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 웬들링-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의 젠더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으로 과잉 대표되고 있는 것을 문제삼으면서 젠더와 가족에 대해 맑스가 직접 다룬 글들을 평가하는 작업에 별 관심이 가지 않았다. 맑스가 하고자 했던 말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를 다루는 작업이 중요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면, 지금 그다지 유의미하지 않은 영역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에이미 웬들링이라는 사람의 맑스의 젠더 연구에 관한 논문을 (반강제적인 이유로) 읽었다. 맑스가 1852년 노트를 포함한 초기 저작에서 젠더를 생물학적인 것에 바탕을 둔 재생산이 아닌, '성적 행동' 즉 섹슈얼리티를 가지고 설명하려고 했다고 한다.(물론 당시 이 개념들이 쓰이지는 않았지만.) 맑스는 오히려 재생산을 중심으로 설명하려고 한 당시 정치경제학과는 다른 결을 지니고 있었으며, 17세기 '여성논쟁'의 영향으로 젠더 문제를 당시 정치경제학의 개념들로만 설명하는 것의 한계를 알았다고 주장한다. 그 이후 젠더를 둘러싼 논쟁에서 사용되는 개념을 쓰지 않았지만 이 논쟁을 예기했다고 하는데... 
1852년 노트를 읽어보지 않았고, 맑스의 다른 저작을 통해 이 정도의 평가를 할 수 있을지는 의심 안 할 수 없다. 
그리고 17세기 '여성논쟁'에 대해 공부해봐야겠다.
아무튼 저자의 평가를 따른다면, 한국에서는 <성 계급 사회주의>로 대표되는 '반페미니즘적 맑스주의'의 사고는 맑스가 오히려 극복하고자 했던 대상들의 사고와 유사한 것이지 않을까. 
뭐, 맑스가 그렇게 말했든 말든 문제가 있는 건 마찬가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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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0 19:36 2013/12/1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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