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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e세상] 소수 해커에서 일반 유저의 시대로

소수 해커에서 일반 유저의 시대로 이광석(뉴미디어평론가) 시간을 거슬러 컴퓨터 역사의 험난했던 시절로 기록된 1990년을 회상해보련다. 그 해는 미국 해커들에게 거의 공포의 시대로 알려져 있다. 60년대말 대학가를 중심으로 피어오른 자유로운 정보 공유의 해커 정신은 80년대 이후 거의 사그러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디지털 지하세계로 잠복했던 해커들이 심심찮게 미 국방성을 비롯한 정부기관, 전화회사, 핵 발전 연구소 등을 무 단으로 드나들어 사회적으로 큰 위협이자 골칫거리로 언론 지면의 주목을 받던 때다. 일명 '선 데블작전'(Operation SunDevil)이라 불리는 해커 대검거 작전은 바로 당시 해커들의 싹을 자르 기 위한 1차 경고였다. 연방 사법당국에 의해 주도된 전국적 규모의 해커 사냥은 일부 선의의 피해자들의 속출과 부당한 인권 침해를 낳아 인터넷에 기반한 시민단체들이 출현하는 계기가 될 정도였다. 거의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 그 때 사건이 떠오른 이유는, 얼마전 사법부 주도의 또 다른 마 녀사냥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미국에서는 대대적인 불법 복제물 검거 선풍이 있었 다. 미국의 아프칸 '애국전쟁'에 가려진 이 사건은 거의 매체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연방 사 법부 직원들은 미국 27개 도시의 주요 대학 사무실을 급습하여 130여개의 컴퓨터와 불법 복제 물를 압수·수거하고, 그 중 일부 혐의자들은 그 자리에서 검거했다. 이번 급습은 장기적으로 저작권의 강화 움직임을 보여주는 증거다. 확실히 유저들의 방만한 정보 이용에 쐐기를 박아보 자는 의도를 갖고 있다. 동시에 미국내 이용자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참여했던 유저들에 대한 경고 차원의 메시지도 함축한다. 최근 국내 저작권 관련 재판들이 특히 미국의 판례에 크게 의 존하는 경향을 고려하면, 우리에게 어떻게든 직·간접적으로 그 파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1990년과 2001년이란 세월의 간극은 사법당국의 검거 대상을 바꿔놓았다. 해커에서 일반 유 저로. 그제가 해커라는 이름으로 닫혀진 문을 열고 드나들길 좋아하는 소수 전문가 집단의 시 대라면, 이젠 닫혀진 정보의 장벽을 제거하여 무한 복제하길 즐겨하는 다수 유저 집단의 시대 로 가고 있다. 인터넷의 보급이 특정 컴퓨터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확대된 시절에 비해, 지금은 네트워크 이용의 폭이 넓어져 일반 유저들이 정보를 이용하고 널리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제는 전자 공간에서 돈벌이를 위한 노하우가 부족했다면 이제는 상업화의 과도한 진척으로 가공된 디지털 상품의 무한복제를 걱정해야할 판이다. 정말 달라진 현실이다. 사법당국의 걱정거리도 사뭇 달라졌다. 예전엔 주로 중요 사회 기반시설에 대한 해킹 대비에 그쳤다면, 이젠 본격적으 로 정보를 사고파는 기업을 '악성' 유저들로부터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바뀌었 다. 해커들은 주로 네트워크 보안 방벽을 뚫고 들어가 전리품으로 일부 파일을 들고나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지만, 유저들은 정보 자체의 암호를 깨고 네트를 통해 이를 최대한 번식시키는데 기쁨을 느낀다. 그래서, 해커는 동류들로부터 중세 '기사'의 명예와 작위를 원하지만, 신종 유저 들은 자신이 '로빈훗'과 같은 '베풂'의 전리사이길 바란다. 그래서, 해커는 자신을 최대한 숨김으 로써 명예를 얻지만, 유저는 자신을 알림으로써 대중으로부터 명성을 얻는다고 믿는다. 해커와 유저간에도 공통점은 있다. 그들의 비의도적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행위 에 전혀 잘못된 동기란 없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컴퓨터 속어 중 '와레즈'(Warez)란 말이 있다. 암호가 제거된 소프트웨어를 통칭하는 말이다. 이번 검거는 와레즈가 범람하는 한 전세계적인 유저망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비록 검거와 단속 이 미국내에서 벌어졌지만, 그 수위가 한 국가의 범위을 넘어선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각국의 유저들이 자신들의 '와레즈'를 서로 주고받으며 네트워크망을 키우다 이번 검거 열풍의 표적이 된 것이다. 어디 '와레즈' 뿐인가. 유저들의 냅스터나 소리바다와 같은 새로운 일대일(P2P) 기술 체계의 응용은 이제까지 상업화된 정보 생산과 보급의 방식을 혁명적으로 뒤바꾸고 있다. 이런 상황에 서 자연 거대한 유저들의 공유 물결을 막으려는 단속과 검거는 실적보다는 자유로운 네트에 깊 은 상처를 남길 뿐이다. 유저들에 대한 사법적 강경 대응만을 능사로 삼아서는 곤란하다. 인터 넷이 유저들에게 주는 긍동적 가치들을 기업이나 사법당국이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변화된 지형에 맞는 유동성있는 정책과 법 체계의 입안도 필요하다. 구시대의 잣대로 유저들의 변화를 가로막기엔 시대의 변화가 너무나 빠르고 거대하다. 물론 상업적 목적으로 개발된 프로그램들을 그대로 방치하자는 맥락은 아니다. 과거처럼 소 수 해커들에 대한 제재가 가능할 순 있어도, 대다수 유저들의 이용 행위를 막기는 역부족이다. 그런 점에서 음반, 영화 등 각 이익 단체들이 기업 편을 최대한 대변하는 저작권 지상주의로 문제를 풀려한다면 사태의 해결과 거리가 멀다. 해법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룰에 있다. 상업 적 혹은 권력의 통제욕에 좌우되는 인터넷이 아니라, 디지털의 특성을 고려해 유저들이 보다 유연하고 자유롭게 정보에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에 충분히 열려있는 인터넷 구상이 필요하다. 설사 상품 시장을 원한다 하더라도 스스로가 범법자가 아니라고 믿는 유저들을 설득 시킬 수 있는 합리적 모델이 필요하다. 유저들은 그런 가치를 보장하는 사이트라면 벌떼같이 모여들어 밀어주고 알린다. 국내에 소위 벤처를 세워 성공 신화의 주역을 차지했던 몇몇 사례 들은 이들이 바로 유저들의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정보 공유의 가치를 앞서 보고 응용했기 때문 에 이뤄졌다. 다시 강조하건대 단속과 검거, 규제 입법 등의 장치로 일반 유저들의 손끝을 다스 리긴 절대 어렵다. 소수 해커들이 득세했던 언더그라운드 시대에나 먹혀들 구닥다리 시각이다. 이제는 네트에서 유저의 감수성을 바로 읽지못한 채 그들을 상대로 장사에만 급급한다면 자리 접고 떠야할 시대임이 분명하다. (아름다운 e세상,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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