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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e세상] 퓨전의 가치

퓨전의 가치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요즘 집안 꼴이 말이 아니다. 한국의 모대학에서 디지털 관련 글들로 이름이 잘 알려진 한 선배의 짐 때문이다. 그 이는 이역만리 있는 내게 6,70년대 잡동사니 음악장치들의 보관 을 부탁했다. 첨단을 달리는 그 선배가 요즘은 음악에 심취한 까닭이다. 릴덱(Reel Deck)이 란 무식한 아날로그 녹음장치가 벌써 여러 대 내 서재방에 쌓여있다. 그만이 아니다. 다 썩 은 고전 음반이 수백장이요, 스피커들, 오디오장치 등이 집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그가 옥션 사이트인 이베이(ebay)에서 경매로 사들인 것들인데, 국제 우송이 불가능해 내가 중매 처가 됐다. 이 처치곤란한 유물들은 고이 보관하다 귀국 때 그 선배에게 싸짊어지고 갈 요 량이다. 한동안은 이것들을 쳐다보기만해도 짜증이 났다. 그런데, 이 고물들이 슬슬 나를 꼬득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발 끊었던 이베이에 들어가 이 고물들을 운동시킬 것을 찾다 70년 대 독일에서 제작된 듀얼(Dual)사의 턴테이블을 경매로 구입하고, 바늘(stylus)을 사러 온 동네를 헤매고, 다 썩어가는 엘피들(LPs)을 먼지 뒤집어써가며 혹은 점잖게 경매를 통해 사 모으기 시작했다. 선배의 고물들이 알게모르게 자극제가 된 모양이다. 사실 나는 최신의 새 것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축에 낀다. 타지에서 공부하는 형편에도 불 구하고, 일찌감치 큰맘먹고 누구보다 먼저 음향 조절용 리시버가 장착되고 스피커가 다섯인 소위 홈띠어터(안방극장용) 디브이(DVD) 플레이어를 구입했던 경우도 그렇다. 새로운 기술 에 대한 부질없는 구매 욕망이 한몫했다. 그런 내가 시덥잖은 고물들을 껴안을 복고를 생각 이나 했겠는가. 하나둘 고물들을 이용하면서 재미난 일이 벌어졌다. 경매로 구입한 턴테이블이 디브이디 오디오를 거부했다. 아니다. 디브이디가 그 고물을 거부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세월의 간극이 워낙 커 신기술이 고물을 알아보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턴테이블의 잭 을 암만 꽂아놓고 엘피를 걸어도 소리가 불통이었다. 고민 끝에 80년대초쯤 만들어진 구식 오디오장치를 중간 매개장치로 놓고 턴테이블과 디브이디 리시버를 서로 연결해봤더니 이게 웬일인가. 깜쪽같이 원음을 재생했다. 신구간 갈등을 중간 세대의 기술이 막는다? 어찌되었 거나 결과는 좋았다. 이런 식으로 안방극장용 디브이 플레이어의 좌우 스피커는 음량좋은 70년대 소리통으로 대체되고, 오디오장치와 연결된 턴테이블과 함께 작동하고 있다. 내친 김 에 구닥다리의 턴테이블 바늘도 디제이 믹스용 최신 사양의 것으로 바꿨다. 인터넷에서 엠피3 음악을 교환해 내려받아 취향대로 듣는 첨단 현실에도 불구하고, 인터 넷 이베이를 통해 흘러간 엘피를 경매로 사들여 애써 디지털로 전환해 듣는 우리네 일상을 어떻게 봐야 하나. 과거와 미래의 혼재와 공존, 한마디로 '퓨전'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 까. 개인적으로 퓨전의 재미는 여러 가지로 체험되었다. 전자결제로 엘피를 구입하면서, 옥 션 사이트에서는 거래자가 평해 놓은 내 신용 평가에 힘쓴다. 우편으로 배달된 중고 엘피의 튀기는 잡음은 아연 먼 옛날의 향수를 느끼게 만든다. 비용 지불에 대한 만족을 느낄만하다. 턴테이블에서 돌아가는 엘피와 바늘의 앙상블은 씨디의 픽셀을 읽는 헤드의 맛과 다른 체험 을 준다. 이제보니 이런 퓨전은 내 일상에서 아주 흔하게 발견된다. 맞춤형 '데일리미(daily-me)'로 매일 아침 전자우편으로 날아드는 몇몇 일간신문의 전자판에도 불구, 집에 배달되는 신문의 가짓수가 어느덧 셋으로 늘었다. 랩탑 컴퓨터에 모든 문서작성을 의존하면서도 여전히 하루 일기는 어렵사리 구한 '로얄'(Royal)제 타자기로 투닥거린다. 학술 논문들의 대부분은 학교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집에서 출력하기도 하지만, 아예 정기 구독이나 복사를 택하기도 한 다. 내 일상에서 과거의 매체들은 생명을 다함이 없이 현대의 기술과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 의 값을 적절히 수행한다. 그러고보면 현대 인간의 신체도 벌써부터 '퓨전'인 셈이다. '사이보그 선언문'을 작성한 페 미니스트 도너 해러웨이(Donna Haraway)에 따르면, 우리 인간 모두는 '사이보그'다. 사이보 그는 구시대의 신체와 새로운 기계로 구성돼 있다. 신체의 연장물들, 의족, 의수, 의치, 안경, 보청기, 인공심장 등은 인간을 퓨전화하는 것들이다. 이미 기계가 인간의 몸에 들어오고, 그 것이 우리의 현실을 구성한다면, '퓨전'이란 하등 새로울 것 없는 얘깃거리다. 그럼에도 이제 까지 '새로움'이 오래된 것들을 너무 업신여기고 대체될 것을 강요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각종 '새로움'과 '혁명'의 수사와 업데이트, 버전업의 논리가 지나치게 현실을 지배해왔다. 미 래의 열광에 과거의 가치는 주눅든 현실이었다. 과거의 것들이 새로움과 어떻게 공생하는지, 어떻게 이 둘이 또 다른 새로움의 유전학적 전이로 향하는지 등에 대해 너무 인색해온 것이 사실이다. 사이보그의 예에서도, 인간의 몸을 빌리지않은 새로움의 기계란 그저 한계로 가득 찬 로봇에 불과하다는 예상을 해본다면, 낡고 빛바랜 것들의 가치는 전혀 사라질 것들이 아 니다. 요즘 나는 수동식 타자기의 자판을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는 모델에 대해 생각해 본다. 타자기의 활판이 부딪혀 생긴 아날로그의 파열음을 키보드마냥 컴퓨터의 메인보드가 인식하 는 인터페이스를 꿈꾼다. 이런 미래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친근하게 다가올 'e세상'이 아닐 까. 요사이 타지 떨어진 손자 그리운 마음에 주름진 손으로 전자우편을 보내는 법을 배우신 다고 애쓰는 노친네 생각에 이르면, 퓨전의 가치가 더욱 아쉬운 오늘이다. (아름다운 e세상, 200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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