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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플러 미래예측의 허점

토플러 미래예측의 허점 [한겨레]2000-09-15 04판 25면 1195자 컬럼,논단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부인 하이디와 함께 (미래충격)을 펴낸 지 정확히 30년이 흘렀다. 토플러는 거의 10년 간격으로 (제3의 물결)과 (권력이동) 등 미래서를 내놔, 미래사회 예측과 관련해 국내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토플러의 책이 빛을 발하는 근거는 무엇보다도 그가 축적한 인터뷰 자료의 방대함이다. 그는 (미래충격)을 펴낸 이후 전세계 지도층 인사들과 인터뷰를 하는 데 거의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았다. 그만큼 그의 책들은 의사결정권을 지닌 엘리트층의 생각을 집약하고 있다. 그의 미래진단이 무리없이 먹혀드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게다가 그는 전세계를 누비면서 확인한 정.재계 인사들과 과학자들의 현실인식을, 자신의 직관을 첨가해 정리하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디지털 격주간지 (비즈니스2.0)은 최근 토플러와의 인터뷰와 각계 저명인사들이 내다보는 '제2의 미래충격'을 실었다. 이 잡지에 실린 토플러의 캐리커처는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그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는 그림 속에서 양탄자 대신 자신의 책 (미래충격)을 타고 선사시대를 배경으로 허공을 날고 있다. 예언자의 가운을 걸친 그의 모습과 득도에 이른 듯한 몸짓.표정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미래학을 예언과 구분해주는 가장 큰 근거는 현실의 인간활동에 바탕을 둔 논리적 예측일 것이다. 그럼에도 예언자적 이미지가 오히려 그의 풍모를 지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미래학은 인과적 논리에 따른 예측을 담고 있긴 하나, 현실의 인간활동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에는 뭔가 빠져 있다. 그의 논의구조는 주로 엘리트층에 토대를 두고 있어,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대중의 맥락은 거세돼 있다. 자본주의 경제의 큰 흐름을 지적하는 것과 달리, 일반 대중의 역동적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일이다. 정보기술 정책 등의 의사결정권이 엘리트층에 고도로 집중돼 있거나 한 국가의 미래 경쟁력이 그 나라 거대기업들의 수준만을 반영하는 경우에는 미래예측이 한결 분명할 수 있다. 이제껏 그의 진단과 예측은 이런 대세에만 의존한 경향이 짙다. 토플러가 누누이 지적한 대로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이 넘치는 사회를 보기 위해서는, 그의 디지털 사회에서 소외된 대중의 목소리를 미래진단에 덧붙일 필요가 있다. 토플러뿐 아니라 각계가 되돌아봐야 할 것은 엘리트주의 미래학이 아닌 대중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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