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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과 마요네즈, 일상을 지키기 위해

  키리코 나나난 씨의 그림을 좋아한다. 간결한 선, 깨끗한 여백. 그의 그림은 그의 작품과 너무나도 어울린다. 펜 선만큼이나 수식 없는 이야기, 여백만큼이나 씁쓸한 뒷맛. 이사 가려고 짐을 꾸린 방에 누워 바라보는 천장이라던가, 가을에 날아다니는 모기의 윙윙 거리는 소리라던가, 폐가의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라던가 ... 그런 공허감과 닮았다는 느낌.

 

 

  뜨겁게 달아오르는 느낌, 폭주하는 사고 ... 만화에 나올법한, 혹은 이야기에 나올법한 삶의 순간순간들을 그려내는데는 키리코 씨의 펜이 맞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일상이 되었을 때, 너무도 소중했던 것이 공허해지기 시작하는 그 긴 시간을 묘사하는데는 키리코 씨의 그림만큼 안성맞춤이 없다고 생각해 본다. 사촌 동생이 유희왕 트레이드 카드를 모으는 그 열정보다는 그것이 기억 속으로 사라져가는 망각의 과정을 잘 그려준다고 할까? (미묘하게 다른가?)

 

  호박과 마요네즈. 제목으로 무엇을 이야기하는 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만화에도 호박이나 마요네즈가 나온 거 같지도 않고. 여튼 만화의 내용은 장미와 와인보다는 호박과 마요네즈를 고민해야할 동거 커플의 이야기이다. 장미에서 호박으로? 사람 머리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만들어내는 호르몬이 있다고 하는데 그건 3개월인가 분비가 된다고 한다. 그 분비가 끝날 때 쯤의 사랑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야할까? 장미가 시들지 않고 남을 수 없듯이 사랑은 생활로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뜨겁게 뛰는 심장의 고동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게 했지만, 거친 숨을 고르면서 그것은 헌신에서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 벌레로 변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것은 일방적 헌신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생활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기에 그것은 일상이 될 수 없다. 생활의 토대를 가지지 못한 열정. 그렇기 때문에 결국 그 일상은 위태위태할 수밖에 없고 그 깨어질 수밖에 없는 건조한 긴장감은 공허함과 이어져있다.

 

  일상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생활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쉽게 지치지 않기 위해서는, 나의 꿈이 나의 삶을 갈아먹는 벌레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꿈과 삶을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 기적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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