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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두꺼운 월급봉투, 제 3세계에서 날아오는 여분의 손가락, 무상교육, 석유, 알량한 자긍심, 노동관료, 여타의 적당한 양보들 ...
확실하지 않은, 그것도 언제 거둬질 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기반 위에 서 있는 선물들이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에, 아니 위기의 순간에야말로 그들은 가장 확실한 것을 인민들에게 선물한다.
하인리히 질레, 철십자 훈장Das eiserne Kreuz
어수선 하면서도 뭔가 휑한 방. 어두운 표정의 부인. 동그란 눈을 돌리며 상황을 파악하려는 아이들. 앙상한 가지의 화분. 탁자 위의 철십자 훈장. 그리고 엽서 속의 전사통지서. 아마 몇 푼의 유가족 연금이 들어있을 법한.
어릴 적 봤던 판본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넷을 뒤져도 그 판본에 관한 자료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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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영조가 조선을 다스리고 있을 때였다. 어느 고을에 못되고 사악한 비리 지역 공무원이 있었다 이거다. 이 고을 저 고을 떠돌아 다니던 우리의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 사실을 포착하고 탐문 조사 등을 통해 비리 공무원을 체포하기 위해 관아로 들어선다. 들어서는 타이밍은 극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해 보통 불쌍한 양민이 곤장을 맞기 직전 정도가 적당하다.
"그만 둬라."
"누가 관아에서 떠드는겨? 너냐?"
"그래."
"뭘 믿고 떠드는 거냐? 멍석말이 당해서 누워서 나가고 싶은겨?"
"그러지 마라. 형이 세금 떼 먹는 다고 패고, 말 안듣는 다고 패고, 생긴 게 맘에 안들어서 패고, 그렇게 형한테 봉고파직에 투옥된 애덜이 포도청 연병장에 사열종대 앉은 번호로 두바퀴다. 형이 오늘 기분이 좋거든? 좋은 기회잖냐. 그만두고 내려와서 오부지게 맞으면서 반성 좀 해보자..."
...
보통 암행어사하면 이 시기를 많이 떠올리며 유명한 사람도 이 시기에 집중되어 있는 편이다. 박문수 같은 경우도 그렇고 정약용이나 박규수 등도 암행어사로 활약한 경력이 있는 양반들도 그렇고. 그렇다면 이 시기 중앙 정부에서 암행어사를 지방에 열심히 파견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 비리 공무원들이 중앙 정부로 가야할 세금을 착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고, 또한 생산력의 한계에 의해 고통받는 농민들의 봉기가 폭발하면서 지배 계급은 어느정도 양보-영정법, 균역법, 대동법 등의 세제 개혁을 비롯한-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 맥락에서 초법적인 착취를 일삼는 비리 공무원들을 일벌백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영조 아저씨는 이 비리 공무원들을 공공의 적...이 아니라 탐관오리로 규정하고 박멸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중앙권력이 약화되고 대지주 세력이 정권을 장악함에 따라 중앙의 지역 통제력은 유명무실하게 되어버렸고 암행어사의 이야기는 사그라들게 된다.
말할 것도 없이 이 탐관오리들은 인민을 피를 빠는 진드기 같은 놈들이었다. 그렇다면 요 진드기를 사냥하는 박문수와 영조의 무리들은 이들과 질적으로 다른 인간들이었는가? 천만에! 농민의 입장에서는 이들 모두 자신들을 신분제의 굴레 속에 얽어 매고 있던 양반들이었고 자신들이 피땀흘려 추수한 곡식을 단지 토지의 소유자라는 이유로 뜯어가는 봉건 지주들이었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2% 정도 있었을 뿐이다. 사실 이들이 세제 개혁과 탐관오리 박멸을 외치며 인간의 얼굴을 한 봉건제를 외치게 된 것도 이들의 선의가 아닌 피착취 농민들의 투쟁의 결과였음은 비교적 명백한 것이었다.
이제는 시대가 변하여 탐관 오리가 서 있던 자리에 비리 공무원과 악덕 재벌 들이 줄을 서 있고 반대편에는 청백리 같은 공무원들과 노블리스 오블리제니 뭐니 하며 환원하는 기업인들의-카네기나 빌 게이츠 같은-흉상을 늘어놓으며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니 뭐니 지저귀는 소리가 시끄럽다. 하지만 이 청백리들의 법과 원칙이 어느 계급의 법과 원칙이며, 자본가들이 자신의 죄를 사하기 위해 내놓는 이 엄청난 기부금은 누구로부터 나온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아무리 카네기가 시민들에게 공짜 수돗물을 나누어 줬다고 해서 그 부의 원천이 홈스테드 철강 파업을 총으로 무장한 구사대와 주군(州軍)을 동원한 포위전으로 진압하고 노조를 해산시킨 피의 대가에 있다는 사실을 숨길 수는 없다. 인간의 가죽을 얼굴에 붙이고 다닌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본질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이 작품을 샀는데 포장을 안뜯거나 책방에서 빌려놓고 안보고 있다거나 조만간 구해다 보려고 생각 중이신 분들은 읽지 않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그닥 대단찮은 스포일러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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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사인 한 여성이 인플루엔자-독감인가?-로 죽었다. 그는 고등학생 남매의 어머니이자 한 달 전에 결혼한 26살의 동료 교사의 아내였다. 이야기는 남겨진 26살의 남편이 (더 이상 그가 없는) 그의 가족에 편입되는 이야기이다. 그의 남편과 그는 가족이고, 자녀들과 그는 가족이지만 남편과 자녀들은? 꽤나 흥미로운 설정.
여담이지만 보통 작화의 수준은 손을 보면 알 수 있다
생판 남과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친하지 않은 사람과 함께 산다는 건 상당히 어색하고 불편하다. 만화에 나오는 예를 들자면 잘 모르는 사람이랑 살면서 팬티 바람에 담요를 걸치고 빈듯이 누워서 방을 어지럽혀 가며 TV를 보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겠는가 ... 이거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서로에게 신경 쓰이는 불편함.
생판 남과 좀 오래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살다 보면 다 친해지는 법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만 그렇게 따지면 가족도 비슷할 것이다.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들은 죽음 이후 새로운 가족을 재구성한다.
남편이 가족에 편입되기 원하는 이유는 가족이란 그에게 죽은 아내를 추억할 수 있는 매개이고 그 추억만이 그가 지금 살아갈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 이래서 만화란. 뭐 세상에 이런 사람 한 둘 쯤 있는 것도 이상할 건 없겠지만.
반면 아이들의 경우는 어떨까? 왜 외부인의 불편한 침입을 그 경계가 허물어질 때까지-정이 들 때까지-이들은 참아내는 것일까? 그것의 힌트는 아이들의 계부에 대한 태도, 이상할 정도의 부채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남자 아이가 말하는 계부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렇지 않아도 짐 들어주고 돈도 못 받게 된 판국이 되었는데, 짐을 열어보니 쓰레기였다면 ... !"
아내 때문에 결혼하였는데 갑작스럽게 아내가 죽고 다 아이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상황을 묘사한 것 치고는 꽤나 요란하지 않은가. 여튼 생계를 책임져 준다는 것, 아이의 사회 성원으로의 재생산이 어른의 지갑에 종속된다는 관계에서 그의 존재는 단순한 엄마의 남자에서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 '짐'을 진 사람으로 격상(?)되고 아이들은 상당한 부채 의식을 느끼게 된다.
물론 이러한 사회 관계 속에서 이 '부채'는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남편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사실이며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관계를 긍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회 성원 재생산의 책임이 개별 가정으로 넘겨지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된다. 나아가 이것이 가족임금제와 결합하여 가족의 재생산이 가장의 소득에 의존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 이것은 가부장제의 경제적 기반이 된다.
더더군다나 이것은 가족에 종속된 아이들과 여성의 고통뿐만이 아니라 운나쁘게 종속되지 못한 이들의 더 큰 고통을 전제한다. 가령 미성년자 가족과 편모 가족의 상당 수가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이다.
가족 생산이 종식됨에 따라 현대 정씨 일가와 같이 혈족이 너무나도 소중한 한 줌의 유산자들을 제외하고는 가족의 물질적 존재 조건은 점차로 사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가족의 해체 역시 점차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재생산을 개별 가정의 문제로 떠넘기려는 자본의 전략-가족임금, 사교육비 등을 통한-은 가족의 소멸을 최대한 더디고 고통스러운-해체 가족의 문제로 인해-과정으로 만들고 있다.
만화에서의 아이와 어른이 어줍잖은 책임감과 부채감으로 대면하는 것이 아닌, 한 사람을 추억하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만날 수 있다면 현실도 조금은 더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싶다.
키리코 나나난 씨의 그림을 좋아한다. 간결한 선, 깨끗한 여백. 그의 그림은 그의 작품과 너무나도 어울린다. 펜 선만큼이나 수식 없는 이야기, 여백만큼이나 씁쓸한 뒷맛. 이사 가려고 짐을 꾸린 방에 누워 바라보는 천장이라던가, 가을에 날아다니는 모기의 윙윙 거리는 소리라던가, 폐가의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라던가 ... 그런 공허감과 닮았다는 느낌.
뜨겁게 달아오르는 느낌, 폭주하는 사고 ... 만화에 나올법한, 혹은 이야기에 나올법한 삶의 순간순간들을 그려내는데는 키리코 씨의 펜이 맞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일상이 되었을 때, 너무도 소중했던 것이 공허해지기 시작하는 그 긴 시간을 묘사하는데는 키리코 씨의 그림만큼 안성맞춤이 없다고 생각해 본다. 사촌 동생이 유희왕 트레이드 카드를 모으는 그 열정보다는 그것이 기억 속으로 사라져가는 망각의 과정을 잘 그려준다고 할까? (미묘하게 다른가?)
호박과 마요네즈. 제목으로 무엇을 이야기하는 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만화에도 호박이나 마요네즈가 나온 거 같지도 않고. 여튼 만화의 내용은 장미와 와인보다는 호박과 마요네즈를 고민해야할 동거 커플의 이야기이다. 장미에서 호박으로? 사람 머리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만들어내는 호르몬이 있다고 하는데 그건 3개월인가 분비가 된다고 한다. 그 분비가 끝날 때 쯤의 사랑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야할까? 장미가 시들지 않고 남을 수 없듯이 사랑은 생활로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뜨겁게 뛰는 심장의 고동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게 했지만, 거친 숨을 고르면서 그것은 헌신에서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 벌레로 변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것은 일방적 헌신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생활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기에 그것은 일상이 될 수 없다. 생활의 토대를 가지지 못한 열정. 그렇기 때문에 결국 그 일상은 위태위태할 수밖에 없고 그 깨어질 수밖에 없는 건조한 긴장감은 공허함과 이어져있다.
일상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생활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쉽게 지치지 않기 위해서는, 나의 꿈이 나의 삶을 갈아먹는 벌레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꿈과 삶을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 기적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최근 미식이니 웰빙이니 뭐니 열풍이다. 그 열풍 때문인지 만화계 역시 쟁쟁한 요리만화가 쏟아지고 있다. 자연 재배한 신선한 재료와 엄청난 내공의 수수께기의 요리사, 그리고 정성과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 ... 따위가 어우러져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을 만족시키는 절륜의 요리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가 양산되고 있다는 이야기.
이러한 이야기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보통 판타지 장르로 분류된다. 요리만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듣도 보도 못한 요리'는 넘어가더라도 일년에 한번쯤 있을 법한 가족 외식 때 들어봄직한 요리마저도 판타지의 그것은 격을 틀리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이해가 쉽지 않다면 주판을 들고 만화책을 다시 보면 그 격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희귀 생물 혹은 극도로 제한된 환경에서 재배/사육되는 신선한 재료! 일정 이상의 숙련을 지닌 요리사가 아니면 꿈도 꾸지 못할 고난이도의 기술! 그 요리사에 의한 재료의 숙성과 상당 시간을 소비하는 준비 없이는 만들어낼 수 없는 세밀한 조리 공정! 자, 주판을 들어 재료비와 인건비를 계산해 보자. 몇가지 조건이 잘 맞아 떨어지는 경우에는 싸구려 급식 식당에서 1년 먹을 치의 식사과 맞먹는 한 끼를 구경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유기농 비스므리한 싱싱한 재료. 전속 요리사는 무리더라도 가사에 종사하는-대개의 경우-가정 주부. 어느정도 난이도의 조리과 어느정도 시간의 소모. 이 정도쯤이 된다면 왕후장상의 식사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웰빙을 입에 담을 수 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주판을 잘 두드려보면 만만치 않은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웰빙을 거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식탁으로 이동해보자. 카드빚을 내지 않으면 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는 저임금은 자신의 노동환경과 비슷한 환경에서 재배된 농약과 방부제로 버무려진 최신 과학의 식품 재료에 접근하게 해준다 ... 당연히 맞벌이를 해야 애들 사교육비라도 댈 수 있는 형편에 숙련 요리사의 환상은 양립할 수 없다 ... 당연히 고난이도의 조리 과정은 반조리 식품으로 오랜 준비 과정은 전자렌지 데우기로 대체된다 ... 이것이 귀찮다면 가까운 급식 식당을 찾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오소독스한 유형의 빈민은 아니다.
즉 인간의 현실은 이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빈민의 식탁은 이 화해할 수 없는 식탁의 양극화 위에서 돈이 없더라도 잘 먹을 수 있다는 작가의 신념을 풀어나가고 있는 작품이다. 이 만화는 매 회마다 1인분 100엔 이하의 식사를 소개하고 있다. 이 100엔의 식탁은 환상의 식탁 혹은 드라마에 나오는 이상적인 중산층 가정의 식탁에 도달하는가?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못하다. 주판은 정직한 것이다.
원가를 줄이기 위해서 도입되는 방부제 떡칠의 가공식품과 저질 채소, 기업형 목축의 생산물들. 섬유질, 칼슘, 일부 비타민군 등의 부족으로 인한 영양 밸런스의 붕괴. 가격의 영향이 크겠지만 지극히 부족한 양-성인 여성이 하루에 필요한 열량이 2000kcal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이 모든 것이 그대로인채 작품은 꽤나 요리의 고수이며 백수이기 때문에 요리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주인공을 내세워 요리의 맛을 약간 더 좋게하는 비법들을 소개한다. 그다지 도움이 되기 힘들 뿐더러, 그다지 위안이 되지도 않는다. 돈이 없더라도 잘 먹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계급적인 식탁의 분할은 계급 사회 내에서 오랜 역사가 되어왔다. 피지배계급의 재생산비를 최대한으로 줄이고자하는 시도는 세종으로 하여금 춘궁기에 나무 껍질을 벗겨먹는 방법을 소개하게 하였으며, 맑스의 자본론에 불량빵-석회가루 등이 섞인-에 대한 이야기를 싣게 하였다. 또한 오늘날 많은 급식 식당의 한 끼 열량이 500kcal도 못미치는 엽기적인 상황을 낳았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소를 먹는 소의 고기를 먹게 하고, 몬산토에게 제3세계 농토를 농약과 유전자 조작 작물로 재조직하게 하였으며, 한때 바나나맛 우유를 진짜 바나나 맛이라고 믿게 하였다.
재미있게 읽은 것 치고는 평가가 너무 박한가? 분명 오랜 분할의 종식의 열쇠를 이 만화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괴로운 일상의 작은 즐거움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과 부엌이 없는 사람에게 꽤 사실적인 판타지를 제공한다는 것을 덤으로 이야기는 여기까지
판타지 소설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마법사를 대포의 판타지적 표현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판타지 소설에서 근원이야 다양하지만 여튼 괴상한 힘으로 빛과 바람과 불꽃을 만들고 하늘을 움직이고 땅을 진동시킨다. 결국 이 힘은 대부분 전쟁 등의 살상에 집중되어 사용된다. 그 압도적이고 비생산적인 파괴력! 심지어는 악마의 소환이나 세계의 멸망 등 도대체가 무의미한 짓거리-핵무기 개발과 비슷할 정도로-에 일생을 바치는 마법사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이들이 화염구를 만들어 선량한 이웃을 구워버리는 대신 이웃에게 줄 빵을 구워낸다면, 이들이 악마를 소환하는 시간에 잔치에 쓰일 돼지 고기를 소환한다면, 이들이 마법검을 만들어낼 땀으로 마법 농기구를 만들어낸다면, 반란 농민을 학살하느라 심신이 피곤한 기사를 치료하는 대신 반란 농민을 부활시키는데 그들의 영혼마저 바친다면 그 세상은 좀 더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물론 그것은 진실로 판타지에 불과하다. 오늘도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의 머리 위에 떨어질 집속탄을 위해서 엄청난 양의 돈이 허공에 증발하고 있지 않는가? 그 돈이면 굶주리는 이들에게 유용한 양식을 줄 수 있건만.
아무리 주인공이더라도 버스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서는 곤란합니다
간만에 생산적인 분야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마법사를 다룬 만화책을 발견했다.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만화에서는 마법사가 사람의 염원을 들어주는 마법을 사용한다. 짧은 이야기-얇은 책으로 두권 정도-의 주된 내용은 국가 공무원인 마법사가 되기 위해서 수습 기간을 밟고 있는 유메라는 소녀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사람의 염원을 들어준다는 것, 그것에 관한 몇 가지 물음을 작품은 던진다. (나름대로 생각해보자. 판타지의 탈을 쓴 무협지보다 더 상상력에 근거한 설정과 질문에.)
약간 벗어난 이야기를 해보자. 과연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마법사가 있다면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과연 작품과 같이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그것이 사용될까? 마법사들이 이라크에 파병되어 무협적 판타지처럼 하늘을 가르며 땅을 뒤엎지는 않을까? 효율적인 노동력 공급을 위해 사람들을 세뇌하고 좀비로 만드는 일에 종사하지는 않을까? 혹은 정보 경찰의 앞잡이가 되어 사람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고 일상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다니지는 않을까? 마법에 의해 생산량이 극도로 늘어난다고한들 그것이 모두의 행복으로 이어질까? 지금도 인류 전체가 배터지게 먹고 남을 식량(1인당 3500kcal의)이 해마다 생산되고 있음에도 수백만의 어린이가 굶어죽고 수 억의 인류가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데?
전구의 발명은 인류를 어둠으로부터 해방시켰다. 그와 동시에 인류를 추가 근무와 주야 맞교대 근무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원자력은 방사능 치료를 통해 사람을 살리는 동시에 그와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공포 혹은 그 자체로 내몰고 있다. 휴대폰은 공간을 초월하여 사람들을 연결하는 동시에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괴물로 작동하고 있고, 눈부신 생산력의 발전은 거대한 낭비와 파괴로 사라지고 있다.
과학을 비롯한 기술의 발전은 그 자체로 해방을 약속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해방의 조건을 만들어 줄 따름이다. 해방의 열쇠는 그 발달한 생산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그것을 계획하고 통제하는 자가 누구인가에 달려있다. 마법이건 과학이건 그 무엇이건 그 모든 해방의 조건을 진정한 해방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윤을 위해 경쟁하는 한 줌의 무리들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필요를 위해 세계적인 생산을 통제할 수 있는 조직된 직접 생산자들인가?
얼짱, 몸짱, 별별 짱들이 난무하는 시대이다. 필자가 소싯적에는 키짱이라는 말이 없어서인지 별로 우유라던가 유제품을 그다지 열심히 먹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키는 2년전 기준으로 남한 평균신장(성별기준)에 도달하였고 그리 키에 대해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물론 노인네들이 죽고 애덜이 자라는 통에 슬슬 평균신장이 필자의 키와 거리를 벌이고 있다만)
키가 사회생활에서의 영향력이 상당한 것은 분명한 일이다. 하지만 일정 이하(혹은 이상)의 키는 외모로서의 영향력을 넘어 그 이상의 생활을 제약하는 핸디캡으로 작용하게 된다. 아래 150cm 라이프(번역되었다.)의 주인공인 150cm의 키로 살고 있는 일본의 여성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이 책의 저자이기도한 타카기 나오코 씨가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작아도 까마귀보다는 크고 아무리 커도 전봇대보다는 작다
그녀가 유쾌하게 털어놓는 일상의 제약은 웃어넘기기에는 뒷맛이 쓰다. 표준신장(많은 경우 남성의)에 맞추어져 있는 세계 속에서 그녀에게 지하철은 생존해내야만 하는 공간이고 높은 선반의 물건에 손이 닿지 않는 그녀에게 아르바이트는 도전이요 혼자 살기는 모험이다. 그녀가 자조적으로 이야기하는 20살까지는 중학생 요금을 냈다는 둥, 어릴 때 입던 옷을 입을 수 있다는 둥의 작은 키로 살아가는 장점이란 키가 작다는 것이 정상적 성인으로 인식되지 않는 현실과 가장 작은 사이즈의 성인 기성복의 사이즈가 잘 맞지 않는다는 비참한 현실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제약은 키 작은 사람에게 집중되지는 않는다. 해외 토픽 등을 보면서 평생 택시를 못타봤다는 2m30cm의 아저씨의 이야기이나 뚱뚱한 사람에게 2개 좌석 분의 요금을 물리겠다는 미국 항공사에 맞서 싸우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키 작은 사람은 작은 사람 나름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 자기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뚱뚱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 권리와 획일적인 높이에 분포한 지하철 손잡이는, 획일적인 크기로 재단된 비행기 좌석은 충돌하고 있다. 하지만 생산은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생산이 다양한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조직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수요, 즉 지불능력을 가지지 못한 집단을 소외시키면서까지 최대 이윤을 거둘 수 있는 방향으로 조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돈자루 씨는 필요가 있음에도 수요가 없는 자들에게 역으로 소리친다. 몸을 세계에 맞추라고. 장애인 탑승자가 적기 때문에 KTX에 단 3%의-국가기관에서 이야기하는 장애인 조우율-장애인 좌석을 배정하기 거부하는 철도청은 장애인들에게 이동할 수 없는 세상에 몸을 맞추라고 소리친다. 키 작은 사람들에게 그들을 위한 손잡이가 아닌 칼슘 우유와 호르몬 주사를 이야기하고 뚱뚱한 사람에게 그들에게 맞는 좌석이 아닌 탑승 거부와 다이어트를 이야기한다. 오늘도 수많은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어린이들이 가족과 국가 기관(학교)의 폭력 속에서 오른손으로 연필을 옮기고 있고 ...
* 구구절절 쏟아지는 스토리 요약과 인물 해설을 위해 아까운 시간과 지면을 낭비하는 것은 과학 만능 시대에 올바른 삶의 양식은 아닐 것 같다. 검색 엔진과 블로그, 그보다는 만화를 직접 보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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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분위기를 가장 잘 나타내주고 있다고 생각되는 그림
애니메이션은 상대적으로 애들이 많이 본다. 반면 영화의 경우 상대적으로 어른들이 많이 보는 편이다. 특별히 애니메이션이 유치하고 영화가 고상하기 때문은 아닌 듯하다. 일본 애니메이션보다 헐리우드 영화가 더 고상하다고 주장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어차피 진지한 사회인이 가질법한 문제의식을 다룬 작품-쓸데없이 난해하다는 뜻은 아니다-이란 애니건 영화건 극히 드물다. 당연하게도 문제의식을 가져봤자 그것을 사회에 반영할 통로를 가지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상품화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애니메이션은 왜 아이들에게 타겟이 맞춰져 있을까? 나름대로의 가설을 내놓자면 나이가들수록 상상력이 감소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감소라는 표현은 적당치 않다. 여자친구가 알고보니 입양된 할아버지의 숨겨둔 딸이었다는 상상력과 여자친구가 알고보니 가변형 전략병기였다는 상상력에 우열을 두기는 힘든 노릇 아닌가? 그래도 아이들이 선호하는 상상력과 어른들이 선호하는 상상력 사이에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여튼 아이들의 상상력을 찍어내기엔 애니메이션이 탁월하게 저렴하다. 그런저런 이유로 만화의 주된 고객은 아이들이 된다. 이야기가 길었는데 그 결과 애니메이션, 특히 필자가 주로 보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경우 주된 시청자는 유소년층과 청소년층에 많은 편이다. 청소년이 주된 타겟이다보니 일본 애니의 경우 인기있는 소재가 바로 성장물이다.
야구를 하고, 축구를 하다가, 연애를 하거나, 싸움질을 하면서, 때로는 거대 로봇을 조종하고, 전쟁에 휩쓸리면서, 고갯길에서 드리프트를 하기도 하며, 대마왕을 잡으러 떠나거나, 거대 마피아와 맞서면서, 발레를 하면서, 심지어 폭주족에 가담하면서, '무엇을 하건' 주인공은 성공하며 혹은 실패하며, 그것을 극복하며 혹은 끝내 극복하지 못하며, 성장하게되며 어른으로 나아가게 된다.
성장이라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건' 상관없다는 태도의 극단에 바로 개인적으로 가이낙스 최고의 애니메이션으로 꼽는 프리크리가 서 있다. (가이낙스, 이들의 만행은 원작자도 이해못하는 기묘한 설정으로 점철된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도 유명하다) '무엇을 하냐'고? 어디선가 이태리제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외계인이 배트를 휘둘러 소년의 머리에서 N.O.(좌뇌와 우뇌의 사고통로를 이용, 장거리의 물질 전송을 일으키는 현상-뭐야 이게?)를 일으켜 뇌와 해적왕의 해방을 위한 파츠를 꺼내고, 소년과 외계인은 해적왕의 해방을 막기 위해 거대 무인 공장에서 파견하며 소년(혹은 소녀)의 머리에서 튀어나오는 거대 로봇에 맞서 학교와 마을을 구하다가 어쩌다가 한다는 이야기이다. ... 이해가 안된다고? 필자도 그다지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할 필요도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프리크리의 설정은 골치아프며 정돈되어 있지 않고 스토리 진행과 주제의 이해에 많은 경우 불필요하다. 다만 놀라울 정도의 상상력으로 시청자를 즐겁게 해주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적실하게 상징하고 비유한다. 세상 알만큼 알았다는 둥 세상 별 거 있냐는 둥 어릴 때 가질 법한(어른이 되어서도 가질 법한) 유치한 생각들과 그것을 깨버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기묘한 사건과 상황들. 실연과 질투, 동경과 좌절, 부모에 대한 불만과 실망, 타인에 대한 배려의 부재, 무력감과 자만 등의 정신적인 고통을 상징하는 두통과 머리에서 튀어나오는 거대 로봇.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면서 자신의 배트와 그것을 휘두를 용기를 가지게 된 소년. 다분히 내면적인 문제와 갈등을 창의적인 설정으로 유쾌하게 시각화해 낸다.
프리크리는 상상력이 메말라버린 두뇌와 반드시 정돈되고 꽉 짜여진 구성만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 꽤나 괜찮은 충격을 줄 것이다. (반대의 극단도 존재한다. 질식할 정도의 자기 완결도를 지닌 세계관에 비해 너무도 약한 메시지의 작품) 물론 이 작품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별 거 없다. 성장이란 진부한 소재의 진부한 해석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실험적이고 파격적이다. 고골의 단편이 떠올랐을 정도로. 그렇기에 프리크리는 만화를 통해서만이 표현할 수 있는 상상력이 (적어도 영화화하기에 돈이 많이 들법한 상상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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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
* 구구절절 쏟아지는 스토리 요약과 인물 해설을 위해 아까운 시간과 지면을 낭비하는 것은 과학 만능 시대에 올바른 삶의 양식은 아닐 것 같다. 검색 엔진과 블로그, 그보다는 만화를 직접 보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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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놈이 주인공이다.
인류는 왜 격투기라는 것을 발명해내게 되었을까? 무슨 연고로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것을 기예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상대를 파괴하기 위해서. 적어도 상대와 정정당당한 승부를 겨루기 위해, 인체의 기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등의 교과서적인 올림픽 정신 등에서 출발한 것은 아닐 것이다.
격투기가 상대를 제압하는 것에 목적을 둔 것이라면 그것은 다른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 가령 무기술이나 전술 등과 분리될 이유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격투기에 실전성이 요구되는 기간동안 그것은 언제나 그러했다. 우리가 킥복싱 쯤으로 알고 있는 무에타이는 148가지 무기를 다루는 크와비크와봉과 격투술인 람무에를 포함하는 개념이고, 중세 일본의 병법가란 궁술, 기마술, 창출, 검술, 유술, 전술 등을 두루 갖춘 자를 말하는 것이며 하나의 유파는 당연하게도 도장에서 검술은 물론이고 다른 모든 것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개인화기의 발달, 법체계와 공권력 체계의 발달은 격투기의 개념을 바꿔놓게 된다. 근대 사회가 발전하면서 대부분의 유의미한 실전의 승패는 제3세대 탱크와 전폭기 그리고 대륙간 탄도 미사일에 의해 결정되고 있고 주변부에서 일어나는 실전의 승패는 개인화기(대부분 칼리시니코프)와 박격포, 대인지뢰에 의해 결정되게 되었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폭력은 거의 배제되어 있고 조폭들 싸움조차도 적당한 맷집과 연장, 허술한 법, 인간관계(혹은 빽)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즉 실전에 격투가 필요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물론 일부 영역에서 제한적인 실전에서 격투기가 유의미성을 지니는 경우가 있긴 하다. (경찰, 양아치, 중고딩 등의)
실전 격투가 유의미한 몇 안되는 예랄까.
폭력이 배제된 일상은 누군가의 폭력을 통해서만이 유지될 수 있다
전근대적인 격투가들은 자신들의 격투기가 사멸하거나 일부 제한된 영역에서의 기예로 전락하기 원하지는 않은 듯하다. 이들은 자신들의 살인 기예를 스포츠화시킴으로서 혹은 정신적 수양의 수단으로 삼음으로서 변화를 추구하게 된다. 고류검술은 현대검도와 강도관의 유도, 대동류의 합기유술 등으로 스포츠화되었고, 쇠징박은 장갑을 끼고 상대를 살점을 날려버리던 고대 복싱은 글러브와 헤드기어를 착용하고 점수를 따는 근대 복싱으로, 목을 조르고 관절을 꺾어버리던 고대 레슬링은 매트 위를 데굴데굴 구르는 근대 레슬링으로 변화하게 된다. 실전과 살인을 유일한 목적으로하던 선대의 가르침은 무도(道)와 스포츠맨쉽으로 대체되었고 이상적인 격투가는 실전 무적의 병법가에서 올림픽 메달리스트나 링 위의 챔피언으로 바뀌게 된다.
최상단 그림에 있는 우리의 주인공 나루시마 료(이제야 나왔다)의 격투기는 전근대적이다. 죽임당하지 않기 위해 (...법적으론 근거없다) 부모를 살해하여 소년원에 들어가게된 료는 살아남기 위한 유의미한 저항의 수단으로서 공수도를 연마한다. 그리고 소년원에서 나오게 되면서도 그의 전근대적인 공수도가 통용될 수 있는 좁은 공간-뒷골목 등의-에서 바둥거리며 그는 생존한다. 머리로 받고 급소를 차고 눈을 찌르고 물고 목을 조르는 가장 야만적인 쌈박질, 그러나 그가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생존의 조건에 불과하였고 그나마의 생존의 조건조차도 양지의 힘 앞에서 언제든지 짓밟힐 수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는 전진하기 위해 혹은 후퇴하지 않기 위해 스가와라 나오토를 정점으로 하는 양지의 공수도와의 싸움에 나서게 된다. 스포츠맨쉽도 무도도 아닌 가장 야만적으로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바득바득 근대 격투기의 정점으로 그는 전진한다. 그렇다면 그가 맞서고자 하는 스가와라 나오토의 공수도는 무엇인가?
이 자가 스가와라 나오토이다. 좌측이 3권 우측이 7권.
흥미있는 것은 스가와라 나오토의 캐릭터가 연재를 거듭하면서 대단히 크게 변경되었다는 점이다. (뭣보다도 수염이 없어졌다.) 금욕적인 격투가에서 벗어난 현대적인 스포츠맨 정도였던 설정이 정신적인 수행과 육체적 단련에서 나오는 무도가의 완성형 정도로랄까. 여튼 근대 이후 세련된 형태로 정립된 무도로서의 격투기가 나루시마가 맞서려는 격투기인 것이다.
근대 무도가와 전근대 짐승 간의 싸움은 화려한 스폿라이트의 도쿄돔에서 어두운 절간으로, 6온스 글러브에서 장봉과 톤파 등의 무기로, 5라운드KO제의 경기에서 목숨을 건 결투로 이어져 간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승패와 함께 이야기는 한 매듭을 짓고 다른 이야기로 이야기는 나아가고 있다.
격투기의 존재 조건의 변화에 따라 격투기계는 신체의 단련과 작전으로 (그리고 프로스포츠의 경우 적절한 쇼맨쉽을 포함해) 성공이 결정되는 스포츠적 경향과 정신적 수양을 중시하는 무도적 경향이 지배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 이상 실전성은 격투기의 존재 조건이 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근대 격투기에 대한 환상을 가진 시대착오적 인간들의 존재는 군계와 그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재생산하고 있다. 격투기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 (전근대) 격투가들은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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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을 접하지 않은 사람에게 주의의 말을 적어둔다면 이 작품은 지극히 반여성적-반여성적 의식이 지배적인 이 사회에서도 두드러지게-이며 반인권적이다. 혹시 접하고자 하는 사람은 유념하면서 읽도록 하자.
* 이 작품에서 특히 주인공에서 나타나는 악(惡)이 단순히 스타일을 위한 것이나 악마나 마왕처럼 정체성적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작품 전체의 주제이기도 한듯한 이 문제는 군계에 대한 다른 글을 통해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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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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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구할래도 구하기가 애매해서 ..이거 다음작이라던가? 캠퍼스 연애공식 優しい私 은 보셨3?
(미칠듯한 한국어판 제목의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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뎡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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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를 기다리며.. 제목도 멋있어요^^저는 가족만화를 싫어해서 이 만화도 싫었지만 결론적으로는 '새로운' 가족으로 다시 태어났던 것 같은데. 그래서 더 싫었어요. 아이들이 부채 의식을 갖고 있긴 하지만 결국엔 경제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인간으로, 가족으로 받아들이잖아요.(읽은지 좀 돼서 아닐지도;;) 아저씨는 애초부터 책임감보다는 간절히 원해서였구.
가족만화는 점점 현실과 유리돼고 맨날 좋은 사람만 나오고 정말 맹렬히 싫어요. 근데 왜 보냐-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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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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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들었으3.유통되는 만화의 대부분이 판타지다 보니까요ㅎㅎ 환상 뒤에 숨은 환상적이지 못한 관계를 읽는 것이 만화(혹은 문화) 읽는 재미인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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