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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지금 피곤해요.

글을 써야 해서 보게 된 다큐멘터리가 좀 씁쓸하게 다가왔다.

 

거동이 조금 힘든 시어머니와 감전으로 인해 장애1급을

받은 남편과 살아가는 필리핀 이주여성 이하은씨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는 30분이 채 안된 시간을 통해 참 많은

생각거리들을 던져주었다.

 

화면밖에서 보기에 하은씨 부부가 (갈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며

살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늙은 노모의 힘든 거동보다도

팔과 다리가 짧은 남편의 움직임보다도

피곤에 지친 그녀의 얼굴이 더욱더

안쓰러워보였다.

 

내가 보는 그녀의 결혼생활은

기쁨과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너무나 피곤해보였다.

 

남편의 말처럼 집안에서 유일하게

일을 잘 할 수 있는 그녀는 모든 집안일과

태어난 지 얼마 안된 딸아이를 돌봐야 한다.

 

그리고, 낯선 땅 낯선 음식을 겪으며

자신의 문화에 대해 이해해주지 않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한국문화를 익혀야 한다.

 

후진국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시선도

그녀는 힘이 들지만 동시에

남편의 문화에 맞춰 언어와 식습관 등 모든것을

하루빨리 바꿔야 하는 의무감도

그녀를 힘들게 만드는 듯 보였다.

 

그녀의 남편은 특별히 성격이 나쁘지도 않았고

가능한 그녀의 일을 도와주려 노력하는 사람이었지만

딱 한가지, 그녀의 문화를 이해하려 들기전에

그녀가 자신의 문화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일반적인 한국남성들처럼 말이다.

 

이런 생각은 그가 나빠서도 어리석어서도 아니다.

평범한 한국사회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생각일 것이다. 아마도.

 

이 문제는 타인의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냐 없냐의

문제이전에 가정내에서 남편과 아내가 가진

권력관계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모두다 알고 있어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아마 오늘 이 시간도 그녀는

어린 딸아이를 돌보며 피곤해 하지 않을까?

"내가 피곤하다고 하니까, 남편이 안돼 넌........"

"괜찮아요. 왜 울어요?"

인터뷰 중간에 말을 하다 순간 눈물을 보였던

그녀의 말이 계속 떠올라, 왠지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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