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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식은 왜 나에게 반말을 할까?

* 이 글은 현근님의 [어랏....저 개념없는 놈....]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대학 들어가고 얼마 안된 때의 일이었다. 10년도 더 된 날적이들을 보다보니 재수생 반말 문제에 대한 논쟁에 대해 두어 페이지 정도가 빽빽하게 적혀있는 부분을 우연히 발견했다. 상호간의 동의 없이 재수한 새내기가 제 때 들어온 (우스운 표현이지만) 1년 선배에게 반말을 쓰는 것은 반인륜적인 행위라는 것이 그 논란의 시발이자 종착이었다. 내가 학교에 들어왔을 때는 인간의 도에 많은 수정이 있어서 재수생에게는 같은 나이의 선배에게 반말을 쓸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하여 당시에는 세상이 많이 좋아졌구나...라고 생각했다.

 

  여튼 선배들에게 존대를 하며, 그 존대에 '걸맞는' 행동-말과 행동은 분리될 수 없는 모양인지-들을 하면서 불편없이 학교를 다녔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내다보니 다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왜 나는 저 사람에게 말을 올려야 할까? 왜 저 양반은 초면에 반말일까? 뭔가 정치적으로 온당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은 학회 합숙 때로 기억한다. 꽤나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던 것 같다. 사회 생활을 일찍 시작하여 경험이 많은 사람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부터 (농경문화의 잔재일까) 사회적 '관습'이기 때문에 존중하는 것이 옳다던가 (절대반지 관습) 자매형제도 없냐느냐는 둥 (...없었다)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결론적으로는 자신이 인정하지도 않은 권위를 관습이라는 이유로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쪽으로 논쟁이 종결지어졌고 그날부터 난 학회를 중심으로 서서히 선배들한테 말을 놓아 나갔다.

 

  그러다보니 후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보는 후배들에게 말을 놓으라고 하다보니까 애덜이 말을 놓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당신네들이 놓을 때까지 나는 올리겠다고 하여 존대말을 서로 썼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다보니 상당히 기괴한, 선배들에게는 말을 놓으면서 후배들한테는 말을 높이는 현상이 나타나더라는 것. 지금 생각해보면 선배들에게도 서로서로 말 높이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도 한다.

 

  일이 술술 풀렸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언어 평등 운동(?)은 거대한 벽에 봉착하게 된다. 벽이란 바로 복학생 군단.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수긍하지 않더라도 수긍하는 척은 이끌어낼 수 있었는데, 복돌이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이해의 문제를 떠나 심기를 건드리는 문제로 촉발되었고, 심하게는 그런 말을 꺼내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반쯤은 농담-하는 상황도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말이 통하는 복학생으로부터 동의를 얻어냈는데 막상 내 입에서 반말이 나오지 않는, 말을 하려고 입을 벌려도 소리가 나지않는 엽기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내가 현재 남한 군대의 억압적 제도에 반대한다면 반 정도는 이때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사상은 입에 담겨지기 위해 존재하고 말은 실현되기 위해 존재한다. 존대말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대개의 경우 특정한 권력 관계의 가장 여실한 반영이었다. 가령 내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자와 없는 자, 부탁인지 명령인지 애매한 부탁과 그렇지 않은 부탁, 반격이 즉각적으로 가능하냐 그렇지 않느냐 ... 그것은 많은 경우 분류를 용이하게 해주는 잣대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학원에서의 이러한 문제들은 '짬'이 쌓여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결되어 갔다. 자연스럽게 자치 공간 내에서 금연 시간에 담배를 피는 복학생에게 학생회 규정이 어쩌니 저쩌니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 그러나 내 뒷줄들의 문제는 내가 새내기 때 봉착했던 상황에서 거의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더 무서운 것은 내 주먹에 힘이 실리기 시작하면서 존대말을 하는 것이나 존대말을 듣는 것에 대한 기괴하다는 느낌이 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당연하지만) 아직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해마다 수십만의 새내기들이 대학에 들어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가 고학번으로 혹은 복학생으로 나아간다. 초중고에서 군대에서 사회에서 같은 현상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그리고 좋건싫건 그 피라미드에서 나는 위로 올라가고 있다. 과연 내 주먹이 내 말을 배신하는 날이 빠를까, 마침내 내 말이 쥐었던 주먹들을 펴게 하는 날이 빠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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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켜라 / 폭력을 지켜라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요즘 같은 기간에 글을 안 쓰면 사람들이 '저 인간 중간 고사 기간에 안보이는 걸 보니 학생이겠군'이라고 생각할 거 같아서 한 동안 또 글을 쓸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생각해도 별 상관 없겠군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쓰려니 귀찮아서 또 다시 한동안은 글을 쓸 수 없었다 ... 탄력을 받아 척척척 일이 진행되기도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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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이란 나쁜 것이야."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때 별로 인상 깊지는 않았던 담임 교사가 했던 인상 깊었던 말이다. 왜 그것이 인상 깊었던 것일까? 즈음 해서 읽었던 간디 전기에 나온 비폭력주의에 대한 생각이 나서? 그리고 나서 담임 교사가 박달나무 몽둥이를 들어 폭력이 얼마나 나쁜 것인가를 몸소 보여주는 체험 교육이 이어져서?

 

  청소년도 인간이라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최근에야 주목을 받기 시작한 왕따 문제는 필자가 한글을 떼기 전부터 살인적으로 존재해 왔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튼 꽤나 길고도 잔혹한 폭력-언어 폭력과 물리적 폭력이 결합된-이 피해자에게 가해졌고 그는 사방에 도움을 요구했지만 아무도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없었다. '남'의 일에 말려들어봤자 피곤할 뿐이라는 것을 애들도 배울 나이가 되었고 교사는 특별 관리 대상-성적이 좋거나 부수입을 제공해주는-이 아닌 아이들을 위해 투자할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 친구는 지루한 폭력에 대해 개인적인 복수를 통해 이 고통스러운 관계를 종식시키려 했다. 그리하여 그것은 싸움이 되었고 교사는 이러한 행위는 '악'이라는 규정지었고 복수자에게 복수를 가함으로서, 그의 도덕적 근원을 파괴시킴으로서 이 짧은 저항을 종결지었다.

 

  역시 학교는 사회를 배우는 곳인 모양이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사회에서의 일들과 묘하게 닮아있다. 학교에서 온갖 폭력이 횡횡하듯이 사회에서 역시 온갖 폭력은 횡횡하고 있고, 교사가 특정한 폭력에 대한 복수자로 등장하듯이 대표적인 폭력 기구인 국가는 특정한 폭력에 대한 복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서 그 폭력을 근절하고자 노력한다.

 

영화보면서 가장 불쌍했던 캐릭터. 병구도 참 나쁜 놈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생님은 어떠한 복수 서비스를 학생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어떤 폭력을 사회에서 구축하고자 하는가?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는 그 문제를 남한의 어느 영화보다 더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에는 여러 유형의 폭력이 나온다. (A) 육성회비를 안낸다고 애를 몽둥이로 개패듯이 패는 선생. 몽둥이 찜질로 소년 수감자를 통제하는 교도관, 파업 진압 과정에서 노조 활동가의 골통을 깨버리는 구사대의 몽둥이질(몽둥이가 많군!), 동물인간을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신비의 화학 약품에 노출되는 노동조건 (B) (A)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복수 (C) (B) 가해자에 대한 국가의 복수.

 

  국가는 (A)의 폭력에 대해서는 복수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B)의 폭력이 아무리 소소한 것이라고 할지라도-영화에서와 같이 극단적이 아니더라도-국가는 반드시 (A) 가해자를 위해 보복을 한다. 물론 '폭력은 나쁜 것이야'라고 되뇌이며 폭력의 독점자로서 자신 이외의 모든 폭력에 보복 서비스를 가한다는 듯한 외피를 쓰고 있지만 우리의 선생님의 몽둥이는 누구를 위해 두개골을 울리는가.

 

여담이지만 그다지 폭력적으로 생기진 않았다

 

  (A)는 왜 묵인되는가의 문제는 왜 (A)가 필연적으로 일어나는가의 문제로 돌아간다. 영화에서는 그 문제의 원인을 아틀란티스인들이 심어놓은 유전자에서 찾고 있는데 진상은 고고학의 발전과 게놈프로젝트의 진척에 의해 밝혀질테고 여기서는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원인을 찾아보자. 애를 잡아가면서까지 수업료를 뜯어내야하는 교육 시스템, '자살'한 수형자가 끝도 없이 양산되면서까지 지키고자하는 사유재산의 성경(법체계), 그리고 임노동 관계.

 

  더 크고 일상적인 폭력을 지키기 위해 폭력은 끝도 없이 양산된다. 그러한 폭력에 맞서는 폭력에 대해 우리의 선생님은 폭력은 나쁜 것이라며 또 다른 폭력으로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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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구가 칼로 찌른 게 담임인지 그를 왕따시키던 급우인지 영화를 보면서 구분할 수는 없었다. 편의상 담임이라고 해뒀는데 어차피 둘 다 죽었을테니 적당히 넘어가도록 하자. 아,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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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십자 훈장, 제국주의는 인민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두꺼운 월급봉투, 제 3세계에서 날아오는 여분의 손가락, 무상교육, 석유, 알량한 자긍심, 노동관료, 여타의 적당한 양보들 ...

 

  확실하지 않은, 그것도 언제 거둬질 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기반 위에 서 있는 선물들이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에, 아니 위기의 순간에야말로 그들은 가장 확실한 것을 인민들에게 선물한다.

 



하인리히 질레, 철십자 훈장Das eiserne Kreuz

 

  어수선 하면서도 뭔가 휑한 방. 어두운 표정의 부인. 동그란 눈을 돌리며 상황을 파악하려는 아이들. 앙상한 가지의 화분. 탁자 위의 철십자 훈장. 그리고 엽서 속의 전사통지서. 아마 몇 푼의 유가족 연금이 들어있을 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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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 박문수, 인간의 얼굴

  어릴 적 봤던 판본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넷을 뒤져도 그 판본에 관한 자료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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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영조가 조선을 다스리고 있을 때였다. 어느 고을에 못되고 사악한 비리 지역 공무원이 있었다 이거다. 이 고을 저 고을 떠돌아 다니던 우리의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 사실을 포착하고 탐문 조사 등을 통해 비리 공무원을 체포하기 위해 관아로 들어선다. 들어서는 타이밍은 극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해 보통 불쌍한 양민이 곤장을 맞기 직전 정도가 적당하다.

 

  "그만 둬라."

 

  "누가 관아에서 떠드는겨? 너냐?"

 

  "그래."

 

  "뭘 믿고 떠드는 거냐? 멍석말이 당해서 누워서 나가고 싶은겨?"

 

  "그러지 마라. 형이 세금 떼 먹는 다고 패고, 말 안듣는 다고 패고, 생긴 게 맘에 안들어서 패고, 그렇게 형한테 봉고파직에 투옥된 애덜이 포도청 연병장에 사열종대 앉은 번호로 두바퀴다. 형이 오늘 기분이 좋거든? 좋은 기회잖냐. 그만두고 내려와서 오부지게 맞으면서 반성 좀 해보자..."

 

  ...

  보통 암행어사하면 이 시기를 많이 떠올리며 유명한 사람도 이 시기에 집중되어 있는 편이다. 박문수 같은 경우도 그렇고 정약용이나 박규수 등도 암행어사로 활약한 경력이 있는 양반들도 그렇고. 그렇다면 이 시기 중앙 정부에서 암행어사를 지방에 열심히 파견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 비리 공무원들이 중앙 정부로 가야할 세금을 착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고, 또한 생산력의 한계에 의해 고통받는 농민들의 봉기가 폭발하면서 지배 계급은 어느정도 양보-영정법, 균역법, 대동법 등의 세제 개혁을 비롯한-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 맥락에서 초법적인 착취를 일삼는 비리 공무원들을 일벌백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영조 아저씨는 이 비리 공무원들을 공공의 적...이 아니라 탐관오리로 규정하고 박멸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중앙권력이 약화되고 대지주 세력이 정권을 장악함에 따라 중앙의 지역 통제력은 유명무실하게 되어버렸고 암행어사의 이야기는 사그라들게 된다.

  말할 것도 없이 이 탐관오리들은 인민을 피를 빠는 진드기 같은 놈들이었다. 그렇다면 요 진드기를 사냥하는 박문수와 영조의 무리들은 이들과 질적으로 다른 인간들이었는가? 천만에! 농민의 입장에서는 이들 모두 자신들을 신분제의 굴레 속에 얽어 매고 있던 양반들이었고 자신들이 피땀흘려 추수한 곡식을 단지 토지의 소유자라는 이유로 뜯어가는 봉건 지주들이었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2% 정도 있었을 뿐이다. 사실 이들이 세제 개혁과 탐관오리 박멸을 외치며 인간의 얼굴을 한 봉건제를 외치게 된 것도 이들의 선의가 아닌 피착취 농민들의 투쟁의 결과였음은 비교적 명백한 것이었다.

 

  이제는 시대가 변하여 탐관 오리가 서 있던 자리에 비리 공무원과 악덕 재벌 들이 줄을 서 있고 반대편에는 청백리 같은 공무원들과 노블리스 오블리제니 뭐니 하며 환원하는 기업인들의-카네기나 빌 게이츠 같은-흉상을 늘어놓으며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니 뭐니 지저귀는 소리가 시끄럽다. 하지만 이 청백리들의 법과 원칙이 어느 계급의 법과 원칙이며, 자본가들이 자신의 죄를 사하기 위해 내놓는 이 엄청난 기부금은 누구로부터 나온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아무리 카네기가 시민들에게 공짜 수돗물을 나누어 줬다고 해서 그 부의 원천이 홈스테드 철강 파업을 총으로 무장한 구사대와 주군(州軍)을 동원한 포위전으로 진압하고 노조를 해산시킨 피의 대가에 있다는 사실을 숨길 수는 없다. 인간의 가죽을 얼굴에 붙이고 다닌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본질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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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誌), 후한말의 계급투쟁 (3)

쓰다가 사고로 두 번이나 날려먹었다. 그냥 다 포기하고 컴퓨터랑 동반자살해 버릴까 생각하다가 그만뒀다. 이 두 번의 경험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날려먹는가'라는 중요한 경험을 얻지 않았냐고 생각하면 억울하지않 ... 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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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투쟁의 계보

 

  황건 농민 전쟁의 분석을 위해 진수의 삼국지나 사마광의 자치통감 등 당시의 역사서를 살펴보면 상당한 당혹감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그 비중이 엄청나게 작을 뿐더러 그 작은 분량의 상당 부분은 그 농민 봉기를 진압하기 위한 중앙 정부와 군벌들의 활약으로 점철되어 있다. 물론 계급 투쟁의 패배 또한 소중한 경험이고 철저히 분석해 두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황건 농민군을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역시 자신의 역사를 갖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때건 지금이건.

  뭐 자치통감 류의 이야기를 그대로 엮어봤자 신선에게 경전을 사사받은 사이비 교주의 종교 반란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이러한 불가피한 사정으로 황건 농민 전쟁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다른 투쟁들의 사례를 분석하고 그 연장 선상 위에서 그 모습은 어떠했을까 상상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요구된다. 여기에서는 황건 농민 전쟁의 연장선에 서 있는 투쟁들을 분석하고 다음 편에서 이 분석과 실제 농민 전쟁의 양상을 바탕으로 그것의 성격을 분석하도록 하겠다.

 

자치통감. 피지배 계급을 위한 몇 줄은 그 먹물의 수만배의 피로 쓰여졌다. 

 

1) 봉건 잉여 공출에 맞선 투쟁

 

  생산력 한계에 의한 농민의 몰락과 유망은 농민 봉기를 촉발하게 한다. 109년 연주와 해주에서 활약한 장백로가 이끄는 농민군, 132년 양주에서의 장화, 142년 서주와 양주를 10년 간 휩쓴 장영 등 안제부터 영제까지의 80년간 100여 차례의 농민 봉기가 발생한다. 이들의 요구에 대해서는 역시 사서에서 한 글자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당시 유행하던 가사에서 이들의 성격에 대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소민의 폭동은 풀과 같아 밟아도 다시 살아나고 머리는 닭과 같아 잡아도 다시 운다. 관리를 경외할 필요도 없고 백성을 가벼이 여길 필요도 없다." 이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봉건적 지배와 그 핵심 고리인 신분제와 봉건 관료의 지배에 분개하고 있었고 그것에 대한 타격을 바라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들의 경제 요구 역시 봉건적 잉여 공출에 대한 타격에 있었다. 많은 농민 반란이 세금과 부역 등의 경감, 소작료 인하 등을 요구로 삼았다. 중국의 농민 투쟁에서 그 경제적 요구가 사서에 남은 것은 명 말기의 이자성군의 요구가 대표적인데 이들의 경제 슬로건에는 균전(均田), 부당차(不當差), 평매평매(平買平賣) 등이 있었다. 균전과 부당차는 농민들의 요구로 부당차는 요역의 철폐를 요구하는 것이었고, 균전은 논란이 있는데 말 그대로 대지주 소유를 철폐하고 직접 경작자에게 토지를 분배하자는 혁명적 요구인지 아니면 당시 지주 소유 토지와 소농 토지 간의 불평등한 토지세를 균등하게 부담하자는 개량적 요구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리고 평매평매는 도시 상인들의 요구로 무거운 거래세 등의 봉건 지배자의 억상 정책의 철폐를 요구하는 것이다.

 

  농민들은 봉건 지배에 분노하고 있었지만 그 지배를 대체할 대안적인 정치 체제를 제시할 수 없었다. 그들의 봉기는 많은 경우 지배 계급 일부 분파-중앙이건 지방이건-의 지도에 종속되었으며 혹은 그들 지도부 자신이 황제, 진인 등 (세속적이건 종교적이건) 봉건국가의 수장을 자처하고 나섰다. 이들은 '인간의 얼굴을 한 봉건제' 이상을 제시할 수 없었다.

  프랑스 대혁명의 주역 중 하나이자 <제 3신분은 무엇인가>를 쓴 시에예스는 '정치적으로 제 3 신분은 무엇인가'의 질문에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모든 것'이라고 선언했다. 신분제의 철폐, 공화제, 민족국가는 그의 선언을 실현시켰다. 후한의 농민들은 자신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분개하였으나 '모든 것'이 될 전망을 제시할 수 없었다.

 

2) 농민공동체로의 복고 운동

 

  봉건제 초기에는 많은 경우 작은 농민 공동체를 단위로 생산 단위가 조직되었다. 후한의 경우 '향'이나 '취'가 바로 그것이고 카톨링 왕조 시대의 프랑스의 경우 '망스(manse)'가 그것이다. 이러한 생산 단위가 존재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당시 생산 수준의 저열함에 기인한 것이었다. 철제 농기구의 사용, 우경의 시작 등 농업 생산력의 발전은 최소 생산 단위를 축소시키고 농민 공동체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후한말의 농민 공동체 붕괴는 부농의 성장과 빈농의 몰락이라는 농민 사이의 계급 분화를 촉진하였다.

  이러한 생산력의 발전에 따른 계급 분화에 의해 유망한 농민과 빈농들은 이러한 변화에 절망하였고 과거의 농촌공동체로 다시 돌아갈 것을 염원하였다. 이러한 농민 일부 분파의 염원은 적미(赤眉) 농민 봉기 등을 통해 나타났다.

 

  이는 국가 봉건 지배층의 일부 분파에서도 지지되었다. 왜냐하면 기존의 국가 봉건제는 농민공동체를 기초로 하여 조직되어 있었고 국가봉건제의 약화와 함께 지방 영주들이 이러한 농촌공동체를 소생산자들로 분화시킴으로서 봉건제를 재조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가 봉건제의 약화를 가져왔고 관료와 관료의 전망을 가지고 있던 인텔리들을 자극하였다.

  낙양의 태학 등을 중심으로한 이 엘리트(당인이라고 불렸다)들은 농촌공동체의 재건, 국가봉건제의 강화, 호족의 견제, 이러한 개혁을 행할 의지가 없는 외척-환관 분파의 척결을 내걸고 청원에서 쿠데타 모의에 이르는 투쟁을 감행하였으나 환관-외척 분파의 반격에 의해 이 지배 계급의 급진적 분파는 2차에 걸쳐 파괴, 소멸되었다. 이를 당고의 화(黨錮之禍)라고 한다.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 역시 이 당고의 화에 의해 몰락한 명문의 후예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연의와는 달리 정사에서 묘사되는 장비는 꽤 인텔리이다.)

  물론 농촌 공동체의 붕괴와 국가 봉건 세력의 이해가 충돌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국가 봉건 세력의 궁극적인 이해는 지역에 대한 통제권 강화를 통해 향촌의 통제권을 농민공동체가 아닌 관료 기구로 흡수하는 것이었고 이후의 국가 봉건제는 이러한 양상으로 조직된다. 다만 이들은 시급한 과제로 호족에 의한 국가봉건 체제의 침식을 막을 필요가 있었고 자신들의 부족한 역량을 농민들에 대한 양보-그것을 통한 지지의 획득-을 통해 보충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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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편에서는 이러한 두 경향과 실제 투쟁 전개 양상을 기초로 하여 황건 농민 투쟁의 성격을 분석하겠다. 아, 그리고 다음편에는 연의나 정사에 등장하는 애덜도 좀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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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그 이후 / 그 이후를 기다리며

  이 작품을 샀는데 포장을 안뜯거나 책방에서 빌려놓고 안보고 있다거나 조만간 구해다 보려고 생각 중이신 분들은 읽지 않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그닥 대단찮은 스포일러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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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교사인 한 여성이 인플루엔자-독감인가?-로 죽었다. 그는 고등학생 남매의 어머니이자 한 달 전에 결혼한 26살의 동료 교사의 아내였다. 이야기는 남겨진 26살의 남편이 (더 이상 그가 없는) 그의 가족에 편입되는 이야기이다. 그의 남편과 그는 가족이고, 자녀들과 그는 가족이지만 남편과 자녀들은? 꽤나 흥미로운 설정.

 

여담이지만 보통 작화의 수준은 손을 보면 알 수 있다

 

  생판 남과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친하지 않은 사람과 함께 산다는 건 상당히 어색하고 불편하다. 만화에 나오는 예를 들자면 잘 모르는 사람이랑 살면서 팬티 바람에 담요를 걸치고 빈듯이 누워서 방을 어지럽혀 가며 TV를 보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겠는가 ... 이거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서로에게 신경 쓰이는 불편함.

  생판 남과 좀 오래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살다 보면 다 친해지는 법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만 그렇게 따지면 가족도 비슷할 것이다.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들은 죽음 이후 새로운 가족을 재구성한다.

 

  남편이 가족에 편입되기 원하는 이유는 가족이란 그에게 죽은 아내를 추억할 수 있는 매개이고 그 추억만이 그가 지금 살아갈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 이래서 만화란. 뭐 세상에 이런 사람 한 둘 쯤 있는 것도 이상할 건 없겠지만.

  반면 아이들의 경우는 어떨까? 왜 외부인의 불편한 침입을 그 경계가 허물어질 때까지-정이 들 때까지-이들은 참아내는 것일까? 그것의 힌트는 아이들의 계부에 대한 태도, 이상할 정도의 부채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남자 아이가 말하는 계부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렇지 않아도 짐 들어주고 돈도 못 받게 된 판국이 되었는데, 짐을 열어보니 쓰레기였다면 ... !"

 

  아내 때문에 결혼하였는데 갑작스럽게 아내가 죽고 다 아이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상황을 묘사한 것 치고는 꽤나 요란하지 않은가. 여튼 생계를 책임져 준다는 것, 아이의 사회 성원으로의 재생산이 어른의 지갑에 종속된다는 관계에서 그의 존재는 단순한 엄마의 남자에서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 '짐'을 진 사람으로 격상(?)되고 아이들은 상당한 부채 의식을 느끼게 된다.

 

  물론 이러한 사회 관계 속에서 이 '부채'는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남편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사실이며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관계를 긍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회 성원 재생산의 책임이 개별 가정으로 넘겨지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된다. 나아가 이것이 가족임금제와 결합하여 가족의 재생산이 가장의 소득에 의존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 이것은 가부장제의 경제적 기반이 된다.

  더더군다나 이것은 가족에 종속된 아이들과 여성의 고통뿐만이 아니라 운나쁘게 종속되지 못한 이들의 더 큰 고통을 전제한다. 가령 미성년자 가족과 편모 가족의 상당 수가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이다.

 

  가족 생산이 종식됨에 따라 현대 정씨 일가와 같이 혈족이 너무나도 소중한 한 줌의 유산자들을 제외하고는 가족의 물질적 존재 조건은 점차로 사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가족의 해체 역시 점차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재생산을 개별 가정의 문제로 떠넘기려는 자본의 전략-가족임금, 사교육비 등을 통한-은 가족의 소멸을 최대한 더디고 고통스러운-해체 가족의 문제로 인해-과정으로 만들고 있다.

  만화에서의 아이와 어른이 어줍잖은 책임감과 부채감으로 대면하는 것이 아닌, 한 사람을 추억하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만날 수 있다면 현실도 조금은 더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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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과 마요네즈, 일상을 지키기 위해

  키리코 나나난 씨의 그림을 좋아한다. 간결한 선, 깨끗한 여백. 그의 그림은 그의 작품과 너무나도 어울린다. 펜 선만큼이나 수식 없는 이야기, 여백만큼이나 씁쓸한 뒷맛. 이사 가려고 짐을 꾸린 방에 누워 바라보는 천장이라던가, 가을에 날아다니는 모기의 윙윙 거리는 소리라던가, 폐가의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라던가 ... 그런 공허감과 닮았다는 느낌.

 

 

  뜨겁게 달아오르는 느낌, 폭주하는 사고 ... 만화에 나올법한, 혹은 이야기에 나올법한 삶의 순간순간들을 그려내는데는 키리코 씨의 펜이 맞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일상이 되었을 때, 너무도 소중했던 것이 공허해지기 시작하는 그 긴 시간을 묘사하는데는 키리코 씨의 그림만큼 안성맞춤이 없다고 생각해 본다. 사촌 동생이 유희왕 트레이드 카드를 모으는 그 열정보다는 그것이 기억 속으로 사라져가는 망각의 과정을 잘 그려준다고 할까? (미묘하게 다른가?)

 

  호박과 마요네즈. 제목으로 무엇을 이야기하는 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만화에도 호박이나 마요네즈가 나온 거 같지도 않고. 여튼 만화의 내용은 장미와 와인보다는 호박과 마요네즈를 고민해야할 동거 커플의 이야기이다. 장미에서 호박으로? 사람 머리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만들어내는 호르몬이 있다고 하는데 그건 3개월인가 분비가 된다고 한다. 그 분비가 끝날 때 쯤의 사랑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야할까? 장미가 시들지 않고 남을 수 없듯이 사랑은 생활로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뜨겁게 뛰는 심장의 고동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게 했지만, 거친 숨을 고르면서 그것은 헌신에서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 벌레로 변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것은 일방적 헌신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생활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기에 그것은 일상이 될 수 없다. 생활의 토대를 가지지 못한 열정. 그렇기 때문에 결국 그 일상은 위태위태할 수밖에 없고 그 깨어질 수밖에 없는 건조한 긴장감은 공허함과 이어져있다.

 

  일상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생활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쉽게 지치지 않기 위해서는, 나의 꿈이 나의 삶을 갈아먹는 벌레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꿈과 삶을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 기적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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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의 식탁,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 식탁의 양분화

  최근 미식이니 웰빙이니 뭐니 열풍이다. 그 열풍 때문인지 만화계 역시 쟁쟁한 요리만화가 쏟아지고 있다. 자연 재배한 신선한 재료와 엄청난 내공의 수수께기의 요리사, 그리고 정성과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 ... 따위가 어우러져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을 만족시키는 절륜의 요리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가 양산되고 있다는 이야기.

  이러한 이야기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보통 판타지 장르로 분류된다. 요리만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듣도 보도 못한 요리'는 넘어가더라도 일년에 한번쯤 있을 법한 가족 외식 때 들어봄직한 요리마저도 판타지의 그것은 격을 틀리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이해가 쉽지 않다면 주판을 들고 만화책을 다시 보면 그 격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희귀 생물 혹은 극도로 제한된 환경에서 재배/사육되는 신선한 재료! 일정 이상의 숙련을 지닌 요리사가 아니면 꿈도 꾸지 못할 고난이도의 기술! 그 요리사에 의한 재료의 숙성과 상당 시간을 소비하는 준비 없이는 만들어낼 수 없는 세밀한 조리 공정! 자, 주판을 들어 재료비와 인건비를 계산해 보자. 몇가지 조건이 잘 맞아 떨어지는 경우에는 싸구려 급식 식당에서 1년 먹을 치의 식사과 맞먹는 한 끼를 구경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유기농 비스므리한 싱싱한 재료. 전속 요리사는 무리더라도 가사에 종사하는-대개의 경우-가정 주부. 어느정도 난이도의 조리과 어느정도 시간의 소모. 이 정도쯤이 된다면 왕후장상의 식사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웰빙을 입에 담을 수 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주판을 잘 두드려보면 만만치 않은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웰빙을 거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식탁으로 이동해보자. 카드빚을 내지 않으면 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는 저임금은 자신의 노동환경과 비슷한 환경에서 재배된 농약과 방부제로 버무려진 최신 과학의 식품 재료에 접근하게 해준다 ... 당연히 맞벌이를 해야 애들 사교육비라도 댈 수 있는 형편에 숙련 요리사의 환상은 양립할 수 없다 ... 당연히 고난이도의 조리 과정은 반조리 식품으로 오랜 준비 과정은 전자렌지 데우기로 대체된다 ... 이것이 귀찮다면 가까운 급식 식당을 찾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오소독스한 유형의 빈민은 아니다.

즉 인간의 현실은 이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빈민의 식탁은 이 화해할 수 없는 식탁의 양극화 위에서 돈이 없더라도 잘 먹을 수 있다는 작가의 신념을 풀어나가고 있는 작품이다. 이 만화는 매 회마다 1인분 100엔 이하의 식사를 소개하고 있다. 이 100엔의 식탁은 환상의 식탁 혹은 드라마에 나오는 이상적인 중산층 가정의 식탁에 도달하는가?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못하다. 주판은 정직한 것이다.

  원가를 줄이기 위해서 도입되는 방부제 떡칠의 가공식품과 저질 채소, 기업형 목축의 생산물들. 섬유질, 칼슘, 일부 비타민군 등의 부족으로 인한 영양 밸런스의 붕괴. 가격의 영향이 크겠지만 지극히 부족한 양-성인 여성이 하루에 필요한 열량이 2000kcal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이 모든 것이 그대로인채 작품은 꽤나 요리의 고수이며 백수이기 때문에 요리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주인공을 내세워 요리의 맛을 약간 더 좋게하는 비법들을 소개한다. 그다지 도움이 되기 힘들 뿐더러, 그다지 위안이 되지도 않는다. 돈이 없더라도 잘 먹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계급적인 식탁의 분할은 계급 사회 내에서 오랜 역사가 되어왔다. 피지배계급의 재생산비를 최대한으로 줄이고자하는 시도는 세종으로 하여금 춘궁기에 나무 껍질을 벗겨먹는 방법을 소개하게 하였으며, 맑스의 자본론에 불량빵-석회가루 등이 섞인-에 대한 이야기를 싣게 하였다. 또한 오늘날 많은 급식 식당의 한 끼 열량이 500kcal도 못미치는 엽기적인 상황을 낳았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소를 먹는 소의 고기를 먹게 하고, 몬산토에게 제3세계 농토를 농약과 유전자 조작 작물로 재조직하게 하였으며, 한때 바나나맛 우유를 진짜 바나나 맛이라고 믿게 하였다.

  재미있게 읽은 것 치고는 평가가 너무 박한가? 분명 오랜 분할의 종식의 열쇠를 이 만화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괴로운 일상의 작은 즐거움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과 부엌이 없는 사람에게 꽤 사실적인 판타지를 제공한다는 것을 덤으로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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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誌), 후한말의 계급투쟁 (2)

3. 봉건 사회의 위기

 

  주나라 이후 중국에 얼마나 많은 봉건 국가들이 들어섰는지 열거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은 국가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이들의 흥망성쇠, 봉건 사회의 위기는 어떻게 도래하였는가? 봉건제의 역사가 긴 동아시아이니만큼 이 봉건 사회의 위기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존재한다. 일단 대표적인 오해의 사례로 환관원인론과 중앙 정부 지도력 부재론을 알아보고 진정한 위기의 근원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1) 환관(宦官)원인론

 

  삼국지 연의에서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주장이자 다른 수많은 왕조의 멸망사에서도 거의 빠지지 않는 원인론이다. 정상적인 남성이 아닌 자가 정치를 하면 국가가 망한다는 가부장주의자들의 굳은 신념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며 비슷한 종류로 여성이 정치에 관여하여 국가가 망한다는 주장도 있다. 유치하기 짝이없는 주장이지만 의외로 파급력이 만만찮은 주장이기도 하다.

 

  환관원인론은 마치 환관은 봉건 국가 운영을 위한 정치행정적 능력이 부재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익을 파괴한다는 근시안적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는 듯한 늬앙스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과연 그러할까?
  환관이 무식하다는 환상은 당시 유학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사실이 아니다. 이들은 단순한 시종이 아닌 지성과 교양, 행정 능력 등을 두루갖춘 봉건 국가의 인텔리이자 행정 실무자들이었다. 진나라의 유명한 조고가 법률 전문가이었다는 점은 꽤나 유명한 이야기이고 제나라의 수조나 명나라의 정화, 사기를 쓴 사마천, 종이를 발명한 채륜, 심지어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당시 원정사업의 2톱 중 하나였던 나르세스 역시 환관이었다.
  환관이 국익을 해친다?! 국익이란 무엇일까? 대략 국가의 농민으로부터 최대한의 잉여를 수탈하여 지배 계급의 재정을 윤택(富國)하게 하고 안으로는 농민 등을 억누르고 밖으로는 타민족을 침략할 강한 군대를 만드는 것(强兵)을 뜻하는 것이라면 환관들의 이해 역시 지배 계급의 이해와 다르지 않았다. 왜냐면 환관들이 누리는 부의 근원은 국가 토지에서 나오는 잉여공출물이건 (월급 등의) 사유지에서 나오는 잉여공출물이건 봉건적 잉여 공출에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들에게는 안정적인 착취를 조직할 장기적인 안목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자들도 있겠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안타깝게도 이들은 바보가 아니었단 말이다.

 

"어르신, 저희가 원인이라는데요." "이건 마초주의적 음모야!"

 

  환관원인론은 결국 가부장적이고 성리학적인 관점에서 위기의 책임을 환관에게 뒤집어 씌우고자하는 후세 지배계급의 한 분파의 오랜 공작의 결과에 불과하다. 문제의 근원을 특정 개인 혹은 집단의 무능력으로 몰고 '유능한' 집단의 영도가 계속되면 위기는 도래하지 않는다는 우리의 유학자들의 주장은 안타깝게도 사실이 아니었다. 정상적인 남성의 지배아래 조직된 이전 이후의 수많은 봉건 왕국들 역시 사회적 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명문 사대부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겠지만 그 두 집단 사이에 차이점이란 지극히 사소한 것-물론 그들에게는 큰 문제였겠지만-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2) 중앙 정부 지도력 부재론

 

  그나마 근대적인 분석가들이 주장하고 있는 바이다. 주장의 요체인 즉 중앙 정부의 지도력이 약해지고 지방 세력-영주, 호족, 군벌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이들이 토지 겸병을 일으키고 농민들을 가혹하게 수탈하며 토지에서 쫓아내서 봉건 사회에 위기가 도래했다는 주장이다. 이는 적어도 후한의 붕괴의 현상을 적실하게 묘사하고 있다. 황실의 권위가 추락하고 지방 군벌들이 세력을 강화하면서 농민들의 몰락이 촉진되고 그것이 황실의 붕괴와 호족에 의한 분할로 이어진 현상을 이 이론은 잘 설명해준다. 그러나 이것은 봉건제적 위기의 일반적인 양상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뿐더러 후한의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이러한 주장은 곧잘 강력한 황권-중앙 권력-이 유지되면 사회의 위기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연결되곤 했고 이른바 비국가 지주는 착취적인데 반하여 국가 지주는 그렇지 않다는 환상으로 이어져 왔다. 질문을 한가지 씩 던져보자. 이들의 이야기와는 달리 국가 지주가 아닌 지방의 지주가 '언제나' 농민의 토지에서의 유리를 강제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가령 국가 봉건제의 발달이 미약했던 중세 유럽이나 주나라 시대의 중국은 항시적인 '위기 상태'였는가? 그리고 국가 지주는 농민의 몰락을 가져오지 않는가? 국가 지주가 부과하는 높은 세금이 농민에게 비국가 지주의 높은 소작료와 어떤 차별성을 지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야기의 시작인 국가 봉건제의 붕괴는 왜 시작되는가?

 

  이 이론의 오류는 봉건제 하에서 국가 봉건 지주와 개인 지주가 질적으로 상이한 집단이라는 환상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환상은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지배 계급 내부 분파 사이의 싸움으로 축소시키고 사회의 토대에 대한 진지한 분석을 가로막는다. 마치 한나라 당이 경제 위기를 운운하면서 자신들이 키를 쥐면 위기가 도래하지 않을 것처럼 사실을 오도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3) 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인가

 

  멜서스의 인구론은 그다지 세계를 분석하는데 유용하지 않아 보인다. 여러 이유로  인구가 꽤나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음에도 오늘날은 역사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풍부한 양곡-한 사람에 하루 3500kcal가 돌아갈 그것도 고기, 유제품, 채소 등을 빼고-이 생산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굶어죽는 사람은 수두룩 하다만) 그러나 중세 사회를 살펴보면서 이 인구론적인 상황은 상당한 설명력을 가진다.
  인구가 증가함에 불구하고 식량을 비롯한 생산력의 발달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 생산 외적 강제에 기초하여 직접 생산을 조직하지 않는 봉건 영주들은 그다지 생산력 발전에 큰 관심이 없다. 뭐 많이 생산해 봤자 세금이나 소작료로 대부분의 잉여가 털릴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농민 역시 생산 도구를 혁신하여 생산량을 늘릴 유인도 여유도 그다지 존재하지 않는다. 자급자족이 기껏인 사회에서 그것도 지배계급의 강력한 견제를 받는 상업이나 수공업은 그저 봉건영주의 필요에 기생적으로 종속된 형태로 존재할 뿐 유의미한 발전을 이루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의 발전은 인구 증가에 금방 옷깃을 잡히게 된다.
  인구가 증가하나 생산은 늘지 않는다. 생산량이 일정함에도 토지가 부양해야할 인구의 숫자는 늘어난다. 부담해야할 세금/소작료의 양은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는다. 농민은 몰락하고 토지를 떠나 유망한다. 이것이 바로 봉건제 사회에서 주기적으로 부딪히는 위기의 정체였고 이것은 생산력이 증대될 수 있는 조건의 쟁취를 통해서만이 혹은 상당 수의 인구의 절멸을 통해 인구 압력이 완화됨으로서만이 해소될 수 있었다.

 

탈세의 현장 : "설마 이것까지 뜯어 가겠어?"

 

  다시 후한 시대로 돌아가자. 농민이 유망한다. 유망한 농민은 거지가 되기도 하고 혹은 도적이 되기도 했다. 농민 몰락에 의한 세수 감소, 치안 통제권의 파괴는 국가 봉건제의 기틀을 위협하고 지역 통제권이 약해짐에 따라 지역의 자경농들은 쉽게 지역 지주 세력에게 포섭된다. 또한 몰락 농민의 상당 수는 지역 지주들의 사병화되어 강력한 지역 군벌을 탄생시킨다. 위기가 낳은 것은 지방 군벌 세력만이 아니었다. 조직된 농민 반란 역시 위기 속에서 잉태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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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건적 위기의 원인에 대한 대강적인 분석이 마무리 된 듯 하다. 다음 시간에는 황건 농민 전쟁 이전의 농민 봉기, 그리고 황건 농민군의 발생과 성격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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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 이 글은 뎡야핑님의 [팔레스타인 비상사태 선포]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경성을 잠시 떠나 있던 때이니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의 일이었다. 파출소에서 근무를 서고 있는데 갑자기 신고 전화가 들어와서 출동을 하게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신고 지역으로 가다보니 과연 오랜지 나무가 많이 열리는 농가에서 큰 소리가 나고 있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웬 복면을 쓴 자가 잠 옷 차림에 머리가 깨져 피가 줄줄 흐르는 중년인을 추수용 도리깨로 개잡듯이 패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피투성이가 되어 맞고 있는 중년인의 모습을 보나 그를 패는 자의 복면을 쓴 모양새를 보나 대단히 수상해 보이기는 했지만 복면인은 무공이 높다-주성치의 <파괴지왕>이나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에서 나오듯이-라는 말도 있고 하니 함부로 건들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 함부로 경거망동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

 

  잠시 양해를 구하고 둘을 파출소로 데려왔다. 둘을 앉혀놓고 무슨 연고인고 들어보니 복면인이 중년인의 집에 무단으로 아니 자유롭게 출입하여 평화롭게 그 재산과 저택을 강탈...아니아니 양도 받고 있었는데 중년인이 문득 사술(邪術)인 테러지공을 사용하여 그 재산을 자신의 창고로 옮기던 하인을 다치게 했다며 호소하였다. 이에 분노한 복면인은 명문정파 제국문의 문하 답게 대노하여 비술(秘術) 양민학살지공으로 중년인과 그 식솔들을 노약자를 가리지 않고 개패듯이 패고 굶겨 이들에게 다시는 저항할 마음이 없게 하고저 한다고 이르니, 파출소장 부(富) 씨가 속으로 기뻐하며 '피고용인 따위가 수백 수천명이 죽어나가도 테러에 조금도 타협하지 않으니 그것이 바로 용(勇)이요, 노약자를 가리지 않고 저항을 섬멸하니 이것이 바로 의(義)이니, 어찌 이 같이 올곧은 제국주의자가 있단 말인가?'라고 생각하였으나 겉으로는 짐짓 "무공을 제한적으로 운용할 것"을 즉 적당히 죽지 않게 두들겨 팰 것을 당부하였다.

 

  문득 취조를 위하여 중년인에게 말을 걸려 하였으나, 옆에서 이름 높은 로 경(sir Roh)이 큰 소리로 병사들을 닥달하는 통에 그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그의 큰 소리를 제지하려 했지만 로 경은 제국을 따라 검은 용인 거무틔틔르를 잡으러 간 몇 안되는 충성스러운 기사 중 하나였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영민(領民) 중 한 명이 용에게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개의치 않고 황제를 도와 거무틔틔르의 기름을 짜는데-동시에 그 불쌍한 부역자의 피를 짜는데-헌신을 바친 이름높은 기사인지라 감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는 병사들에게 열악한 노동조건과 고율의 소작료에 반발하며 부역을 거부한 농민들을 방패와 쇠몽둥이로 때려잡으라 명하면서 큰 칼 허리에 차고 높은 달을 보며 탄식하길 "아 그들이 반항하여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을 ..."하며 카메라를 의식하며 눈물을 훔쳤다.

 

  "그들은 일상적으로 제도적이고 체제화된 폭력을 행사하고 때로는 가장 노골적이고 야만적인 폭력을 행사하면서 우리의 작은 저항이 존재하는 한 더욱더 악랄한 폭력을 행사하겠다고 외친다. 그들은 우리에게 노예로서의 삶, 가장 천천히 다가오는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택하기 요구하나 우리는 그것에 맞선 죽음이 우리의 존엄을 지키는 것임을 알고 있다." 중년인은 피에 젖은 눈으로 모두를 대표하여 진술을 마쳤다.

 

  제목이 '환상적인'인 이유는 이 글이 퓨전 판타지 소설이기 때문인가, 3인칭과 1인칭을 넘나드는 정신나간 서술이 판타스틱하기 때문인가, 남을 억누르고도 저항에 낯설어하는(혹은 뻔뻔해하는) 저들의 사고 체제를 이름인가, 저항에 선두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또한 자신들의 주인의 선택에 의해 대신 피를 흘리고 있는 농노와 하인과 병사와 피고용인, 그리고 식솔의 모습을 이야기 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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