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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13
    20091011 -- 소요산 산행
    땅의 사람
  2. 2009/10/05
    20091003 -- 북한산 산행
    땅의 사람
  3. 2009/10/04
    20090928 -- 남산타워
    땅의 사람

20091011 -- 소요산 산행

소요산(逍遙山) 산행

먼저 이름부터 따져보자.
“소요”라는 단어가 가지는 꺼림칙하면서도 귀에 익은 느낌.
근현대사에서 높은 놈들이 간혹 방송이나 신문에서 툭하면 내뱉던 말이다.
그러던 시대가 10년도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드는 건
흔히 말하는 학습효과인가 보다.

하지만 소요산은 내가 아는 부정의 뜻과는 전혀 다른 뜻으로 편안하게 다가온다.
“천천히 거니는 산”
과연 그렇게 산행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속도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뜻밖의 신선함으로 기대감에 부풀게 한다.

경기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소요산은 높이 587m로 그리 높지는 않으나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그리고 수려한 경관뿐만 아니라 원효대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던 혼란한 시기에 생존하였던 원효는 의상과
더불어 당나라에 유학하려 두차례(34세(650년) 및 45세(661년))나 시도하였으나,
자신의 마음밖에 따로 법이 없음을 깨닫고 혼자 되돌아와서 보편적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왕성한 저술과 선교활동을 폈다.

그이는 광대들이나 쓰는 무애박을 치고, 무애가를 부르며, 무애춤을 추며,
광대, 백정, 기생, 시정잡배, 몽매하고 늙은사람들 사이를 방방곡곡 떠돌며
춤추고 노래하며 술마시고 거문고를 켜며 무수한 대중에게 불법을 전하였다.

그러던 어느 비오던 밤, 원효가 수행을 하던 움막에 비에 젖어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낸 아녀자가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였다고 한다.
우선 초막에 들게 하였더니 곧 원효를 유혹하려하여 원효가 이르기를,

“ 마음이 생(生)한즉 옳고 그르고, 크고 작고, 깨끗하고 더럽고, 있고
없는 가지가지 법이 생기는 것이요,
마음이 멸(滅)한즉 이 모든 법이 없어지는 것이니 나에게는
자재무애의 참된 수행의 힘이 있노라." 고 법문을 말하자 여인으로
변신한 관음보살이 미소를 지으며 사라졌다고 한다.

원효는 그 자리에 절을 짓고서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몸과 마음을
자유자재로 다스릴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것을 뜻하는 자재암이라 이름지었다.

자재암 부근에는 설총을 데리고 소요산을 찾아와 원효를 기다리던 요석공주의
궁터가 남아있다고 전해져온다.

자재암을 지나면 하백운대, 중백운대로 오르막길이 이어지며 힘들게
오르지만 상백운대로 이어지는 능선은 완만하다. 하지만 이 코스에서
내려다본 조망은 수려하고 상쾌하다.

이어 상백운대에서 나한대 사이는 급경사로 위험하지만 쇠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나한대를 지나 의상대에 다다르면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에 절로 감탄이
나올 법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요산에 와서 의상대에 오르지 않으면
백미를 경험하지 못한 것”이라고 하나보다.

소요산은 봄엔 진달래와 철쭉이 산을 수놓고, 여름에는 머루와
다래덩굴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가을에는 단풍나무, 떡갈나무 등 수십종의 활엽수가 단풍으로
물들고, 겨울에는 폭포기둥 등 설경이 일품이다.

이번 가을엔 소요산의 일부라도 만나봄직하다.
“천천히 거닐면서...”말이다.

산행길 : 관리소⇒일주문⇒자재암⇒하백운대⇒중백운대
      ⇒상백운대⇒나한대⇒의상대⇒옛절터⇒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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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재암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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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3 -- 북한산 산행

북한산 산행

추석 당일 산에 올랐습니다.
혹시 사람이 많으면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사람도 적고 하늘도 맑고 숲과 나무가 있어 편안한 산행이였습니다.

북한산에 오르는 길은 무수히 많다고 합니다.
알려진 길만 수십 곳이고 알려지지 않은 길이 또 수십 곳이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알려지지 않은 길로만 다닌다고 하는데
오늘 산행을 하면서 하산길로 진관사 쪽으로 내려왔는데
호젓한 길로 내려오다보니 사람없는 산행의 묘미도 맛보았습니다.

같이 간 조카녀석은 땀을 뻘뻘 흘리며 웃옷이 다 젖었지만
그래도 신이 나있는 녀석을 보니 좋은 추석 산행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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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보기엔 작아 보이지만 어른 검지손가락 만한 말벌이 나무에 있습니다.
살살 사진찍고 도망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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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하산길에 진관사에 들렀습니다.
진관사 금강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주차장에서 절로 드는 입구입니다.
거참~쩝...

보통 절은 일주문이 있어 일주문을 기준으로 속세와 해탈의 세계로 나눕니다.
그리고 금강문에 다다르면 금강역사상이 있어 사악한 것이 경내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 준다고 합니다.
가장 표준의 모습이 경주 불국사인데 무섭게 생긴 금강역사상 조각이
금강문 안쪽 양쪽에 딱 버티고 있습니다.




#12 금강역사상



#13 금강역사상



#14



#15 금강문을 나서면 잔디가 깔린 경내입니다.
많이 다니진 않았지만 절 경내에 잔디가 깔린 건 처음 봅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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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8 -- 남산타워

10월이 오기전에 업무가 바뀌면서 6여년 동안 일했던
곳에서 서울 북부지역으로 일터를 옮겼다.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떠나려 하는데 늘 곁에 있어서 고마움을 몰랐던
것들이 또 다른 아쉬움으로 남는다.

남산의 나무와 숲, 꽃, 멀리 보이는 북산한자락, 어느 초등학교
담벼락의 감나무, 어느 건물의 담쟁이 풀, 단골 음식점들(김치말이 냉면/
고등어 김치찜/전주 추어탕/백암 순대국/털보네 고등어 백반/서울탁주집의
빈대떡/왕돈까스/야채돈까스/새싹비빔밥/수타짜장면....),
언제나 빨리 인화된 사진을 구할 수 있는 충무로,

그리고, 일하다가 고개를 돌리면 늘 보이던 남산타워(N서울타워)가
더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어쩔 수 있나..


또 다른 꺼리를 찾아야겠다.





* 2005년부터 최근까지 찍은 남산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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