교지부 비상대책위원장 주선으로 강종숙, 유명자, 유득규, 황창훈 등이 모여 해결책에 대해 논의하였으나 임기가 이미 끝났으므로 비대위로 가는 수밖에 없다는 주장과 재능교육지부 해고자 일부가 구성한 비대위는 인정할 수 없으며 교섭체결권도 없다라는 주장만 반복

-논의 시작 전, 당일 오후에 유득규와 회사 측 간사가 만난 내용을 공유해 달라는 요청 묵살됨

 

119. 2013. 2. 16. 낮 12시경, 비대위장 오수영 명의로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총회 소집 공고

 

120. 2013. 2. 17. 비없세에서 지난 5년 동안 재능교육 투쟁을 이끌어왔던 동지들과 종탑농성을 진행 중인 동지들을 존중하고, 재능교육지부 조합원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전체 조합원의 마음을 모으자는 내용으로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교섭투쟁 방향’이라는 내용을 제안함.

 

121. 2013. 2. 18. 비없세 집행위원들과 강종숙, 유명자, 황창훈, 유득규 등이 모여 비대위 인정 문제로 감정의 골이 깊은 재능교육지부보다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을 통해 교섭과 투쟁을 전개하고, 지금까지 교섭과 투쟁을 이끌어왔던 학습지노조 강종숙 전 위원장을 직무대행으로 세우고, 4명의 교섭위원들이 교섭과 투쟁을 책임지고 이끌며, 교섭이 타결되면 학습지노조와 재능지부는 선거를 통해 이후 체계를 정비한다는 내용을 논의

 

122. 2013. 2. 21. 강종숙 주재로 공대위 회의 개최

-김소연 동지가 비없세와 학습지노조 조합원 간의 논의 진행과정 설명

-2. 28까지의 투쟁계획 수립, 1,895일을 앞두고 총력투쟁 결의

 

123. 2013. 2. 21. 여러 노동변호사들의 지원과 많은 동지들의 노력으로 학습지노조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 규약을 개정하고 법적인 교섭체결권을 가진 직무대행을 선임하기로 하고, 2013. 2. 24.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2013년 제1차 임시대의원대회 개최를 공고함

-강종숙, 유명자는 조직의 단결과 투쟁을 위하여 소집권자 대표 및 대의원대회 의장을 강경식으로 한다는 데 동의해 줌

 

124. 2013. 2. 22. 18시 30분경, 대표소집권자 오수영 명의로 2013. 2. 24. 오후 1시,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조직 정상화 방안의 건을 내용으로 하는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총회 공고

 

125. 2013. 2. 22. 22시 30분경, 대의원 김혜서 명의로 2013. 2. 23. 오후 1시 30분, 학습지노조 서울경기본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의 건을 내용으로 하는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서울경기본부 조합원 회의 개최 공고

 

126. 2013. 2. 23. 비없세 동지들이, ‘비대위’측에서 합의사항을 번복하려는 움직임이 드러나자 재차 설득을 하면서, 만약 합의를 번복하면 지금까지의 논의과정 전반을 공개할 수밖에 없다고 하며 18시까지 확답을 달라고 요청하자 조합원들이 모두 모이는 시간이 18시 30분이니 시간을 조금 더 달라는 요청을 하였으나 결국 답변 없었음.

 

127. 2013. 2. 24. 비없세 동지들이 ‘비대위’측에 다시 답변을 요구했고, 오수영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강경식 대의원에게 종탑농성자 공동의 요청사항으로 비없세와의 논의 내용을 지켜달라고 의견전달 했다고 하면서 오후 3시 이후에 최종입장 알려주겠다고 한 후 연락 없다가 최종적으로 조합원 설득에 실패했다고 답변

 

128. 2013. 2. 24. 20시경,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서울경기본부 조합원 회의 결과 공지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황창훈조합원, 집행위원장은 조연정 조합원이 한다.

-회의 개최 공고 후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것도 문제이지만 소집권자를 자청한 김혜서 대의원도 불참, 유득규, 이현숙을 포함해 9명이 ‘회의’ 진행하였으나 서울경기지역본부를 대표할 어떠한 권한도 없음

 

129. 2013. 2. 24. 22시 30분경,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2013년 제1차 임시대의원대회 개최

-박경선 대의원이 그동안 비없세와의 논의 과정을 설명하고 강종숙 전 위원장을 직무대행으로 추천했으나, 강경식 대의원이 황창훈 조합원을 직무대행으로 추천해 표결로 황창훈 조합원을 직무대행으로 선출함.

-박경선과 강경식을 제외한 두 명의 대의원 중 1인은 대의원을 만 4년 넘게 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대의원대회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5년간의 재능교육지부투쟁 기간 동안 결의대회, 농성 등에도 전혀 참석한 사실이 없고, 다른 1인은 2년간 황창훈의 필요에 의해서 단 한 번 대의원대회에 참석하여 황창훈이 발의한 안건에 대해 찬성 표결을 한 것이 전부이고, 건강상의 이유로 현재 학습지 일을 하지 않고 있어 실질적으로 대의원으로서의 자격이 의문시 됨

 

130. 2013. 2. 27. 오전 11시 30분경,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총회 결과 공지

-재능교육지부장 직무대행을 오수영 조합원으로 조합원 투표를 통해 선출

-재능교육지부장 오수영 직무대행이 고공농성 중 임을 고려하여, 투쟁의 집행과 교섭의 원활함을 위해 유득규 조합원을 집행위원장으로 선임 및 승인

-학습지노조 대대 전에 이미 결의한 사항을 의도적으로 비없세 동지들에게 숨긴 것은 물론 공지도 학습지노조 대대를 마치고 함

-사퇴한 자들인 오수영, 유득규는 피선거권이 없어 선거관리규정에 위배

선거관리규정 제10조(입후보자의 자격) 입후보자의 자격은 조합원에 한한다. 단, 조합으로부터 징계를 받았거나 자진 사퇴했을 경우에는 그 자격을 제한한다.

1. 탄핵 또는 자진사퇴의 경우 입후보 자격을 그 탄핵 또는 자진사퇴를 결정한 이후 1년간 정지시킨다.

 

 

 

 

 

 

 

 

 

 

 

 

 

 

 

 

 

 

 

 

 

[별첨]재능교육지부투쟁의 주체는 재능교육 해고자들이어야 한다.

 

1. 들어가며

 

오늘 모임의 목적이 학습지노조의 지난 모든 역사를 돌아보고자 함은 아니다. 학습지노조 설립 후 절반의 기간 가까이 진행하고 있는 선도투쟁 과정에서 우리가 빠뜨린 것이 무엇인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이를 즉각 실천에 옮기기 위한 단초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짧게는 지난 2006년부터 시작된 천막농성투쟁, 더 핵심적으로는 2007년 12월 21일 이후 지금까지 1,300일을 이어오고 있는 재능교육지부 투쟁을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결과에 따라 보다 응축된 투쟁을 전개해 제6기 임원들의 임기 내에 투쟁을 승리로 마무리하기 위함이다.

 

2. 대리주의의 문제

 

1999년 재능교육교사노동조합의 총파업과 이어진 2차 파업 및 임단협 투쟁, 2000년 말부터 2001년 봄까지 이어졌던 대교지부의 총파업움직임은 그야말로 대중투쟁이었다. 전체 교사 수의 절반 또는 특정지역에서 만큼은 소속 교사의 절대다수를 차지했던 조합원들이 주체가 되어 토론하고 계획하고 실천했던 투쟁이었다.

하지만 두 단위 모두 파업철회(그 결정근거와 판단기준이 무엇이든) 이후 급격하게 조합원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단 한 번의 반전도 없이 그 추세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06년 당시 지도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감행된 대교지부장 원직복직투쟁은 줄어든 조합원 수와 천막농성투쟁이라는 선도투 성격으로 인해 그 시작부터 대중투쟁과는 일정 거리가 있었다.(재능교육교사노동조합 역시 조합원 수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지도부의 단식투쟁, 본사 앞 거리농성, 고공시위 등의 방법으로 투쟁을 전개한 경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습지회사 가운데 조합원(특히 핵심간부)들을 가장 많이, 가장 노골적으로 해고했던 대교가 마침내 지부장까지 해고하겠다는 마당에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해고투쟁을 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세력에 의해 그 투쟁은 시작된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 투쟁은 시작부터 소수 간부들이 주도할 수밖에 없었고 구사대와 용역깡패, 경찰, 구청 등으로부터 전방위 압박을 받으며 학습지노조 최초로 구속자가 발생하고 전과자가 양산된다. 투쟁의 양상이 이러하다보니 현장조합원들은 찾아볼 수 없고 투쟁에 결합하는 인자들 사이에서도 소수만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모습이 나타났다. 단적으로 여러 번에 걸쳐 천막이 침탈되고 본사 로비 점거까지 감행했지만 두 경우 모두 결합한 조합원이 10명을 넘어서지 못했다. 가장 많은 조합원이 참여한 경우(집회, 선전전 등)도 50명(당시 조합원 수의 10% 남짓)을 넘어선 경우가 없었다.

이러한 모습은 2007년 한솔교육 해고투쟁에선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한솔교육투쟁에서도 구속자와 전과자가 양산됐고 가처분의 영향으로 정작 해고당사자는 제3자가 되고 투쟁에 적극 결합하지 않던 조합원이 철농만 담당하는 기형적인 모습이 나타났다. 이때는 농성투쟁에 결합하는 조합원이 대교투쟁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 학습지노조 역사상 처음으로 원직복직한 당사자조차 투쟁에 결합하지 않는 상황이 연출된다.

2007년 4월을 전후해 시작된 재능교육지부투쟁은 해고자 1인의 원직복직투쟁이 아닌 전체 교사들의 문제가 걸린 투쟁의 성격상 기존의 두 투쟁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고 초기에 잠깐 그러한 양상이 보이는 듯도 했지만 결국엔 기존의 선도투쟁과 동일한 길을 밟게 된다. 그것도 조합원은 갈수록 줄어들고 투쟁에서 떨어져 나가는 간부들은 늘어만 가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극소수의 핵심간부만 투쟁에 결합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재능교육지부 투쟁의 성격상 나아가야 할 방향에서 목표만 그에 부합하고 투쟁양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게 되면서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그 핵심은 바로 대리주의다. 소수의 간부가 대중의 요구와 무관하게 또는 그 요구를 대신해 모든 것을 해결하해야만 하는, 그래서 결국 시간이 갈수록 대중과 괴리되고 그럴수록 더욱더 ‘강도 높은’ 투쟁을 요구받고 그래서 다시 일반대중들은 도저히 그 투쟁과 함께할 엄두조차 낼 수 없게 되고, 결국 그 소수의 핵심간부사이에서조차 최선두에 서는 몇 명만이 ‘더 수위 높은’ 투쟁을 전개하는 그런 ‘투쟁’.

 

3. 해고자들 사이에서조차 나눠지는 등급

 

이렇게 극도의 대리주의가 만연한 지금의 학습지노조의 모습은 이러하다.

재능교육지부 투쟁은 해고자가 가장 많아 농성투쟁이 더 원활해야 하는 게 정상일텐데 지금까지의 어떤 투쟁보다 농성표 짜는 것이 어렵고 말이 많다. 말 한 마디로 농성불가를 표명하고, 자신이 담당한 시간을 펑크 내도 스스로 책임지려는 모습은 없다.(한솔투쟁에서 주중 철농을 담당했던 3인(딸랑 3인이었다!)은 불가피하게 자신이 해야 할 철농을 하지 못하게 되면 철농자끼리 조정했고 3일 연속으로 철농을 해서라도 펑크 내는 일은 없었다.) 이러다보니 언제나 그 펑크 메우기는 이른바 ‘전임자’(정말 황당한 규정) 차지다. 전임자는 당연히 그러한 펑크를 메워야 하고 메울 수 있는 5분대기조다. 투쟁 1,300일 동안 유인물 한 장 써 본 적이 없다. 노조 게시판에 댓글 한 번 달지 않는다. 투쟁계획 역시 제출해 본 적이 없다. 재판일정까지 일일이 다 챙겨줘야 겨우 한 번씩 법정에 나온다. 집회에서 발언 한 번 하고, 사회 한 번 보게 하려면 별 일을 다 보게 된다.

단식과 삭발, 고공농성을 해야 하는 사람 역시 당연히 정해져 있다. 이 극심한 대리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결국 해고자들 사이에서도 전천후 만능 엔터테이너 몇 명이 거의 모든 일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몸으로 떼워야 하는 너무나 비정상적인 모습이 지금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투쟁의 모습이다.

‘대리주의 속의 대리주의!’

 

4. 조직의 투쟁목표와 해고자 개인의 투쟁목표는 같아야 한다.

 

해고자 전원복직, 단체협약 원상회복. 현재 학습지노조의 투쟁목표다.

하지만 언뜻 살펴봐도 진정 복직의사를 갖고 투쟁에 임하고 있는 해고자가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때로는 공공연하게 때로는 은연중에 원직복직을 해서 다시 일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는 해고자가 절반이 넘는 것이다.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하고 그것을 현장에서 적용시키는 주체 역시 재능교육지부 조합원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원직복직 의사도 없는 해고자가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해서 무엇을 할 것이며 원상회복을 사활적으로 생각할 이유는 또 무엇이겠는가? 원직복직 투쟁은 해고당사자가 없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절대로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또 해고자가 재능교육지부 조합원의 절대 다수이고 핵심인 상황에서 정작 현장에서 일할 의사가 없다면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한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러한 상황은 이 투쟁에 결합하고 있는 연대단위 동지들에게 그리고 우리 투쟁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후의 무수한 투쟁에 비추어 봐도 시급히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상황에서 학습지노조의 전 역량을 재능교육지부 투쟁에 쏟아 붓고 있는 지금의 방침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조직은 해고자 전원 원직복직,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결의하고 그 길로 나아가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그럴 의사가 없거나, ‘명예복직’이니 계약서에 사인만 하겠다느니 하면서 원직복직을 희화화한다면 조직의 목표를 수정하거나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조직의 궤도 자체를 수정할 수밖에 없다.

 

5. 투쟁의 지향점을 통일하고 투쟁에 적극 복무해야 한다.

 

해답은 간단하다. 계속해서 더욱 소수가 모든 것을 책임지며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며 패배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최소한 해고자들만이라도 투쟁의 지향점을 통일하고 ‘동일하게’ 투쟁에 복무하며 승리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해고자가 타 지부 조합원만큼도 농성투쟁에 복무하지 않는 것은 분명 비정상이다. 심지어 연대단위만큼도 집회와 투쟁문화제에 결합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임자’들이 개인적으로든 주변여건에 있어서든 조건이 남달리 나아서 농성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모든 집회와 문화제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다들 알지 않는가?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이미 오래전에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것도 뻔히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지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아닌가?

더 이상 현재 조직의 모습을 애써 못 본 체 눈 감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모습을 타개하기 위한 첫걸음을 즉시 떼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이 요구하는 수많은 일들을 해고자 전원이 ‘동일하게’ 나눠 실천해야 한다.

투쟁목표가 문제인가? 오늘 날밤을 새서라도 통일하자. 단, 그 투쟁목표는 나의 것이어야 하고 나도 실천해야 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나 아닌 누군가가 떠들어대면서 대가리 박는, 나와는 동떨어진 그런 것이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생활과 의지가 문제인가? 지금 당장 무조건 뜯어고쳐야 한다. 나의 사생활과 활동영역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그것 역시 중요하다. 내가 투쟁이 요구하는 수많은 일들을 하지 않은 만큼 누군가가 해 왔기에 1,300일을 버틴 것이다. 한 쪽 발만 투쟁에 담근 채 더 이상 해고자 전원 원직복직, 단체협약 원상회복 투쟁을 한다고, 하자고 말하지 말라.

생계가 문제인가? 노동조합이 현재 전임자에게 지급하는 생계비만큼은 무조건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질 것이다.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지금 개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모든 생계활동을 중단하고 축소해야 한다. 생계비가 부족하다면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하자.

다른 문제인가? 그렇다면 그게 무엇이든 오늘 답을 찾자.

 

농성투쟁 기록을 갈아치우는 게 목표가 아니라면 지금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이다. 또 재능교육은 이미 한계상황에 도달해 안팎으로 흔들리고 있다. 우리가 결의하고 집중하면 승리의 그 날이 그리 멀지 않다고 확신한다.

다시 한 번 확인하건데 재능교육지부투쟁의 주체는 재능교육 해고자들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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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찬씨의 종횡무진 활약을 지켜보다가...

“운동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제기하는 분에 대하여

 

최근 자신의 블로그(http://blog.jinbo.net/chan/110)에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상황과 관련한 글을 올린 사람은 오수영의 남편 김진찬입니다.

 

누구나 그러하듯 한 번쯤 사실을 ‘마사지’하여 자신 또는 자신의 편에 유리하도록 글을 쓰는 것 까지는 모른 척 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말뿐이고 단지 글에 불과하니까요. 하지만 반복해서 악의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며 논점을 흐리고 참주선동을 일삼는다면, 이건 좀 다르게 대응해야 합니다. 그 방식은 당사자에게 시정을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정확한 사실을 알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 둘 모두 여의치 않거나 그렇게 노력을 해야 할 정도가 아닐 경우 아주 짧고 명확하게 그를(또는 그 글을, 그 말을)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하나 내놓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마지막을 택했고 그것이 이 글입니다. 이 글에서 저는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더 올바르다.”는 가르침에 따라 그의 “운동”이 어떠했는지 말하려고 합니다.

 

김진찬씨는 지난 2월 26일, ‘재능지부 투쟁 1896일에 부쳐...’라는 글 마지막에 “운동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저는 나름, 김진찬씨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예의 그 “운동”이라고 하는 것을 하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지켜보았습니다.

 

 

김진찬씨는 한솔교육 학습지교사로 근무하다 2007년 3월 해고가 됐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솔교육은 수사기관에 각종 고소고발을 해댔고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했습니다. 법원은 당연히 한솔교육의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고, 한솔교육 본사 앞에 가처분 대상자가 나타나면 이행강제금으로 10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법원은 가처분 서류를 받지 않은 조합원에게는 가처분 결정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노동조합은 일단 가처분 대상자인 조합원들을 한솔교육 본사 건물 주변에서 철수시켰고 해고당사자였던 김진찬씨에 대해서도 그러했습니다. 이때부터 노동조합이 24시간 농성장으로 사용하던 승합차의 농성에서 김진찬씨는 빠지게 됩니다. 특히 당시 밤 농성에 대해 여성조합원들은 안전상의 이유로 배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성조합원들 4명이 돌아가면서 밤 농성을 전담했습니다.(3명은 주중 이틀씩, 1명은 주말 하루) 그 4명 가운데 1명은 월급이 삼사십만 원에 불과한 가운데 병든 아버지까지 간병해야 했습니다. 다른 2명은 모두 막 돌이 지난 아이의 아빠들이었습니다. 또 다른 1명은 밤 농성을 위해 서산에서 올라와야 했습니다.(올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이때에는 다른 남성 조합원이 밤 농성을 대신 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앞의 3명은 아버지 상태가 굉장히 나빠지거나, 아이가 갑자기 아파 응급실에 가는 경우가 생겨도 대체할 농성자가 없었기에 서로 대신 농성을 하고 다음에 대신 농성을 해 준 동료의 당번일 날 이를 갚는 방식으로 단 한 번의 펑크도 없이 투쟁이 끝날 때까지 밤 농성을 진행했습니다.

 

한솔교육 해고자복직투쟁을 마무리하지 못한 2007년 12월, 김진찬씨가 자신의 글에서 “노사협조적 경향”이라 지칭한 유명자와 유득규가 직접 찾아와 천막농성투쟁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미 이현숙이 노동조합이 수용해서는 안 되는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을 받아온 2007년 4월부터 그에 맞서 함께 싸웠고 유명자를 지부장으로 오수영을 사무국장으로 내세운 때이기는 했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때 김진찬을 포함한 학습지노조 내의 자칭 “투쟁파” 몇몇이 모여 이에 대해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김진찬과 황창훈이 이 논의와는 별 상관없는 감정대립으로 의자를 집어던지면서까지 싸운 그 날, 황창훈은 형이 이민 가 있는 말레이시아로 갈 것이라고 했고, 김진찬은 “깨끗이 패배를 선언”하고 퇴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때 김진찬씨가 그렇게 강조하는 “민주적인 토론”과 무관하게 강종숙이 강력하게 밀어붙여 천막농성투쟁을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드디어 2008년 4월 22일, 406일간의 농성투쟁 끝에 학습지노조와 한솔교육이 원직복직에 합의합니다. 하지만 그 합의서에 “6개월 간 별도의 업무를 부여하여 자질을 확인한 뒤 재계약을 체결한다.”라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학습지노조 최초의 원직복직 사례였던 (주)대교와의 합의서보다 분명 내용상 부족한 합의서였습니다. 하지만 회사와 교섭을 하면서 원직복직에 대한 어느 정도의 확신이 있었기에 잠정합의를 하고 중앙위원회에 승인을 요청했습니다. 그 중앙위원회 자리에 김진찬씨도 참석했고 앞장서서 승인을 주장했습니다. 결과는 “많이 아쉽지만” 만장일치의 승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김진찬씨는 ‘승리보고대회’를 하는 당일 아침에 문서를 하나 작성해 오더니 배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문서의 내용은, 합의해서는 안 되는 안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고 앞으로 더욱 열심히 투쟁하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6개월 간 별도의 업무를 부여”받기 위해 당시 학습지노조 위원장 직무대행 강종숙과 김진찬이 한솔교육의 자회사인 (주)에듀베이스에 함께 갔습니다. 에듀베이스 대표이사는 첫마디부터 “나와 우리 회사는 학습지노조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앞으로는 노조가 아니라 김진찬씨와만 이야기를 하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김진찬씨가 대뜸 “그렇게 하시죠.”라고 했고 그 이후로 김진찬씨로부터 제대로 된 보고를 받아본 바가 없습니다. 약속한 6개월이 다 되어갈 무렵 한솔교육이 김진찬씨를 원직복직 시킬 의사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어 갔고 이 때 김진찬씨와 에듀베이스 사이의 근로계약서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 계약서는 기한의 정함이 없는 정규직 노동자의 근로계약서에 준했고 월급도 한솔교육 학습지교사로 일할 때보다 월등히 많은, 200만원이 넘는 액수였습니다.

 

김진찬씨는 다시 한솔교육을 상대로 싸우는 것에 대하여 주저하고 회피했습니다. 당시 김진찬씨는 모 조직의 일원이었는데 당연히 그 조직으로부터 상당한 압박을 받은 끝에 어쩔 수 없이 ‘투쟁’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그 투쟁기간에 에듀베이스 근무 시 알게 된 팀장으로부터 이것저것 얻어먹기도 하고 선전전을 빼먹어가며 ‘투쟁’했습니다. 그러다 “명예복직”을 주장합니다. 김진찬씨가 말한 명예복직이란, 자신이 회사에 복직하지 않는다라고 약속하고 대신 합의서에는 원직복직이라 명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일 밤 중앙위원회를 소집하고 이를 보고한 후 한솔교육 해고자복직투쟁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강종숙이 일일이 여러 조직들을 찾아다니며 “부부가 해고자라 생계도 어렵고 해서 일단 투쟁을 중단하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취지로 해명을 해야 했습니다. 김진찬씨는 이 일로 조직에서도 제명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재능교육지부 투쟁이 한창이던 2011년, 김진찬씨와 오수영의 관계가 심각한 상태까지 치달았습니다. 김진찬씨는 오수영이 가정에 소흘하고 날마다 늦게 들어온다는 이유로 계속 문제제기를 했다고 합니다. 오수영은 해고당사자이자 재능교육지부의 임원이었습니다. 김진찬씨는 자신의 복직투쟁처럼 오수영도 다른 사람들이 투쟁을 대신하도록 하라는 것이었을까요? 그래서 해고당사자이지만 집에 일찍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었을까요? 그나마 오수영은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고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해고자 가운데 유일하게 고정 철농요일이 있었습니다.

 

한솔교육 해고자복직투쟁 과정에서 연대동지 3명이 벌금형을 선고받고 전과자가 됐습니다. 학습지노조 조합원 7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1명은 3심까지 모두 종료됐고 집행유예기간도 끝났습니다. 나머지 6명 중 4명이 대법원에서 아직도 이 재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4명 가운데 2명은 강종숙과 황창훈입니다. 이 둘은 재능교육지부 투쟁과정에서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이 기소가 되어 재판 진행 중에 있으며, 강종숙은 현재 1건의 징역형 확정으로 집행유예 기간에 있고 2건은 대법원 선고기일을 기다리고 있으며, 또 1건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황창훈도 현재 1건의 징역형 확정으로 집행유예 기간에 있고 1건은 대법원 선고기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다른 2명은 학습지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조합비를 내며 조합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종숙과 황창훈의 재판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함께 상고했습니다. 남은 2명 중 1명은 학습지노조 전 위원장이지만 노동조합을 탈퇴했고 상고도 포기했습니다. 마지막 1명은 바로 김진찬씨입니다. 김진찬씨도 오래 전 노동조합을 탈퇴했고 상고도 포기했습니다.

 

이상이 제가 아주 가까이서 지켜본 김진찬씨의 “운동”의 모습입니다. 저는 김진찬씨에게 “운동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거론하기에 앞서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도덕에 대해 스스로 판단해 볼 것을 권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 글의 진위 여부를 김진찬씨에게 묻기를 바랍니다. 김진찬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의 진위에 대해서도 당사자들에게 꼼꼼하게 확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제게 확인을 요청하신다면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서류를 공개할 의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능교육지부의 현 상황에 대해 걱정하고 계시는 분들, 현 상황에 대한 입장 표명으로 인해 ‘봉변’을 당하신 분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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