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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따따탄 효진

이번 주말, 저희 마을(성미산) 축제에 놀러 오세요^^

 

이번 주말,

축제에 놀러오세요.

 

이틀 동안 4차선 도로에 차량통행을 막고

무대와 다양한 참여부스를 설치하여

신나게 놀아 보겠다는...

 

 


2007 성미산 마을축제 "동네야~노올자"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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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ungmi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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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자유무역협정이 아닌 민중무역협정을!

투쟁국장님의 [봉지단의 2차접선] 에 관련된 글.

 

[디디의 인권이야기]

자유무역협정이 아닌 민중무역협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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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


얼마 전, 친구와 술 한 잔 하다가 FTA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FTA가 장밋빛 미래를 열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도 터무니없지만, FTA가 체결되면 큰일 날 거라는 호들갑스러운 주장 역시 이상하다는 것이 그 친구 얘기였어요.


그런 식으로 싸잡아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멕시코가 그랬듯이 아마 수치적 차원에서 경제는 성장할지 모른다, 몇몇 기업들은 꽤 재미를 볼 거고…그러나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비정규직으로 내몰릴 거다, FTA가 가져다준다는 정체불명의 ‘국익’이라는 것이 과연 누구의 이익인지 생각하자는 거다, FTA는 아주 특정한 자들을 위한 협정이니까…라는 것이 이미 한참 술에 취해 있던 저의 게으른 답변이었지요.


주정뱅이들답게 이야기는 마구 번져, 박정희가 아무리 욕을 먹을지언정 그 시절 개발 정책이 우리나라를 이 정도 살게 한 건 부인할 수 없지 않냐 어쩌고, 뭐 이런 진부한 경제 성장 논쟁까지…….ㅠㅠ


사실 그는 FTA 찬성론자가 아닙니다. 다만,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라는 강고한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나름의 ‘현실주의자’랄까요. 이야기는 결코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공전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지더군요. FTA를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유일한 현실로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다시 한 번 볼리비아의 민중무역협정을 이야기하고 싶어졌습니다. 세계적인 흐름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무턱대고 개방을 막을 수는 없는 거 아니냐는 단단한 믿음조차 사실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일 뿐, ‘개방’이나 ‘무역’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도 가능할 수 있다는 걸 민중무역협정은 구체적으로 보여주었으니까요.

FTA에 반대하는 것은 무역을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무역’을 반대하는 거죠. 그래서 미국과의 FTA를 막고, 그것과 전혀 다른 무역협정을 만들어낸 볼리비아의 사례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고맙습니다.


무역 자유화 정책을 지원하는 IMF 이후, 가내 수공업 형태의 볼리비아 의류 산업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훨씬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당시 볼리비아 정부가 저돌적으로 진행시키고 있었던 미국과의 FTA는 이러한 고통을 가중할게 뻔했죠.


사람들의 대대적인 저항이 있었고, 2005년 4월엔 볼리비아의 시민 사회 단체들, 소규모 제조업자, 지방의 농부들, 종교 단체, 그리고 광대와 배우들까지 모두 수도 라 파스(La Paz)에 모여서 정의와 연대에 기반을 둔 무역 정책을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는군요.


그들은 싸움을 축제로 만들었고, 1주일 내내 다채롭고 다양한 전시부스, 길거리 극장, 음악이 도시를 가득 채웠대요. “자유 무역 반대! 우리의 삶을 지키자!” 놀랍게도 사람들이 거리에서 외치던 요구사항들은 새로 선출된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 정부에 의하여 공식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민중무역협정은 무역과 투자의 목적이 기업의 이익과 시장의 전면적인 자유화가 아니라 모든 민중의 이익을 창조하는 것이라는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물이나 전기와 같은 에너지를 공유하고, 작은 기업들을 보호하고자 하지요.

무엇보다도 그것은 한 나라의 경제성장 척도를 추상적인 수치로 가늠하는 서구식 발전주의를 거부합니다. 다국적 기업들이 아무리 성장한들 우리가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단순한 진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요.


 사진설명왼쪽부터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쿠바의 카스트로,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출처;
www.politikerscreen.de>  


2006년 5월 볼리비아와 쿠바, 베네수엘라는 민중무역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연대와 상호 협력 그리고 민중들 사이의 원조는 기업의 이익과 시장 이득으로부터 자유로워야한다는 신념, 환경에 대한 존중과 보전 속에서 사회 통합과 자원 산업화, 식량 안보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믿음을 기반으로요.

쿠바는 교육과 의료 부분의 지원을 제안했고, 베네수엘라도 기술적인 지원과 함께 탄화수소 부분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를 약속했습니다. 무
엇보다도 이 두 나라는 콜롬비아와 미국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때문에 수출이 격감한 볼리비아 농산품을 구매하기로 했다는군요.

볼리비아는 이들 나라에 탄화수소를 제공할 것을 약속하고, 천연 의약품에 대한 경험과 연구 개발에 대하여 교류할 것을 제안했고요. 기업의 권리만을 확대시키는 불공정 무역협정을 맺는 대신 사람들의 삶을 꾸리기 위한 연대를 만들어낸 거죠.

 

FTA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는 것은 분명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FTA에 반대하는 것은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내미는 것과 전혀 다른 삶, 다른 미래를 꿈꾸고 모색하는 것이기도 해야 합니다. 모두에게 똑같은 ‘어쩔 수 없음’을 강요하는 이곳에서 다른 삶을 택할 권리를 위한 싸움. 그건 설령 FTA가 체결되더라도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또다른 친구는 그건 자기 스스로의 삶을 구체적으로 변화시킬 때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일상의 모든 영역까지 파고들어 더욱 공고해진 대기업 자본주의 시스템에 균열을 내고, 그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그 체제를 전복할 힘은 일상에서부터 전혀 새로운 체제를 딛고 일어서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만 나올 것이라고요.

골목마다 있던 작은 구멍가게들이 사라지고 대형할인매장이 들어서는 이곳에서 먹고, 자고, 입고, 소비하며 생활하는 모든 것을 바꿔내는 일상의 혁명에서만 가능하다고 말예요.


“미국식 생활방식으로 대표되는 대기업 자본주의가 선사하는 달콤한 편리함의 유혹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그것과는 완전히 갈라선 길로 천천히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그럼으로써만 지금 여기서부터 다른 미래는 만들어지겠지요.

바로 그렇기에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미래를 선택할 ‘권리’는 어쩌면 우리의 미래를 구성해낼 ‘능력’과 동의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코 바뀌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이 단단한 현실을 돌파하고 허물어뜨릴 무기는 언제나 우리의 삶 속에서만 벼려질 수 있는 것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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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참세상’ 기사로 실린 닉 벅스턴(NICK BUXTON, 볼리비아에 거주하는 미국활동가)의 글과 진보넷 블로거 돕헤드의 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renewal_col&id=749
http://blog.jinbo.net/dopehead/?pid=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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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이는글    디디 님은 한미 FTA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는 '에프키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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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나 채식한다고 도축노동자를 적으로 삼지는 않는다

지음님의 [채식주의자와 축산노동자의 연대?!] 에 관련된 글.

 . 

동물보호나 채식한다고

도축노동자를 적으로 삼지는 않는다

  

 

 

.수정 : 2010.3.7

 

  

채식인의 적은 도축노동자가 아니며

축산자본가 또는 세계 자본주의 질서, 현대의 문화와 질서입니다.


모든 것이 자본의 질서 하에 생산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식품만을 혁명해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자본주의.. 자본이 주인이 되는 사회.. 그 이름에만 충실해도, 노동자는 남아돌아서 자본이 값싼 노동력을 마음대로 골라 쓰다 맘에 안들거나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해고해버릴 수 있는 사회가 자연스러운 거지요.


그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인데, 일부 노동자들이나 지식인들은 자본에 대항하여 노동자의 권리찾기 운동을 하고 있지요. 그런 노력이 있어서 그나마 이 세상이 덜 삭막하고 자본에 의해 덜 통제되고 압박받고 살고 있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세계질서에 의해 많은 이민자, 흑인들의 삶도 규정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허구든 사실이든, 민중의 영웅 임꺽정도 소백정이었습니다. 도축노동자는 채식인의 적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 가장 불쌍한 사람이 산채로 동물의 털가죽을 벗겨내는 노동자이리라 생각합니다. 밥 먹다 그 장면이 생각나는 것만으로 밥을 먹기 힘들어질 때 그 노동자가 떠오르며 ‘그는 밥을 먹을 때 털가죽 벗기는게 생각나지 않을까? 익숙해져서 괜챦을까?’ 익숙해졌다 해도 불쌍합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산채로 모피 벗겨지는 동물이 더 불쌍합니다. 그 고통은 도저히 참을 수도, 익숙해질 수도 없는 고통일 것입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산채로 벗기는 자를 죽여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죽인 것은 그 노동자가 아니라 그 일을 하게 만든 모든 것, 그리고 모피산업의 자본가들입니다. 우리 언니도 디자이너지만, 디자이너들도 죽이고 싶습니다. 언니를 죽이고 싶다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센스’를 중시하는 사람들의, 다른 종의 고통, 남들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을 죽이고 싶은 것입니다.


실제 그 현장에 내가 있으면 더 많은 생명존중운동을 하기 위하여, 감정적으로 그 노동자를 죽이고 싶은 것을 참을 지도 모릅니다. 그냥 그를 죽여버려서 감옥 가고 형을 살거나 죽음으로 해서 세상에 충격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과 그보다 ‘조용히’ 운동을 계속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사회에 보탬이 될까 저울질해봐야겠죠^^


그런데... 지금 산채로 모피 벗기는 노동자와 벗김을 당하는 동물 중 누가 더 불쌍한가, 또는 내가 그 노동자를 죽이는 것과 안죽이고 운동하는 것 중 어느 게 더 나은지... 이런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고요. 아무튼 채식인의 적은 도축노동자도 모피농장 노동자도 아니고 축산자본가와 모피산업자본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물의 고통은 고통이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사람을 위해서는 동물은 어떻게 이용하든 상관없는 것이라는 세상의 인식, 그러한 인식을 강화시키고 은폐와 이중성을 당연한 것으로 만든 축산업자들, 학문이라고 하면서 이윤을 더 많이 남기기 위해 어떻게 동물을 다루는지만 연구해 가르치는 학자들이 우리의 적이 되어야 합니다.



대량축산체제가 존재하는 한

상대적으로 ‘억압이 덜한 고기’도 먹지 않겠습니다.


식품산업과 식문화가 인간의 몸에 맞지 않게 엄청나게 왜곡된 현대에 채식을 하는 것은 ‘저항’이라 할 정도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신경을 좀 써야 채식도 하고 바르게 생산된 덜 해로운 식품을 사서 먹을 수 있으니까요. 당연히 저층 민중들에게는 쉽지 않습니다. 채식이 돈이 더 들어서보다는 채식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에 도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가장 문제지요.


그렇다고 해서

‘채식주의자는 도축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와 ‘공정한 돼지고기, 자유로운 닭고기, 억압 없는 쇠고기 등등을 찾아보고 싶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분명하게 다가오지가 않습니다. 심지어 ‘식물도 만만치않게 불쌍하다’라는 표현...


채식주의자가 도축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심정적으로 이해하는 것? 그들의 직업유지를 위해 ‘억압 없는 고기’를 만들거나 먹어주는 것?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덜 억압받고 살다 도축된 고기들은 지금도 구할 수 있습니다. 생협에서 파는 친환경 축산물들입니다. 그것들은 항생제, 호르몬을 넣지 않아 몸에도 덜 해롭고 입에서도 살살 녹습니다.  물론 일반 시중에서 파는 고기보다는 좀 비싸지요. (다시 조사해봐야겠지만 과거 언젠가 비교에 본 바로는, 한우의 경우는 시중에서 더 비싼 것 같았는데) 


사실 육식 자체가 비싸고 비경제적이며, 육식으로 1인분 생산할 자원으로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먹일 곡채식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지 않습니까.  아무튼 ‘억압이 덜한 고기’는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 더 나은 고기가 생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고기를 사먹지 않는 이유는 이제 채식에 익숙해져 고기가 느끼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고기를 조금이라도 먹으면 건강에 해로울까봐도 아닙니다. 대량축산, 대량육류소비가 존재하는 한 나는 고기나 우유, 다단계닭장의 달걀로 만들어진 것을 먹을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채식하는 것 자체가 대량축산으로 동물들이 고통받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리는 일이며, 그런 현실에 저항하는 일입니다. 또 채식만으로도 잘 살 수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 때문에 한 마리라도 덜 고통받게 되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장식 축산동물 한 마리가 평생 당하는 고통은 한 사람이 평생 지옥같은 고통을 당하는 것과 다름없이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한 마리라도 구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 하나를 고통에서 건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리고 현재 친환경적으로 키워지는 축산동물들도 똑같은 도축장에서 도축되고 있기 때문에 비인도적으로 도살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먹지 않아도 되는데 죽음의 고통을 주고 싶지 않고요.


또한 친환경적 축산 중 가장 조건이 나은 것이 방목일텐데, 방목을 하더라도 환경파괴는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육축들이 지나간 자리에 초지가 복원이 잘 되지 않고 자꾸 숲을 깎아내고 있습니다.


‘굿 뉴스’란 책에서는 미국 어딘가에서 닭에서 코요테까지,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공존하게 함으로써, 육축동물들이 사용하던 땅을 로테이션하면서 복원될 수 있게 목축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땅이 넓은 나라에서만 일부 가능한 것 같습니다. 땅 넓이에 비해 생산되는 비율이 일반화된 축산에 비해 아주 적은 듯 하므로, 어느 곳에서나 가능한 방법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일단은 대량육류소비 문화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단순한 방목만으로도 사람들의 수요를 충당할 수는 없습니다. 방목이 보편화되면 우리나라의 산야는 엄청나게 헐벗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강원도에 가면 벌겋게 산을 깎고 소나 염소를 풀어놓은 곳이 곳곳에 보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에너지 공급원 3위가 돼지고기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공정하고 자유롭고 억압 없는 고기’가 먹고 싶으면 생협 같은데서 사서 드십시오. 요즘 사람들이 먹는 것보다 조금 적게 먹으면 건강에도 좋고 비용부담도 그다지 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초기에 막 동물문제나 축산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하고 아직 채식에 익숙하지 않을 때는 생협 고기를 좀 이용했으나,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위에서 드린 말씀들로 어느 정도는 이해되시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나는, 또는 우리는 채식을 하더라도, 당장 모두에게 모든 육식을 중단하고 모든 축산업을 폐지하라고 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으니, 육식을 줄여 축산동물의 수를 줄여나가고 그들의 복지를 개선해 나가며 그 종류도 늘리지 말 것을 주장해야 합니다. (이 동물, 저 동물 다 먹겠다며 축산화를 허용하면, 규제하고 관리하기도 어렵습니다. 동물은 무엇이든 잡아먹거나 이용해도 된다는 생각만 늘리며, 육류를 더 찾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정적으로 친환경축산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정말 식물도 불쌍하십니까?


식물도 불쌍하다...  아직까지 식물에게서 고통을 느끼는 신경체계는 발견되지 않았고, 식물은 잎을 뜯어주고 솎아주면 새잎이 돋고 열매를 따먹어 퍼뜨려주기를 바랍니다. 동물은 잡히고 싶어하지 않고 고통을 호소하지만 식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식물도 사람의 기운을 느끼고 반응을 하며 스트레스 표현도 하고 그에 따라 생장상태도 달라진다는 것을 압니다. 아이들에게 식물을 느껴보고 대화도 나눠보도록 하는 영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식물을 대상으로는 영성교육을 하면서 인간과 더 가까운 동물을 대상으로는 하지 않고, 오히려 동물을 이용하는 교육만 하면서 그걸 생태주의 교육이라고 하니 문제지요.

 

또한 축산동물을 키우려면 '그 불쌍하다는' 식물을 훨씬 더 많이 재배해 먹여야 합니다.  사료재배를 위해 제3세계 민중의 땅을 뺏고 그들의 기아에 큰 기여를 합니다.


그리고 인간에 가까운 고등한 포유동물일수록 고통과 스트레스의 표현이 인간을 닮았고 우리가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고통스러울 거라고 거의 확신하는 동물들부터 고통을 제거해주려 노력하지 않으면서, 그보다 하등한 동물, 또는 식물의 고통 운운하는 것은 기득권을 버리고 싶지 않은 자의 변명이 아닐지요.


축산이 환경에 여러 측면으로 주는 엄청난 피해, 그로 인해 가난한 사람이 먼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현실만 생각해도 저는 고기를 먹을 수 없습니다.


낮은 계급 사람들이 심각하게 왜곡된 질 낮은 음식을 먹게 강요하고 점점 그쪽으로 몰아가는 것도 이윤만 생각하는 자본가들입니다.


도축노동자나 삼겹살집 노동자들이 그 비인간적인 노동에서 벗어나 보다 행복한 노동을 할 수 있게 사회가 바뀌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도, 채식하는 것은 브루조아의 전유물일지 모른다는 우려를 버리고 당당해져야 합니다.


지금은 외식하려면 고기집 아니고는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허브전문점, 한식집, 채식전문점, 버섯요리 전문점, 천연조미료로 만드는 집, 유기농 음식점, 꽃밥집, 채식안주를 파는 술집, 우리밀 분식집, 기름 가열해서 쓰지 않는 집, 절밥집, 약초음식점, 산채요리집, 두부요리, 우리콩요리, 죽전문점, 해초전문점, 아토피환자도 먹을 수 있는 음식점, 텃밭가든... 저라면 더 무궁하게 개발할게 많습니다... 


이런 음식점들로 점점 바뀌어가고 사람들 입맛이 변한다면, 보다 행복한 노동을 하며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작년 가을 오랜만에 선배 내외를 만났습니다. 그 선배가 축산농장을 운영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이 돼지들에게 사흘에 한 번씩 항생제 주사를 놓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만두고 고기 집을 했는데, 그 부인의 말이 고기 기름을 너무 많이 버려야 하고 불판을 닦기 위해 세제를 너무 많이 써야하는 것이 괴로웠답니다.

 

그러다 부인의 무릎에 종양이 생겨 다리를 당장 잘라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콩과 채소만 먹고 치료했다더군요. 나름대로 온갖 연구를 해보고는, 돈 안들이고 해 볼 것이 그 방법이라 생각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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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채식식당의 주인이 백인이고 허드렛일을 하는 노동자가 흑인과 이민자라 해서 채식을 계급적 식단으로 볼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대개의 식당의 고용주와 고용인이 그런 형태입니다. 현재로서는 흑인과 이민자들이 고용주가 될 비율이 적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고차원의 의식을 가진 채식식당의 주인이라면 직원을 많이 배려하고 그들의 성장을 돕겠지요. 채식식당 주인이라고 모두 그래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채식인들의 의식이 점차 높아진다면 좋은 주인도 늘겠지요.

  

 

동물을 이용하지 않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공정생산 및 무역 제품을 선택하는 것보다 우위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육식을 생산하는 자본의 문제와 똑같은 정도로, 채식을 생산하는 자본의 문제를 사고하지 않는다면 그 의의를 잃어버린다고 봅니다."라고 하신 분, 좋은 말씀입니다.  모든 것이 세계자본의 질서에 포함되어 가는데 채식을 생산하는 자본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겠지요.

 

채식의 철학은 개인 건강만이 아닌, 윤리,생태,환경,사랑,영성의 철학으로 완성되어져 가야하고 그에 따라 일부 채식인이나 채식관련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철학을 구현하는 사업이 될수 있도록 해나갈 때, 다른 분야보다는 '물'이 좀 나아질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기대를 하기 이전에....  초콜릿을 예로 들어보지요. 나는 동물을 착취한 우유, 건강에 나쁜 정제설탕, 각종 첨가제가 들어가지 않으면서 코코아 함량이 높고, 공정무역으로 생산,거래된 초콜릿을 찾을 것입니다.  물론 값이 비싸서 가끔 조금만 사겠지요.  싸도 나쁘면 차라리 안사고 안먹으면 되니까요.

 

수입까지 해서 먹고 싶은 생각 별로 없지만 초콜릿 좋아하는 아들에게 선물할 생각일 것입니다.  그런데 공정무역으로 생산된 초콜릿이 없다면, 차선책으로 정제설탕과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초콜릿을 살 수도 있습니다.  물론 많이 살 생각은 없지만, 어짜피 여러가지로 나쁜 초콜릿을 사먹을 아들을 생각하면 그거라도 사주는게 낫겠지요.

 

채식을 생산하는 자본의 문제도 물론 사고해야 합니다. 이왕이면 윤리적인 기업에서 생산되거나 공정무역으로 생산될 수 있도록 하고, 그런 상품을 구매해야 겠지요. 하지만 육식자본이나 채식자본이나 똑같이 생산농민 등에 공정하지 않다고 할 때, 적어도 동물을 이용하지 않은 것을 선택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동물을 이용하지 않은 것을 선택하는 것은 공정생산 및 무역 제품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우위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축산을 점차 줄이며 축산동물의 복지수준을 높여가고,

유기농식물농사를 확대해야 합니다.


당연히 식품관련산업만 혁명적으로 변화시키기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식품산업 중 축산업만 변화시키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요. 그러나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각 영역에서 운동을 하고 있듯이 우리도 해야 합니다. 

 

또한 동물학대방지와 건강, 환경을 위해 채식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미미하지만, 꾸준히 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축산 문제는 또 다른 차원에서 개혁해야 할 당위성이 존재합니다.


‘굿뉴스’란 책에 나오지요. 요약하면,

“쿠바는 소련으로의 설탕수출과 비료농약 원조가 끊기자, 89년부터 농업혁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수백만 톤의 비료·농약·살충제·제초제·유전자 조작된 씨앗이 사라지고, 대신 식량 자급률이 98%에 달하고 있으며 거의가 무농약으로 생산된다.


기본적인 식량은 배급되고 있으며 유기농을 누구나 싸게 사 먹을 수 있는데, 이런 쿠바의 경험은 갑작스런 정책 전환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점진적인 전환도 할 수 있다.”


축산을 점차 줄이며 축산동물의 복지수준을 높여가고, 유기농식물농사를 확대해야 합니다. 이는 ‘다국적 밥상’에서 벗어나는 일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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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도 살리고 유전자조작식품도 막기 위하여 우리 종자 텃밭 만들기 운동을 시작하여 종자기금 마련을 위해 모금을 시작하신 분도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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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직접 상품이 되어 물건취급 당하는 것의 의미


그리고 열심히 동물보호운동을 하고 채식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종(種)에 대한 것이니 사람들의 인식이 가장 뒤떨어진다는 것, 그래서 사회진보의 가장 뒷줄에 있다는 것, 그만큼 운동하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 말고도 이유가 또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자본주의 질서에 속박되어 있지만, 모든 분야의 상품이 문제가 크지만, 이것만은 생명이 직접 상품이 되어 물건취급 당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노동자도 자신을 비싼 값에 팔리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상품이 되고 있습니다. 공장노동자는 컨베이어벨트의 흐름에 구속되어 기계취급 당합니다. 그렇다해도 노동자는 긴 노동을 끝내고 누추하지만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있습니다. 축산동물들은 단 한 시간도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는 컨베이어 벨트에 (많은 경우 산채로) 직접 걸리는 물건이 됩니다.(컨베이어벨트의 기계가 되는 노동자가 그래도 낫겠지요^^)


그래서 저는 동물을, 생명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 예민해질 수밖에 없으며, 끝까지 단호하게 반대하고 개선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힘을 쓰려면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오해에 대하여

 

'남의 살을 먹어야 힘을 내는 사람들'이란 표현을 쓰셨는데, 진짜 그렇게 믿고 계신건지 잘 모르겠지만, <생명과 환경을 살리는 채식모임(www.veg.or.kr)>의 공동대표 정인봉님의 "채식 위주의 식사에 대한 오해, 오해들"이란 기고글 중에서 발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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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에 있는 사람과 달리 고된 일을 해야하는 노동자들이나 운동선수는 육류를 반드시 먹어주어야 힘을 쓸 수 있다'라고들 하는데,

 

옛날 머슴 밥그릇을 아는가? 그들은 지금의 국그릇보다 더 크고 높은 밥그릇에 밥을 수북하게 쌓아서 김치나 간장 하나에 밥을 먹었다. 오늘날에도 자이나교도나 수많은 저개발국가 사람들은 영양소를 섭취할 수 없는 극도의 가난한 생활이 아닌 한 통밀빵 . 현미와 같은 통곡식을 80% 이상 먹고 그것도 소식하면서도 하루에 마라톤 거리만큼을 걷고, 인력거를 끌며 왕성한 체력을 자랑한다. 이들에게 오히려 육류를 공급하면 힘을 못 쓴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수많은 객관적인 실험과 통계는 채식가들이 일반인들보다 지구력이 더 좋고, 피로 회복도가 더 빠르다고 발표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운동선수들 중에 채식가들이 많다는 것은 이를 잘 입증한다.

 

채식인 운동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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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브라 틸로바(윔블던 9회 우승)
머레이 로즈(수영 올림픽 3관왕)
데이빗 스콧(철인경기 6관왕)
에드윈 모제스(허들 올림픽 2관왕)
빌 월튼(유명한 농구 스타)
권영철(현재 51세, 격투기 세계챔피언) "   

그외 무지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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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초순의 어느 새벽에 http://cafe.daum.net/vegetarian 에 복사된 [삼겹살 집 딸 중에 채식하시는 분?]과 [채식주의자와 축산노동자의 연대?!]를 대충 읽고 글을 써올렸던 것인데...  두 분이 하고자하는 말씀을 잘 이해하고 대거리 한건지 모르겠네요. 혹 초점이 맞지 않더라도 그냥 제 뜻이 이렇다는 것을 이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회진보를 위해 노력하는 모든 분들은 보다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모두 건승하시고 과정에서 따뜻한 정을 많이 나누며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참고 :  인간에게 털옷을 빼앗기는 동물들의 절규 

다음카페 :  우리종자를 생각하는 모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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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 여러분, 이제부터라도 치열한 고민! 부탁드립니다

아래의 편지 내용을 정말 총학생회 학생들에게 보내는게 좋을까요?

아래 기사 제목 클릭하여 내용 보시고, 덧글은 그 밑에 달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편지] 울산과학대 총학생회 학생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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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에 ‘생명’을 포함시키자

 

분류에 ‘생명’을 포함시키자

“생명을 파괴하는 대가로 성취된 인권은 진정한 의미의 인권이 아니다”


저는 지난 8일 진보넷에 블로그를 개설했습니다. 누구보다 사회 진보를 열망하는 제가 나름대로 진보를 추구한다는 분들과 소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블로그 분류를 선택하는데 마땅히 고를 것이 없었습니다. 제가 요즘 가장 관심을 많이 두고 있는 분야는 생태, 생명, 동물, 환경, 예술 등이거든요. 그 외에도 여성, 청소년, 교육, 공동체 등에도 관심이 있는 편이지만, 주력분야라 할 수는 없고요. 또 사회, 문화도 저의 관심분야들과 관계가 있지만, 그것들은 다른 많은 것들을 두루 아우르는 개념이라 해야겠죠.


아시다시피 진보넷의 분류는 정치, 경제, 사회, 통일, 평화, 노동, 환경, 여성/성, 인권, 과학기술, 정보통신, 청년/청소년, 대학, 학술, 교육, 농민, 빈민, 지역, 국제, 보건의료, 종교, 공동체, 미디어, 복지, 문화로 모두 25가지입니다.


할 수 없이 ‘환경’을 선택하기는 했습니다. 저는 환경에도 관심이 많고, 생명은 환경과도 관계가 있지만, 환경이 그 영역을 다 포괄할 수는 없습니다. 예술은 문화에 포함시킨다 해도, 생명이나 동물이 들어갈만한 분류가 없는 것입니다.


동물도 환경의 중요한 일부이지만 외면당하고 있다


사실 생명과 동물이 환경의 일부라 하여 틀리다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정신문화의 건강성, 서로를 배려하고 사람들 간에, 또 생명체 사이에 어떻게 관계 맺는가 하는 이 모든 것들이 중요한 우리의 환경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환경 개념 안에는 생명의 개념이 불완전하게 걸쳐 있고, 동물의 개념은 거의 쏙 빠져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동물의 경우 야생동물 정도가 포함되기는 하지요. 실제 인간이 동물들과 관계 맺는 방식들을 볼 때 동물문제는 야생동물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인간생활 깊숙이 함께 하고 있는 반려동물들, 끊임없이 번식을 강요받는 모견이나 종견들, 농장에서 가둬키워지는 동물들, 모피를 위해 사육되거나 포획되는 동물들, 보신문화로 고통 받는 동물들, 동물원에 전시되는 동물들, 공연에 이용되는 동물들, 싸움·경주 등 사행성 오락에 이용되는 동물들, 동물뽑기나 경품으로 이용되는 동물들, 홍보에 이용되거나 심한 노동을 해야 하는 동물들, 실험에 이용되는 동물들...


그래서 아직은 환경운동가나 생태주의자 중에서도 동물보호를 생태계 유지 차원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공존이 아니며, 동물보호도 인간을 위한 이기적인 차원에 가두는 것입니다. 여전히 인간중심적인 근대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인류적인 wellbeing'과 혼돈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세상을 머리로만 사랑하는 것이지 가슴으로도 사랑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이 동물들에게 가하는 '심대하지만 피할 수 있는' 가학의 현실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동물착취는 심각한 환경파괴와 맞물려 있기에, 인류의 wellbeing이란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지요.


아직은 환경론자나 생태주의자들에게도 외면을 당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동물에 대한 인식수준은 낮습니다. 어느 나라나 인간의 사회복지제도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후에야 동물보호에 대한 관심과 의식이 일반화, 보편화되고 그 보호가 정책화, 제도화됩니다. 이는 일단은 사회의 주된 구성원인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와 복지가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른 다음에야 우리의 주위를 둘러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동물보호'에 대해 이야기하면,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배부른 소리를 하냐'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옛날, 백인들이 흑인을 노예로 부려먹던 시절에 백인들에게 흑인들의 고통이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오히려 멸시를 당했지요. 지구상에서 동물들도 생명체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種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지요.


'인권' 개념은 '생명권'의 개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이 점차 진보해가는 시대에 '인권' 개념은 '생명권'의 개념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인간이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해서 동물에 대해 배려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여력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올바른 관점을 갖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엄밀히 얘기하면, '인권' 개념은 '생명권', 나아가 '자연권'으로 확장될 수 있을 터인데, 요즘은 인권과 자연권에 대해서는 인식이 많이 되어가고 있지만, 인권에서 자연권으로 의식이 옮아가기 전에 거쳐야 할 생명권에 대한 관심은 쏙 빠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동물을 사람의 이용대상으로만 여기고 그리 이용해왔기 때문에, 그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마크 롤랜즈는 『동물의 역습』에서 "전세계를 뒤흔든 구제역, 광우병, 조류독감 파동은 동물을 상품으로 취급한 결과 일어난 당연한 현상이다. (사람들은) 이윤만을 극대화할 목적으로 동물을 강압적으로 취급한다"며 학대받는 동물에게도 도덕적 권리가 있음을 주장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세상이 궁극적으로 약육강식의 논리로 움직이는 것처럼 가르쳐왔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 동물사회에도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폭력이론을 뒤집는 이타적 성공전략'을 사용하는 무리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비투스 드뢰셔의『휴머니즘의 동물학』)


이제는 학교에서도 인권 교육과 생명권 교육이 '따로 또 같이' 시행되어야 합니다. 생명권은 인권의 확장된 개념이자 온전한 개념이므로, 생명권 교육과 인권 교육은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킬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생태주의 운동은 보완되어야 한다


생태철학의 대두로 근대 이후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개발을 향하여 무작정 내달리는 것을 조금씩이나마 완화시키고 자연의 훼손이 가져올 더 큰 피해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는 논리가 생겼습니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자연을 배우며 좀더 여유롭고 따뜻한 정서와 꿈을 가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생태적 상상력과 감수성을 지닌 인간형'을 새로운 인간상으로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생태철학과 생태교육은 저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아이들에게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라고 얘기하게 되었습니다. 풀을 쓰다듬어보고 풀은 쓰러지면서 무슨 소리를 내는지, 나무를 두 팔로 안아보고 뺨에 닿는 감촉을 느껴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수액이 흐르는 소리를 들어보고 나무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감수성을 섬세하게 발달시킬 뿐 아니라, 다른 존재를 귀하게 여겨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을 키우기를 바랍니다. 그런 마음을 갖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되려면 '신령한 기품'인 '영성'을 키워야 한다고 합니다. 신령한 기품은 다른 존재를 자신의 이기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타적으로 존귀하게 여기고 그 존재를 지키려는 행동을 함으로써 얻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계통상 식물보다 사람과 훨씬 가까운 동물에 대해서는 별로 주의를 환기시키지 않습니다. 사람과 가깝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과 공통점도 많고 교감도 더 많이, 잘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과 공통점이 많은 만큼, 기쁨과 슬픔, 두려움과 불안, 고통과 스트레스의 표현이 인간을 닮았고 우리가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고통스러울 거라고 거의 확신하는 동물들부터 고통을 제거해주려 노력하지 않으면서, 그보다 하등한 동물, 또는 식물의 고통 운운하는 것은 동물 이용에 대한 기득권을 버리고 싶지 않은 자의 변명이 아닐지요.


선도적으로 분류에 ‘생명’을 포함시켜 주십시오


그래서 진보넷에 부탁드립니다. 선도적으로 분류에 ‘생명’을 포함시켜 주십시오. 다음과 같이 하면 어떨지요?


대분류 : 생명 

중분류 : 생태, 동물, 채식


더 적당한 용어나 중분류에 추가할 개념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데 진보넷이 큰 역할을 하리라 믿습니다.


끝으로, 경기민주언론연합 사무처장 이주현님의 표현을 옮깁니다.


“인간 중심에 국한시킨 인권은 결국 인간의 욕망을 극복할 수 없다. 인간의 욕망은 생명을 파괴하고, 생명을 파괴하는 대가로 성취된 인권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권이 아니다. 누릴 수 없는 공허한 논리일 뿐이다. 결국, 인권의 범주는 생명이라는 범주와 환경이라는 범주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차원에서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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