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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e세상] 지식정보사회의 기본값

지식정보사회의 기본값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지난해말 세간의 반향을 일으켰던 한 방송사의 '범국민 독서캠페인' 프로그램 내용이 아직 도 내 뇌리에 또렷이 남아있다.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인의 독서량이 턱없이 부족 하다는 당시 진행자의 숫자 비교가 그리 큰 파격적 사실은 못됐다. 이미 여러차례 언론을 통해 국내 독서 수준과 관련 각종 문화지표들의 부끄러운 수치를 마주하면서 이미 단련된 터였기 때문이다. 문득 그 때 방송을 보면서 들었던 상념은 한국 사회의 문화 인프라가 얼 마나 부실했으면 방송사가 발벗고 나서 책을 읽자고 계몽 운동을 펼칠까하는 것이었다. 방 송 중 흥미로웠던 대목은 독서 장원을 뽑아 사은품으로 책꽂이에 진열된 책을 제한된 시간 에 가슴 한아름 들어 나르는 장면이었다. 한 대형 출판사가 기증한 광고용 책자들을 땀흘리 며 이고 가는 한 '책벌레' 중학생의 모습에서 우리의 미래가 밝다고 누군가 흐뭇해했다면 그건 완전한 착각이다. 왜냐면 그 장면은 학생과 시청자들 모두에게 한 개인이 죽을 때까지 다섯 수레의 책을 읽는 가치에 비해 그만한 양의 책을 여럿이 두루 공유할 수 있는 사회 조 건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날 방송에는 왜 우리의 독서량이 이웃나라 일본 등에 뒤쳐지는지에 대한 분석이 없었 다. 독서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못갖춘 현실에서 국민에게 한 권의 책을 사서 읽으라고 강요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나라 서민들의 빠듯한 생활고에 책을 사다 보는 사람은 그나 마 여유가 있는 축이다. '독서 후진국'이란 멍에의 원인을 따지려면 당연 제일 먼저 국민을 위한 공공 교육 서비스 기관인 도서관 실태를 따져봐야 했다. 입사와 고시 준비로 메워진 대학 도서관과 지역 국공립 도서관들의 현실에서 독서의 장래란 없다. 책을 구입할 여건이 안되는 현실이 지배적이라면 이에 대한 보다 폭넓은 접근권이라도 보장을 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한국의 도서관들은 사설 독서실과 진배없다. 지역 주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대 학 도서관은 어디도 없다. 그나마 구비된 책들을 이용하려해도 학생이 아니라면 각종 제한 에 걸린다. 이것이 21세기 인터넷 강국이 강조하는 지식 기반 사회의 그늘진 면모다. 한 나라의 도서관 실태를 보면 지식 활용 능력의 답이 나온다. 필자가 인구 칠십만명 정 도의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몇 년 살면서 가장 부러웠던 사실은 지역 공공 도서관의 놀랄만 한 개방성이다. 지역 주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대학 도서관과, 스물두어곳의 지역 공공 도서관들이 특히 빈곤 지역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정보와 지식의 자유로운 접근을 보장 하고 있다. 외부에서 인터넷을 통한 공공 도서관 접속, 독서 프로그램, 도서관내 컴퓨터 이 용 등이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자유롭다. 신분 증명서만 있으면 국제 여행객도 도서 나 각종 시청각 자료 대출이 가능하다. 설령 길거리 노숙자들이 도서관에 드나들며 책을 읽 고 웹 서핑을 해도 어느 누구도 이들을 제한하지 않는다. 그만큼 도서관은 이용자들의 출입 문턱을 낮춘다. 곳곳에 산재한 공공 도서관들은 지역민들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인터넷상의 서버 (server)처럼 기능한다. 지역민들간에는 어떠한 차별도 없다. 서버는 항시 열려 있다. 평등한 조건하에서 원하는 자료를 요청할 때 항시 서버는 응답한다. 물론 도서관들간 네트워킹은 이용자들이 찾으려는 자료를 구하는데 최적의 수단이다. 도서관 규모는 작지만 산재한 공공 도서관들이 인터넷을 통해 책, 오디오, 비디오 등의 대출과 기간 연장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데는 바로 도서관내의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외부와의 네트워크 연결에 따른 성과에 있 다. 누구나 최대한 '공개되고 열린 자원'(open resource)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데 그 운영의 묘가 있는 것이다. 우리랑 생활 형편이 다른 선진국의 사례를 들이대며 그에 규격을 맞추자며 얼빠진 주장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저 신간서적 하나 여유있게 읽어볼 자리도 마련않는 대형서점들의 장삿속에 녹아나는 우리의 독서 현실이 서글퍼 그렇다. 게다가 있는 도서관도 제 기능을 못 하고 절뚝거리는데, 오히려 책 안읽는 시민들의 '무식함'을 질책하는 언론의 방자함에 실소 가 나와 그렇다. 학생들과 지역 주민들의 지식의 자원이자 정보화의 동맥으로 기능해야할 도서관들이 높은 담벼락을 둘러쳐 외부인을 막고 캠퍼스내 고시촌으로 전락하는 한심한 풍 경이 한국의 특색있는 명소처럼 보여선 곤란하다. 현실처럼 인터넷의 거대한 사고의 도관(conduit)이자 고급 자원의 핵심으로 의당 도서관 의 집적된 데이터베이스를 꼽을 수 있다. 현실과 네트 모두에서 도서관에 축적된 지식은 외 부에 공개될수록 한 국가의 사회 복지 수준은 증가한다. 반면 관리의 효율성과 이윤 논리를 내세워 경계를 세울수록 도서관은 다수의 발걸음을 막고 비경쟁적 공공 자원의 활용을 크게 떨어뜨린다. 일반 소비재와 달리 나눌수록 커져가는 것이 지식이고, 이를 제대로 분배해야 할 곳이 공공 도서관이다. 지식에 대한 불평등 해소와 사회적 공유의 첫걸음은 가난한 이들 도 편히 책을 대여하고, 인터넷을 통해 여러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회, 문화 기반을 조성 하는 것이다. 독서 진흥은 도서관의 이런 공개된 환경에서만 이뤄진다. 있는 것들의 링크와 확장이란 개방성이 인터넷의 거대한 힘이자 정보공유의 촉매가 된 것처럼 존재하는 도서관 자산들의 활용과 평등한 접근과 이용이 소위 지식정보사회를 일구는 기본 토양으로 자리해 야 마땅하다. (아름다운 e세상, 200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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