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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익명권 보호

온라인 익명권 보호 [한겨레]2001-03-09 02판 27면 1275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인터넷에서 네가 개인 줄 누가 알겠냐."1993년 미국 잡지 (뉴요커)에 실린 피터 스타이너의 만화에서 컴퓨터를 맞대고 두 마리 개가 나누는 대화 내용이다. 인터넷이 지닌 익명성을 조금은 과장된 익살로 표현해, 이제는 네티즌들 사이에 잘 알려진 그림이다. 현실에서 강제하는 서열.지위.연령.성별 등과 무관하게 누구나 자유롭게 온라인상에서 익명으로 글을 올리거나 주고받을 수 있는 평등한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선 네티즌들의 신원을 확인하려 안달복달하며 인터넷의 익명성을 위협하는 경향이 크게 늘고 있다. 미국의 가장 큰 온라인 서비스업체인 아메리카온라인(AOL)에 지난 한해 동안 법원이 의뢰한 가입자들의 신원확인용 영장만 475건에 이른다. 99년에 비해 40%가 늘어난 수치다. 지난주에는 미국의 유력한 시민단체인 전자프런티어재단(EFF)과 전미시민자유연합(ACLU)이 합세해 네티즌의 익명권 보호에 나섰다. 이들 단체는 실리콘인베스터라는 투자 관련 웹 게시판에 글을 올린 23명의 신원을 확인하려는 한 닷컴기업의 영장 발부를 취하해줄 것을 시애틀 소재 연방지원에 요청했다. 이 닷컴기업은 99년 회사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증권 사기 혐의로 여러 투자가들에 의해 집단 피소된 상태다. 주가 폭락의 원인을 잘못된 정보의 유포로 바라본 이 기업은 물증 확보를 위해 지금까지 1500건 정도의 자사와 관련된 글을 올렸던 이용자들의 신상 정보를 뒤지려 했다. 문제는 신원조회 대상자들 중 한명은 이 닷컴기업에 대해 전혀 글을 쓰지 않았던 인물이어서 영장 발부의 정당성에 의혹을 더하고 있다. 다행히 이번 사건은 실리콘인베스터가 서비스 이용자들에게 이 사실을 미리 알려, 이들이 시민단체와 함께 발빠르게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해줬다. 대체로 온라인 서비스업체들이 이용자 신원 조회에 대한 법원의 영장에 쉽게 굴복하는 선례와는 크게 대비된다. 네트워크에서는 익명성이 악용돼 잘못된 정보 유포나 직접적인 명예 훼손 등을 불러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 해법으로 개인지 사람인지 구분하려 할수록, 그리고 정체를 폭로하겠다고 위협을 가할수록 표현의 자유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네티즌들의 막힘없는 얘기가 좋은 정보를 수확하는 토양을 키우는 법이다. 이제까지 서비스 가입자들의 신상 정보를 기업들에 선선히 내줘 비판받아왔던 아메리카온라인도 최근 주체하기 힘든 법적인 처리 문제로 가입자들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쪽으로 선회했다고 한다. 다시 개들도 안심하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고대한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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