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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슬픔

 

건강한 슬품

 

 

                                                                   강연호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랜만이라는 안부를 건넬 틈도 없이

그녀는 문득 울음을 터트렸고 나는 그저 침묵했다

한때 그녀가 꿈꾸었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아니었다

나도 그때 한 여자를 원했었다 그녀는 아니었다

그 정도 아는 사이였던 그녀와 나는

그 정도 사이였기에 오래 연락이 없었다

아무 데도 가지 않았는데도 서로 멀리 있었다

 

전화 저쪽에서 그녀는 오래 울었다

이쪽에서 나는 늦도록 침묵했다

창문 밖에서 귓바퀴를 쫑긋 세운 나뭇잎들이

머리통을 맞댄 채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럴 때 나뭇잎은 나뭇잎끼리 참 내밀해 보였다

저렇게 귀 기울인 나뭇잎과 나뭇잎 사이로

바람과 강물과 세월이 흘러가는 것이리라

그녀의 울음과 내 침묵 사이로도

바람과 강물과 세월은 또 흘러갈 것이었다

 

그동안을 견딘다는 것에 대해

그녀와 나는 무척 긴 얘기를 나눈 것 같았다

아니 그녀나 나나 아무 얘기도 없이

다만 나뭇잎과 나뭇잎처럼 귀 기울였을 뿐이었다

분명한 사실은 그녀가 나보다는 건강하다는 것

누군가에게 스스럼없이 울음을 건넬 수 있다는 것

슬픔에도 건강이 있다

그녀는 이윽고 전화를 끊었다

그제서야 나는 혼자 깊숙이 울었다

 

 

 

 

글의 치유력에 대해 꽤나 맹신하고 있는 나는 특히나 시가 지닌 편안한 치유력이 참 좋다

.....생각해보니 타인앞에서 마음놓고 펑펑 울어본 적이 언제였을까? 아득하다

왠지 언제부터인가 타인앞에서 우는 것이 참 부끄러워졌다 왜일까나? 어릴때는

누구앞에서든 펑펑 잘만 울어댔는데 어느새 자존심과 자존감이 이러저러한

벽을 만드는 것 같다 여튼....작가의 논리에 따르면 나또한 건강한 슬픔을

지닌 인간은 아닌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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