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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9/20
    20090901 -- 삶과 죽음(3)
    땅의 사람
  2. 2009/09/20
    20090813 -- 기다림(1)
    땅의 사람

20090901 -- 삶과 죽음

한창 일하고 있는데 손전화 문자가 왔다.
[ YTN 속보 - 위암 투병 영화배우 장진영 오늘 오후 사망]
(달마다 천 몇 백 원을 내면 YTN에서 속보를 보내준다.)
장진영이라면 왕의 남자에 나온 남자 배우 아닌가?
최근 전여옥 의원에게 ‘시민으로서의 권리’라는 공개 편지를
써서 속을 시원하게 해줬던 그 배우 아닌가!

놀란 마음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내가 아는 사람은 남자배우
정진영이였고 죽은 사람은 여자배우 장진영이였다.
그녀는 위암 투병을 하다가 남자친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근데 나는 잘 모르는 배우다. 출연작을 보니 눈에 익은 제목의
영화들이 많다. 그녀의 삶이 그녀가 출연한 ‘국화꽃 향기’의
내용과 비슷해 애절한 마음이 든다.

이런 저런 기사를 뒤져보다가 화장실을 갔다.
가는 길에 전산팀 직원을 만났다.
그 직원이 대뜸 내게 물어본다.
“설○○주임 죽은 거 아세요?”
“예?”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직원과 이야기 하면서 설주임을 생각해 본다.

설주임은 2년 전 쯤에 전산팀에 근무했던 직원이다.
왜소한 체격 이였지만 뭐든 말하면 다 들어줄 사람처럼
늘 웃으면서 일처리를 했다.
그러다가 그이가 다른 부서로 가고 나서는 만나지 못했다.

그런 그이의 소식을 들은 건 올해 봄쯤에 위가 아파서
휴직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크게 걱정은 안 했다.
내 또래 사람이니 병원에서 치료받고 음식조절 잘하면
곧 출근하리라 믿었다.

그랬던 설주임이 장진영과 비슷한 시간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술, 담배도 안한 사람인데...’
‘술, 담배에 찌든 난 아직도(?) 이렇게 생생한데...’
여배우가 죽었을 때는 별로 느끼지 못했던 허무함이 밀려온다.
병문안도 안 간 게 마음에 걸린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살려고 발버둥쳤다고 한다. 병원에서 개복을
했다가 손도 못 대고 다시 그대로 덮어두었지만 설주임은 좋은 약은
힘닿는 대로 구해보고 먹으려 했다.
뒤늦게 종교도 가져서 기도원도 다녔고 자연요법으로
치료한다고 야채로만 식사하기도 했단다.

항암치료가 머리카락이 빠지고 고통이 크다고 하는데 어찌 견디고 있었을까?...
자식 둘이 있는데 직장에서 들어준 보험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에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 하기야 늘 죽고 있는데 내 또래 가까운
사람이 죽고 나니까 죽음이란 것을 새삼스레 생각해 본다.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은 무엇일까?
스코트 니어링이란 사람은 백 살이 다될 무렵 먹기를 그치고
물만 먹으며 조용히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다. 물론 어떤 의료 행위도
받지 않았고 숲속의 오두막에서 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생을 마감했다.

내가 스코트 니어링처럼 살거나 죽을 용기는 없다. 하지만 흔한
사람들처럼 악다구니 하며 살거나 죽음의 문턱에서 문고리를 잡고
늘어지듯 발버둥 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자연이 내게 주는 만큼 욕심 버리고 자연스럽게 살다가 죽고 싶다.
내 인연과 세상이 허락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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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3 -- 기다림

그녀를 만나기로 했다.
광화문에 있는 예술영화 전용 상영관에서 보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술을
먹거나 영화보자고 하면 바쁜 일 없으면 잘 나온다.

그녀는 술도 잘 먹는다. 그것도 비싼 술보다 싼 술을 잘 먹는다.
밤새 술 먹고 다음날 아침 해장국에 소주를 먹어도 흐트러진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약속시간 5분전에 도착했다. 티켓박스 바로 앞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둘러보니 아직 안 온 것 같다.
영화표를 사고 등받이 없는 긴 의자에 앉아서 잠시 기다렸다.
예술영화 전용 상영관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다. 붐비는 게
싫은 나는 이런 한산함이 좋아 여기서 가끔 영화를 본다.

기다리기 심심해서 가지고 다니는 책을 펼쳐 들었다. 기왕이면
책을 보면서 기다리면 ‘좀 있어’보일 것 같은 얄팍한 계산이 선다.
한쪽으로 다리를 꼬고 무릎위에 책을 올려놓고 본다.

‘몇 줄이나 읽었을까...’
계단을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청각이 예민해진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그녀가 아니다. 한 3년 그녀를 만나고 있지만 구두 신은 걸
한 번도 못 봤다. 늘 헐렁한 운동화 아니면 스포츠 샌들을 신고 온다.

또 누가 오는 발자국 소리가 난다.
“스쓱 스쓱”
바닥엔 카페트가 깔려있어 가까이 오면 발자국 소리가 탁해 진다.
고개를 숙이고 눈의 초점은 책속 문자에 맞춰보지만
시야가 넓어진다. 넓어진 시야에 치마를 입은 여자 다리가 지나간다.
그녀가 아니다. 사적인 자리는 물론이거니와 공적인 자리에서도
치마 입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에이...책이나 보자.”
몇 번 읽었던 곳을 찾아 다시 읽었다.
탁한 발자국 소리가 또다시 가까이 온다. 일부러
고개를 더 숙이고 열중해서 책을 본다. 발자국 소리는
오른쪽 귀에서 들리다 내 앞을 지나 왼쪽 귀로 멀어진다.
이번에도 그녀가 아니다.

내 옆 빈자리에 사람들이 앉는다.
‘그녀가 오면 앉을 자리가 없는데...오면 바로 일어나야지’
시계를 보았다. 7시 20분.
약속시간이 20분이나 지났다.
‘웬일이지? 무슨 일 있나?’
가끔 늦을 때도 있는데 이렇게 늦기는 처음이다.
혹시 몰라 손전화를 꺼내 본다. 연락 온 건 없다.
그녀에겐 전화를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녀는 손전화가 없다.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한다. 급한 사람들이 알아서
사무실로 전화한다고 한다.

그녀는 시계도 없다. 대충 시간대 까지는 알고 있지만 궁금하면
손목시계까지 차고 있는 내게 물어본다. 그래도 약속시간이
늦었다는 건 알 텐데...나도 답답하지만 그녀도 미안해 할 꺼다.

영화 보기 전에 저녁을 먹기로 해서 시간 여유는 있지만
그래도 좀 불안해 진다.
‘어디쯤 왔을까?’
벌써 7시 30분을 넘어선다.

그때 멀리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창피했지만 그냥 나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배낭을 메고 성큼성큼 선머슴같이 걸어온다.
미안하다며 차가 밀려서 늦었다고 한다.
시간이 빠듯했지만 저녁 먼저 먹자며 밖으로 나왔다.
영화를 보고 우리는 언제나처럼 술집으로 향했다.
빈대떡 집에서 막걸리를 먹으며 침 튀기며 서로 영화평을 했다.

그날 그녀는 헤어지기 전에 맑은 국물이 담긴 하얀 비닐 봉다리를
내게 주었다. 직원식당의 솜씨 좋은 요리사가 멸치를 넣고
우려낸 잔치국수 국물이라고 한다.
역시...그녀다운 선물이다.
그치만 이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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