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어사 박문수, 인간의 얼굴

  어릴 적 봤던 판본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넷을 뒤져도 그 판본에 관한 자료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

 

  이야기는 영조가 조선을 다스리고 있을 때였다. 어느 고을에 못되고 사악한 비리 지역 공무원이 있었다 이거다. 이 고을 저 고을 떠돌아 다니던 우리의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 사실을 포착하고 탐문 조사 등을 통해 비리 공무원을 체포하기 위해 관아로 들어선다. 들어서는 타이밍은 극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해 보통 불쌍한 양민이 곤장을 맞기 직전 정도가 적당하다.

 

  "그만 둬라."

 

  "누가 관아에서 떠드는겨? 너냐?"

 

  "그래."

 

  "뭘 믿고 떠드는 거냐? 멍석말이 당해서 누워서 나가고 싶은겨?"

 

  "그러지 마라. 형이 세금 떼 먹는 다고 패고, 말 안듣는 다고 패고, 생긴 게 맘에 안들어서 패고, 그렇게 형한테 봉고파직에 투옥된 애덜이 포도청 연병장에 사열종대 앉은 번호로 두바퀴다. 형이 오늘 기분이 좋거든? 좋은 기회잖냐. 그만두고 내려와서 오부지게 맞으면서 반성 좀 해보자..."

 

  ...

  보통 암행어사하면 이 시기를 많이 떠올리며 유명한 사람도 이 시기에 집중되어 있는 편이다. 박문수 같은 경우도 그렇고 정약용이나 박규수 등도 암행어사로 활약한 경력이 있는 양반들도 그렇고. 그렇다면 이 시기 중앙 정부에서 암행어사를 지방에 열심히 파견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 비리 공무원들이 중앙 정부로 가야할 세금을 착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고, 또한 생산력의 한계에 의해 고통받는 농민들의 봉기가 폭발하면서 지배 계급은 어느정도 양보-영정법, 균역법, 대동법 등의 세제 개혁을 비롯한-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 맥락에서 초법적인 착취를 일삼는 비리 공무원들을 일벌백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영조 아저씨는 이 비리 공무원들을 공공의 적...이 아니라 탐관오리로 규정하고 박멸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중앙권력이 약화되고 대지주 세력이 정권을 장악함에 따라 중앙의 지역 통제력은 유명무실하게 되어버렸고 암행어사의 이야기는 사그라들게 된다.

  말할 것도 없이 이 탐관오리들은 인민을 피를 빠는 진드기 같은 놈들이었다. 그렇다면 요 진드기를 사냥하는 박문수와 영조의 무리들은 이들과 질적으로 다른 인간들이었는가? 천만에! 농민의 입장에서는 이들 모두 자신들을 신분제의 굴레 속에 얽어 매고 있던 양반들이었고 자신들이 피땀흘려 추수한 곡식을 단지 토지의 소유자라는 이유로 뜯어가는 봉건 지주들이었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2% 정도 있었을 뿐이다. 사실 이들이 세제 개혁과 탐관오리 박멸을 외치며 인간의 얼굴을 한 봉건제를 외치게 된 것도 이들의 선의가 아닌 피착취 농민들의 투쟁의 결과였음은 비교적 명백한 것이었다.

 

  이제는 시대가 변하여 탐관 오리가 서 있던 자리에 비리 공무원과 악덕 재벌 들이 줄을 서 있고 반대편에는 청백리 같은 공무원들과 노블리스 오블리제니 뭐니 하며 환원하는 기업인들의-카네기나 빌 게이츠 같은-흉상을 늘어놓으며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니 뭐니 지저귀는 소리가 시끄럽다. 하지만 이 청백리들의 법과 원칙이 어느 계급의 법과 원칙이며, 자본가들이 자신의 죄를 사하기 위해 내놓는 이 엄청난 기부금은 누구로부터 나온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아무리 카네기가 시민들에게 공짜 수돗물을 나누어 줬다고 해서 그 부의 원천이 홈스테드 철강 파업을 총으로 무장한 구사대와 주군(州軍)을 동원한 포위전으로 진압하고 노조를 해산시킨 피의 대가에 있다는 사실을 숨길 수는 없다. 인간의 가죽을 얼굴에 붙이고 다닌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본질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