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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의 식탁,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 식탁의 양분화

  최근 미식이니 웰빙이니 뭐니 열풍이다. 그 열풍 때문인지 만화계 역시 쟁쟁한 요리만화가 쏟아지고 있다. 자연 재배한 신선한 재료와 엄청난 내공의 수수께기의 요리사, 그리고 정성과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 ... 따위가 어우러져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을 만족시키는 절륜의 요리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가 양산되고 있다는 이야기.

  이러한 이야기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보통 판타지 장르로 분류된다. 요리만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듣도 보도 못한 요리'는 넘어가더라도 일년에 한번쯤 있을 법한 가족 외식 때 들어봄직한 요리마저도 판타지의 그것은 격을 틀리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이해가 쉽지 않다면 주판을 들고 만화책을 다시 보면 그 격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희귀 생물 혹은 극도로 제한된 환경에서 재배/사육되는 신선한 재료! 일정 이상의 숙련을 지닌 요리사가 아니면 꿈도 꾸지 못할 고난이도의 기술! 그 요리사에 의한 재료의 숙성과 상당 시간을 소비하는 준비 없이는 만들어낼 수 없는 세밀한 조리 공정! 자, 주판을 들어 재료비와 인건비를 계산해 보자. 몇가지 조건이 잘 맞아 떨어지는 경우에는 싸구려 급식 식당에서 1년 먹을 치의 식사과 맞먹는 한 끼를 구경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유기농 비스므리한 싱싱한 재료. 전속 요리사는 무리더라도 가사에 종사하는-대개의 경우-가정 주부. 어느정도 난이도의 조리과 어느정도 시간의 소모. 이 정도쯤이 된다면 왕후장상의 식사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웰빙을 입에 담을 수 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주판을 잘 두드려보면 만만치 않은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웰빙을 거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식탁으로 이동해보자. 카드빚을 내지 않으면 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는 저임금은 자신의 노동환경과 비슷한 환경에서 재배된 농약과 방부제로 버무려진 최신 과학의 식품 재료에 접근하게 해준다 ... 당연히 맞벌이를 해야 애들 사교육비라도 댈 수 있는 형편에 숙련 요리사의 환상은 양립할 수 없다 ... 당연히 고난이도의 조리 과정은 반조리 식품으로 오랜 준비 과정은 전자렌지 데우기로 대체된다 ... 이것이 귀찮다면 가까운 급식 식당을 찾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오소독스한 유형의 빈민은 아니다.

즉 인간의 현실은 이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빈민의 식탁은 이 화해할 수 없는 식탁의 양극화 위에서 돈이 없더라도 잘 먹을 수 있다는 작가의 신념을 풀어나가고 있는 작품이다. 이 만화는 매 회마다 1인분 100엔 이하의 식사를 소개하고 있다. 이 100엔의 식탁은 환상의 식탁 혹은 드라마에 나오는 이상적인 중산층 가정의 식탁에 도달하는가?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못하다. 주판은 정직한 것이다.

  원가를 줄이기 위해서 도입되는 방부제 떡칠의 가공식품과 저질 채소, 기업형 목축의 생산물들. 섬유질, 칼슘, 일부 비타민군 등의 부족으로 인한 영양 밸런스의 붕괴. 가격의 영향이 크겠지만 지극히 부족한 양-성인 여성이 하루에 필요한 열량이 2000kcal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이 모든 것이 그대로인채 작품은 꽤나 요리의 고수이며 백수이기 때문에 요리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주인공을 내세워 요리의 맛을 약간 더 좋게하는 비법들을 소개한다. 그다지 도움이 되기 힘들 뿐더러, 그다지 위안이 되지도 않는다. 돈이 없더라도 잘 먹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계급적인 식탁의 분할은 계급 사회 내에서 오랜 역사가 되어왔다. 피지배계급의 재생산비를 최대한으로 줄이고자하는 시도는 세종으로 하여금 춘궁기에 나무 껍질을 벗겨먹는 방법을 소개하게 하였으며, 맑스의 자본론에 불량빵-석회가루 등이 섞인-에 대한 이야기를 싣게 하였다. 또한 오늘날 많은 급식 식당의 한 끼 열량이 500kcal도 못미치는 엽기적인 상황을 낳았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소를 먹는 소의 고기를 먹게 하고, 몬산토에게 제3세계 농토를 농약과 유전자 조작 작물로 재조직하게 하였으며, 한때 바나나맛 우유를 진짜 바나나 맛이라고 믿게 하였다.

  재미있게 읽은 것 치고는 평가가 너무 박한가? 분명 오랜 분할의 종식의 열쇠를 이 만화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괴로운 일상의 작은 즐거움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과 부엌이 없는 사람에게 꽤 사실적인 판타지를 제공한다는 것을 덤으로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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