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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디지털세상] 08. 01 애플의 아이팟, 문화 현상으로 진화하다



2008년 1월호

트렌드라 하면 하나의 동향 혹은 문화의 일부로 자리잡아가는 흐름을 지칭한다. IT 트렌드는 새로이 개발된 기술에 대한 파악보단 그러한 기술이 어떻게 현실 사회, 문화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방점이 있다. 개개의 기술은 소비자가 등을 돌리면 쉽게 시장에서 사멸하고 그 기술 발전 과정을 간파하기 쉽지 않으나, 선도적 기술들의 사회문화적 영향력과 진화 방향 그리고 그 문화적 파급을 본다면 디지털 미래 예측력이 증가한다. 이는 IT 트렌드가 단지 기업 상품의 선전장이 아닌, 미래 문화의 방향과 보다 바람직한 정보사회의 미래 설계의 길잡이임을 뜻한다. 올 한 해 필자는 미국을 포함해 사회와 문화에 영향력을 미치고, 그 스스로 자신의 문화를 창조하는 정보통신기술의 경향을 살필 것이다. 이번 호는 애플의 얘기로 시작할까 한다.



소 니의 워크맨이 아날로그 오디오 문화의 전설로 기억된다면, 이젠 스티븐 잡스가 이끄는 애플사가 디지털 오디오 문화의 후임자를 자처한다. 워크맨처럼 아이팟(iPOD)은 한 컴퓨터사가 개발한 제품 이상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아이팟은 소비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선도한다. 애플의 이 조그만 장치는 아이도그(iDog)와 같은 캐릭터 스피커, 패션 케이스 등 다양한 기능의 수많은 액세서리들의 인접 수요를 엮고, 새로운 소비 문화를 연다.

아이팟이 나오기 전에 이미 애플은, 한창 말 많던 누리꾼들의 ‘불법’ 음악공유 문화에 상업 모델을 적용시켜 성공했다. 그렇게 난리를 치며 음반판매 손실을 누리꾼에게 전가하던 저작권자와 막무가내로 음악을 내려받는 누리꾼 사이의 이해관계를 비집고, 애플은 곡당 저가의 요금으로 그리고 아무 기술적 잠금장치없이 내려받기가 가능한 아이튠 음악제공 서비스로 큰 성공을 이뤄냈다. 애플은 누리꾼의 공유 문화를 거스리지 않는 범위에서 돈을 챙기는 방법을 모색했다. 애플이 그 험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공세에도 무너지지 않은 까닭은 애플의 문화 적응력에 있다. 이는 경쟁사들에 비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모두 가격이 싸지도 않을 뿐더러 성능도 떨어지고 아이비엠과의 연동에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맥북 컴퓨터 시리즈 이후로 인텔칩을 장착해 호환이 되긴 하지만)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 샌 조깅을 하는 사람, 버스에서 창가를 내다보는 사람,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학생,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승객 등 어디서든 아이팟을 듣고 있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초등학생부터 아줌마까지 아이팟을 선호하는 이유가 뭘까? 이는 애플만의 독특한 상품 디자인의 힘일 것이다. 신기능의 수많은 엠피 플레이어가 등장하고 전화기와 결합한 엠피폰이 선보여도, 아이팟에 밀리는 것은 애플만이 지닌 묘한 매력 때문이다.

최근 만들어진 맥북 컴퓨터, 아이팟, 아이폰 등을 보면 간결하면서도 깔끔하고 편리한 인터페이스로, 향후 전자 제품의 디자인을 선도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경쟁사들이 부단히 노력하나 역부족인 그들만의 디자인은 곧 애플 마니아를 만들고, 아이비엠 가이와 애플 가이라는 이분법까지 만들어낸다. 디자인은 문화와 소통하는 영역이다. 소프트웨어에서 보이는 인터페이스의 창의성과 하드웨어에서 풍기는 세련됨은, 디지털 문화의 아이콘이 되고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로 자연스레 합류한다. 센스있는 한국인들에게 물 건너온 아이팟은 신종 명품 액세서리인 양 목에 걸리고, 아이폰을 사기 위해 밤새 미국 매장 앞에서 진을 치는 진풍경까지 벌어진다. 오늘날 애플이 가진 마력이다.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제품 구매 결정은 단지 성능, 가격 혹은 주변기능의 탁월함으로만 성사되진 않는다. 기술 발달로 제품의 가격대가 떨어지면서, 대개의 조건은 엇비슷해져 가는 것이 현실이다. 디자인과 인터페이스에 승부를 거는 애플에게 승산이 있는 이유다. 적어도 전자기술은 성능은 기본에다 패션 장신구로 어필하고 그 스스로 문화로 진화하는 능력에 생존 조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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