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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9 -- 친구의 결혼

* 2005년 대학로 웨딩샾앞에서 촬영

 

어릴 적 치기어린 마음에 세상이 어떻고 나라가 어떻고

논쟁하면서 밤새도록 이야기하던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생각해 보면 20년도 더된 친구다.

중학생 시절에 교회를 같이 다니면서부터 녀석은 나와 같이 붙어 다녔다.

남성의 성기모양처럼 유난히 못생겼던 녀석이라 별명도 성(姓)을 합쳐서 “조+대가리” 라고

불렸던 녀석이다.

짓궂은 나도 심심찮게 부르며 장난을 치곤했다.

하지만 녀석은 화내기는커녕 끼손가락으로 코를 후비며 능글맞게 웃던 녀석이다.


녀석은 중간정도의 학교 성적 였지만 이것저것 아는 것이 많아서 가끔 나를 놀라게 했다.

내가 어쩌다 TV에서 주워들은 내용을 아는 척 하면 녀석은 해박한 지식과 책이나 신문을

고 알았던 내용으로 앞뒤 상황설명을 해 주고는 똑바로 알라고 면박도 주었다.


녀석의 집안은 무척 가난했다.

부모님이 두 분 다 생존해 계셨지만 어찌된 일인지 어머니만 반찬가게를 하면서 힘겹게 살았다.

우연찮게 녀석의 집에 갔다가 네 식구가 단칸방에 사는 것을 보고 가난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어색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녀석은 가난에 주눅 들지 않고 엉뚱하면서도 때로는 짓궂은 장난도 많이 쳤다.

무더운 여름날 밤늦은 시간에 버스가 신호대기로 춰서면 열린 창문으로 젖은 휴지를

여학생에게 던지고는 냅다 도망치기도 했고, 3년 동안 펜팔을 한 여학생을 만난다고

나를 끌고 2시간을 걸어 여학생 집을 찾아 헤맨 적도 있다.


사람들이 그렇듯이 졸업을 하고 군 생활과 직장생활하면서 소원해진 관계는 가끔씩

만나면서 안부나 묻고 살아가고 정도였다.


그 무렵 녀석은 대학생활을 하면서 밤에는 시장야간경비를 보면서 학비를 벌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대학생 이후에 집에서 돈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다가 소식이 끊기고 몇 년 뒤에 들리는 소식으로는 뉴질랜드에서 공부를 한다고 들었다.

나도 내 생활에 파묻혀 살다보니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은 다른 친구를 통해 내게 연락을 해왔다.

한국에 들어와서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생활한다고 한다.


모처럼 죽마고우를 만나서 동성애 연인마냥 웃고 떠들면서 오랜만의 친구의 정을 나눌 수 있었다.

서해안의 해넘이를 보면서 해변도 거닐어 보고 밤  늦도록 논쟁도 하면서 이야기도 해 보았다.

녀석은 해외선교를 목적으한국에서 결혼과 선교자금을 준비중이였다.


하지만 오랜만의 만남은 오랜만에 서로가 가진 가치관의 확인이기도 하다.

녀석이 하고자하는 뜻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종교관에 있어서 보수적인 신앙과

내가 가진 사회참여 의식을 가진 신앙관 사이에는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었다.


결국 종교관의 차이로 서로 심하게 다투고 연락을 끊기로 했다.


그런 녀석에게서 한동안 연락없이 지내다가 뜬금없이 손전화 문자로 e-메일주소를 물어왔다.


며칠 후, 내게 날아온 e-메일 한 통.

하루 열 몇 시간 씩 컴퓨터를 접하고 있지만 낯설기만한 e-청첩장.

죽마고우의 결혼이 기쁘기 보다는 섭섭한 마음만 가득하다.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하고선 “결혼한다”고 “예식장에 꼭 와 달라”는 그렇고

그런 친구를 만난 느낌이다.


매일 몇 번씩 먹어대는 식사도 같이 한번 못해보고, 신부 얼굴도 모르고 예식장에 가려니

발걸음이 무겁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그래도 어쩌랴.... 친구인 것을...

 

- 2008. 1. 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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