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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로 가는길] 디지털 점집의 역술가들

디지털 점집의 역술가들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국내에 신세대풍 점집과 사주카페와 함께 인터넷에 점술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젊은층을 중심으로 확산된다고 여기니 그리 상쾌해 보이진 않는다. 재미삼아 찾는 점집이라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 현실에 대한 비관적이고 불확실한 전망이 젊은이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는 얘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극도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심정적 불안이 자연스레 점술을 현대인들의 일상으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정작 역술가가 치는 점괘가 시원 찮아도 사주풀이만 좋다면 무슨 대수일까 싶기도 하다. 까짓것 엉터리 사주풀이라도 복채 건네는 이의 기분만 좋으면 그만 아니냐는 항변도 나올 법하다. 하지만, 판이 커져 속칭 사 이비 역술가들의 점괘가 우리네 사는 현실을 좌우하면 이미 재미나 정보 제공이란 차원을 벗어난다. 있는 현실에 비해 과장된 운명이나 낙관론이 지배하기 시작한다. 사이비 역술은 점집 구들에 자리 틀고 앉아서 입발린 운명을 예언하는데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학과 지식을 빙자하여 매체를 통해 거짓 정보를 유포하는 이들도 사이비 역 술의 축에 낀다. 누가 이렇듯 거짓 정보를 유포하는가? 디지털 '현자'로까지 추대되는 우파 논객들, 소위 디지털 시대의 점술가들이 그 주범이다. 이들이 행하는 디지털 미래의 유채색 은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을 가리는 수단으로 곧잘 둔갑했다. 이들에게 인터넷의 미래는 무 궁무진한 기술 변화의 가능성으로 언급되지만 실제 그 변화와 방향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관리되는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은 실종된다. 정보의 질적 가치나 기술 변화의 지향뿐만 아 니라 누구를 위한 정보화인지, 디지털과 인터넷이 또 다른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는지 등 에 의문을 갖는 것은 처음부터 금기시된다. 이들이 치는 괘는, 자본주의 위기는 경기 변동으 로, 저항은 체제의 역기능으로, 모순은 기껏해야 마찰 혹은 갈등으로, 정보공유는 시장 파괴 란 원칙에 의해 움직인다. 이들은 디지털 시대의 가시적 현상들을 주워담아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경영·경제 법칙들을 만들고 각종 기업 강연과 언론플레이를 통해 '신경제'라는 신화를 세웠다. 첨단의 기술 현상과 운명론의 결합을 그리 낯설지않게 만든 장본인들인 셈이다. 이 들을 급으로 따지자면 개인의 운명이 아닌 사회 전체의 운명을 예언하고 사회적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 역술가들에 해당한다. 그러나, 꼭 2년전부터 시작된 미국 경제의 불황이 이 역 술가들의 점괘가 사이비라는 점을 폭로했다. 이들에게 선뜻 복채를 내놓았던 사람들은 지난 몇 년간 하이테크 산업에도 구경제에서처럼 장기적 불황, 대규모 정리해고, 노조 설립 탄압 등 과거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는다는 사실을 지켜보았다. 신경제의 거품이 걷히면 주위에 기생하던 역술가들의 움직임 또한 잦아드는 것이 당연하건만, 이들은 불투명한 미래의 불안 감을 틈타 다시 디지털 현자인양 행세하며 나서고 있다. 마냥 첨단 기술에 기댄 이들의 장 밋빛 진단에 진저리가 날 때도 됐는데도 말이다. 자본주의 발전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대할수록 우리는 경제 연구소의 통계 예측에 비해 현자들의 말한마디에 더 큰 권위를 느낀다. 그래서인지 지난 수년간 디지털 역술가들 의 점집 노릇을 해왔던 디지털 경제지들은 신경제 스타로 대접받는 현자들을 다시금 대거 영입하기 시작했다. 한 디지털 잡지는 재밌게도 디지털 역술가들의 얼굴을 앞면에 담고, 뒷 면에는 관련 정보를 실은 그림 카드 모음을 보너스로 싣는 파격을 보여준다. 코흘리개 아이 들간에 고가에 거래되던 포케몬 카드와 흡사한 디지털 현자들의 얼굴이 새겨진 일명 '딱지' 모음을 고안해냈다. 딱지 뒷면의 스타 정보에는 출생과 간단한 약력 외에도 별표로 등급을 매기는 스타 파워(별점), 1회 강연료, 특기사항 등이 기록돼 있다. 단연 피터 드러커는 모든 디지털 역술가들의 스승격이다. 유일하게 그의 별점은 다섯이다. 경영 전략 분석의 대가로 불리는 마이클 포터는 별 넷에 1회 강연료가 무려 7만 달러다. 이 에 비해 <디지털자본>이란 책으로 유명한 돈 탭스콧이나 <마이크로코즘>의 조지 길더는 딱지 경쟁력이 약한 편이다. 마치 괴물 혹은 로봇에 대한 정보가 상세히 분석된 아이들의 딱지처럼 디지털 시대의 역술가들의 몸값이 보기좋게 매겨져 있다. 지금과 같은 경제 불황 에도 불구하고 몸값이 이 정도라면 호황기에 누렸던 이들의 유명세는 짐작하고도 남을만하 다. 비록 국적은 미국이지만 이들이 내리는 점괘는 세계를 상대한다. 전세계 경제인, 정부 관 료, 지식인의 의식은 이 스타 역술가들의 점괘에 쉽게 의존했다. 포케몬 딱지를 수집하는 아 이들의 빗나간 동심처럼 이들 스타들은 전세계 여론 주도층의 마음을 사로잡는 딱지 속 스 타들이었다. 우리 정부도 큰 돈 써가며 이들을 모셔왔지만, 신격화된 딱지 스타들이 치는 점 괘가 이름값만큼 그리 신통치 못했다. 이들이 내리는 모순 부재의 현실과 미래 진단은 오히 려 오류로 가득했다. 인터넷 현실의 비판적 접근을 기술 지상론으로 입막고, 신경제의 장밋 빛 신화를 후발국들에 퍼뜨리면서 또 다른 종속의 쓴맛을 보게하는 대신 스타 점쟁이들은 두둑한 복채를 챙겼다. 그런 이들이 이제 무너져내리는 닷컴 기업들 앞에 줄줄이 자리깔고 앉아 회생의 처방전을 갖고있노라고 또 한번 사이비 행각을 벌이고 있다. (정보화로 가는길, 200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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