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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그 이후 / 그 이후를 기다리며

  이 작품을 샀는데 포장을 안뜯거나 책방에서 빌려놓고 안보고 있다거나 조만간 구해다 보려고 생각 중이신 분들은 읽지 않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그닥 대단찮은 스포일러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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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교사인 한 여성이 인플루엔자-독감인가?-로 죽었다. 그는 고등학생 남매의 어머니이자 한 달 전에 결혼한 26살의 동료 교사의 아내였다. 이야기는 남겨진 26살의 남편이 (더 이상 그가 없는) 그의 가족에 편입되는 이야기이다. 그의 남편과 그는 가족이고, 자녀들과 그는 가족이지만 남편과 자녀들은? 꽤나 흥미로운 설정.

 

여담이지만 보통 작화의 수준은 손을 보면 알 수 있다

 

  생판 남과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친하지 않은 사람과 함께 산다는 건 상당히 어색하고 불편하다. 만화에 나오는 예를 들자면 잘 모르는 사람이랑 살면서 팬티 바람에 담요를 걸치고 빈듯이 누워서 방을 어지럽혀 가며 TV를 보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겠는가 ... 이거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서로에게 신경 쓰이는 불편함.

  생판 남과 좀 오래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살다 보면 다 친해지는 법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만 그렇게 따지면 가족도 비슷할 것이다.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들은 죽음 이후 새로운 가족을 재구성한다.

 

  남편이 가족에 편입되기 원하는 이유는 가족이란 그에게 죽은 아내를 추억할 수 있는 매개이고 그 추억만이 그가 지금 살아갈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 이래서 만화란. 뭐 세상에 이런 사람 한 둘 쯤 있는 것도 이상할 건 없겠지만.

  반면 아이들의 경우는 어떨까? 왜 외부인의 불편한 침입을 그 경계가 허물어질 때까지-정이 들 때까지-이들은 참아내는 것일까? 그것의 힌트는 아이들의 계부에 대한 태도, 이상할 정도의 부채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남자 아이가 말하는 계부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렇지 않아도 짐 들어주고 돈도 못 받게 된 판국이 되었는데, 짐을 열어보니 쓰레기였다면 ... !"

 

  아내 때문에 결혼하였는데 갑작스럽게 아내가 죽고 다 아이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상황을 묘사한 것 치고는 꽤나 요란하지 않은가. 여튼 생계를 책임져 준다는 것, 아이의 사회 성원으로의 재생산이 어른의 지갑에 종속된다는 관계에서 그의 존재는 단순한 엄마의 남자에서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 '짐'을 진 사람으로 격상(?)되고 아이들은 상당한 부채 의식을 느끼게 된다.

 

  물론 이러한 사회 관계 속에서 이 '부채'는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남편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사실이며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관계를 긍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회 성원 재생산의 책임이 개별 가정으로 넘겨지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된다. 나아가 이것이 가족임금제와 결합하여 가족의 재생산이 가장의 소득에 의존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 이것은 가부장제의 경제적 기반이 된다.

  더더군다나 이것은 가족에 종속된 아이들과 여성의 고통뿐만이 아니라 운나쁘게 종속되지 못한 이들의 더 큰 고통을 전제한다. 가령 미성년자 가족과 편모 가족의 상당 수가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이다.

 

  가족 생산이 종식됨에 따라 현대 정씨 일가와 같이 혈족이 너무나도 소중한 한 줌의 유산자들을 제외하고는 가족의 물질적 존재 조건은 점차로 사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가족의 해체 역시 점차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재생산을 개별 가정의 문제로 떠넘기려는 자본의 전략-가족임금, 사교육비 등을 통한-은 가족의 소멸을 최대한 더디고 고통스러운-해체 가족의 문제로 인해-과정으로 만들고 있다.

  만화에서의 아이와 어른이 어줍잖은 책임감과 부채감으로 대면하는 것이 아닌, 한 사람을 추억하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만날 수 있다면 현실도 조금은 더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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