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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질한 권력 지지는 배인석 작가의 ‘청와대 라이터’ 쇼

지질한 권력 지지는 ‘청와대 라이터’

2013. 1. 월간 <나.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청와대’ 봉황 딱지 붙은 라이터를 본 적이 있는가? 진짜 청와대에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한 물건, 있으면 탐날 만한 물건, 연신 꺼내 들고 폼 잡고 으스댈 만한 물건 중 하나이리라. 바로 그 ‘청와대’란 문구와 봉황이 선명히 새겨진 라이터를 이제 전국 저잣거리에서 단돈 5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요 청와대 라이터는 <개그콘서트>의 꽃거지 구걸료, “궁금하면 500원”과 딱 맞아떨어지는 가격이다. 재질 또한 구리다. 참 요새 보기 드문 1980~90년대 복고풍 총천연색 컬러 5종 플라스틱으로 만든 일회용 라이터다. 근자에는 한정 ‘골드’(GOLD)판 일회용 라이터의 출시로 판매에 새 국면을 맞았다. 청와대 문구와 봉황에 홀려, 혹은 그 미미한 가격에 깜빡해서 누구나 소소한 욕심이 동할 만하다. 게다가 혼을 쏙 빼는 광란의 스피커 음악 소리에 맞춰 짧은 치마 입고 판촉에 나선 내레이터 모델들의 섹시 댄스가 곁들여지면 길 가는 행인들이 가히 넋을 잃고도 남는다.

‘찍긴 잘 찍을 겨?’ 투표 독려

 매력적이나 이 뭔가 수상한 청와대 라이터로 전국 소비자를 현혹하는 주인공은, 영리한 장사꾼이 아닌 바로 화가 배인석이다. 그는 부산을 거점으로 지역 미술운동을 하는 예술 작가이다. 이미 작가로서 배인석은 예술계에서는 ‘글쓰고, 일하고, 놀고, 술쳐묵고, 씨부리기도 하는 화가’란 닉네임을 지닐 정도로 변칙적이고 재기발랄함의 결정체다. 그의 살아온 세월로 인해 1980년대 민중예술의 심각한 정치 감각을 뼛속 깊숙이 지녔을 거란 착각은 금물이다. 배인석은 이상하리만치 요새 10대마냥 대단히 자유로운 감수성을 지닌다. 그래서, 그의 미학적 촉수는 사회 질곡과 권력의 은밀하고 깊숙한 영역까지 더욱 밀고 들어가면서도 그만의 해학을 잃지 않는다.

 그가 최근 시작한 일명 ‘청와대 라이터 프로젝트’, 제값에 팝니다!- 청와대의 가치(Value of the Blue House)는 그런 예술 행동주의적 작업의 일환이다. 한국 사회 최고 권력자의 휘장을 상징하는 전설의 새 봉황 문양이 새겨진 라이터의 반대쪽 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작가의 의도가 뭔지 조금 감 잡을 수 있다. ‘ㅆㅂ 또 5년을 ㅜㅜ 잘해!’, ‘정말! 찍긴 잘 찍을 겨?’, ‘표투! 표투! 그래도 표투!’, ‘이번 집주인 믿을 수 있남?’, ‘그러니깐! 투표는 할 껀가?’ 등이 반대쪽의 주요 문구다. 또 있다. 그는 이렇듯 묘한 라이터만 파는 것이 아니다. 라이터를 담고 있는 작은 비닐 커버 안에는 기획의 의의를 알리는 글이 써 있다. 예를 들면 그는 이 라이터를 갖고 잘 놀 수 있는 기발한 방법이 있다면 각자 인증샷을 찍어 프로젝트 전용 카페 ‘청와대 라이터’에 올리라고 독려한다. 배인석은 현실 개입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자신이 제작한 청와대 라이터를 가지고 길에서 부딪히는 소시민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백색의 화랑이 아닌 길바닥에서 키치(Kitch)하면서도 아주 소박하게, 단돈 500원으로 말이다.

 배인석은 페이스북 등 인터넷과 거리·지인 판매를 시작한 지 채 한 달도 안 돼 4천여 개의 청와대 라이터를 팔았고, 전국 30여 개 판매 점주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는 청와대 라이터 프로젝트용 광고 동영상을 제작해 소셜웹을 통해 대중의 시선을 끌고, 흔하디 흔한 재떨이 옆에 놓이는 일회용 플라스틱 라이터와 거기에 새겨진 최고 권력점의 문양을 통해 시민들을 호객하며 일상 정치가 만들고 있는 권력, 신화, 편견, 거짓 등을 유쾌하게 까발릴 기회를 제공한다. 즉 이제까지 별 생각 없던 이들이 ‘청와대’란 곳에 대한 무의식을 다시 한번 곱씹게 하는 것이 목표다. 청와대에서 제작한 라이터 경품으로 착각해 열광하든, 싸구려 라이터 딱 그만큼이 현재 청와대의 가치인지 되묻거나 좀더 심하게 경멸하든, 새겨진 글귀들을 보면서 현실을 둘러싼 정치 국면을 따져보든 그에게 이는 해석하는 대중의 몫이다. 이를 통해 길거리 소시민들은 무심코 눈에 띈 라이터가 주는 약호의 해독 과정을 통해, 나름 정치심리적 각성 효과를 얻는다. 예서 프로젝트의 실제 화랑 공간은 거리요, 길거리에서 라이터를 구입하고 인증샷을 찍어대는 이들이 진짜 관객이 된다...

공권력·예술가에 대한 조롱

청와대 라이터를 들고 있는 문정현 신부. 배인석 제공

 배인석은 이미 그의 개인전 ‘퇴계(退溪)하여 평택을 생각한다’(2006)에서, 정선의 수묵화에 그려진 박연폭포 위로 평택을 짓밟았던 경찰특공대의 헬기를 띄우고 그 폭포수 아래 철조망으로 선비들의 출입을 막는 합성 패러디 작을 만들어 주의를 끈 적이 있다. 평택 대추리를 어지럽혔던 공권력의 유린이 평정심 속 수묵화에 담긴 조상들의 산수화와 함께 병치되거나 그 속으로 인입됨으로써, 그 둘의 관계는 더욱 낯설어지고 부자연스럽게 되는 효과를 얻었다.

 용산참사 현장에 전시된 그의 설치작 하나. ‘나는 거짓말하는 사람이 아니다’(2009)는 용산참사 책임자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권력자들의 끝없는 수사와 거짓말들과 권력 위선의 모습에 대한 반응으로 치밀하게 기획된 작품이다. 설치 작업에는, 일제 평원 고무공장 여성 노동자 강주룡(1901~32)이 남긴 유품들을 사용했다. 그녀는 일제 당시 임금삭감에 반대하며 평양 을밀대 지붕에 오른 최초의 고공농성자이자 최초 여성 노동운동가였다. 이만하면 외롭게 고공투쟁을 이뤄냈던 김진숙의 원조 격으로 강주룡의 상징성은 충분했다. 배인석은 더 적극적으로 을밀대 현판과 강주룡의 옷가지·머리카락·고무신 등 유품을 중국을 오가는 이로부터 우연히 취득했다며, 관객을 속여 전시 아이템화한다. 그러고는 <부경신문>이라는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지면에 강주룡의 유품들을 얻게 된 경위며, 일제하 “근대 노동운동사의 특별한 자료 가치를 지닌 소장품”을 지닌 작가로 자신을 선전하며 이의 소장 사실을 마치 실재하는 사실처럼 온라인 공간에 유포시켰다. 역사학자 한홍구 선생조차 배인석의 ‘낚시’ 기사에 깜빡 넘어갔으니, 그의 거짓 연출이 꽤나 탄탄했던 셈이다. 배인석은 이 작업을 통해 고위 경찰 등 권력 집단은 물론이요,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 작가들 또한 그리 믿을 족속이 못 된다는 것을 일깨우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권력과 공권력을 쥔 자들의 거짓된 모습과 이미지와 상징을 다루는 직업 예술가들의 근친성을 보려 했다.

 ‘배인석표’ 유쾌한 창작 행위는, 이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청와대 라이터 프로젝트’로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셈이다. 그가 지난 10월부터 한 달 넘게 진행한 프로젝트의 진행과 확산 경로는 대단히 빠르고, 매체 활용 방식에서는 다층적이고 ‘소셜’적이다. 일단 물리적 공간에서 라이터의 판매 경로를 보자. 일회용 라이터는 아직까지 소상인들의 판촉을 위한 중요한 소모품이다. 술자리에서 돌다보면 남의 것이 내 주머니에 들어와 있는 상황도 허다하고, 가끔은 새겨진 가게 문구가 라이터 주인의 행실을 추적하는 데 요긴하게 쓰이기도 한다.

불 지피는 소셜 행동주의

부산 거리예술페스타 행사 중에 열린 청와대 라이터 퍼포먼스. 배인석 제공


끽연가였던 배인석은 이렇게 가스가 다할 때까지 이리저리 서민들 사이를 오가며 질기게 살아남고 공유되는 일회용 라이터의 저력을 본 듯하다. 그래서 그는 “청와대 라이터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대중들의 생활 속에서 이야깃거리가 되어 주인을 바꾸어가며, 서민의 밑바닥에서부터 청와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게 만드는 미술 매체가 되는 것을 의도했다”고 말한다. 게다가 이를 구입했던 대중 관객들은 그의 싸구려 미술품, ‘청와대 라이터’를 대량으로 구입해 주변에 선물하면서 또 다른 ‘소셜’한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벌이는 적극성을 발휘한다. 배인석의 말대로 “필요 없는 내가 사서 필요 없는 너에게 줘야 확씰하게 불 붙는” 라이터가 된 셈이다.

 소셜웹을 통한 그의 다면적인 프로젝트 활동도 재미나다. 프로젝트 웹페이지를 정점으로, 유튜브에는 청와대 라이터 프로젝트의 기발한 광고 동영상을 올리고 퍼나르며 페이스북에서 자발적 인증샷 놀이를 감행하는 누리꾼들의 모습도 포착된다. 또한 웹을 통한 라이터 구입과 라이터 신모델 출시에맞춰 낚시성 기사들도 생산된다. 일례로 그의 자작극으로 꾸민 온라인 신문 기사 링크 서비스도 등장한다. 을밀대 강주룡 기사의 유포처였던 <부경신문>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신문이 여기서 또 한번 활용된다. 예선 “청와대 라이터 판매 한 달! 유사품 왜 나왔나?”라는 기사를 마치 실재하듯 올린다. 기사 내용에는 배인석과 비슷한 취지로 라이터 프로젝트를 대선 투표 독려로 활용하려 하면서 유사품을 만들다 덜미가 잡힌 또 다른 라이터 제작자가 등장한다. 마치 실제로 신문 기사화한 것처럼 꾸며, 필자같이 어리숙한 이들이 그의 청와대 라이터 작업을 주목하도록 이끄는 효과까지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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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라이터’를 매개로, 작가 배인석이 길거리와 온라인 소셜 공간에서 대중들과 맺은 대면 접촉과 소셜망 형성은, 대단히 고답적인 작가-관객의 소통 방식에 훨씬 민주적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즉 그는 전시장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과감히 저잣거리로 나가서, 배인석이 던지는 화두인 ‘개입과 실천의 창작품’, 즉 싸구려 청와대 라이터의 표상을 보고 소시민들이 욕망하면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신의 방식대로 반응하고 즐기고, 혹은 다른 이들과 연계하면서 그들 스스로 정치적 각성 효과를 만들어내도록 도왔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저잣거리 민초들뿐 아니라 현실에 개입하려는 많은 이들이 라이터 구입과 인증샷 올리기 등을 통해 더욱 뜨겁게 호응하고 있다. 그는 이제까지의 청와대 라이터 작업 기록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12월 초 아카이브 전시를 기획했다.

그는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한 모든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이제까지 자신의 예술행동 실험과 전시 기획은 “대통령 선거 정국에 어떤 특정 후보에 대한 영향을 미칠 의도는 없으며, 오히려 투표를 독려하기 위한 미술적인 놀이와 미술 매체의 대중 확산에 대한 실험과 노력”일 뿐이라고.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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