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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교육지부 투쟁관련 입장서(강종숙, 박경선, 유명자)

재능교육지부 5년 투쟁의 과정과 종탑농성의 문제에 대하여

 

한 달 전 재능교육지부의 해고자 2명(오수영, 여민희)이 혜화동 성당의 종탑에 올랐습니다. 바로 이어 재능교육지부의 해고자 일부가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구성했다고 선포하고 종탑에 오른 오수영 해고자(작년 8월 재능교육지부 사무국장직 사퇴)가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었다고 하더니 재능교육 사측에 교섭공문까지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는 모두 노동조합의 규약과 선거관리규정을 위반한 것입니다. 재능교육지부가 속한 학습지노조는 산별노조이기 때문에 비대위는 노동조합 중앙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하며, 교섭 체결권 역시 학습지노조 위원장에게 있으므로 교섭 체결권이 없는 사람이 공문을 보낼 수도 없고 보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자진사퇴를 한 자는 1년간 입후보자격이 제한되기 때문에 오수영 해고자는 비대위원장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지난 5년의 투쟁을 함께한 재능교육지부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단위들 대다수가 비대위 구성에 반대하며 모든 조합원이 단결해서 싸울 것을 요청했는데도 불구하고 분열상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키며 일련의 과정을 진행시킨데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갈등상황이 더욱 증폭되면서 종탑농성의 목적과 성격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고, 공대위와 연대동지들에게도 혼란스러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저희는 현재 종탑농성이 재능교육지부 5년 투쟁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아니라 오히려 지난 5년여의 투쟁성과마저 날려버릴 수도 있는 최악의 결과를 만들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비대위를 만든 뒤 저들이 펴고 있는 주요 주장이 사실과 다른데도 그동안 일일이 논박하지 않은 이유는 어찌됐건 종탑에 오른 사람들이 있기에 최대한 인내할 수밖에 없었고, 비정규직최장기투쟁사업장으로서 5년 투쟁을 넘어 종탑농성이라는 상황을 앞에 두고 분열상을 회사와 경찰 앞에 드러내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울산과 평택, 아산에서 고공농성을 전개하고 있는 동지들과 수많은 투쟁사업장 동지들에게 미칠 악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공대위에 함께하며 헌신적으로 함께 싸워온 동지들을 참담하게 만들 것이 너무나도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비대위 논란을 넘어 학습지노조 전체가 파행으로 가는 사태까지 상황이 악화되고, 이러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 동지들의 제안을 거부하고 그들에게까지 막말을 퍼붓는 모습에 더해 그 동지들의 진의를 왜곡해 거짓 입장서까지 게시하는 모습을 보며 더 이상 감춘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재능자본과의 당면 싸움, 나아가 구몬학습, 대교, 웅진씽크빅 등 거대 학습지자본과의 싸움을 책임져야 할 학습지노조를 더 이상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문제는 그냥 덮고 지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민주노조라면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되는 일련의 행위를 반복해서 벌여온 자들의 본모습을 제대로 알려 다시는 이러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지금 왜 이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지에 대해 분명히 밝히고,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쟁취 문제를 명확하게 알려낸 재능교육지부투쟁이 지금이라도 올바로 마무리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1. 재능교육지부 투쟁요구안을 둘러싼 논란들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복직. 이제는 재능교육지부투쟁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투쟁요구안입니다. 하지만 지난 투쟁기간 내내 이에 대한 냉소와 이를 흔들려는 움직임이 계속해서 안팎에 존재해왔고, 결국 작년 정기대의원대회에서「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복직 관련하여서는 이미 결정된 내용을 확인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대의원대회 하급회의에서는 재론할 수 없다. 이의 수정을 요구할 경우 대의원대회 또는 총회를 소집하여 논의 ․ 결정하여야 한다.」라는 결의까지 이끌어내야 했습니다.

특히 2012년 3월경 서비스연맹 강규혁 위원장이 강종숙, 유득규, 유명자, 오수영에게 “우선 복직 후에 단체교섭을 시작하자”는 안을 제시하면서 이를 수용하라 강력히 요구했고, 이에 대해 강종숙과 유명자가 주도적으로 수용을 거부했습니다. 재능교육지부는 이미 2000년에 특수고용노동자 최초로 회사와 단체협약을 체결했고 그 후 4차례에 걸쳐 갱신체결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2008년말 회사가 일방적으로 단체협약을 파기하였습니다. 노동조합은 이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대의원대회와 중앙위원회 등에서 노동조합 요구안을 논의하면서 ‘단체협약 원상회복 후 투쟁종료’라는 결의를 거듭했습니다. 따라서 ‘선 복귀 후 교섭시작’이라고 하는 안을 수용할 수도 없고 수용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득규는 “수용할 수 있는 안은 아니지만 사측과 직접 교섭을 여는 것이 중요하므로 일단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오수영은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강종숙이 유득규, 오수영을 설득해 수용거부로 최종입장을 정리하자 이현숙이 앞장서서 문제를 제기했고, 이후 서비스연맹은 공대위에서 철수한 것은 물론, 학습지노조가 민주노총에 요청한 민주노총 주관 집회에 대해 계속해서 ‘반대’ 의사를 표명하며 투쟁을 가로막았습니다. 서비스연맹 수석부위원장 박영수는 서비스연맹 부산울산경남지역본부 소속 간부들과 재능교육지부 영남권 해고자들을 만나 강규혁의 안을 노조가 수용해야 하는데 강종숙, 유명자가 고집을 부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라는 발언을 하고 다니기까지 했습니다. 강규혁이 안을 제시한 직후인 작년 4월말 오수영이 작성한 문서를 보면 [회사는 “노동자가 아니기에 노동조합을 인정할 수 없다” 에서 “들어와서 단체협약을 이야기 하자”고 한다.(물론, 강규혁위원장의 안이 회사의 입장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이것을 사실로 인정한다면 회사가 우리에게 내줄 것은 다 내준 것이다. 이제 명분이 남았다.]라고 하며 강규혁의 안에 대해 노동조합의 입장과 사뭇 다른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그 전에도 사측은 교섭이 진행되기 전 항상 협상의 첫째 조건으로 재능교육 회장 집 앞 선전전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는데, 강종숙은 4년 넘게 단 한 주도 이를 거르지 않고 해왔으며, 오히려 노동조합 안팎에서 사측의 협상안을 흘리며 이를 잠정중단 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외에도 사측과의 교섭국면이 열리거나 이러저러한 안이 제시되면 언제나 “양보와 타협”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거나 은연중에 흘리는 상황이 되풀이되었습니다.

 

2.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복직은 합의서 상의 문구가 아니어야 합니다

 

해고자 전원복직은 말 그대로 해고자 전원이 자신들의 힘으로 투쟁해서 원직에 복직해야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재능교육지부처럼 현장에 조합원이 단 한 명도 없을 때는 더욱 절실합니다. 그러나 1,900일 투쟁의 첫 해고자 중 한 명인 오수영은 해고된 얼마 후부터, 자신은 계속 싸울 것이기는 하지만 복직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해왔습니다. 여민희는 투쟁 1년 즈음부터 아무런 논의 없이 다른 학습지회사에 다니기 시작했고 다시 얼마 후 직접 학원을 인수해 사업장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부산지역 해고자 중 1인도 해고 후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은 복직의사가 전혀 없으므로 투쟁에서 빠지겠다고 하여 노조에서 지원금이 나가지 않은 지 오래됐고, 비대위를 구성했다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 비대위 구성원에서조차 제외됐습니다.(이는 복직대상자가 한 명 줄어들었음을 사측에 공표하는 행위입니다.) 비대위를 만든 나머지 해고자들 중 상당수도 해고 당시부터 현재까지 매일 진행되고 있는 저녁 투쟁문화제에 온전히 참여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심지어 연대단위 동지가 지켜보는 데서 오수영과 황창훈은 “집회 사회를 봐라.” “못 보겠다.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냐.”라고 하며 목소리를 높여 싸우기까지 했습니다.(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보다 못한 강종숙이 이미 2011년 7월에 <재능교육지부투쟁의 주체는 재능교육 해고자들이어야 한다>라는 문서를 작성해, 해고자들이 재능교육지부투쟁을 자신의 투쟁으로 받아 안고 싸워야한다고 요청했지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문서에서 강종숙은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원직복직 의사도 없는 해고자가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해서 무엇을 할 것이며 원상회복을 사활적으로 생각할 이유는 또 무엇이겠는가? 원직복직 투쟁은 해고당사자가 없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절대로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또 해고자가 재능교육지부 조합원의 절대 다수이고 핵심인 상황에서 정작 현장에서 일할 의사가 없다면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한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데 투쟁 과정에서 이런 행동을 한 비대위 구성원들이 달랑 10명 남은 해고자 가운데 또 다시 2명(유명자, 박경선)을 배제하였습니다. 그것도 교섭이 한창이던 작년 7월, 사무국장직을 사퇴해 집행간부의 책임을 져버린 오수영을 비대위원장과 지부장 직무대행으로 ‘옹립’하며 보란 듯이 배제를 선언하는 모습에서, 먼저 사측에 부끄러웠습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단 8명의 조합원으로 단체협약을 끝까지 지켜내며 싸울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사측이 그 8명이 무서워서 단체협약 사항을 다 지킬 것이라고 믿는 것인지, 10명이 단결된 모습으로 힘 있게 투쟁을 마무리하고 죽을힘을 다해 싸워야 하지 않는지, 정말 묻고 싶습니다.

 

3. 재능교육 본사 앞 혜화동성당 종탑은 지금 누구에 대한 무기가 되었는가?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유성기업, 쌍용자동차 등의 투쟁사업장 동지들이 모두 100일 넘게 고공에서 농성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조합원들과 사전 논의나 공유 없이 고공농성을 시작한 경우도 있지만, 농성투쟁이 해당 자본을 명확하게 겨냥하고 있고, 함께 투쟁했던 지도부에 대한 배척이나 요구조건의 변경 등이 발붙일 여지없이 확고합니다.

반면 재능교육지부의 고공농성은 비대위측 해고자들끼리 사람, 날짜, 장소 등을 모두 결정한 후 고공농성 돌입 나흘 전에 강종숙, 유명자, 황창훈에게 그 어느 것도 말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통보하였으며, 강종숙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사람만 알려줬고, 3인 모두 이를 반대했습니다.(이후 황창훈은 종탑농성 전날 ‘비대위’에 동참) 강종숙이 고공농성 돌입 당일 새벽까지도 다시 논의해보자 요청했지만 묵살당했습니다.

비대위측은 이미 자체적으로 상황실장(유득규) 등 역할분담을 한 상황이었고, 서비스연맹과 통합진보당 등 원래 공대위 참여단체지만 활동을 하지 않던 조직들에게, 고공농성 당일 밤부터 공대위 참여를 요청하고 임의로 회의를 개최하는 등 기존 체제를 부정하며 일을 진행했습니다.

비대위 측은 종탑농성 초기부터 기존 공대위 단위에게마저 시종일관 “종탑투쟁에 복무하지 않고 일방의 입장에 따라 이런저런 소리나 퍼뜨리고 다니려면 아예 빠져라.”라고 하였고, 공대위 단위들과 강종숙이 조직과 당면투쟁을 파행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는 비대위의 공식화를 극구 만류하였음에도 일언지하에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또한 교섭체결권도 없는 비대위 명의로 사측에 교섭공문을 보내는 등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결국 종탑농성 한 달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자신들도 참석하여 진행된 공대위 회의의 결정사항이었던 주요 투쟁들이 모두 폐기된 채 이렇다 할 투쟁도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고, 종탑농성 돌입 이틀 만에 사측에서 먼저 요청해 온 교섭 역시 단 한 차례도 진행시키지 못한 채 투쟁동력은 오히려 더 떨어져 가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종탑농성을 진행하면서 사측에 맞서 총력투쟁을 진행하기는커녕 공대위 동지들과 함께 결의한 투쟁마저 모조리 폐기시키면서 ‘재능지부 해고자회의’, ‘재능교육지부 조합원회의’, ‘재능교육지부 총회’(이 회의 모두 구성원은 결국 똑같음) 등을 진행하며 내부갈등만 증폭시키는 종탑은 무엇을 위한, 누구에 대한 무기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4. 또 다른 논란거리들?

 

-종탑농성에 함께할 수는 없었나? 지금이라도 함께해야 하는 것 아닌가?

 

5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장기투쟁을 온전히 이끌어 온 위원장(처음 1년은 직무대행)과 지부장으로서 투쟁의 결정적 국면에서의 판단은 정말 신중해야 합니다. 앞서 밝힌대로 재능교육지부 해고자들과 조직의 상황은 어려웠습니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어쨌든 포기하지 않고 싸워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2월 2일 유득규에게서 확인한 한 가지 사실이었던, 종탑농성을 결의한 해고자의 이름을 듣는 순간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민희는 자신의 사업장을 가지고 있는 진짜 ‘사장님’입니다. 그래서 유득규에게 물었습니다. “학원은 어떻게 하고 고공농성을 하겠다는 겁니까?” “잘은 모르지만 어떻게 처리하고 온 것 같습니다.” 오수영은 시어머니와 같이 살고, 이제 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그래서 또 물었습니다. “애는 어떻게 할 거며, 시어머니한테는 말했습니까?”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결의했습니다.” 사장님을 믿고 모든 것을 걸 수는 없었습니다. 투쟁 초기부터 복직하지 않겠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닌 해고자를 믿고 모든 것을 걸 수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여민희는 종탑농성 직전인 작년 12월부터 그나마 한 번 뿐이던 주중 밤 농성에서 빠졌습니다. 오수영도 올해 1월부터 생계를 나간다며 월요일, 화요일 투쟁에 결합하지 않았습니다. 이현숙은 앞에서 밝힌 것에 더해 역시 올해 1월부터 생계를 나간다며 월요일, 수요일 투쟁에 결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루아침에 고공농성을 결의했다고 하는 말을 듣고 어떻게 “알겠습니다. 함께 합시다.”라고 말 할 수 있습니까?

 

재능교육지부는 지금도 시청 환구단 앞에 농성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때 시청 농성장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방치되겠죠.”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방치되는 게 아니라 철거되는 거잖아요?” “뭐 그렇게 되겠죠.” 당시 고공농성 장소가 어딘지도 알 길이 없었던 저희들은 2년 넘게 거점으로 기능해 온 환구단 농성장을 그렇게 쉽게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또 길 건너 대한문에 있던 농성촌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방치 후 철거를 쉽게 용인할 수도 없었습니다. 투쟁하는 조합원이 30명이 채 안 되는 쌍차지부 동지들은 당시 5군데의 거점을 유지하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종탑농성 첫 날 공대위 회의에서 종탑농성에 복무할 수 있는 긴급 투쟁계획을 수립함과 동시에 공대위 동지들에게 충분히 설명을 하고 동의를 얻어 환구단 농성장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에 문자로 유득규에게 물었습니다. “앞으로도 쭉 전원이 거기 있겠다는 건지?”, 답이 없었고 환구단 농성장을 유지한다는 이 날 공대위 결정에 대해 지금까지도 분노에 찬 성토가 난무합니다.

 

종탑농성 당일 비대위측에서 불러 모은 단위들과의 회의 장소에서 서비스연맹 조직국장은 “학습지노조 임원들의 임기가 언제까지인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며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당시 그 문제를 거론하고 있던 유일한 단위는 현재의 비대위뿐이었습니다. 이심전심인가요? 찰떡궁합인가요? 우연의 일치인가요? 이미 그 날 오후 5시경, 오래 전에 공대위에서 철수하고 재능교육지부 관련 총연맹 주관 집회도 반대하고 학습지노조 집회에도 계속 불참하던 서비스연맹은 ‘종탑고공농성 촛불문화제’에 연대할 것을 요청하는 문자 전송을 했고 이후 문자 전송은 물론 서비스연맹 홈페이지에 배너창을 띄우는 등 강종숙, 유명자가 지도부로 있던 지난 1,870여 일 동안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개과천선하여 상급단체로서의 본분을 다 하는 걸까요?

 

종탑농성 당일 성당측에서 강제진압에 들어가려 하던 경찰의 철수를 요구했습니다. 농성시작 이틀 후에는 종탑농성장에서 전기장판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전기사용을 허락했습니다. 또 얼마 후 주임신부님이 신도들에게 절대로 농성하는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해서는 안 되며 안 좋은 말도 삼가라고 강론하셨습니다. 침탈로부터의 안전은 확보된 것입니다. 그러나 비대위측은 계속 ‘위기론’을 설파하며 투쟁의 확산이 아니라 종탑사수만을 되뇌고 있습니다. 인수위 투쟁, 타 사업장 연대투쟁(골든브릿지지부 파업투쟁 300일 집중투쟁에 단 한 명도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재능교육의 부당한 일감몰아주기(파이낸셜 투데이 기사 참조. ①http://www.f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997, ②http://www.f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652)에 대한 폭로 및 타격투쟁 등에 눈 감고 등 돌렸습니다.

 

종탑농성 돌입 다음날, 황창훈, 유득규는 사람은 열어 놓고 비대위로 가야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지부장이 지부 회의를 일방적으로 중단한 것에 대해 사과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강종숙은 현 상황에서 비대위는 최악의 선택이므로 종탑농성으로 회사를 압박해 교섭을 빨리 진행시키는 것으로 하고, 이 투쟁을 마무리 할 때까지만 외형상으로 현재의 위원장, 지부장 체제로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투쟁과정이 있는데 어느 일방에게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준법서약서나 사상전향서를 쓰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부장이 사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들만의 비대위를 일사천리로 진행시켰습니다. 허수아비 비대위원장으로 내세우려던 강종숙마저 끝까지 비대위를 반대하자 비없세 동지들과의 약속을 파기하고 거수기 대의원을 동원해 지도부 논란의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종탑농성 초반 자신들도 참가한 공대위 회의에서 결정한 투쟁계획들을 모조리 폐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오로지 자신들만 납득할 수 있는 “투쟁체계”가 필요했기 때문이랍니다. 비대위를 구성하고 온갖 단위 회의를 소집(전날 밤 10시 반에 공지하고 다음 날 오후 1시 반에 소집권자도 불참한 가운데 달랑 9명이 참가해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해 자기들끼리 이러저러한 감투를 나눠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나마 규약과 선거관리규정을 정면으로 거슬러 합법적이지도 않을뿐더러 그 정당성도 없습니다. 결국 사측이 종탑농성 돌입 이틀 만에 교섭요청 공문을 보내왔지만 이와 같은 자중지란 속에 이젠 교섭길도 막혀 버렸습니다.

 

황창훈, 유득규가 민주노총 서울본부장님을 찾아가 공대위 집행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그 서울본부장님이 강종숙, 유명자, 유득규, 황창훈에게 재능교육지부의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새로운 논의테이블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유득규는 단칼에 거부했습니다. 자신들을 지도부로 인정하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라는 이유였습니다.

 

공대위 동지들조차 “유빠”로 매도하며 스스로를 고립시켰습니다. 그 많은 공대위 단위와 투쟁사업장 동지들이 유명자의 농간에 놀아날 정도로 멍청하지 않습니다. 강종숙의 일방적인 거짓선동에 세뇌되어 상황판단을 못 할 정도로 모자라지도 않습니다. 재능교육지부 투쟁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 누구보다 심지어 재능교육지부 해고자들보다 더 열심히 함께 싸워온 동지들입니다. 그런 공대위 단위 동지들도 눈에 띄게 종탑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정말 골수부터 “유빠”라서 그렇습니까? 비대위가 지난 한 달, 나아가 지난 5년 자신들이 어떠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답은 간단합니다.

 

-강종숙, 유명자의 임기가 끝났기 때문에 새 지도부를 선출해야 한다?

 

투쟁요구안을 훼손하지 않은 것은 물론 이를 훼손하려는 양보안을 들이민 세력들을 끝까지 막아낸 지도부를 제치고, 이 시점에서 왜 새 지도부가 필요한지에 대해 비대위가, 투쟁하는 동지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야 합니다. 임기가 끝났기 때문이란 말은 핑계입니다. 그동안 임기가 문제가 되어 투쟁을 못한 적도 없었을 뿐 아니라, 기륭전자분회, 콜트콜텍지회 등 다른 어떤 노조도 비상투쟁의 상황에서 이를 문제 삼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학습지노조 역시 지난 5년간의 투쟁 와중에 단 한 차례도 임기 내에 선거를 마무리한 사실이 없고, 2008년 황창훈은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으면서 선거관리업무를 제대로 진행시키지 않아 한 달 이상 선거과정이 중단되기도 하였으며, 2010년에는 임기를 4개월간 연장(각 단위 임원들이 모두 재출마하기로 했기 때문에 셀프연장에 해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조합원들과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회의를 진행하지 않았다?

 

투쟁 5년 동안 학습지노조와 재능교육지부는 5~6명의 간부가 모든 일을 떠맡았습니다. 노동조합의 기능은 거의 상실한 채 불가피하게 ‘재능교육지부 투쟁위원회’처럼 운영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항상 사측과 경찰, 구청 등의 탄압에 제대로 맞대응을 하지 못해왔습니다. 회의에서 결정한 투쟁계획은 사실상 강제력 없이 누군가 내키면, 또는 할 수 있으면 하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나마 2011년 7월 말부터는 이현숙과 황창훈이 요구하고 유득규, 오수영이 함께하며 유명자, 강종숙의 “폭언폭행”에 대한 진상규명을 주장하면서 모든 회의들이 파행이었습니다.(①2011년 7월말 경 학습지노조 남성조합원 전원이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집회신고를 위해 혜화경찰서에서 노숙대기 중이었고, 오수영은 급성패혈증으로 입원 중인 상황에서 이현숙이 문자로 환구단 농성 어렵다고 유명자에게 통보를 하자, 유명자가 이현숙에게 “이런 식이면 앞으로 투쟁에서 빠져도 된다.”는 취지의 문자를 전송했는데, 농성이 불가능하다던 이현숙이 재능교육지부 환구단 농성장에 나타났고 이에 유명자가 돌아갈 것을 요구하다 시비가 발생했습니다. 이 날 이후 이현숙이 1년 넘게 “폭언폭행”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했습니다. ②중앙위원회 정회시간에 강종숙이 황창훈의 목을 밀치자 황창훈이 날아서 뒤로 넘어짐. 이현숙의 “폭언폭행”에 대한 진상조사에 황창훈도 가세, 이후 모든 회의에 상당기간 불참. 황창훈은 2006년부터 당시 대교지부 해고자, 한솔교육지부 해고자와 주먹다짐을 한 바 있고, 2010년 말경 강종숙에게 폭력을 행사하였으나 불문에 부침)

특히 이현숙과 황창훈은 회의에서 중도퇴장하거나 아예 불참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회의 결정사항을 인정할 수 없다고 공공연하게 밝히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득규, 오수영마저 각각 사무처장, 사무국장직에서 사퇴했습니다. 그 후 유득규, 오수영, 이현숙, 여민희, 강경식은 ‘재능교육지부’회의라는 이름으로 자기들끼리 별도의 회의를 진행해 왔습니다. 여러 차례 만류했음에도 집행부를 사퇴하고 집행기능을 마비시킨 이들이 이제 와서 강종숙, 유명자가 회의를 파행시켰다고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황창훈이 주도하고 이현숙과 함께하는 ‘비상대책위원회’?

 

황창훈은 지난 5년 투쟁에서 재능교육지부 전임자 3인(유명자, 오수영, 황창훈) 가운데 가장 태만했습니다. 노동조합의 집회 등 투쟁일정, 연대투쟁, 각종 행사에 아무런 연락도 없이 가장 많이 빠졌고 늦게 오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반면 학습지선생님을 그만 둬 현장과 무관한 조합원들과의 산행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챙겼습니다. 유명자가 단식을 하는 와중에도 유명자에게까지 버젓이 문자공지를 해가며 산에 갔고 산행 일정을 이유로 중앙위원회 등 회의 일정 변경을 요구하고, 산행뒤풀이를 한다며 중앙위원회에 불참하기도 했습니다. 그 산행모임에 참가하는 조합원들 절대다수는 지난 5년 동안 재능교육지부투쟁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습니다.

 

황창훈은 또, 재능교육지부 조합원 급감으로 인하여 재능교육지부에 지급되는 교부금이 매우 미미한 수준으로 떨어져 사업을 해 나갈 수 없게 되어 학습지노조 본조와 각 지역본부, 각 지부에서 투쟁기금을 지원하자고 하자, 이에 반대했고 결국 본조에서만 재능교육지부에 매월 45만원씩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집행했으나, 본조 역시 해고자 생계비를 지급하고 나면 각 단위 교부금조차 지급할 수 없는 수준으로 재정이 악화되었습니다. 아울러 재능교육지부투쟁의 일환으로 진행했던 2차 희망걷기 분담금 40만원을 본조와 각 단위가 10만원씩 분담하기로 한 중앙위원회 결정(황창훈은 산행뒤풀이로 인해 불참)에 대해서도 문제제기하며 재결정할 것을 요구했고 결국 내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황창훈이 책임자였던 서울경기지역본부(당시 본부장 황창훈), 학습지노조해복투(당시 위원장 황창훈)는 각각 2010년 하반기, 2011년 상반기, 2009년 하반기 ~ 2011년 상반기의 회계감사자료를 중앙위원회의 결의와 회계감사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2012년 6월까지도 제출하지 않아 회계감사를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또 이미 2009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황창훈이 회계연도를 넘겨(최장 2년 이상) 제출한 백여만 원을 상회하는 영수증에 대해 유일하게 특례를 적용하여 지급처리한 사실이 있을 정도로 반복적, 상시적으로 규약과 규정을 위반해가며 조직을 어렵게 만든 장본인입니다.(당시 결정사항은 “이미 규정 위반된 부분에 있어서는 경과기간을 두어 8월 14일까지 제출하는 미지급영수증(2007년 7월 1일 이후 영수증에 한한다)에 한하여 2009년 상반기 회계감사 후 지급한다.”)

 

이현숙은 현재 진행 중인 재능교육지부투쟁의 발단이 된 단체협약을 체결한 장본인입니다. 당시 현장조합원들이 반대한 수수료제도(단체협약 내용)를 받아들여 재능교육 학습지선생님들의 임금을 현저히 하락시켰고 현장을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똑같이 일하고도 수십만 원씩 임금이 깎였고 이에 견디다 못해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2007년 교사 수 6천여 명, 2008년 교사 수 4,500여 명)

당시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 과정에서도 투표권 없는 조합원들의 표결권 행사, 대리투표, 찬성 강요 등 광범위한 부정선거를 자행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당시 대리투표 당사자를 징계했고, 부정선거 전반의 책임을 묻기 위해 징계위원회가 구성되었지만 투쟁상황 때문에 잠정 중단된 상황입니다.

당시 규약과 규정에 따라 요건을 갖춰 소집요구 한 재능교육지부 총회는 거부하였고, 학습지노조 대의원대회는 무산시켰습니다. 수수료제도 전면개정을 요구하며 투쟁하던 조합원들과의 약속을 수시로 파기하여 사퇴를 요구받자 당시 겸직 중이던 재능교육지부장직은 사퇴하지만 학습지노조 위원장직은 사퇴할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그래서 2008년, 강종숙이 선거를 앞두고 겸직금지조항을 발의해 규약개정까지 해야 했습니다. 그나마 사퇴약속에 대해서도, 사퇴요구 대상자들끼리 회의를 하여 번복했습니다.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규약 제42조(선출) 임원의 선출은 다음과 같다.

4. 조합, 지역본부, 지부의 각 단위 총회에서 선출하는 임원은 겸직할 수 없다.)

 

이현숙은 재능교육지부장을 사퇴한 이후에도 회사가 개인통장으로 입금한 전임자급여 3개월치 5백9십5만5천 원을 재능교육지부의 계속적인 반환 요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관리권한이 있는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통장에 입금하였고 이후 학습지노조 위원장을 사퇴한 이후에 임의로 출금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학습지노조 업무 인수인계 내용 중 재정 관련 사항은, 사퇴한 재능교육지부 사무국장과 본조 조직1국장에게 이중으로 지급된 교실복귀 지원금 문제와 재능교육지부 조합비 유용 등으로 인해 인수 유보되었고 현재까지 처리 안 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2008년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공금유용과 부적절한 재정집행을 이유로 이현숙에 대한 징계여부를 판단할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지만 역시 투쟁상황 때문에 잠정 중단된 상황입니다.

 

천막농성투쟁 시작 8일 만인 2007년 12월 29일, 당시 학습지노조 위원장(이현숙), 수석부위원장, 사무처장, 부산경남지역본부장(현재 해고자 12인 중 1인), 울산지역본부장(현재 해고자 12인 중 1인), 구몬지부장, 대교지부장, 인천부천지역본부추진위원장이 일괄 사퇴하였고, 이현숙을 비롯한 해고자들은 자신들이 해고되기까지 재능교육지부투쟁에 전혀 결합하지 않았습니다.

 

회사가 손해배상청구소송은 물론 각종 보도자료 및 공대위 소속 단위들에게 발송하는 모든 문서에 당시 수수료제도는 교사들에게 유리한, 업계최상의 내용을 포함한 것이었고, 노동조합과 정당하게 체결한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은 유명자 집행부이고 그 과정에서 노노갈등을 일으켜 이현숙 집행부를 부당하게 끌어내렸기 때문에 현재 집행부와 대화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고 있어서, 강종숙이 이현숙에게 이를 반박하는 진술서를 작성하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이현숙은 오히려 당시 수수료제도 변경으로 인해 모든 교사들이 임금삭감 당한 것이 아니고, 특히 현재 투쟁 중인 해고자들 가운데 임금이 올라간 사람이 더 많다라는 취지로 반박하였고, 수수료제도에 대해서는 자신이 자세히 분석하지 않아서 그 문제점에 대해 잘 모르며, 또한 당시 재능교육지부장 선거와 관련하여서는 한솔교육지부 복직투쟁 관련으로 구속되어 있어서 자신은 잘 모르므로 진술서를 작성하기 어렵다고 답변했습니다. 결국 이처럼 재능교육지부투쟁을 전면 부정하는 이현숙의 입장을 사무처장에게 전달하자 2012년 3월이 되어서야 진술서를 작성했습니다.

 

이현숙은 2012년 6월 중순경에는 통합진보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여성명부) 선거에 출마하였습니다. 출마 직전 유득규, 오수영에게 출마의사를 표명하자 모두 반대하였으나 출마를 강행했고(위원장과 재능교육지부장은 사후에 알게 됨, 이현숙은 당시 노조에서 전임자와 동일한 액수의 급여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음), 출마 후 이를 알게 된 위원장이 통합진보당 중앙당과 서울시당에 “서울시당 부위원장(여성명부) 후보자자격 관련의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발송했습니다, 공문의 내용은 [①재능교육지부 단체협약 잠정합의안 투표과정에서의 부정(대리투표, 투표권 없는 조합원들의 투표참여 등), ②조합비 임의집행 및 유용, ③중앙위원회에 해고자 원직복직 교섭진행상황 허위 보고, ④중앙위원회 결의사항 위반, ⑤학습지단일노조추진위원회 결의사항 위반 등의 행위를 하여 현재 징계절차에 계류되어 있기에 이현숙 후보에 대하여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것이었습니다.(하지만 전혀 문제되지 않고 선거 완주)] 사정이 이러했음에도 다시 2012년 7월 중순경, 통합진보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여성명부)선거에서 낙선한 이현숙이 학습지조합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통합진보당 서울시당 중앙대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습니다.

 

2006년 말, 당시 학습지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된 직후에 구몬학습 해고자 복직투쟁관련 합의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회사에는 해고당사자가 복직하지 않을 것이라 약속하고 합의서에만 복직을 명기한 채 그 합의서를 중앙위원회에 제출하여 통과시키기까지 했습니다. 당시 이현숙은 학습지 노조위원장이었음에도 특정 정파 성향의 간부와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사조직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었고 그 조직원들과는 이러한 사실 전체를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회사와 짜고 노동조합의 결의를 뒤집는 합의를 중앙위원회에 허위보고까지 해가면서 통과시킨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유득규, 오수영, 여민희 등이 최근 1년 이상 황창훈, 이현숙과 한 편이 되어 활동한 것에 더해, 이제 비대위까지 구성해 지난 5년 투쟁을 이끈 지도부에 맞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득규, 오수영은 중차대한 시기에 사퇴한 것에 대해 어떤 책임을 졌나? 왜 사퇴까지 해야 했나?

 

유득규, 오수영이 사퇴의사를 표명한 2012년 7월은 재능교육 사측이 대대적인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대승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전하던 때입니다. 그리고 노동조합과 10차례 넘는 교섭을 진행하고 있었고 당시 유득규는 교섭간사, 오수영은 교섭위원이었습니다. 결국 실제 교섭을 진행하던 교섭위원 3인 가운데 유명자를 제외하고 모두 사퇴한 것입니다.

또 유득규는 학습지노조 사무처장으로 강종숙과 런닝메이트였고, 오수영은 재능교육지부 사무국장으로 유명자와 런닝메이트로 재능교육지부투쟁의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측과 중요한 교섭이 한창일 때, 사퇴를 하고 이를 먼저 외부에 알리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강종숙, 유명자와의 의견충돌 때문에, 또는 조직운영 방식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었다 해도, 하필 그런 시기에 사퇴까지 하면서 노조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옳은 일이었을까요? 무엇을, 누구를 위한 행동인지요?

 

강종숙은 유득규에게 사무처장 업무를 하지 않아도 좋으니 4개월 남은 임기동안 만이라도 대외적으로 사무처장직은 유지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사퇴했습니다. 특히 유득규와 오수영은 2012년 3월 강종숙이 강규혁에게 그가 제시한 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노동조합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만나고 온 후, 강규혁이 “강종숙이 와서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는 거짓말을 하였는데, 이를 두고 “강규혁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더라”며 두둔했습니다.

강종숙은 당시 4년이 넘도록 해고 당사자가 아닌데도 수십 개의 전과를 달아가며 임금 100% 압류(현재까지 사측이 해제하지 않은 유일한 압류), 자동차압류까지 된 채 재능교육지부해고자들과 함께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용납할 수 없는 양보안을 제시하며, 투쟁을 방기하고 가로막기까지 한 강규혁의 말을 더 신뢰한 것입니다.

또 강종숙, 유명자에게는 임기가 끝났으니 어떠한 권한도 없다고 하면서 사퇴한 오수영은 재능교육지부 비대위원장이 됐다가, 재능교육지부장 직무대행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사퇴를 한 유득규 역시 비대위 집행위원장이었다가, 재능교육지부 집행위원장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강종숙이 위원장일 때 결정한 교섭간사 역할은 당연히 자신이 하는 것이라 주장하며 사측 교섭간사를 만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노동조합의 선거관리규정을 위반하면서까지 이런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선거관리규정 제10조(입후보자의 자격) 입후보자의 자격은 조합원에 한한다. 단, 조합으로부터 징계를 받았거나 자진 사퇴했을 경우에는 그 자격을 제한한다.

1. 탄핵 또는 자진사퇴의 경우 입후보 자격을 그 탄핵 또는 자진사퇴를 결정한 이후 1년간 정지시킨다.)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당선된 학습지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은 인정해야 한다?

 

비대위 사태가 일어난 후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이하 비없세) 동지들이 ‘중재안’을 만들어 양측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들이 제안한 안을 받아들여 학습지노조 대의원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중재안은 재능투쟁을 승리로 마무리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을 중심에 세웠습니다. 이에 따라 강종숙을 학습지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으로 세우고, 강종숙, 유득규, 유명자, 황창훈 4인의 교섭위원들이 함께 교섭과 투쟁을 책임지고 전개해 투쟁을 승리로 마무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제안도 사실 유명자를 ‘배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소중한 승리를 위해 받아들였습니다.(이에 대해서는 비없세 집행위원 3인명의로 작성한 2013년 2월 26일자 ‘재능교육 관련 논의에 대하여’ 참조)

비대위 측은 이러한 내용에 대해 자신들은 단 한 번도 동의한 적이 없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비없세 동지들과 자신들이 주고받은 문자가 있고 그들을 직접 만난 당사자가 있기에 진실은 쉽게 가려질 것입니다.

비없세 동지들의 제안에 따라 개최한 학습지노조 대의원대회에 참석한 4인의 대의원 가운데 박경선은 강종숙을, 비대위측 강경식은 황창훈을 지지했고, 나머지 두 명 또한 황창훈을 지지해 결국 황창훈을 직무대행으로 뽑았습니다. 이들 대의원 가운데 한 명은 대의원 임기 만 4년이 넘도록 단 한 차례도 대의원대회에 참석하지 않았고, 5년의 투쟁 기간 동안 결의대회, 농성 등에도 전혀 참석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다른 한 명은 3년 동안 대의원을 하면서 단 한 번 대의원대회에 참석해 황창훈이 발의한 안건에 대해 찬성 표결 한 번 한 것이 활동의 전부이며, 건강상의 이유로 현재 학습지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들이 이런 상태임을 몰랐거나, 혹은 이들의 자격을 문제 삼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런 상태의 대의원들까지 불러 모아 5년 투쟁을 이끌었던 강종숙을 직무대행으로 선임하는 절차를 거쳐 상황을 마무리하고자 했던 비없세 동지들의 바람을 완전히 짓밟고 재능교육지부투쟁 상황마저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파탄내고 있는 황창훈과 비대위측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함입니다. 황창훈과 비대위가 끝내 비없세 동지들과의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후 비없세 동지들이 준비한 기자회견이 연기되고 공대위 단위 여러 곳의 투쟁결합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지만 황창훈과 유득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변하며 연대동지들에게 더 큰 배신감과 자괴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를 모두 덮어두더라도 황창훈을 직무대행으로 선출한 그 두 명의 대의원들이 이제부터라도 비대위의 종탑농성투쟁에 온 힘을 다해 복무하며 자신들의 행동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기라도 한다면, 황창훈과 비대위가 그들을 한낱 거수기로 동원해 조직과 투쟁을 파탄낸 것은 아니라고 인정할 여지라도 있지만 그 대의원들과 황창훈, 비대위는 그러한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어떠한 노력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연대동지들보다도 투쟁에 복무하지 않았던 비대위측 해고자들에 더해 대의원을 거수기로 동원하여 조직과 투쟁을 파국으로 내몰고 있는 비대위는 진심으로 연대동지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할 것입니다.

 

5. 마지막으로

 

재능교육지부투쟁은 이미 비정규직 최장기투쟁사업장의 기록을 넘겼습니다. 1895일이라는 최고 기록을 눈앞에 두고 강행된 종탑농성이 그 방식에 걸맞은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노동조합 내부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 그 사실을 공개하고, 누구든 이 문제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이 문제에 대해 정확한 입장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재능지부 한 곳만의 문제가 아니며 장기투쟁 사업장 어느 곳의 문제도 될 수 있고, 노동운동 진영의 고질적인 문제들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종탑에 사람이 있는데……”라는 절박한 마음 때문에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떠나 일단 비대위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실제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종탑농성이 자본에 타격을 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내부에 타격을 가하고, 끝내 지난 1,900여일의 투쟁을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게 할 수도 있는 엄중한 상황입니다.

현재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 특히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사업장의 동지들에게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어 이 또한 안타깝고 절박합니다.

재능교육지부 5년 투쟁에 맞서는 종탑농성이 아니라, 재능교육지부 5년 투쟁 그리고 그 대미를 장식할 종탑농성이 될 수 있느냐는, 바로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입장을 견지하고 이 투쟁에 어떻게 함께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강종숙, 유명자, 박경선 3인은 이러한 사태에 대해 동지들 모두에게 거듭 사과의 마음을 전하면서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재능교육지부투쟁은 공대위를 비롯한 연대단위와의 소통과 합의를 통해 마무리 되어야 합니다. ‘사측과의 합의(타결)안’, ‘타결 이후의 방침과 계획’, ‘타결 이후 노조체계와 역할’에 대한 방안까지 전반적인 사항을 열어놓고 이에 대한 사전 ‘공론화’ 과정을 거쳐 일괄 합의해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합의가 선결되지 않으면 지금처럼 각각 따로 가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고,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자명한데, 오직 비대위만이 직무대행과 비대위원장에 대한 무조건적인 인정을 주장하며 고립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난 5년 투쟁을 함께 해 왔던 조합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구조를 시급히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그 정당성을 전혀 인정받고 있지 못한 비대위와 직무대행을 더 이상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체계 속에서 적실한 투쟁계획과 교섭전술을 수립하여 투쟁에 임할 것을 다시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안하며 동지들의 올바른 판단과 동참을 호소합니다.

 

 

 

 

2013. 3. 8.

 

 

 

 

 

강종숙, 유명자, 박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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